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호

“오늘도 느낌이 통하는 남자 만났으면…”

술도 공짜, 남자도 공짜…요지경 성인나이트 ‘묻지마 부킹’

  • 김순희 < 자유기고가 >

    입력2004-09-16 15: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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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둘을 둔 전업주부 국아무개(40)씨. 그녀는 요즘 “이러면 안되는데…” 하는 자책감에 빠져들 때가 많지만 대학동창인 박아무개(40)씨가 전화를 걸어오면 이를 뿌리치지 못하고 종종 현관문을 나선다. 신도시에 거주하는 국씨의 ‘밤 외출’이 잦아진 지 벌써 넉달째다.

    남편이 지방출장 갔을 때 첫 경험을 해본 ‘밤 외출’은 그후 업무상 접대 등으로 남편이 늦게 귀가하는 날이 늘면서 점차 빈번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더 과감해져 남편이 일찍 퇴근할 날에도 “잠시 옆집 아줌마한테 갔다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유유히 집을 나선다. 국씨가 친구 박씨를 비롯해 동네 아줌마 한 명과 자주 찾는 곳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성인나이트클럽.

    국씨의 밤 외출은 올초 인근 아파트 단지로 이사온 박씨가 “심심한데 맥주나 한 잔 마시러 가자”는 말에 아무 생각 없이 따라 나서면서 시작됐다. 동네 호프집에 가서 간단히 맥주나 한 잔 마시는 줄 알았지만, 박씨가 데리고 간 곳은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도 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B나이트클럽이었다.

    당황한 국씨가 “왜 이런 곳에 데리고 왔느냐”며 들어가기를 꺼리자 박씨는 “술을 공짜로 마실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화끈하게 춤도 출 수 있고 잘만 하면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사건(?)도 있다”며 팔을 잡아끌었다. 국씨는 “오랜만에 대학 시절 분위기도 내고 스트레스도 풀자”는 친구의 말에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나이트클럽 안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처음엔 몰랐죠. 정말 몰랐어요. 춤을 추면서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나 풀자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이제 와서는 후회하고 있지만 이미 색다르게 ‘노는 맛’에 길들여져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초등학교 6학년, 4학년인 두 아들을 보면서 ‘이쯤에서 그만 둬야지’ 하는 마음이 굴뚝같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아요.”



    ‘노는 맛’이 뭔가 달라요

    국씨가 말하는 ‘노는 맛’이란 다름 아닌 성인나이트클럽에서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는 ‘묻지마 부킹’. 나이트클럽에서 성행하는, 이른바 ‘묻지마 부킹’은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합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업소의 웨이터를 통해 이뤄진다. 부킹은 대부분 남자손님들이 먼저 제의해 온다. “아무 여자나 머릿수 맞춰서 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마음에 드는 여자들이 눈에 띌 경우 “저기 저 팀으로 해달라”고 지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웨이터에게 ‘물 좋은 여자’를 부킹시켜 달라며 팁을 건네기도 하는데 액수는 대략 1만원선.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손님들의 요청이 있기 전에 웨이터가 ‘척척’ 알아서 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성인나이트클럽을 찾는 손님의 대다수가 부킹을 목적으로 오기 때문이다.

    “친구는 이미 여러 번 경험해 봤다며 먼저 부킹부터 하자고 하더라고요. 제가 ‘춤이나 추고 놀다가자’고 했더니 ‘여자들끼리만 놀면 무슨 재미가 있냐’고 반문하는 겁니다. ‘여기까지 따라왔으니 눈 딱 감고 한번만 화끈하게 놀고 가자’는 말에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웨이터가 안내하는 대로 룸이란 곳으로 들어갔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상대 남성이 어떤 사람인지 묻자 웨이터가 저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부킹 처음이시군요’ 하면서 빙긋이 웃더라고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국씨는 친지의 소개로 현재의 남편을 만나 6개월 여의 교제 끝에 결혼했다. 중소기업에서 중간간부로 있는 남편이 바쁜 회사일 때문에 아내 국씨와 가정에 무관심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의 불만은 가정생활을 유지하는 데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국씨는 친구 따라간 나이트클럽에서 맛본 ‘짜릿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매번 두번 다시는 가지 않겠노라고 다짐하지만 친구가 전화를 걸어오면 이 다짐은 곧 물거품이 된다.

    “룸에 들어가 친구가 선택해준 남자 옆에 쭈뼛쭈뼛 앉았더니 그 사람은 술 한 잔 따라주며 살며시 어깨에 손을 얹데요. 놀라 손을 뿌리치자 친구가 ‘그러지 말라’며 눈치를 주더라고요. 몇 잔의 술이 오고가자 남자가 제 손을 잡는가 싶더니 급기야 허벅지를 만지는 거예요. 가슴이 막 뛰더라고요. ‘이런 사실을 남편이 알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어 처음엔 무척 두렵기도 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재미도 있더군요. 그후 서너 번의 부킹을 통해 남자를 만나고 보니 점점 대담해지기 시작했고 갈수록 낯선 남자와 즐기는 ‘짜릿함’이 기다려지기도 해요.

    ”서울 영등포의 K나이트클럽에서 5년째 일하면서 부킹 알선을 전문적으로 하는 ‘여자 웨이터’ G(45)씨는 “부킹을 처음 해보는 여성들일수록 상대 남성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를 집요하게 물어보는 편”이라고 귀띔한다. 그러나 상대방의 인적사항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 업계의 철칙이다. 경험이 있는 여성들은 대부분 부킹을 제의받으면 곧바로 수락한다고 한다. 상대방 남자가 맘에 들 경우 계속 합석을 하지만 맘에 들지 않으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또 다른 부킹을 시도한다.

