2001년 10월호

캠퍼스는 지금 사업중!

‘敎授벤처’ 2년 중간보고서

  • 송홍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05-04-04 14: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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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연구중심 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해 교수벤처를 더욱 장려해야 한다.”

    “교수님이 장사꾼으로 변했다. 강의를 빼먹기 일쑤고 온통 회사 생각뿐이다.”

    IMF 경제위기 이후 정부와 각 대학들이 교수의 벤처창업을 지원, 육성하면서 많은 교수가 벤처기업을 창업해 직접 경영하거나 간접적으로 경영에 참여했다.

    벤처기업에 몸담은 교수들은 교수벤처가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고 교수의 연구 의욕을 촉진시키며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돈에 ‘눈이 먼’ 일부 교수들의 행태 때문에 교수창업 허용을 전면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벤처열풍이 휩쓸고간 지난 2년 동안 대학 실험실에선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경기대학교 호연관에 자리잡은 벤처기업 제이맥. 이 회사의 대표이사는 경기대 디자인공예학부 김병찬(45) 교수다. 제이맥은 ‘전국 1호’로 설립된 교수벤처 기업이다. 교수의 기업 창업이 허용되자 마자 김교수는 1999년 9월1일 같은 과 교수 두 명과 함께 벤처기업 제이맥을 차렸다.



    대학 실험실에 ‘벤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김교수가 ‘전국1호’로 벤처기업을 창업한 1999년부터. 물론 그보다 먼저 연구결과를 산업화해 회사를 경영하는 교수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은밀한 일이었다. 학교 눈을 피해 창업한 뒤 대리인을 두고 경영하는 식이었다. 따라서 대학내 실험실 벤처사업가로는 그가 최초인 셈이다.

    99년부터 교수 창업 허용

    김교수는 “교수들은 첨단 정보에 쉽게 접할 수 있고 연구를 통해 신 기술을 확보할 수 있어 교수 벤처는 성공할 가능성이 일반 벤처에 비해 매우 크다”면서 “다만 교수 본연의 임무인 연구·교육 활동과 벤처활동을 어떻게 조화시키는 지가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1999년 6월 이전까지 학교 내 창업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교수가 외부기업의 임원을 겸직하거나 회사를 운영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학문으로 치부하려 한다”는 비난을 받기 일쑤였고 사업을 계속하려면 교수 노릇을 그만둬야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경제위기 이후 ‘벤처산업’에 관심이 고조되면서 교수창업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고, 1998년 말 ‘벤처기업 특별조치법’이 개정되면서 교수창업에 대한 법적인 제한이 사라졌다. 이 법에 따라 교수들은 1999년 6월부터 회사를 창업하고 그 회사의 임원을 교수직과 겸임할 수 있게 됐다. 그때부터 벤처 깃발을 내건 ‘실험실’‘연구실’ 벤처기업이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특히 지방대학에선 ‘특성화 사업’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학교가 교수의 창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벤처창업’이 유행처럼 번졌다.

    “저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 그 전부터 막연하게 수요자 중심의 교육과 특성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벤처 바람을 타 ‘생각’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거지요. 중소기업청에서 각 대학을 돌며 벤처기업 설립에 대해 홍보하고 독려했습니다. 최근엔 벤처붐이 시들해져 그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변했습니다.”

    김교수는 창업 당시를 이같이 회고한다. 지난해 1·4분기까지는 각 대학들이 학내 벤처를 독려하고 정부까지 나서 벤처산업 육성을 역설해, 교수들의 벤처 창업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벤처는 곧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됐다.

    ‘노는 장비’로 부가가치 창출

    어떤 대학에선 학내 벤처기업이 몇 개라고 자랑하는 신문광고를 하는 등 학교를 홍보하는 수단으로 학내 벤처를 이용했다. 재정이 충분치 않은 대학에선 부족한 재원을 교수벤처를 통해 확보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교수벤처에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실험실 벤처의 가장 큰 장점은 창업비용이 크게 절약돼 경쟁력 확보가 쉽다는 점이다. 학교에 있는 수억원 대의 장비를 무료 혹은 아주 적은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학교로부터 공장, 사무실도 저렴하게 임대할 수 있기 때문에 창업 비용이 일반 소기업과는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적다. 연구목적으로만 사용하기엔 아까운 고가의 장비를 수업 이외의 시간에만 사용하기 때문에 장비 공간을 무료 혹은 실비로 제공하고도 대학으로선 손해볼 것은 없다.

