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호

‘한마음’ 대기업·정통부, 휴대전화 전자파 논란 막는다?

  • 글: 이희욱 이코노미21 기자 heeuk@hanmail.net

    입력2003-07-29 10: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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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마음’ 대기업·정통부, 휴대전화 전자파 논란 막는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중 아무나 붙잡고 소지품을 검사한다면, 지갑과 신분증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소지하고 다니는 물건이 아마 휴대전화일 것이다. 국내 가입자 수 3060만, 국민 네 명 중 세 명이 쓴다는 휴대전화가 현대인의 생활 필수품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듯 하다.

    그러나 전세계 시장의 30%를 차지하면서 물량면에서 수출품목 1위에 오른 ‘대한민국의 효자 종목’ 휴대전화가 최근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요즘 유행하는 카메라 내장 휴대전화나 컬러폰, TV폰 등의 기술발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휴대전화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업계와 시민단체, 정부부처 간의 팽팽한 공방이 논란의 핵심이다.

    휴대전화 전자파의 유해성 여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업체와 정부 쪽의 대응 태도는 소극적이기 이를 데 없다는 사실을 두고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휴대전화의 전자파 흡수율(SAR·Specific Absorption Ratio)을 어떻게 공개해야 하는가를 두고 ‘정부·관련기업 대 국회·시민단체’라는 전선이 형성되어 있는 상황.

    SAR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단말기 제조업체들이 귀를 막고 있는 데다 정통부마저 소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이 국회와 시민단체의 문제제기다. 여기에 주무부처인 정통부에 대해 전문성 결여를 문제삼고 나서는 목소리가 가세하면서, 휴대전화 전자파를 둘러싼 논란은 더욱 거세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기업보호 차원에서 공개 못한다?



    논쟁의 핵심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우선 사건의 앞뒤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먼저 논란의 대상이 된 SAR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한마디로 요약하면 SAR이란 ‘휴대전화 전자파가 인체 머리에 흡수되는 단위질량당 에너지율(W/kg)’을 말한다. 모든 휴대전화에서는 통화중에 일정한 양의 전자파가 방출된다. 그리고 이 전자파는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굳이 ‘미칠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유해성 여부가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결론이 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국민건강을 위해서는 당연히 ‘유해할 수 있는 개연성’도 막아야 하는 법. 이러한 이유로 각국에서는 휴대전화 전자파 방출량에 대한 제한선을 정해놓고, 제조업체들이 단말기를 생산할 때 이를 의무적으로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SAR은 전세계 각국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할 때 인체조직에 흡수되는 전자파량을 제한하기 위한 기준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휴대전화 전자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하던 지난 2000년 1월, 국내에서도 전파법에 전자파 인체보호기준을 제정하는 근거를 처음으로 마련했다. 이후 2000년 12월 SAR 측정기준 등을 포함한 전자파 인체보호기준을 제정, 고시했으며, 지난해 4월부터는 휴대전화 형식등록시 SAR 기준에 적합한지 심사하는 과정을 의무화함으로써 법적인 기틀을 만들었다. 국내의 경우 SAR 기준을 미국과 같은 수준인 1.6W/kg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이를 초과할 경우 형식등록을 미필한 기기로 간주해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휴대전화에서 방출되는 전자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미미한 수준. 1990년대 후반 이후 언론 매체에서 몇 차례 보도하긴 했지만, 유해성 여부가 규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세간의 관심에서 한 발 비껴나 있었다. 국내에서 휴대전화 전자파의 유해성 여부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전문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지난 1999년 이후 공학 분야의 몇몇 교수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연구를 진행해오고 있으며, 일상생활에서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 분석하는 의학분야인 역학(疫學) 관련 전문의들 중 일부가 유해성 여부를 분석해 발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휴대전화 전자파 유해성 논란의 물꼬를 튼 건 지난해 가을 열린 국정감사였다. 2002년 9월 국정감사에서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이하 과기정위)는 4월 이후 출시된 휴대전화의 SAR 수치를 공개할 것을 정보통신부에 요구했다. 그런데 정통부측이 제출한 자료를 본 과기정위 위원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논의를 주도한 한나라당 박진 의원실의 이성환 보좌관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런데 정통부가 제출한 자료가 어땠는 줄 아세요? 36개 품목에 대해 형식승인을 내줬는데, 모델명과 제조명칭을 빼고 1번부터 36번까지 순번만 매겨서 수치를 뽑아왔더군요. 도대체 그 자료만으로는 휴대전화 전자파 수치인지 가전제품 전자파 수치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자료를 다시 요구하니 정통부측에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업체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기업보호 측면에서 공개할 수 없으며, 세계적으로도 이를 공개하지 않는 추세다’라고요.”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 이야기가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자국에 수출되는 휴대전화의 SAR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미국 휴대전화제조산업협회(CTIA)도 2000년 8월부터 휴대전화의 포장 내, 예컨대 설명서 등에 SAR을 표기하도록 하고 있으며, 호주 휴대전화제조협회(AMTA)도 2001년 이후 출시되는 제품의 경우 제품설명서나 팜플렛에 이를 표기하고 있다.

