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한국의 숨은 인권운동가 ⑨

“‘디지털 감옥’에 사느니 좀 불편한 게 낫죠”

정보인권운동 이끄는 ‘진보넷’ 오병일·장여경 국장

  • 글: 정호재 demian@donga.com

“‘디지털 감옥’에 사느니 좀 불편한 게 낫죠”

2/5
오병일 사무국장(32)과 장여경 정책국장(31)은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네트워크를 구상하고 지켜온 진보넷의 도드라진 일꾼이다. 이미 10년 넘게 정보인권운동에 헌신해온 두 사람은 국내 PC통신 및 인터넷 1세대. 이들의 활약에 진보넷은 11월14일로 창립 4주년을 맞았다.

1990년대 들어 통신망이 새로운 의사소통 매체로 등장하자 이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가 권력의 고민거리가 됐다. 장국장이 당시의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줬다.

“1990년대 중반 PC통신 나우누리에 한총련 CUG(회원전용 게시판)가 개설됐습니다. 그런데 한총련의 불법시위 정보를 입수한 경찰이 압수수색영장을 들고 나우누리 사무실에 들이닥쳤습니다. ‘한총련 방이 몇호실이야?’ 하면서요. 이게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가 아니라니까요.”

나우누리 직원은 황당해서 입이 딱 벌어졌지만, 압수수색영장까지 제시하는 공권력을 무시할 수도 없어 게시판에 올린 글을 복사해주었다. 물론 얼마 후 몇몇 진보단체의 게시판을 폐쇄해야 했다.

그 후로도 이런 강압적인 검열행위는 부지기수로 벌어졌고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발전노조 파업과 공무원 노조 파업을 전후해서도 검열이 행해졌다. 장국장은 “현재로선 공무원 노조도 불법이고 공기업 파업도 불법이라지만, 이들이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것이 어떤 문제가 될는지는 우리 사회가 좀더 고민해야 할 과제”라고 말한다.



진보넷은 이런 통제 속에서 잉태됐다. 진보넷은 PC통신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1980년대 후반에 통신환경이 조성된 이래 1990년 11월 ‘KETEL(‘하이텔’의 전신)’의 ‘바른 통신을 위한 모임(바통모)’으로부터 ‘온라인 사회운동’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이후 나우누리의 ‘찬우물’, 천리안의 ‘희망터’ 등 바통모와 비슷한 성격의 단체들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초기에 상업통신망에서 소비자 권리찾기 운동에 주력했다. 바른 통신언어 사용, 온라인 예절 캠페인을 필두로 이들의 활동은 조회 수 부풀리기 지양운동, 잦은 시스템 다운에 대한 항의운동으로 이어졌다. 정치적 색채를 띠게 된 것은 삭제행위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됐다.

정통윤이 만든 진보넷

1990년대 초 이후 진보적인 인사들이 PC통신에 올린 글이 문제가 되었다. 당국이 ‘불온서적’으로 엄단하는 책의 내용을 그대로 타이핑해서 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이 무렵 바깥세상은 바야흐로 해금(解禁)의 시대를 맞고 있었지만, 통신공간은 그 반대로 흘렀다. ‘공산당 선언’이나 사회주의 서적은 물론, 심지어 신문에 게재된 북한관련 글을 싣는 것도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단속했다.

그러다 출판물에 대해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게 어려워지자 대신 들이댄 잣대가 전기통신사업법 53조였다. ‘공공의 안녕과 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불온한 통신에 대해 정보통신부 장관이 그 취급을 거부, 정지 또는 제한하도록 명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이는 1961년에 만들어진 조항으로, 당시 전화로 불온한 대화를 나누지 못하게 하려던 제도. 30년 전의 통제수단을 통신과 인터넷으로 확장하려 한 것이다.

이는 국가보안법의 또다른 형태였다. 이 조항은 수사기관이 사법적 판단 없이 자의적으로 통신을 제한하거나 폐쇄할 수 있게 했고, 실제로도 악용되거나 남용됐다.

정통부는 1994년 정보통신윤리위원회(정통윤)라는 기구를 만들어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말이 민간기구지 정통부가 뒤에 있는 한 누구도 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할 수 없었다. 정통윤은 대다수 사회단체의 게시판을 감시했다. 특히 천리안이나 하이텔 같은 상업통신망은 정통윤의 권고 한마디에 속수무책으로 글을 삭제하고 ID를 박탈했다.

명예훼손같이 불법성이 명백히 인정된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내가 쓴 글을 누군가가 임의로 삭제하는 것은 사전검열과 다를 바 없다. 이는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행위다. 사이버 공간만큼은 억압이 존재하지 않는 자유로운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통신인들의 바람이 컸기에 삭제에 대한 반발은 거셌다. 통신단체들은 “통신의 내용이 어떻든 검열은 철폐돼야 한다”고 맞섰다. 나아가서는 정부의 규제에 순종하지 않는 독자통신망 설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인터넷을 자유롭게 쓰려면 대안의 전용통신망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장여경 국장은 하이텔의 바통모, 오병일 국장은 서울대 학생들의 정보연대 ‘SING’ 출신이다. SING은 정보자본주의의 도래를 예견하고 이에 대응해 정보공유와 프라이버시 보호 문제를 어젠더로 삼은 최초의 단체였다. 이후 다양한 계층의 통신인들이 문제의식을 공유했고, 1995년에는 ‘진보통신단체 연대모임(통신연대)’이 발족했다.

통신연대를 중심으로 표현의 자유 수호를 이끌어온 이들은 1996년 총파업 지원단을 꾸리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네트워크센터 설립을 준비했다. 당시 독자통신망으로 이름을 날린 ‘참세상 BBS’의 네트워크를 기증받은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마침내 1998년 진보네트워크센터(초대 이사장·김진균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창립됐다.

2/5
글: 정호재 demian@donga.com
목록 닫기

“‘디지털 감옥’에 사느니 좀 불편한 게 낫죠”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