    전국1호 교수벤처 제이맥의 주요 생산품은 수원의 전통문화를 담은 관광문화 상품과 옥을 이용한 장신구다. 벤처기업 지정 후 20여 평 규모의 학교 실습실을 공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수억원 상당의 금속장비를 학교에서 지원받아 사용한다. 또 학교로부터 1억원의 창업자금을 대출 받았다.

    학교가 출자한 교수벤처는 수익이 발생했을 때 일부를 학교에 기부하거나 상장 했을 때 일정지분을 학교가 갖는 조건인 경우가 많다. 학교의 노는 시설을 이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잉여소득을 학교, 교수, 학생들이 골고루 나눠 갖는 것이 교수벤처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다.

    제이맥 직원들은 곧 열리는 ‘옥공예 명품전’ 준비로 여념이 없다. 제이맥은 홈쇼핑 업체를 통해 개발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제이맥이 사용하는 공간은 10평 남짓의 연구실 2개. 디자인을 위한 컴퓨터 몇 대와 책상, 대형 테이블 두 개가 사무실 비품의 전부다. 회사에서 김교수 연구실까지의 거리는 불과 10여m. 연구실이 사장실이고 실습실이 회사인 학내 벤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미술대학은 거의 모든 대학에 벤처가 설치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내 시장은 한정돼 있고 더욱이 순수작가로 성장할 수 있는 인원은 한계가 있죠. 소수의 대학을 빼고는 실용적인 영역에 관심을 갖고 교육을 해야 합니다. 제이맥도 그런 교육철학의 연장선상에 있지요.”

    김교수는 “학내벤처가 실용적 교육의 길을 터주는 단초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회사를 설립하고 학교의 양해를 얻어 강의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회사운영과 강의를 병행하다 보니 강의를 줄이지 않고서는 회사 운영을 할 시간이 크게 부족했기 때문이다. 장신구 디자인 전공 5명의 교수 중 3명이 벤처기업에 관여하다 보니 다른 두 명의 교수들이 여러 가지 행정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다.

    학교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해 다른 두 명의 교수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는 그는 “회사가 잘 운영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선 회사가 잘돼야 지원을 해준 학교에 보답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익을 내야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학교에 보탬을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김교수는 창업 당시 자금을 지원받은 대가로 회사가 상장되면 주식의 10%를 학교에 기증해야 한다. 교수벤처가 성공하면 학교도 새로운 재정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디자인 학과에 입학하는 신입생 중에는 장차 벤처기업을 차리겠다고 말하는 학생이 상당수 있다고 한다. 김교수가 보람을 느끼는 대목이다.

    김교수의 강의는 당연히 실무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기업들이 대졸 신입사원을 뽑으면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 한다고 하소연하는 현실에서 실무를 강조한 교육으로 ‘예비 직장인’을 양성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물 중에 탁월하거나 상업적 가치가 높은 작품은 김교수가 적정 가격의 현금을 주고 구입한다. 김교수는 우수한 디자인을 산업화할 수 있어 도움이 되고 학생들은 실무 경험도 익히고 용돈도 벌 수 있는 1석2조인 셈이다.

    교수벤처의 또 다른 장점은 이처럼 실무위주의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방대학 4학년 생들은 사(死)학년으로 불린다. 취업을 원하는 학생들은 ‘심오한 이론’보다 ‘유용한 기술’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유학을 준비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하려는 학생들에게는 실용적인 교육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이론적 기반 없이 실무능력을 쌓아봐야 사상누각이 될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아카데미즘을 추구하려면 제 강의를 듣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나 실무교육을 원하는 학생들에게는 교과과정에서 실무경험을 쌓게 해줘야지요. 방학 동안에는 아르바이트로 회사에서 일하면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도 있고요.”