    합석할 경우 여성들이 앉아 있던 테이블의 술값은 남성들의 계산서로 넘어간다. 부킹 제의를 받은 여성들이 남성테이블로 옮기기 직전 “이쪽 테이블 치우고 가도 되느냐”고 물었을 때 남성들이 “그러라”고 하면 술값을 내겠다는 것이고 그냥 오라고 하면 술값을 계산해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부킹을 제의하는 남성들이 여성들의 술값을 계산해주는 것이 관례처럼 통한다.

    성인나이트클럽이 호황을 누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여성들 쪽에서 보면 돈 한푼 내지 않고 충분히 즐길 수 있으며, 남성들은 단란주점이나 룸살롱을 찾을 때보다 훨씬 싼 값에 여성들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인들의 새로운 놀이문화가 자리잡은 것이다. 성인나이트클럽에서 테이블당 기본 메뉴는 맥주 3병에 마른안주. 값은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략 2만9000∼3만5000원 선이다.

    남성들이 나이트클럽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술값이 싸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부산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신아무개(42)씨는 “요즘에는 여자가 나오는 단란주점에서 접대를 하다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가 많아 자연히 저렴한 술집을 선호하게 된다”고 말했다. 성인나이트클럽이 주머니가 가벼워진 사업자의 구미에 맞아떨어진다는 것. “접대를 받는 쪽에서는 처음에는 고급 술집에서 접대하지 않는다고 섭섭해하는 기색을 보이지만 부킹을 하고 나면 시간이 흐를수록 만족스러워 한다”는 게 신씨의 말이다. 아가씨들이 나오는 술집에서는 비싼 돈 내고도 몸이라도 만질라치면 아가씨들이 인상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비해 나이트클럽에서는 마음만 맞으면 2차까지 즐긴 이후에도 ‘뒤끝’이 깨끗하기 때문이란다.

    “이곳에서 만난 여자들과 2차를 나간 이후 지속적으로 만나 성관계를 맺는다 하더라도 헤어지자고 하면 깨끗하게 물러선다. 어차피 남녀 모두가 숨기고 싶어하는 일이다보니 헤어질 때도 말 없이 헤어진다.”

    한마디로 만남에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신씨는 주변에 직장에 다니거나 자영업을 하는 사람치고 성인나이트클럽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여자들을 공짜로 데리고 놀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남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이트클럽에서 룸을 이용하는 손님은 업소와 여성들에게 부담없는 가격으로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홀 손님들이 주로 맥주를 마시며 ‘간단한’ 부킹을 하고 노는 반면 룸을 찾는 손님은 양주를 시키며 매상을 올리기 때문에 웨이터는 ‘킹카’를 부킹시켜 주려고 갖은 애를 쓴다. 여성들 또한 남의 눈을 피해 룸에 들어가는 것을 원할 뿐만 아니라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 맥주를 시키는 남성들보다 양주를 마시는 남성들을 선호한다. 단란주점이나 룸살롱에서 남자 세 명이 각자 여자를 끼고 양주를 마시면 보통 100만원이 훌쩍 넘어가지만 국산양주 한 병에 10만원대인 나이트클럽에서는 술값이 단란주점이나 룸살롱의 3분의 1 수준이다.

    “룸에 들어간 손님들은 대부분 난잡하게 노는 편이지만 홀에서도 예외는 아니죠.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처음 만난 남녀가 서로 끌어안고 키스를 해대고 서로의 몸을 더듬는 것은 이제는 정말 기본에 속해요. 이렇게 노는 데는 남녀 모두 사회적 지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저희 업소를 찾는 손님들 중에는 내로라하는 직업을 가진 남성도 많아요. 대부분의 남성은 노는 데는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접어두는 것 같아요. 일부러 웨이터에게 명함을 건네는 남성도 있는데 이런 손님들에게는 젊고 날씬하고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 손님들이 많은 날 특별히 전화를 걸어줘요. 그들이 명함을 건네는 목적이 바로 ‘물 좋은 여자’를 찾으면 연락해 달라는 뜻이기 때문이죠.”

    일반 유흥업소에는 남성 웨이터들이 많지만 성인나이트클럽에는 강씨와 같은 ‘아줌마 웨이터’가 많은 편이다. 주부손님들이 젊은 남자웨이터보다 아줌마 웨이터가 부킹을 주선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부킹에 자신이 없는 50대 후반 이후의 남성들도 이들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강씨는 “성인나이트클럽은 대부분 인근에 있는 모텔이나 여관과 비밀 계약을 맺고 있다”고 털어놨다.

    “부킹 이후 노는 분위기를 보면 ‘이 팀은 2차를 가겠구나’ 하는 느낌이 와요. 그럴 경우 ‘근처에 있는 OO모텔로 가라’고 권해요. 물론 주인과는 얘기가 다 된 상태죠. 숙박료의 20%를 받는 조건으로 소개해 주는데, 거기에 가면 포르노비디오와 나이 든 사람들을 위한 윤활제나 돌기형 콘돔, 컬러형 콘돔 등이 준비돼 있어요. 일반적으로 모텔에서 잠시 ‘쉬었다’ 갈 경우 2만원을 받지만, 업소의 서비스에 따라 3만원에서 많게는 4만원까지 받아요.”

