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호

韓水原 방폐물 처분비용 논란

쌓여가는 원전쓰레기, 버릴 땅도 묻을 돈도 없다?!

  • 글: 강지남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3-09-25 19: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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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水原 방폐물 처분비용 논란

    한수원은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이어 충당금 축소 적립과 전용 시비에 휘말렸다. 부안 주민들의 시위 모습

    지난 7월14일 김종규 부안군수가 원전 수거물 관리시설을 위도에 유치하겠다는 공식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로써 1986년부터 17년간 표류해온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이하 방폐장) 건설사업이 궤도에 오르는 듯했다. 그러나 군수의 독단적 결정에 분노한 부안 주민들의 반대시위가 연일 거세지면서 과연 위도에 방폐장이 들어설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급기야 9월8일에는 주민들이 김종규 군수에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현금 보상이 그저 소문에 불과했음이 확인되고, 사용후 핵연료 중간저장시설까지 위도에 들어온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정부와 방폐장에 대한 부안 주민들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시설과 사용후 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을 동일 부지에 유치하려는 정책은 1980년대부터 꾸준하게 추진됐고, 1998년 원자력위원회 의결을 통해 재확인된 사안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산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작업복과 장갑 등 중저준위 폐기물만 거론하며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해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는 “중간저장시설은 사용후 핵연료의 ‘중간 정착역’일 뿐”이라며 주민들을 설득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사용후 핵연료의 무덤 격인 영구처분시설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해놓은 것도 아니다. 정부는 일단 각 원전에 흩어져 있는 사용후 핵연료를 위도로 한데 모은 뒤 영구처분시설을 마련해 사용후 핵연료를 다시 옮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계획에 끊임없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중간저장시설이 필요한 이유로 제시하는 ‘2008년 포화론’이 설득력이 없다는 것. 정부는 2008년부터 원전 내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르기 때문에 중간저장시설 건립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원자력계에서는 “수조에 습식 저장돼 있는 사용후 핵연료 사이에 방사성 차단물질을 설치하면 좀더 조밀하게 저장할 수 있다. 또 건식 저장 기술을 활용하면 앞으로 20∼30년간 원전 내 저장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핵 관련 전문지인 ‘사이언스&글로벌 시큐리티’에 실린 논문 ‘한국의 사용후 핵연료 추가 저장 대안’에서는 “여유 저장공간이 있는 원전 간에 사용후 핵연료를 이동시키는 방법 등으로 2021∼29년까지 사용후 핵연료를 원전 내에 저장할 수 있다”는 분석 결과가 제시됐다.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한수원 내부에서조차 ‘동일 부지’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업계 전문지인 ‘전기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방폐장 부지선정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한수원 산하 원자력환경기술원의 한태수 당시 원장은 지난해 8월 열린 한 심포지엄에서 “사용후 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을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과 동일 부지에 설치할 경우 영구 처분하려 한다는 의심을 사게 된다”며 “사용후 핵연료는 원전부지 내에 설치된 건식 저장고에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으므로 영구 처분장을 확보할 때까지 원전 부지 안에 중간저장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원자력환경기술원 송명재 정책연구실장은 같은 달 업계 전문지 ‘원자력산업’에 기고한 글(‘미국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과 우리의 현안’)에서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에 사용후 핵연료를 이송하여 중간저장하겠다는 방침은 수송에 따른 위험성이나 경제성 등을 따져볼 때 다시 한번 검토해봐야 할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동일 부지 방침은 정책적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사용후 핵연료가 반드시 위도로 옮겨와야 하느냐는 의문과 더불어 원전 사후처리 충당금(이하 충당금) 축소 적립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 6월 녹색연합과 한나라당 김성조 의원(국회 산업자원위원회)은 원전 사후처리 비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용후 핵연료 처분단가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충당금 기준은 20년 전인 1983년에 산정된 금액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것으로, 현실성이 없다”는 것.

    韓水原 방폐물 처분비용 논란

    월성 원전의 사용후 핵연료 건식저장소.