    김교수는 방학을 이용해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는 학생들에게 처음엔 시간 당 5000~1만원의 임금을 지급했다. 학생들 사이에 제이맥 연구실에서 일하면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고 한다. 회사의 이익을 고려하다 보니 학생들에게 주는 액수가 낮아졌다.

    김교수는 “학생들에게 인간적인 모습보다 기업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제이맥은 3년 안에 상장을 목표로 펀딩 작업에 열심이다. 아직까지는 별 무리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게 김교수의 설명. 그는 회사가 어느 정도 제자리를 잡으면 전문경영인을 두고 학교 일에 전념할 계획이다. 그때쯤이면 학교에 장학금이나 발전기금도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전국1호 교수 벤처기업은 이렇게 운영되고 있다.

    교수가 창업한 회사의 대부분은 제이맥과 같이 소규모로 운영되지만 공격적인 펀딩으로 자본금이 수십 억원에 이르는 회사도 있다.

    서울대 유전공학연구소 김선영 교수가 참여한 펜제노믹스는 100억원대 초대형 벤처기업이다. 김교수는 교수벤처 시대를 이끈 장본인이며 일본 자금 77억원을 유치해 인구에 회자된 적도 있다. 펜제노믹스는 김교수와 메디슨의 이민화 사장이 공동 출자해 만든 회사로 출범 당시 관련업계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의료기기 전문업체인 메디슨이 40억원, 무한기술투자가 28억원, 김교수를 포함한 개인투자자가 나머지 지분에 참여했다.

    “연구결과 사장 막는다”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국가 연구보조금이 다시 국민들을 위해 환원될 수 있는 통로가 부족했습니다. 교수벤처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교수들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메커니즘의 하나로서 이해해야 합니다.”

    김교수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는 교수벤처 육성에 힘써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기술, 신제품은 대기업이 직접 뛰어들기에는 리스크가 큰 경우가 많다. 따라서 대기업은 검증되거나 수익이 확실하지 않으면 좀처럼 모험적인 산업에 손을 대지 않는다. 따라서 연구자가 직접 창업하거나 전주(錢主)를 구해 회사를 세우지 않으면 우수한 연구결과는 사장되기 십상이다.

    김교수도 자신의 연구결과를 산업화할 곳을 찾아 여러 기업을 차례로 찾았다. 김교수의 산업화 계획을 들은 기업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연구를 스스로 산업화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세운 것이 벤처 펜제노믹스의 모태인 벤처기업 ‘바이오 매드’.

    펜제노믹스가 교수벤처로서는 전례 없는 100억원대의 펀딩이 가능했던 것은 바이오 매드가 이룬 성과가 크게 기여했다. 그가 개발한 유전자 치료제의 상업성이 입증되자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다. 기업이 망설이는 분야에 교수가 직접 나서 연구결과를 산업화함으로써 첨단산업을 발전시키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한 사례다.

    “여학생은 취업이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 회사에서도 졸업생들을 채용하고 있어요. 또 학생들은 장학금을 받으면서 연구할 수 있고요”

    김교수는 자신의 연구소에 있는 석·박사과정 학생들에게 연구보조금을 지급하고 졸업 후에는 일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교수벤처가 만들어지면서 학생들로서는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취업할 수 있는 회사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일자리 창출만큼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없다. 자신이 연구한 분야를 그대로 실무에 적용함으로써 업무 적응도 빠르고 학생 때부터 고급기술을 접해 신기술 습득에도 유리하다.

    김교수의 연구실에 석사과정으로 들어가려는 경쟁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한 학기에 두 명 정도 뽑는데 10여 명이 몰리는 것은 예삿일이다. 이는 김 교수의 연구분야가 장래성이 있고 ‘교수벤처’를 통해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한 학생이 많기 때문이다.

    “대학교육은 기초만 강조하고 응용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학교에선 응용분야 과정이 전혀 없는 곳도 있어요. 모두가 교수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많은 학생들이 응용과학에 대한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김교수는 “기초와 응용은 결국 하나다. 교육, 연구, 벤처를 분리시켜서 보면 안 된다”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강의에 도입하고 교육의 결과를 다시 산업화하는 시스템으로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영마인드, 기획력 배워”

    서울대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권빈씨는 벤처기업 비피도에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지도교수가 만든 회사에 참여한 것이다. 비피도는 기능성 식품을 만드는 벤처기업. 벤처 열풍이 불기 전까지 그는 평범한 대학원생일 뿐이었다. 평소 연구하고 있던 분야를 상품으로 만드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아카데미즘과 벤처기업은 반드시 구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벤처는 생존경쟁이거든요. 실패는 곧 채무로 이어지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우리가 져야 합니다. 일단 벤처를 시작하면 아카데미즘은 접어둬야 합니다.”