    강씨는 마지막으로 “제 말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반면 ‘화끈하고 재미있게 인생을 즐기고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묻지마 부킹’은 이미 우리 사회 깊숙이 자리잡았다. 남자든 여자든 한번 발을 담그면 빼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다는 이야기다. 새로운 탈선 방법으로 떠오른 ‘묻지마 부킹’이 성행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태수 박사는 주부들이 나이트클럽을 찾는 현상에 대해 “처음에는 배우자와의 갈등이나 호기심에서 찾는 사람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자녀들도 어느 정도 자라면서 육아에서 손을 떼게 된 주부들이 소일거리가 줄어들면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진단했다.

    한편 가족사회학을 전공한 이화여대 사회학과 이동원 교수는 전업주부들이 나이트클럽의 ‘묻지마 부킹’ 등을 통해 탈선하는 것에 대해 “전업주부가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이 잘 산 게 오히려 이상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녀들이 커서 학교에 가면 주부들은 기능 상실자가 된다. 집안에서 일을 하려면 할 수 있겠지만 집안일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 주부가 늘고 있다. 집에서 아이들 교육시키고 남편 뒷바라지에 충실한 것이 미덕이던 전통적인 가치관이 무너진 것이다. 가전제품 등의 발달로 집안일을 하는 시간이 줄어 가용시간이 많아지는 것에 비례해 탈선의 기회도 늘고 있다.”

    이교수는 또 “주부들의 탈선을 막으려면 가족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가정이 안정을 누려온 것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제 기능을 발휘해서라기보다는 주부의 희생 덕분이었기 때문에 주부의 탈선을 막으려면 가족 구성원들이 변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 남편들이 가정에 신경을 쓰고 아내에게 관심을 보이는 등 가정적인 남자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인나이트클럽의 주고객층은 여성의 경우 30∼40대 주부가 대부분이다. 가끔 20대도 눈에 띈다. 남성들은 주로 30∼50대의 자영업자와 직장인으로 유부남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총각들이 묻어(?)오기도 한다. 이 경우 주부들의 집중 표적이 된다. 단 한번 놀아도 ‘총각’과 놀아보겠다는 것. 술집에서 영계를 찾는 남성들의 심리와 비슷하다.

    그동안 가정에서 육아와 남편 뒷바라지에 온갖 정성을 쏟던 전업주부들이 성인나이트클럽에 드나드는 것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것은 ‘묻지마 부킹’이 ‘탈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전업주부인 국씨가 심한 자책감에 시달리는 것은 단순히 나이트클럽에서 남자들과 술을 마시고 노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킹을 통해 가끔씩 ‘2차’를 즐기는 생활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낯선 남자와의 관계를 통해 남편과의 밋밋한 성관계에서는 맛볼 수 없는 짜릿함을 느끼면서 잘못된 일인 줄 알면서도 쉽게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국씨와 같은 ‘고민’을 하는 주부들은 나이트클럽에 가면 어렵잖게 만날 수 있다. 4월26일 밤 9시경. 인천시 계양구 계산동 상업택지지구는 건물 전체를 밝혀주는 화려한 네온사인의 나이트클럽과 주변의 모텔 간판들이 도로 건너편에 자리잡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의 조용함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7층 건물의 5층에 자리잡은 O나이트클럽 전용 엘리베이터 앞. 금방 저녁식사를 마쳤는지 아직도 이쑤시개를 입에 문 사람을 비롯한 40대 남성 네 명이 서있었다. 곧이어 조금은 진하다 싶은 화장을 한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네 명의 여성들이 엘리베이터 앞에 몰려들었고, 이를 본 웨이터는 즉시 8명의 남녀를 맞이하며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 건장한 체구의 사내들이 입구에 나란히 서서 “어서 오십쇼” 하고 깍듯이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남녀 손님들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현란한 사이키델릭 조명이 반짝이는 나이트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웨이터가 여성 일행에게 남자 손님들이 포진해 있는 옆자리를 권하자 그들은 주위를 한번 빙 둘러보며 그 자리로 가 앉았다. 잠시 후 기본 메뉴가 나오자 여성들은 맥주를 따라 마시며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수다를 떨다 무대에 나가 춤을 추기 시작한다. 춤 추고 들어오자마자 웨이터가 한 여성에게 귀엣말을 건넸다. 몇 마디 말이 오고간 뒤 여성들이 건너편에 앉아 있는 남성들 자리로 옮겨 앉는다. 나이트클럽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부킹의 기본 형태다.

    700여 평 규모의 나이트클럽에는 중앙에 넓은 홀과 가장자리를 빙 둘러가며 룸이 마련돼 있었다. 춤을 추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나이트클럽 내부는 뜨겁게 달궈져 있고 무대에는 이미 100여 명의 남녀가 뒤섞여 춤을 추고 있었다. 제각각 춤을 추는 듯 보였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남녀들이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춤을 추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부킹을 위해 테이블을 오가는 웨이터들의 발길이 바빠졌고 정성스럽게 치장을 한 흔적이 뚜렷한 여성들이 삼삼오오 계속 밀려들었다. 웨이터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다섯 명의 여성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찾아가 한 여성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넨 뒤 사라졌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친구 사이라는 이들에게 다가가 “웨이터에게 부킹 제의를 받았느냐”고 묻자 경계의 눈초리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취재중임을 밝히자 웨이터와 말을 주고받은 여성이 “사진 찍어서 얼굴이 알려지는 것도 아닌데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녀는 홀 안을 빙 둘러보며 “보다시피 이렇게 와서 놀고 가는 아줌마들이 얼마나 많으냐”며 턱 끝으로 다른 팀들을 지목했다.