    굳이 설명서를 들춰보지 않더라도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면 전세계 주요 휴대전화 단말기의 SAR 수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미국 FCC 홈페이지에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휴대전화의 SAR 수치가 올라와 있으며, 휴대전화제조사포럼(MMF) 홈페이지에서도 모토롤러, 노키아 등 전세계 주요 휴대전화 제조사의 모델별 SAR을 열람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SARDATA(www.sardata.com)와 같은 휴대전화 관련 홈페이지에는 국내의 삼성전자, LG전자 제품을 포함해 전세계 휴대전화의 모델별 전자파 흡수율이 공개돼 있는 것. 이쯤 되면 정통부가 이야기했던 ‘기업 경쟁력 보호’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었음이 분명해진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통부는 지난해 10월30일, 국내의 몇몇 단말기 제조업체와 협의를 거쳐 연말인 12월까지 휴대전화의 SAR을 업체별로 자율적으로 공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12월이 다 지나가도록 업체별 SAR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고, 보다못한 박진 의원측은 올해 1월3일 SAR 표시 또는 공개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전파법 중 개정법률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그러자 다급해진 정통부는 3월부터 업체별로 SAR 수치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3월부터 인터넷에 이를 공개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하지만 정작 3월이 돼 단말기 제조업체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SAR 수치를 공개하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말이 자율공개지, 실제로는 홈페이지 회원가입을 하고 로그인한 뒤 단말기 모델명을 입력해야 SAR 수치를 확인할 수 있는 등 절차가 여간 번거롭고 복잡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휴대전화를 구입한 뒤 거기에 적혀 있는 모델명을 입력해야 SAR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건데, 이 경우 휴대전화를 사기 전에는 전자파 수치를 확인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회공청회, “자율공개 개선돼야”

    이에 대해 휴대전화 전자파의 유해성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온 YMCA 시민중계실의 함동균 간사는 다음과 같이 꼬집는다.

    “문제는 소비자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국내 시장지배력이 약한 모토로라코리아 같은 외국계 제조업체들은 오히려 국내 홈페이지를 통해 SAR 수치를 공개하고 있는데,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대기업들이 오히려 소비자의 정보접근을 어렵게 해놓은 건 어불성설 아닙니까. 적어도 외국 업체 수준까지는 공개해야죠.”

    이렇게 되자 SAR 공개 의무화에 대한 논의가 다시 급물살을 타게 됐다. 지난 4월 국회 과기정위에서 열린 법안 심사소위원회에서는 SAR 공개 의무화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됐다. 하지만 이 또한 정통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러면서 ‘공청회를 거쳐 의견을 수렴해 논의하자’는 주장이 나왔고, 이에 따라 지난 6월20일 국회 과기정위 회의장에서 주요 전문가들의 진술을 중심으로 공청회가 개최됐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여기서 더욱 크게 불거졌다.

    공청회는 그야말로 SAR 공개를 둘러싼 양쪽의 이해관계가 잘 드러난 무대였다. 발제를 맡은 박진 의원은 “이미 휴대전화의 전자파 흡수율은 국제시장에서 널리 공개된 제품의 사양”이라며 “국민의 알 권리를 보호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휴대전화기의 SAR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며 제조업체들에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공청회에 참석했던 안윤옥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도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 자기가 만든 제품의 인체 유해요소 정보를 공개하는 건 윤리적인 측면에서 당연한 것”이라며 거들었다.