    그는 벤처기업에 참여하고부터 사고의 틀을 확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박사과정과 회사일을 병행하기 때문에 논문 쓸 시간도 빠듯하지만, 포기한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다는 게 그의 생각.

    권씨는 “회사에서 핵심 역할을 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고 기획력과 경영마인드를 키웠다. 연구자가 만든 회사라 홍보 영업 분야가 취약하지만 기술력이 타 회사보다 월등해 시장경쟁력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교수벤처는 몸 담은 교수와 학생들의 연구력을 향상시키고 연구의욕을 높이는 한편, 첨단산업 분야의 국가 경쟁력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특성화 사업을 진행하는 지방대에서 주로 육성중인 인터넷, 디자인, 식품, 패션 등의 벤처기업은 실패할 가능성도 비교적 적고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능도 하고 있다.

    교수벤처의 가장 바람직한 모델은 교수벤처를 토대로 학생 벤처가 활성화하는 것이다. 10여년 동안 무인자동차를 연구한 고려대 첨단차량연구실 한민홍 교수는 지난해 7월 벤처기업 (주)비클텍을 창업했다. 무인자동차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그가 자동차가 차선을 벗어나면 자동으로 경보음을 울리게 하는 ‘차선이탈 방지 영상보드’를 개발, 상업화에 들어간 것.

    한교수는 “고급기술을 학생들에게 전수한 뒤, 회사가 잘 운영되면 대학원 졸업생들에게 물려줄 계획으로 창업했다”며 “이런 식으로 계속 회사가 만들어지고 졸업생들이 하나씩 가져가는 게 교수창업의 이상적인 형태”라고 말했다.

    이처럼 교수벤처는 창업한 교수가 일반 벤처기업과는 다른 경영철학을 갖고 본업에 소홀하지 않으며 기술제공에 초점을 맞춘 경우에는 학교 학생 교수 모두에게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교수는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교수벤처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업화 단계까지 기술을 끌어올리는 데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는 교수집단보다 효율적인 집단은 드물다는 것.

    그런데 최근 대학에서 교수의 벤처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수인력이 학교에서 이탈해 학사공백이 생기는데다, ‘대학교수 벤처사장’이 크게 늘면서 이들이 기업 경영에만 몰두하고 교육이나 연구를 등한히 하는 경우가 생겼기 때문이다.

    벤처기업 창업을 적극적으로 독려한 지방사립대들도 최근 벤처경기가 시들해지고 부작용이 속출하자 창업 지원 계획을 철회, 사실상 중단한 곳이 많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책임은 본업인 학교업무를 뒤로 한 채 회사경영에만 몰두하는 일부 교수들에게 있다. 때문에 기술 이전만으로도 충분한데, 무분별하게 창업하는 것은 강력하게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KAIST의 한 학과에서는 교수 간에 벤처창업을 문제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단기간에 많은 교수가 창업을 하자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모두 다 창업하면 학교는 어떻게 되는가. 현재는 일부지만 학과의 대다수 교수들이 나서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부터 적절한 숫자를 넘지 않게 조절할 필요가 있다.”

    “교수 개인이 교육과 연구만 잘 한다고 해서 학교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전체적인 행정과 학생지도도 중요하다. 창업한 교수가 회사 일에 전념하면 상대적으로 다른 교수들의 업무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교수가 창업하는 것은 좋다고 치더라도 연구실에 간판을 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 회사일과 교육이 뒤섞이면, 교수의 지시가 교육의 일환인지 회사일인지 구분하기 어려워 진다. 학교 내 별도 건물인 창업지원센터나 외부에 자리잡는 게 좋겠다.”