    “그냥, 재미로 나와요. 세상에 공짜로, 그것도 재미있게 놀 수 있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을걸요? 한마디로 술도 공짜로 마시고 남자들과도 공짜로 즐기는 거죠. 저도 처음에는 친구 따라 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친구들을 모아서 옵니다. 저 같은 사람을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일명 ‘오야지’라고 해요. 곗돈 부을 때 책임지고 곗돈 관리하는 사람을 흔히 오야지라고 하잖아요. 오늘은 제가 책임지고 물 좋은 남자들과 부킹시켜 주겠다고 친구들을 데리고 온 거예요.”

    나이트클럽에 주부들의 발길이 잦아진 데는 이 ‘오야지’의 역할이 크다. 오야지의 ‘도움’으로 나이트클럽에 한번 발을 내디딘 여성들은 ‘나 혼자만이 불륜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는 면죄부를 얻기 위해 연쇄적으로 주변의 주부들을 끌어들인다. 나이트클럽을 찾는 이들은 주로 남편의 귀가가 늦는 날을 이용하지만 설사 남편이 집에 있다 하더라도 “동창모임이 있다거나 동네 아줌마들과 노래방에 갔다 온다”고 말하고 집을 나선다. 자정 이전에만 집에 들어가면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남편은 거의 없다. 오후 6시에 문을 여는 나이트클럽이 밤 8∼11시가 되면 절정에 이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여성손님이 저녁식사 후 집에서 나와 나이트클럽에서 놀다가 자정을 전후해 집에 들어가려 하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여성 중 네 명은 남편이 있는 전업주부고, 한 명은 혼자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이혼녀다. 초등학교 고학년 자녀들을 둔 이들은 학교 어머니회 모임을 통해 가까워졌는데 처음부터 나이트클럽에 드나든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각자의 집을 돌며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떠는 정도였다. 이렇게 ‘우의’를 다진 이들은 노래방으로 진출했다. 그러다 사교성이 많은 ‘오야지’ 격의 김아무개(43)씨가 나이트클럽에 가자고 제의하면서부터 탈선의 길로 접어들었다.

    웨이터가 다시 돌아와 여성들에게 룸에 들어갈 것을 권하자 싫다는 사람 하나 없이 약속이나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웨이터를 뒤따랐다. 그중 한 명이 “오늘은 느낌이 통하는 남자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다른 한 명이 “왜, 오늘도 2차까지 나가려고?” 하고 농담까지 건네며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는 룸 안으로 깔깔거리며 들어갔다.

    부킹으로 만난 남녀관계가 성관계를 의미하는 ‘2차’로 이어지는 확률은 꽤 높은 편이다. 어떤 경로를 통해 찾아오든 여자손님들은 부킹을 통해 남성들과 재미있게 ‘놀자’고 생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킹 이후 ‘2차’까지 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편승하고 싶기 때문에 상대 남성들의 2차 제의를 쉽게 받아들인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성인나이트클럽 인근에는 많은 모텔이 우후죽순처럼 서있다. 인천시 계양구 계산동 일대에는 현재 7개의 성인나이트클럽 주변에 20여 개의 크고 작은 모텔이 자리잡고 있다. 일산 신도시의 경우도 러브호텔이 급격히 늘기 시작한 것은 성인나이트클럽의 번창과 관련이 깊다.

    인천시 계양구청 종합민원처리과 허가팀에 따르면 상업지구로 발전하기 전 계산동에는 2개의 소형 나이트클럽이 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숙박업소라고는 4곳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2년 사이 대형 나이트클럽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1997년 12월 이전에 숙박업소 허가를 받아두었던 업자들이 숙박업소 건축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2000년 이후 무려 15개의 모텔이 줄지어 들어섰다.

    현재 성인나이트클럽은 전국적으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서울의 영등포, 청량리역, 신림사거리, 인천의 간석동, 계산지구, 송도, 그리고 일산 신도시 백석동 주엽동, 안양 인덕원사거리, 시흥시 월곶 일대 등 수도권을 비롯해, 부산의 연산동 로터리, 울산의 공업탑 로터리 주변, 광주 동구의 대인동과 북구 운암동 주변이 ‘묻지마 부킹’의 천국으로 불린다.

    공업지구가 발전한 울산에서는 직장에 다니는 남성들이 웃지 못할 농담을 주고받는다. ‘자는 아내 다시 한번 확인하자.’ 3교대 근무로 밤에 집을 비우는 남성 직장인이 많아선지 주부들이 바람을 피워 가정이 파탄 나는 경우가 유난히 많기 때문이란다. 주부들의 탈선장소로 가장 먼저 꼽히는 곳이 바로 성인나이트클럽이다.

    울산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인 옥동에서 4년째 비디오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최은주(33)씨는 비디오를 자주 빌려가던 주부 중 몇 명의 발길이 뜸해지자 ‘비디오 보는 재미를 잃었나보다’ 여겼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게 아니었다. 시간 날 때마다 나이트클럽에 다니느라 비디오 볼 시간이 없어진 것이다.

    “과거에는 밤에 비디오테이프를 빌려보는 주부였거든요. 하도 자주 와서 얼굴도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가끔 초저녁에 서너 명의 여자들이 어울려 외출하는 모습이 가게 유리창 너머로 보이더라고요. 나중에 소문을 들으니 남편 몰래 동네 아줌마들과 나이트클럽에 간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보통 주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차림새였는데 한껏 멋을 내고 외출을 하더라고요. 가끔씩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일행이 몰려와 비디오테이프를 빌려가기도 하는데 자기들끼리 ‘오늘 만난 남자 어땠냐’고 스스럼없이 묻기도 해요.”