    물론 업체의 자율공개가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공청회에 참석한 윤현보 동국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미국에서도 전자파 흡수율 공개를 ‘의미 없는 미인대회’라고 하며 반대한 적이 있다”며 “모델별로 전자파 흡수율을 공개할 경우 소비자들이 전자파 흡수율의 순위를 휴대전화 안전성의 차이로 이해해 제품평가를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윤교수는 “비록 법적 강제는 아니라해도 제조업체가 자율적으로 SAR을 공개하고 누구나 열람 가능한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정착되고 있다면, 국내 업체도 이를 수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단말기 제조업체들의 태도에 대해선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함께 참석한 최형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전자파환경연구팀장도 “외국에서도 SAR 공개를 법적으로 의무화하고 있지는 않다”며 법제화에는 반대의 뜻을 보였지만 “국내 업체들의 지금과 같은 자율공개 방법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한마음’ 대기업·정통부, 휴대전화 전자파 논란 막는다?

    국내 주요 휴대전화 생산 업체들의 사이트(위). <br>이곳에서 기종별 전자파에 대한 정보를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대신 해외 관련 사이트 (www.sardata.com·아래)를 뒤져야 기종별 SAR을 확인할 수 있다.

    요약해보면 휴대전화 전자파 흡수율을 공개해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줘야 한다는 데는 참석자 모두 동의한 셈이다. 단지 이를 굳이 법으로 제약하면서까지 할 것인가에 대해서만 의견이 엇갈린 상황. 결국 제조업체들이 지금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SAR 수치를 공개하고 나선다면 굳이 법제화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얘기는 간단해진다. 휴대전화 전자파 흡수율을 제조업체의 자율공개에 맡기느냐 법으로 의무화할 것이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결국 두 주장 모두 ‘인체에 유해할 소지가 있는 휴대전화 전자파 수치를 국민에게 알게 한다’는 기본 취지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민의 알 권리를 어떻게 충족시켜줄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단말기 제조업체들은 슬그머니 엉덩이를 뺀다.

    이들의 주장은 간단하다. “기준치인 1.6W/kg 이하를 충족하고 있는데, 굳이 SAR 수치를 공개해서 소비자들에게 혼선을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 “국내 제조업체들이 SAR 공개를 제대로 하지 않아 법적으로 강제했다는 게 대외적으로 알려지면 국내 단말기 제조업체의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만약 SAR 수치 공개가 의무화된다고 가정할 때 단말기 제조업체에 일어날 변화는 무엇일까. 사실 크게 달라질 건 없다. 단말기 제조설명서 등에 SAR 수치를 표기한 항목이 하나 늘어나는 게 변화라면 변화인 셈. SAR 수치가 지금처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어렵사리’ 공개되는 것이 아니라 설명서 등에 표기되는 정도다.

    그럼에도 단말기 제조업체들이 기를 쓰고 전자파 흡수율 공개를 꺼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굳이 나서서 일거리를 하나 더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단말기 제조업자들 스스로가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들이 공청회에서 SAR 공개에 반대하면서 내세웠듯이, 새로 출시되는 휴대전화에 SAR 표기를 의무화한다면 이 수치가 소비자들의 구매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작용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업체들은 별도의 홍보나 마케팅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여기에는 추가로 비용이 든다. 함동균 간사는 이러한 단말기 제조업체들의 ‘두려움’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하는 기준에는 색상이나 디자인, 가격, 성능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또한 기업은 시장에서 하나의 기준에 의해 제품의 서열이 매겨지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죠. 그런데 SAR 수치가 공개돼 각 모델간 서열이 매겨진다면 제조업체들은 인체 유해 여부와는 무관하게 비즈니스상 유리한 고지를 얻기 위해 별도의 마케팅 비용이나 인력 등을 투입해야 합니다. 이를 어느 업체가 좋아하겠어요?”

    외국엔 공개하고 국내엔 못한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쟁점은 국내 이용자들에 대한 ‘역차별 문제’다. 삼성전자나 LG전자의 경우 미국에 수출하는 휴대전화에 대해서는 제품설명서에 SAR을 표기하고 있다. 미국 FCC가 자국 수출분에 대해 공개를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 이러한 규정이나 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똑같은 회사의 똑같은 모델에 대해서 SAR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국내 이용자에 대한 제조업체의 무성의에 다름 아니라는 지적이다.

