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헌병대는 현장 사진 보여주지 않았다”

타살로 밝혀진 허원근 일병 사건 당시 부검의 증언

  • 황일도 shamora@donga.com

“헌병대는 현장 사진 보여주지 않았다”

3/5
-검시과정에서 ‘이건 좀 아니다’라고 느낀 부분이 있었습니까.

“검시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선진국에서 부검의는 사건의 방향을 가늠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를 위해 제일 중요한 게 시체가 발견된 현장에 나가보는 겁니다. 검시관이 도착할 때까지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사체를 다른 데로 싣고 와서 부검을 시작하죠. 현장에 가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그 사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체가 발견됐다는 현장에도 못 가봤고, 내무반에도 못 가봤고, 그런 중요한 현장을 직접 내 눈으로 목격하지 못했으니까 정보가 제한될 수 밖에 없었던 거죠. 오로지 해부하도록 준비해놓은 병참대에 가서 검시만 하고 돌아온 거니까요. 늘 그래왔으니 저도 일부러 안 보여주는 것인지 어떤 건지는 아예 생각을 안했던 겁니다.”

결정적 증거, 상처의 색깔

-사체에 나타난 특징 중에도 이상한 점이 있던가요.



“일단 보기 드문 경우였습니다. 총상이 난 범위가 가슴과 머리로 퍼져 있는 것도 생소한 거고. 또 자살자가 옷을 관통하도록 총을 쏘는 경우도 드물죠. 칼로 자살하는 경우 거의 대부분 옷을 젖히거나 벗겨 찌릅니다. 총의 경우에도 사람의 심리상 맨살에 쏘는 게 자살케이스에서는 일반적이에요. 탄환 각도가 수평으로 나 있었던 것도 이상한 대목이었어요. 탄피 숫자가 안 맞는다는 얘기도 언뜻 들었습니다.

선입견을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건을 보다 보니 ‘의식은 있으니까 꼭 죽어야겠다는 생각에 머리를 쐈을 수도 있겠지’ ‘급하다 보니 옷을 못 제치고 쐈나 보다’ ‘탄피야 뭐 금세 어디서 나오겠지’ 그런 식으로 자꾸 추정을 하게 된 겁니다. 그러나 나중에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했어요. 그래서 지난 18년 동안 제한된 정보를 갖고 이리저리 따져보았죠. 다른 사람이나 전문적인 식견이 있는 사람에게 찾아가 묻기도 하고, 옛날 책도 다시 들여다보고요. 그렇지만 검시라는 게 본인이 아니면 열심히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듣는 사람들은 ‘아, 그런 게 있었나. 묘하네’ 그러고 말거든요.”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증거를 꼽자면 뭡니까.

“가장 아쉬운 것은 시간 간격 부분입니다. 상당히 오랫동안 그 부분은 아예 감지도 못했어요. 내가 사체를 봤을 때의 기억으로는 양쪽 가슴에 난 각 상처의 반응이나 색깔이 똑같았는데, 몇 해 전 허일병 아버님이 어디선가 구해온 사진을 보여주시더라고요. 그걸 보니 색깔이 다르더란 말입니다. 이게 왜 내가 본 것하고 다른가 생각하고 말았는데, 이번에 그 사진이 해부할 때 찍은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사건이 발생했던 날 헌병대에서 찍었던 사진인 거죠.

이건 상당히 중요합니다. 해부는 사건발생 이틀 후에 실시했거든요. 사망 후의 이틀은 상당히 긴 시간입니다. 상처의 색깔이 똑같아지죠. 그래서 나는 두 개의 상처가 한참의 시간을 두고 난 것일 수 있다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던 거죠.

사진을 보면 왼쪽이 희미하고 오른쪽이 진합니다. 오른쪽을 먼저 쏘고 한참 지난 후에 왼쪽을 쏜 거예요. 이건 거의 확신할 수 있는 증거거든요. 그 사진을 보고 나서야 시간 차가 분명히 있다는 것, 그것도 꽤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그걸 보고 나서 타살을 확신하게 됐어요. 자살하는 사람이 한 방을 쏘고 한참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죽어야겠다’ 싶어서 다시 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3/5
황일도 shamora@donga.com
목록 닫기

“헌병대는 현장 사진 보여주지 않았다”

댓글 창 닫기

2021/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