    일산 신도시 백석동의 B나이트클럽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기사 김광석(44)씨는 “세상이 말세가 아닌 이상 이렇게 돌아가도 되는 거냐”고 푸념했다. 사업을 하다 망해 두 달 전부터 택시회사에서 스페어 기사(정식 기사가 되기 전에 일종의 수습과정을 거치는 기사를 일컬음)로 일한다는 김씨에 따르면 이 업소에서 남녀가 짝을 이뤄 나오는 손님 중 일부는 인근 모텔로 직행한다는 것. 한눈에 보기에도 주부들이 부킹을 통해 남자를 만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더욱 가관인 것은 ‘택시비를 아끼자’며, 함께 온 일행이 한 택시를 타고는 모텔 앞에 내리면서 ‘몇 시까지 마치고 늦지 않게 나오라’는 약속까지 한다는 것이다.

    인천 부평시장 인근에 위치한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터 생활을 하고 있는 싸이(별명·남·38)씨는 “남자든 여자든 남녀가 나이트클럽을 찾는 목적은 부킹을 통해 재미를 보려는 것이기 때문에 부킹 이후 서로 맘에 들면 알아서들 재미있게 잘 논다”며 그간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제가 이곳에 온 지는 3년밖에 안됐지만 웨이터 경력은 17년째거든요. 몇년 전만 해도 웨이터가 부킹을 시켜준다고 하면 머뭇거리거나 싫다고 하는 손님이 많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많이 달라요. 아줌마고 아저씨고 들어오자마자 물 좋은 사람 부킹부터 시켜달라고 하는 사람이 많아요. 특별히 부킹을 요구하지 않은 손님들도 ‘부킹 해드릴까요’ 하고 물으면 거의 거절하지 않아요. 여자 손님들 중에는 미혼으로 보이기 위해 다양하게 꾸미고 오는 손님이 적지 않은데 99%가 아줌마라고 보면 틀림없어요. 아가씨들은 이런 ‘물’에서 놀지 않죠. 보통 아줌마들은 밤 11시쯤이면 빠져나가지만 그 이후까지 남아있는 아줌마들은 2차를 가기 위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묻지마 부킹’이 성행하게 된 데는 나이트클럽의 ‘지명제’라는 영업형태도 톡톡히 한몫을 하고 있다. 나이트클럽 어디를 가나 입구에 들어서면 안내를 담당하는 직원이 있다. 이때 직원이 “아는 웨이터 있으세요” 하고 묻는 것은 바로 웨이터 지명제 때문이다. “알고 있는 웨이터가 있다”고 하면 곧바로 무전기로 ‘지명받은’ 웨이터에게 연락해 그가 직접 현관으로 나와 자신의 손님을 데리고 간다. 이렇게 지명한 손님이 마신 술값의 15∼20%는 웨이터의 몫으로 돌아간다. 웨이터가 부킹을 성사시키려고 애쓰는 이유는 수입을 올리기 위한 방법으로 부킹만큼 확실한 게 없기 때문이다. 남성들끼리 맥주를 마시러 왔다가도 부킹이 이뤄지면 여성들 앞에서 폼 잡기 위해서 양주를 시키기 때문에 쉽게 매상이 오른다는 것.

    싸이씨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제 나이가 결혼 적령기를 훨씬 넘었지만 솔직히 여기에 오는 주부들을 보면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생기지 않아요. 제가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이렇게 먹고 노는 아줌마가 많아야 하겠지만, 아무렇지 않게 낯선 남자 품에 안기고 거침없이 2차까지 나가는 걸 보면서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들겠어요. 가끔 나이트클럽이 아수라장으로 변할 때도 있어요. 바람난 아내들을 잡기 위해 남편들이 찾아와 현장을 덮치기 때문이죠. 그런 가정은 십중팔구 이혼으로 치달아요. 나중에 이혼하고도 찾아오거든요. 한번 이곳에 발을 들여놓으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고 중독이 되는 주부들이 적지 않아요.”

    ‘남성의 전화’ 이옥(51) 소장은 요즘 외도뿐만 아니라 밤 외출이 잦아지고 술 마시고 밤 늦게 들어오는 아내 때문에 고민을 호소하는 남성들의 전화를 많이 받는다. 밤 외출을 일삼는 아내들의 상당수는 나이트클럽에 놀러간다고 한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채팅이 여성들의 외도 창구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주부들은 나이트클럽에서 부킹을 통해 남성들을 만나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

    상담소에 전화를 건 40대 남성 김아무개씨. 얼마전부터 아내가 한 달에 서너 번씩 밤에 외출하기 시작해 자정 전후에 들어오는가 싶더니 최근에는 새벽 두세 시를 훌쩍 넘겨 들어오는 경우가 허다해 아내 뒤를 밟았다가 성인나이트클럽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끓어오르는 분을 삭이며 아내에게 다시는 나이트클럽에 가지 말 것을 요구하자 “남자들은 룸살롱에서 여자 끼고 술 마시고 놀지 않느냐”며 오히려 큰소리치더라는 것.