    SAR 공개를 의무화할 경우 기업 이미지에 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론이 제기됐다. 박진 의원측은 “오히려 이번 기회에 SAR을 공개함으로써 국내 휴대전화 단말기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적으로 SAR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이므로, 국내에서도 일찌감치 이에 대비해 SAR 수치가 낮은 제품으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휴대전화 시장으로 떠오르는 중국의 경우 이미 SAR 기준을 1W/kg으로 낮춘 데다, 캐나다와 독일에서도 SAR 기준치를 1W/kg 미만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앞으로는 SAR 수준이 휴대전화 단말기 시장의 새로운 경쟁무기가 될 소지가 충분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SAR 수치가 공개되면 소비자들이 이에 현혹될 수 있다”는 주장 뒤에 숨은 대기업의 권위주의적 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YMCA 함동균 간사는 “소비자들을 무시하거나 폄하하는 단말기 제조업체의 기본 인식이 드러난 대목”이라고 꼬집는다. 소비자는 바보가 아니므로 다양한 구매동기나 합리적 선택기준에 의해 단말기를 고른다는 것이다. 함간사는 “SAR이 공개된다고 해서 소비자의 구매 패턴이나 의사결정방식이 왜곡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휴대전화 전자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며 제조업체들의 냉담한 인식에 일침을 가했다.

    그런가 하면 SAR 공개 문제에 대해서는 정통부도 비난을 면키 어렵다. 대기업들의 소극적인 태도에 정통부까지 박자를 맞춰 빈축을 사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통부는 지난 2000년부터 5년간 예정으로 진행하고 있는 ‘전자파 인체영향연구 기본계획’을 둘러싼 공정성 시비와 중복연구 논란에도 얽혀 있다.

    지난 2000년 4월1일 정통부는 “국내에서도 휴대전화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해야 할 때가 됐다”는 공학계의 의견을 수렴해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가기로 하고, 전자파 발생장치 개발과 역학 연구 등 모두 3개 과제에 대한 연구용역을 대한전자파학회를 통해 발주했다. 논란은 이 가운데 ‘휴대전화 전자파와 건강장해 규명을 위한 역학적 기반 조사연구’를 진행했던 안윤옥 서울대 예방의학과 교수측에서 터져나왔다. 안교수가 연구과정과 예산 책정 등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

    사장된 갑상선암 상관관계 연구

    안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1차년도인 2000년 당시 6개월 동안 역학조사를 실시한 결과 휴대전화 사용과 갑상선암 사이에 통계적·생물학적 연관성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이를 2차년도 사업을 앞둔 시점인 2001년 2월 정통부 연구결과 발표 자리에 내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역학조사에 이어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인과관계 연구를 시작하려는 2001년 들어, 정통부가 과다한 연구비 책정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연구가 무산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심 끝에 한해동안 연구비를 확보한 뒤 2002년에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정작 2002년 들어 정통부가 공개모집한 3차년도 연구과제 공모 내용을 보니, 2000년에 우리가 진행했던 역학조사 항목이 포함돼 있는 거예요. 다소 연구범위가 확대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연구과정이 중복된 것이죠.”

    이에 대해 정통부는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안교수가 과도한 연구비를 신청해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반박한다. 이용석 정통부 전파감리과장은 “현재 담당자가 바뀐 상태라 정확한 내용은 모른다”고 전제하면서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알아본 결과 용역비를 둘러싸고 학회와 안교수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안윤옥 교수는 “역학연구는 인체를 대상으로 하므로 시행착오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장기간에 걸쳐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비용이나 시간면에서 충분한 사전준비와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3차년도 연구결과에 1차년도 연구결과물인 갑상선암과의 상관관계 연구가 빠진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안교수의 설명이다. 결국 1차년도 연구 결과물이 사장된 셈이다. 이에 대해 안교수는 “정통부 자신이 주관했던 연구의 결과를 스스로 무시한 꼴”이라고 꼬집었다.

    한 발 더 나아가 안교수는 “정통부가 사안의 중요성을 잘 몰라 객관성을 검증받을 수 있는 국제적 공동연구 프로젝트 참여 기회를 놓친 일도 있다”고 말한다. 사정은 이렇다. 지난 2001년 3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기구로 암 관련 연구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 받는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이미 IARC의 ‘방사선 산업종사자 암 발생 위험도 평가연구’에 한국측 연구원으로 참가하고 있던 안교수에게, IARC 쪽 연구책임자가 휴대전화 전자파와 암 발생의 상관관계 연구에 관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한국의 참가의향을 물어온 것이다. 안교수는 이 편지를 정통부에 넘겨줬으나 정통부가 차일피일 참가를 미루다가 마감시한인 7월을 넘기는 바람에 공동연구 참여가 무산됐다고 안교수는 설명했다.

    정통부는 이에 대해 당시 담당자가 없어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안교수는 “IARC의 연구과제에 참여했을 때 얻게 되는 이득이나 효용성에 대해 정통부 담당자들이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한다. 무엇보다도 연구 결과의 공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는 것이다.