    원전 사후처리 충당금이란 ‘원전 쓰레기’를 처분하는 데 드는 비용을 원전을 가동하는 동안 미리 적립해놓는 것을 말한다. 발생자 부담원칙에 따라 현재 원전을 가동해 생산한 전기를 팔고 있는 한수원이 충당금 부담의 주체가 된다. 각기 산정된 세 종류의 원전 쓰레기(수명을 다한 원전, 중저준위 폐기물, 사용후 핵연료)를 처분하는 비용이 합쳐져 원자력 발전단가에 반영되고 있다. kw당 원자력 발전단가는 40원 안팎인데, 이 중 10% 정도인 4∼5원이 방폐물 처분에 쓰이는 비용이다.

    현재 한수원은 경수로 사용후 핵연료의 처분비용을 kgU당 54만2100원(1992년 기준)으로 산정하고 있다. 이는 1983년 ‘한미 공동연구 중간보고서’에 나타난 비용을 1992년 전기사업법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액수다. 한수원은 이를 기준으로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충당금을 적립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사용후 핵연료 kg당 약 73만원(약 600달러)을 적립했다.

    그러나 이는 한국원자력연구소가 2001년 내놓은 사용후 핵연료 처분단가와 큰 차이가 있다. 이 연구소가, 경제개발기구 내 원자력위원회(OECD/NEA)가 발표한 국제적 평균 처분단가를 활용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경수로 사용후 핵연료의 평균 처리비용은 kg당 운송 및 저장에 287.5 달러, 폐기처분에 696.5달러다. 이를 합산하면 현재 한수원이 적립한 금액과 kg당 400∼500달러의 차이가 있다.

    녹색연합은 “지난해 말 현재 저장중인 국내 경수로 사용후 핵연료 2950t의 처분비용을 한수원 방식대로 계산하면 2조530억원이지만, 원자력연구소 연구결과를 적용하면 3조8000억원에 달해 무려 1조7000억원이 모자란다”고 주장했다.

    수명이 다한 원전을 철거하는 데 드는 비용도 낮게 책정됐다는 게 녹색연합의 주장이다. 한수원은 한 호기당(약 100만kW) 1620억원을 철거비용으로 잡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주)일본원자력발전이 발표한 110만kw급 원전 1기의 철거비용은 약 5500억원이었다. 2001년 미국의 PC&E사는 원자로 2기(합계 220만kw)를 철거하는 데 약 12억달러, 즉 한 호기당 6억달러(약 7200억원)가 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한수원은 “현행 충당금은 국제 기준과 비교할 때 어느 정도 부합된다”고 밝혔다. 미국은 1.2원/kw, 스웨덴은 2원/kw의 원전쓰레기 처분비용을 발전단가에 반영하는 데 비해 한수원은 3.3원/kw을 반영한다는 것. 원전 철거비용에 대해서는 “점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 전문가는 “각 나라의 발전량 규모나 방폐장 부지 여건 등 원전사업의 특성에 따라 kw당 얼마를 반영하는지가 달라지므로 이는 적합한 기준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사용후 핵연료를 세계 각국으로부터 수입해 영구 처리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러시아는 한국원자력연구소와 비슷한 수준의 처분비용을 책정하고 있다. 핵 군축과 방사성 물질 안전문제에 대한 분석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유럽의 벨로나 재단(Bellona Foundation)은 “러시아 처분시설에 사용후 핵연료를 보내는 나라들은 kg당 1000∼2000달러를 지불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센터 설립으로 면책 기도?

    한수원도 현행 충당금 산정기준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수원이 스웨덴의 방폐물 관리 전담기관인 SKB의 자문을 얻어 작성했다는 보고서(‘원전사후처리충당금 제도개선에 관한 연구’)는 “현행 기준액이 마련된 지 10년이 지났으므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 연구 결과가 절묘하다. 원전 철거비와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비는 현행 기준보다 각각 34%, 330% 상승했지만, 사용후 핵연료 처분비는 경수로가 14%, 중수로가 22% 감소했다. 한수원은 현행 경수로 사용후 핵연료 처분비 73만원/kg(2002년 기준)을 63만원/kg으로 10만원 하향 조정했다. 이로써 세 가지 원전 쓰레기 처분비용을 합산한 원전 사후처리 비용은 현행 충당금 산정액과 비슷한 수준으로 나왔다.