    아내의 행동을 보면 당장 이혼하고 싶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가정파탄만은 막아야겠기에 아내에게 하소연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아내가 분명히 다른 남자와 자고 왔다는 것을 눈치챘으면서도 이혼하지 않고 같이 살 생각에 더 이상 아내 뒤를 캐지 않기로 작정했다는 김씨는 “어떤 방법으로 설득해야 아내가 나이트클럽에 발을 끊겠냐”고 이소장에게 눈물로 호소했다.

    ‘남성의 전화’ 상담자의 연령은 40대가 가장 많고 상담자 아내의 연령은 30대 중반이나 후반이 많다. 직장인, 자영업자가 대부분이다. 상담자의 대다수는 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는 중산층이다. 그리고 ‘묻지마 부킹’을 통해 불륜을 저지르는 아내들 중에는 2년제 대학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한다.



    새벽에 남편 잠든 틈타 외출


    이소장은 “나이트클럽에서 부킹한 남자와 한번 만나고 헤어지는 게 아니라 몇 달씩 불륜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주부들의 간이 커졌는지 새벽에 남편이 잠든 틈을 타 밖으로 나가는 사례도 있어요. 주부들이 바깥으로만 돌다보니 아이들이나 집안 꼴이 말이 아닌 경우가 많죠.”

    지난해 8월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01년 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00년 한 해 동안 법원에 접수된 이혼청구소송 및 협의이혼은 모두 17만3628건으로 1991년의 7만8812건에 비해 120% 늘었다. 그중 재판을 통해 해결된 이혼사건은 4만2531건. 그 가운데 이혼사유가 확인된 2만8827건을 분석한 결과 이혼청구 사유는 배우자의 부정이 42.1%로 가장 많다.

    ‘여자가 이혼을 생각할 때’라는 책의 저자로 이혼소송을 많이 맡고 있는 안귀옥 변호사에 따르면 예전에는 남성이 바람을 피우다 이혼 당하는 사례가 많았으나 요즘은 여성의 불륜으로 인해 가정이 파탄을 맞는 경우가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얼마전 나이트클럽에서 ‘묻지마 부킹’을 통해 만난 주부들에게 몰래 환각제를 먹인 후 성관계를 맺고 이것을 협박 수단으로 삼아 거액을 뜯어낸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관심을 끈 건 한동안 뜸했던 제비족의 재등장과 이들이 ‘무기’로 들고 나온 강력한 성능의 신종 환각제 때문이다. 나이트클럽을 찾은 주부들이 이 약물로 환각 상태에 빠져 제비족에게 육체뿐만 아니라 금품도 뜯긴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8월29일 서울 강동경찰서. “설마 드라마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나에게 닥칠 줄이야…” 하고 한숨짓는 주부 10여 명이 넋을 잃은 채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수도권 인근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주부들에게 몰래 약을 먹인 뒤 성폭행하고 돈을 뜯어낸 30대 남자 두 명이 있었다. 이들은 사진기자들이 셔터를 누르고 방송국 카메라가 돌아가자 재빨리 책상 아래로 고개를 숨겼다.

    피해자 중 한 명인 김아무개(45)씨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두 아이 모두 남부럽지 않게 자랐고 남편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엘리트였다. 김씨는 친구를 따라 처음 나이트클럽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엄청난 일을 당했다. 김씨는 부킹이 이뤄지자 ‘별 의심 없이’ 술 마시고 놀다가 2차로 노래주점으로 향했다. 거기서 나온 후 남자들은 김씨를 여관으로 데려가 성폭행을 하고 이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다. 이후 협박이 시작됐다.

    이들이 김씨에게 요구한 금액은 2000만원. 김씨가 남편 몰래 마련하기에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이미 빼앗긴 신용카드로 인해 현금서비스, 물품구입 등 1000만원이 넘는 피해를 입은 터였다. 정한 날짜에 돈을 건네지 않으면 김씨의 나체 사진과 성관계 장면이 담긴 사진을 남편에게 보내고 동시에 인터넷에 공개하겠다는 협박이 시작됐다. 김씨는 ‘친구 따라 강남 갔다’가 뜻하지 않은 피해를 당했지만 가족은 물론 주변사람들에게조차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다 급기야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말쑥한 차림에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이들에게 속아 피해를 당한 주부들은 신분이 확인된 사람만 10여 명에 이른다. 그러나 “신분노출을 꺼리는 주부들이 피해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해 실제 피해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게 경찰관계자의 귀띔이다. 경찰은 두 남자로부터 100여 명에 이르는 부녀자의 인적사항이 적힌 범행수첩을 입수했다. 하지만 명단에 오른 여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러저러한 피해를 당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면 “그 남자와 조용히 해결했으니 더 이상 경찰이 관여하지 말라”거나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잡아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처럼 피해 주부들이 신고를 꺼릴 뿐만 아니라 조사를 벌여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발뺌하는 바람에 범죄구성 요건이 갖춰지지 않아 경찰은 수사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제비족들의 주 활동무대는 서울 강남과 경기도 성남, 수원 등지에서 주부들의 발길이 잦은 나이트클럽이었다. 부킹을 통해 범행 대상이 정해지면 특수 환각제 성분이 담긴 술을 먹이고 성폭행한 뒤 협박용으로 알몸사진까지 찍었다.

    이들은 나이트클럽을 찾는 주부들 중에서도 나이가 좀 많거나 못생긴 편에 속하는 사람들을 주 범행 대상으로 물색했다. 뭇 남성으로부터 수시로 부킹 제의를 받는 젊고 예쁜 ‘미시족’들은 유혹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젊고 잘생긴 남자가 나이든 주부에게 관심을 보이고 필요 이상으로 친절을 베풀어도 의심의 눈길을 보낸 주부는 아무도 없었다”는 게 수사를 맡은 경찰관의 말이다.

