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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심 수사 지양하고 인권검찰로 거듭나라”

검사 출신 함승희 의원 직격 발언

“공명심 수사 지양하고 인권검찰로 거듭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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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내가 특수부 또는 중수부에서 사회적 이목을 끄는 사건을 수사할 때 검찰 간부들이 늘 하던 말은 “이 사건 수사 과정과 결과가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어떻게 비추어질 것인가, 그리고 국회 국정감사나 현안 질의에서 어떤 질책이 나올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수사하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수사는 소신껏 하되 절차나 과정에 대한 국민의 감시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어떤가. 수사 담당검사, 부장은 물론이고 검사장급 이상의 고위간부, 때로는 장관조차도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치 검찰이 그 자체로서 절대선이고 잘못된 일은 하지도 않고 할 이유도 없는 기관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종종 본다. 이것은 검찰의 중립이나 독립과는 관계없다. 대단히 위험한 검찰의 독선이요 오만일 뿐이다.

국민을 무서워하고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대정부 통제기관인 국회의 권위를 존중하는 것은 검찰의 중립이나 외부로부터의 부당한 간섭 배제와는 무관한 일이다. 검사들의 언행이 좀더 신중하고 겸허할 때 진정 국민의 신뢰를 받는 국민의 검찰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검찰의 생리를 잘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검찰 통제’라는 용어를 자주 쓴다. 여권 주변에서는 “검찰이 잘 통제되지 않아 걱정이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심지어 어느 청와대 수석비서관은 “요즘 검사들의 간이 부었다”고도 말했다 한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도, 비록 권력 실세들이 검찰 고위층을 통제하긴 했지만, 수사검사를 직접 통제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개인적 청탁이나 민원은 별개로 하고). 오히려 검사 스스로 그 수사가 가져올 사회적 파장을 먼저 읽고 수사를 자제하는 경향이 많았고(속된 말로 ‘알아서 기는’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사건의 진상을 왜곡하거나 부실수사의 주원인이 돼왔다.



요즘엔 이런 현상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일견 진일보한 것 같지만, 그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오히려 과거보다 더 위험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여론의 향방이나 정치적 풍향을 먼저 읽고, 그것에 맞추어가는 수법이 나 같은 초짜 정치인을 뺨칠 지경이다. 변호인이나 정치권의 정당한 지적이나 변론행위까지도 ‘수사방해를 위한 음모’라고 몰아붙일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다가 무엇에 부딪친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든다.

공명심과 오기는 씻어내라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검사의 소신은 스스로 법과 절차를 준수하면서 누가 보아도 대체로 공정하다는 느낌이 들 때 지켜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공명심이 앞서거나 편파적이거나 특정 정파에 불리 또는 유리하게 수사하거나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피의사실을 슬쩍슬쩍 흘리면서 여론몰이 수사를 하는 등 정도에서 벗어나는 수사를 반복하면 정권이 바뀐 뒤 또 한번 된서리를 맞게 될 것이다. 과거 역사가 그것을 실증하지 않는가.

최근 법무부가 상명하복을 골자로 하는 검사동일체 원칙을 폐기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참 잘한 조치다. 수사검사에 대한 불법·부당한 통제와 간섭을 막기 위해 이 조항을 폐지하는 것은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독립기관인 검사가 편파적이거나 위법·부당한 법집행 행위를 할 경우 이를 곧바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제도가 보완돼야 한다. 억울하게 구속되거나 불법수사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이를 즉시 바로잡지 못하고 수사가 다 끝난 후 사후약방문 격으로 뒤늦게 수습하는 기능만 있다면 그야말로 검찰 파쇼의 원성을 막을 길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검의 감찰부를 법무부로 옮겨 필요에 따라 즉시 감찰조사를 실시할 수 있고 때로는 수사검사의 해임이나 교체 요구를 장관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수사는 ‘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검찰’이 전담하고 이에 대한 견제·감독은 ‘국무위원인 법무부장관’이 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치권과 검찰의 상호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바로 설 수 있는 것이다. 대통령중심제 정부조직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나는 지금도 일생을 두고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을 말하라고 하면, 특수부 검사 시절 거악(巨惡)을 상대로 철야수사해 통쾌하게 무너뜨리던 때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피의자들은 그 누구라도 이 나라 백성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인 것이다. 내 이웃이고 형제자매인 것이다. 무슨 적을 대하듯 해서는 안 된다. 나는 검사 시절 검찰이 내 것인 줄 착각했다. 그만두고 나서야 비로소 검찰은 내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임을 알았다.



검사들은 검사 그만두고도 “나는 검사였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음속에는 정의감과 의협심이 충만해야 한다. 그러나 공명심과 오기는 머리 속에서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국민의 검찰로 거듭나기를 당부한다.

신동아 2003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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