    “우리가 그 동안 쓴 논문이 국가 발전에 어떤 도움을 줬는지 반성해야 한다. 이론적인 연구만 하면서 산학협동이 안 된다고 산업계만 탓하지 말자. 이제 우리가 직접 나서서 연구결과를 산업화해야 한다.”

    창업 규제하기 시작한 대학들

    벤처 창업의 부작용을 우려한 각 대학들은 창업규정을 만들어 교수들의 창업을 사실상 규제하기 시작했다. 교수들이 회사 일을 이유로 학교에 소홀한 것을 막기 위해서다.

    서울대는 지난해 9월 창업지원에 관한 규정을 만들었다. 이에 따르면 교수가 교내 시설을 이용해 벤처기업을 창업하거나 임원을 겸직할 경우에는 학교에 통보해야 한다. 또한 교수의 교육 및 연구활동이 침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교수의 벤처 활동을 총 근무시간의 20% 이내로 제한해 이를 위반할 경우 징계토록 했다.

    서울대의 경우, 2년간 교수직과 대표 이사직을 겸할 수 있으며 최대 3년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서울대 관계자는 “교수벤처는 어디까지나 과외활동이다. 교수님들은 본업인 연구와 교육에 매달리는 게 바람직하다”며 “1회만 겸직하고 그 이상은 ‘손 떼야 한다’는 게 기본원칙”이라고 말했다.

    고려대도 ‘교원창업 관련 운영지침’을 정해 벤처활동으로 교수의 본분을 다하지 못할 경우 겸직을 취소키로 했다. 고려대 관계자는 “교수는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는 게 학교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고려대는 내년 4월 교수벤처에 대한 학교의 공식 입장을 최종적으로 정리한다. 일종의 파일럿 테스트 기간을 거쳐 학내 벤처 창업의 장·단점을 관찰한 뒤 방침을 정할 예정인 것. 현재 고려대는 벤처의 대표나 임원수를 학과 전체 교수의 5분의 1이하, 해당대학 교수의 8분의 1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고려대의 한 교수는 “학교 당국은 교수벤처에 대해 아주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각 대학이 벤처창업을 규제하고 나설 만큼 교수 창업이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 실제로 대학들이 우려하는 일이 대학 실험실에 발생하고 있다. ‘교수사업가’라기보다‘장사꾼 교수’에 가까운 일부 교수들이 교수 벤처 전체의 물을 흐려놓고 있는 것이다.

    “전공 교수 중 한명이 벤처기업을 하고 있었어요. 이런 저런 이유로 한 학기에 절반 가까이 휴강을 한 것 같습니다.”

    대학생 김민정(23)씨는 “학생은 3분의 1 이상 결강을 하면 F학점을 받는데 교수는 그래도 되느냐”면서 “벤처도 좋고 학교의 명예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강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일에만 몰두하는 일부 ‘문제 교수’들은 시도 때도 없는 회의와 사업에 매달려 휴강이 잦아진다. 1주일 2~3회로 나누어진 수업시간을 하루에 모아 1시간 반 동안 강의하고 3학점 수업을 마치는 경우도 있다. 또 인터넷 강의를 도입한다는 구실로 수업의 절반 이상을 강의노트를 인터넷에 올려놓는 것으로 끝내는 경우도 있다. ‘사장님 교수’들은 회사를 이유로 강의를 거르면서도 이렇다 할 변명조차 하지 않는다.

    잦은 휴강, 성의 없는 수업

    현장에서 쓰이는 기술을 배우며 적정한 임금을 받아야 할 대학원생들이 ‘착취’에 가까운 대접을 받으며 단순 작업을 반복하는 사례도 있다.

    “교수는 창업을 해서는 안 됩니다. 싼 값에 애들 부려먹고… 교수가 하는 사업은 벤처도 뭐도 아니예요. 회사가 망하면 다시 교수하면 되는 게 무슨 벤처예요. 부업이지”

    K대 대학원 석사 2학기에 재학중인 김모(24)씨는 지난해 11월 대학원 입학 시험에 합격한 뒤, 심사숙고 끝에 벤처창업을 한 B교수의 연구실에 지원했다. 한 동안 지도교수는 강의·연구와 창업준비를 함께 하면서도 학생들은 꼼꼼히 지도하고 챙겼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회사를 창업하고 나서는 모든 게 바뀌었다. 언제부터인가 지도교수에게서 교육자의 모습이 사라졌고 고급학문에 대한 그의 기대도 무너졌다.