    친구들끼리 모임을 갖고 2차로 나이트클럽에 놀러갔다가 집단으로 당한 주부들도 있다. 또 다른 김씨(47)는 환각상태에서 깨어난 후 친구들과 함께 알몸으로 여관에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기겁을 했다. 친구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 서로 창피하고 어찌할 바 모르고 있는 이들에게 협박이 시작됐다. 김씨는 협박에 견디다못해 경찰에 신고할 생각으로 협박전화를 녹음해 두었다.

    “1인당 1000만원씩 입금시켜. 그렇지 않으면 12시 이후에 다(남편과 인터넷에) 공개돼. 쫙 뿌릴 거니까 알아서들 해. 적나라하게 찍었으니 보내주면 재미있을 거야.”

    김씨의 친구들도 똑같은 협박을 당했다. 그러나 김씨는 물론 친구들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알게 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은 김씨와 친구들은 담당 경찰관에게 “가족들에게 이 사건이 알려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경찰서를 빠져나갔다.

    “피해주부들은 모두 ‘묻지마 부킹’을 통해 제비족을 만났어요. 나이트클럽 주변에는 주부들만을 노리고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눈을 치켜뜬 제비족들이 많아요. 꼭 제비족이 아니라 하더라도 주부들의 몸을 노리는 남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이트클럽에 발 한번 잘못 들여놓았다가 돈 뺏기고 몸 버리고 가정파탄 나는 경우가 아주 많아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만 이제는 신종 환각제를 쓰는 새로운 형태의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주부들은 나이트클럽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별 생각 없이 한순간의 쾌락을 위해 나이트클럽에 발을 들여놓았던 주부라면 수사를 맡았던 이 경찰관의 얘기에 귀기울여야 할 듯싶다.

    “나이트클럽 룸에서 남녀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상상해 보셨나요?”

    서울 영등포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여자 웨이터’ 강아무개(45)씨는 기막힌 사건 한 가지를 들려주었다.

    “최근 단골손님인 최사장(43)이란 분이 네 명의 친구를 데리고 저희 업소를 찾아왔기에 얼른 룸으로 모셨어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일행 숫자에 맞춰 여자를 물색해 30대 중반의 이른바 ‘물 좋은 아줌마’ 다섯 명을 룸으로 들여보냈죠. 얼마간 최사장의 호출이 없기에 부킹한 여자들이 맘에 드는가보다 생각했어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부족한 술과 안주를 파악하기 위해 룸으로 들어갔죠.

    문을 열고 들어간 저는 룸 내부에 설치된 노래방 모니터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순간 깜짝 놀랐어요. 그러나 손님들의 어떤 행위를 보고도 절대 놀란 표정을 지어서는 안되기에 아무 내색을 하지 않고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빈 술병을 치우며 곁눈질로 힐끔힐끔 쳐다보았더니 가관이더군요. 여자의 검정색 원피스는 가슴 위로 둘둘 말려진 상태였고 남자는 알몸이었어요. 남자는 여자의 가슴을 애무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다른 8명의 관객(?)은 자지러지는 웃음소리와 더불어 듣기 민망한 신음소리를 효과음으로 보내기까지 했어요. 일종의 성행위가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죠. ‘다음에 지는 팀은 사정까지 해야 한다’는 농담을 주고받는 것을 보면서 저는 슬그머니 룸을 빠져나왔어요.”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결혼했던 강씨가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터로 일하게 된 것은 남편의 외도로 인해 이혼하고 나서 혼자 두 아이를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웨이터 일을 한 지 10년째 되었지만 이런 장면을 목격한 것은 처음이었다. 다른 웨이터에게서 이와 비슷한 행위가 이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던 두 달 전만 해도 나이트클럽에서 잔뼈가 굵은 그녀조차도 설마했던 것이다.

    강씨가 지금까지 이같은 행위를 전혀 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업소에 있는 접대여성과 손님 사이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었다. 한눈에 가정주부임에 분명한 사람이 부킹이 이뤄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낯선 남자와 스스럼없이 그런 행위를 할 수 있다는 데 정말 놀랐다고 한다.

    “부킹을 시켜주면 남녀 각각 나름대로 탐색전에 들어가죠.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들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대놓고 얘기하지 않지만 ‘오늘은 운 나쁘게 별 볼일 없는 여자가 걸려들었군’ 하고 체념한 상태로 술값이 많이 나오지나 않는지 무척 신경을 써요. 웨이터는 이런 분위기를 빨리 파악하고 여자를 바꿔줍니다. 이는 매상을 올리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조치죠. 그러나 최사장처럼 잠시 놀 여자라도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곧바로 교체를 요구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반면에 대부분의 여자 손님은 자신의 남편보다 조금 더 잘생기고 더 나은 위치에 있는 남자를 선호할 뿐만 아니라 부킹이 이뤄지는 순간 ‘이 남자와 오늘 저녁 재미있게 놀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해요. 때문에 여자 손님들은 홀에 앉아서 기본 메뉴인 맥주 세 병에 마른안주 하나를 시켜놓고 맥주를 추가로 시키는 남자보다 룸에 들어가 있는 남자를 선호하죠. 저희 업소의 경우 홀 기본메뉴가 3만5000원인데 비해 룸은 크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기본이 19만원 정도로 훨씬 비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대부분 룸 손님들과 부킹하길 원해요.”