    휴대전화 전자파 논란을 둘러싼 정통부의 ‘무성의’는 지금까지 소요된 관련 연구비를 정통부가 이해당사자인 국내 이동통신사로부터 출연받았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정통부는 2000년 연구를 진행하면서 1차와 2차년도의 연구용역비 6억원을 SK텔레콤 등 5개 통신사업자로부터 출연받았다. 하지만 시민단체 등이 “이해당사자인 이통사가 지원한 연구의 결과가 어떻게 객관성을 보장 받겠느냐”고 문제를 제기하자 3차년도인 2002년에 이르러서야 자체예산으로 편성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국내 이해집단으로부터도 자유롭고 연구결과의 권위도 보장받을 수 있는 국제기구의 공동연구를 놓친 것을 아쉬워하는 소리가 정통부를 더욱 난처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차제에 휴대전화 전자파 관련 주무부서를 이관하자는 의견도 고개를 들고 있다. 연구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데다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이해집단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면서 건강 관련 전문가들이 포진한 보건복지부 등으로 옮기자는 것이다. 안윤옥 교수는 “문제의 핵심은 휴대전화 단말기 자체가 아니라 단말기에서 나오는 전자파의 인체 유해 여부”라면서 “연구관리를 책임있게 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나 과학기술부 등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전에 핵무기 공장의 메카로 꼽히는 미국 테네시주 오크리지 핵무기 제조공장에 간 적이 있어요. 방문한 김에 그곳에서 방사선 유해성 여부를 연구하는 연구진들에게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는지 물어봤죠. 우리의 보건복지부에 해당하는 후생성을 통해 받는다고 하더군요.”

    안교수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는 국방성이나 에너지성에서 예산을 책정한 뒤 후생성에 넘겨준다는 것이다.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국방성이나 에너지성이 연구를 주관할 경우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소지가 있기 때문에 취하는 조치라고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주무부서인 정통부는 일고의 가치가 없다는 입장. 단순히 휴대전화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뿐 아니라 일상생활에 쓰이는 전자파의 활용도와 역기능 방지 등에 초점을 맞추려면 정통부가 주관하는 게 옳다는 반박이다. 그러나 정통부는 “전자파 연구가 지금처럼 많은 문제를 안은 채 형식적으로 진행된다면 이는 결국 국민과 견제기관의 질타에 대한 ‘면피용’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마땅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1.6’은 매직넘버가 아니다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휴대전화 전자파의 유해성 여부는 아직 확실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지구촌 곳곳의 연구결과 또한 휴대전화 전자파의 유해성을 주장하는 논문과 이를 입증할 수 없었다는 반론이 번갈아 나오고 있는 실정인 데다, 국제기관인 IARC의 연구도 결과를 보려면 앞으로 10년은 기다려야 한다. 정부 당국과 단말기 제조업체들이 SAR 제한기준을 보호막으로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이용자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큰소리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불확실성 때문이다.

    정통부와 단말기 제조업체는 1.6W/kg이라는 지금의 국내 SAR 제한기준에 대해 “인체에 무해한 안전한 수치”라고 말한다. 물론 국내에서 SAR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는 점은 대다수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휴대전화 전자파를 둘러싼 연구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특히 국내에서 일어나는 휴대전화 전자파 관련 논쟁의 초점은, 이용자의 알 권리를 존중해야 할 기업의 윤리의식과 이를 강제할 만한 정책당국의 전문성에 있다. 휴대전화 전자파가 어떤 형태로든 인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면 ‘최소한’ 경고문구와 함께 SAR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을 얻는다.

    이런 의미에서 직접 SAR 측정장비를 생산하는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김윤명 단국대학교 전자공학과 교수의 말은 귀기울일 만하다.

    “국내 SAR 제한기준은 1.6W/kg입니다. 하지만 이 기준은 만고불변이 아니에요. 기술이 발전하고 연구결과가 축적되면서 SAR 제한기준도 점점 강화될 겁니다. 지금부터 기술을 쌓고 이에 대비하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습니다. 1.6W/kg이란 수치는 인간을 보호할 수 있는 확고한 방어막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최근 국내에는 기업의 매출이나 이익 등 재무지표뿐 아니라 환경·사회·윤리적 측면의 위험요인도 투자 기준에 포함시키는 ‘사회책임투자(SRI)’가 선진국형 금융투자방식의 일환으로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기업의 윤리의식도 자산이 되는 때가 오고 있는 것이다.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잠재요인에 대해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대기업들의 ‘책임투자’와 이에 대한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감독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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