    “벤처 연구실에서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은 교수벤처의 사원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 11시까지 일하고 쥐꼬리만한 월급을 손에 쥐는 직원일 뿐이죠. 제 실험실에는 아카데미즘이 없습니다.”

    김씨는 단순한 실험을 일과 내내 반복한다. B교수가 ‘결과 없는’ 실험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과학에선 실패한 실험도 좋은 연구자료가 됩니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결과를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가니 배우는 게 없을 수 밖에요. 지금 제가 하는 실험은 제 실험이 아니예요. 교수님 회사 실험이죠. 물론 창업한 모든 교수들이 이런 식으로 실험실을 운영하는 건 아닙니다만….”

    박사과정에 진학하려는 석사과정 학생들은 지도교수의 도움을 받거나 아니면 스스로 자신의 박사연구 과제를 준비해야 한다. 새로운 지식을 익히기에도 시간이 빠듯한데 교수 벤처에 발이 묶여 원하는 공부를 하지 못하는 있는 것이 김씨의 가장 큰 불만이다.

    김씨의 선배 한 명은 박사과정을 수료하고도 실험실에 계속 남아있어야 했다. 그가 실험실을 떠나면 회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고 한다. 이처럼 일부 교수들은 턱없이 낮은 급여(50~100만원)를 주면서 제자를 자신의 회사에 옭아매기도 한다.

    “벤처기업을 한답시고 학생들에게 쥐꼬리만한 월급을 주고 나머지는 모두 자신의 호주머니에 넣는 교수, 유능한 학생의 졸업을 의도적으로 막는 교수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유학 준비를 하고 있는 김모(28)씨는 “교수창업에 기본적으로 반대한다. 학문적인 욕구가 큰 학생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투자를 못 받는 연구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좋은 논문이 될 수 있는 실험도 뒤로 밀리는 경우가 생기가 마련이죠. 학생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회사를 경영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에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그는 창업을 위한 회의가 대학원 석사 3, 4학기 동안 한 일의 전부라고 한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에 결정한 것이 미국 유학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씨는 “교수창업은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때만 효용이 있지 고급인력을 장학금 몇 푼에 쓰는 형식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H대 대학원생 이모(24)씨는 석사를 마친 뒤 박사과정을 다른 학교로 옮기는 것을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 계속 공부해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그는 교수벤처 연구소에서 1년 남짓 실험을 했다.

    “아무래도 회사를 경영하면 돈에 대해 민감해지잖아요. 점점 학자의 모습을 잃고 사업가로 변해가는 모습이 보기 안좋더라고요. ‘짠돌이’로 변한 교수님이 점점 멀어지는 느낌입니다.”

    벤처기업에겐 특허를 누가 먼저 내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애써 연구해왔는데 다른 업체에서 선수를 치면 그 동안의 연구결과는 휴지조각으로 변한다. 따라서 창업한 교수들은 특허와 관련된 연구에 힘을 쏟게 마련이다.

    “특허가 걸린 연구를 계속한 사람이라면 자기 연구에 방해 받지 않겠죠. 하지만 자기가 연구한 결과로 학위를 받아 진학하려는 사람으로선 정작 자기연구는 수박 겉핥기 수준에 머물게 되죠. 실험을 칼질이라고 한다면 껍질만 건드리다가 마는 꼴이 되는 거예요”

    전근대적 도제시스템

    대학원생들이 학교를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학교수가 되는 것을 학업 목적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면 이는 우리 학계의 분위기에서는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이씨는 “같은 학교에서 다른 선생님으로 지도교수를 바꾸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라면서 “외국유학을 간다면 모를까 학교를 옮기는 데는 포기해야 할 게 너무 많다”고 말했다.

    이는 대학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전근대적 도제시스템 때문이다. 교수의 지배메커니즘과 학생의 순응메커니즘이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한 도제시스템은 한국교육시장의 근본적인 문제점인 수급불균형에 기인한다. ‘문제 벤처교수’들은 이런 도제시스템을 이용해 어느 CEO보다도 비양심적으로 인력을 관리한다.