    그러나 나이트클럽을 자주 찾아 부킹을 즐기는 일명 ‘꾼’이라 불리는 여자들은 맘에 드는 팀을 홀에서 고른 후 부킹이 성사되면 룸으로 유도해 노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사람을 직접 보고 고르는 데는 그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성인나이트클럽을 찾는 대다수의 남녀가 그렇게 난잡하고 적나라하게 놀지 않는다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나 남녀가 그렇게 몸을 최대한 밀착시켜 블루스를 추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죠. 서로 즐기자는 암묵적인 합의가 된 상태에서 어느 정도 술기운이 돌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손을 잡고 키스를 하고 가슴을 애무하는 행위를 두고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고 되묻는 사람에게는 할말이 없긴 해요. 성인나이트클럽에 한번이라도 왔던 경험이 있는 남자치고 ‘나는 그렇게 놀지 않았다’고 강하게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어요. 저희 업소를 찾는 여성손님들 중 대다수는 주부들이에요. 이들은 전업주부와 주로 영업활동을 하는 맞벌이주부, 그리고 이혼녀로 나뉘는데, 몇해 전에는 영업활동을 하는 주부들이 회식모임 등을 갖고 나이트클럽을 찾는 경우가 많았지만 작년부터는 눈에 띄게 전업주부가 늘고 있어요.”

    강씨에 따르면 주부들이 처음부터 적나라하게 노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나이트클럽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초짜’들은 단번에 표시가 난다. 이 경우 노련한 남자들은 금방 알아차린다. 초짜를 만난 남자는 ‘횡재’를 했다는 듯 조심스럽게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공을 들인다. 먼저 손을 만지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이때 가볍게 거절하는 것은 초짜들의 기본이다. 그렇지만 구역질나게 싫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여자손님은 아직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초짜라도 몇 번 인사치레로 거부했던 남자의 손길을 받아들이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아요. 물론 상대 남자가 맘에 들지 않는 경우 화장실에 간다고 슬쩍 나와 ‘남자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털어놓기도 하지만 같이 온 일행이 부킹 상대자가 맘에 들어 즐겁게 놀고 있다면 이 여자만 남자를 바꿔 따로 부킹을 시켜줄 수는 없죠. 물론 초짜가 스스로 부킹을 해서 재미있게 놀기는 힘들지요.”

    강씨는 “나이트클럽을 찾는 주부들 모두가 처음부터 부킹과 혼외정사를 염두에 두고 오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지난 7월 결혼 전에 다니던 직장의 여자동료 세 명을 12년 만에 만났다는 주부 조아무개(40)씨는 그중 한 명이 이혼소송중이라는 말을 듣고 너무 속이 상해서 저녁을 먹고 수다를 떨다 밤 10시경 나이트클럽에 찾아왔다. 밤 늦은 시간에 여자 네 명이 들어오기에 ‘당연히’ 부킹을 시켜주겠다고 했더니 처음엔 “우리 조금만 놀다갈 거예요” 하면서 부킹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이들 일행이 얼마나 조신하게 노는지 관심 있게 지켜봤지요. 넷이서 무대에 나가 춤을 추는데 급기야 옆의 남자손님들이 춤추는 것을 방해하기까지 했어요. 같이 춤추고 놀자는 남자들의 제의를 몇 번이나 뿌리치고 자리를 옮겨 춤을 추는가 싶더니 결국 디스코 타임이 끝나고 블루스 음악이 이어지자 태도가 바뀌더군요. 조금 전에 춤추자고 제의한 남자들이 다가가 끌어안자 이들 중 두 명이 못 이기는 척 남자 품에 안겨 춤을 추더군요. 보통 이곳에 춤만 추기로 맘먹고 들어온 주부들이 거치는 과정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죠. 여자손님들이 좋은 의도로 나이트클럽을 찾았다하더라도 무대에서 여성들끼리 춤추고 노는 것을 남자손님들이 가만히 놔두지 않아요.

    자리로 먼저 돌아온 다른 두 명은 한숨을 내쉬며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막춤을 추며 푼수같이 놀고 싶어 나이트클럽을 찾았는데 왜 이렇게 건드리는 아저씨들이 많냐’고 물어왔어요. 블루스 추자는 남자의 제의를 거절했더니 ‘그렇게 놀 거면 뭣 하러 나이트클럽에 왔느냐’며 손을 잡아끌더랍니다. 처음엔 남의 눈에 추하게 보이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남편이 아닌 낯선 남자 품에 안겨 블루스를 추다보니 탈선하고 싶은 유혹도 생기더래요. 그중 한 명은 ‘이 시간에 이렇게 많은 주부가 춤을 추고 있다는 데 놀랐지만, 더 놀라운 건 나 자신이 다시 와서 놀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장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남자손님들 중에는 가끔 자신의 직장 여성동료를 데리고 오는 사람도 있다. 또 네댓 명의 남자손님 중 한 사람이 부인을 데리고 오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고 한다. 이렇게 남자손님이 여자를 데리고 오는 경우 부킹꾼들 사이에는 ‘김밥 싸가지고 왔다’는 표현을 쓴다. 맛있는 음식 먹는 식당에 김밥 싸가지고 오는 ‘꼴불견’을 두고 일컫는 말이다. 이 경우 부킹을 시켜주면 상대 여성들이 술 몇 잔만 마시고 다른 손님과 부킹시켜 달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남자들도 ‘김밥 싸가지고 들어온 날’은 논다고 해도 ‘손장난’은 심하게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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