    회사를 창업한 교수가 학생들의 교육을 뒤로 하고 자신의 이익에 매진하는 것에 대해 학생들이 반발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지도교수가 학생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벤처연구의 경우에는 그러한 경향이 더 크다. 대부분의 벤처가 교수의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세워진 것을 고려하면 교수와 갈등을 빚은 것은 ‘그 분야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교수벤처에 종사하는 박사과정 대학생들이 지도교수의 회사운영과 생활 전반을 비서처럼 보조하는 일을 쉽게 볼 수 있다. 회사운영에 시간이 모자란 교수의 논문 자료를 대신 수집하고 심지어는 논문을 대신 써주는 경우도 있다. 프로젝트 연구비를 보조연구자인 제자에게 대신 수령하게 해 회사운영비로 쓰는 경우도 있다. 보조연구자의 경우에는 정산이 필요 없기 때문에 이런 편법을 쓰는 것이다. 벤처창업 뿐만 아니라 벤처기업의 기술자문, 연구원 대주주 등으로 참여한 교수의 수가 1000명을 넘어선 것을 고려하면, 일부 교수들의 행동으로 피해를 당한 학생의 수는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다.

    한편 돈에 눈이 먼 제자들이 교수의 연구를 훔쳐 창업을 한 경우도 있다. 벤처기업 S사를 창업한 이모(41)교수는 대학원 등록금까지 지원해준 제자들이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훔쳐 벤처기업을 세우는 어처구니 없는 경우를 당했다. 이교수의 제자 김모씨 등 4명은 이교수가 개발한 재료성능장치 어쿠스틱덕트 기술을 빼내 유사한 제품을 생산하는 벤처기업을 차렸다.

    이와 같이 교수의 벤처창업은 부정적인 면도 많다.

    실리콘 밸리와 스탠퍼드 대학

    미국 스탠퍼드대학과 실리콘밸리는 벤처기업과 대학의 이상적인 연계모델로 꼽힌다. 실리콘 밸리는 인텔, 애플, 휴렛팩커드, 야후 등 미국경제를 이끄는 주력기업이 태어난 곳이다. 실리콘 밸리가 오늘날의 모습으로 성장한 것에는 1891년 스탠퍼드대학을 세운 릴랜드 스탠퍼드(Leland Stanford) 주지사의 역할이 컸다. 그는 대학은 학생들에게 실직적으로 효용을 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교육 철학’을 갖고 벤처의 요람 스탠퍼드 대학을 세웠다.

    스탠퍼드대는 무분별한 창업보다는 기술이전과 졸업생의 창업을 지원했다. 학문의 산업화 길을 튼 스탠퍼드대의 노력이 실리콘 밸리를 만들었고 실리콘 밸리는 스탠퍼드대학을 명문으로 도약하게 했다. 스탠퍼드대학을 포함한 미국의 대학들은 교수의 벤처창업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편이다. ‘시간 매입제’가 대표적인 예. 시간 매입제란 벤처에 참여하는 교수가 시간을 사들인다는 뜻으로 교수가 본업인 연구와 교육에 투자하는 기본시간을 학교가 정하고 기본적인 시간에 못미칠 경우 모자라는 시간만큼 학교에 벌금을 내는 제도다.

    교수벤처가 활성화돼 국가 산업발전에 이바지하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는 어떻게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장점을 극대화하는가에 있다. 교수벤처가 긍정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벤처를 창업한 교수들이 뚜렷한 ‘교육 철학’을 갖고 회사를 운영해야 한다. 또한 기술이전만으로도 충분한 분야에 교수들 직접 뛰어드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비판도 일고있다.

    이화여대 전동원 교수는 “교수벤처는 일반벤처와 달리 철학이 있어야 한다. 학생지도가 우선이고 회사는 그 다음이 되어야 한다. 교수창업은 기술 제공에 초점이 맞춰지는 게 바람직하다. 산업화 단계까지 끌어올리는 데 교수의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에는 직접 나서는 게 당연하지만 기술이전 만으로 가능한데도 무분별하게 창업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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