    그렇다면 위도 방폐장 건립과 충당금 축소 적립 논란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걸까. 환경단체 등은 “충당금을 현실화하지 않은 채 위도에 사용후 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이 설치된다면 한수원은 사용후 핵연료를 위도에 덤핑하는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얻게 된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위도에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과 사용후 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을 건설하고 이를 운영·관리할 전담기관으로 원전수거물관리센터(이하 원전센터)를 설립할 계획이다. 원전센터는 현재 한수원의 자회사로 설립이 추진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제3의 기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산자부는 지난 5월 기자간담회를 통해 “원전센터를 한수원으로부터 독립시키겠다”고 밝혔다. 방폐장 부지확보 이후 시설 건설 및 운영단계에서는 한수원과 별개의 기관에서 방폐물 관리사업을 전담하는 것이 안전성과 투명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는 게 산자부의 입장이다.

    그동안 원자력발전소에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사용후 핵연료가, 위도가 방폐물 부지로 최종 결정되고 나서부터는 새로운 책임자의 품으로 넘어가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한수원은 지금까지 적립한 충당금만 새로운 책임 주체에 지불하면 앞으로 얼마의 비용이 들지 모르는 사용후 핵연료 처분에 대한 책임을 벗어나게 된다. 이는 결국 우리 후손들에게 모자라는 비용을 떠넘겨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원전 사후처리 충당금은 지난해 말 현재 4조4179억원이 적립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은 4조5000억원에 달할 이 충당금은 서류상으로만 적립되어 있을 뿐 ‘만질 수 있는 재원’으로 관리되고 있지는 않다. 한수원은 “충당금은 현금 또는 예금으로 확보되어 있지 않다. 원전 건설 등의 차입금으로 사용되어 현재 실제적 잔고는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 이 부분이 지적되자 한수원은 “원전 건설에 충당금을 사용한 덕분에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빌릴 필요가 없어 이자부담을 덜었다”며 효율적으로 관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녹색연합은 “이는 명백한 전용(轉用)”이라며 문제를 제기한다. 전기사업법에 의하면 원전 사후처리 충당금의 사용범위를 방폐물 처분에 소요되는 비용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충당금을 원전 건설 등에 사용한 것은 용도에 맞지 않는 사용이라는 것이다.

    이에 민주당 이낙연 의원 등은 원전 사후처리 충당금을 재원으로 방사성 폐기물 관리기금을 설치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이 개정안은 2004년 1월부터 원전발전사업자가 방폐물 처분을 위한 부담금을 폐기물 관리기금에 납입하도록 하고, 이를 산업자원부가 관리하도록 했다.

    충당금을 기금으로 바꾸자는 개정안이 제출되자 한수원은 긴장하는 빛이 역력하다. 개정안대로 내년부터 원전 사후처리 비용이 기금으로 관리된다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4조5000억원을 현실화할 방안을 당장 강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금화되면 회사가 디폴트(default·채무불이행)되어 망한다”는 한수원 관계자의 자조적인 목소리는 이러한 한수원의 처지를 잘 드러낸다.

    산자부와 한수원이 원전 사후처리 충당금 산정기준을 현실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걸까. 이와 관련, 원자력 업계의 한 인사는 “원자력 발전은 그동안 ‘가장 싼 에너지원’으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충당금을 두 배 정도 인상하면 원자력 발전단가는 kw당 4∼5원 비싸진다. 화력 발전에 비해 kw당 2∼3원 저렴한 원자력 발전 최고의 장점이 여지없이 무너져버리는 것이다”고 설명한다. 2002년 전력분야 통계를 보면 발전원별 정산단가(한국전력이 발전사업자가 생산한 전기에 대해 지불하는 값. ‘발전단가’와 비슷함)는 석탄이 41.39원/kw, 원자력이 39.65원/kw다.

    한수원, 모든 정보 공개해야

    원자력 관련 전문가들은 그동안 우리 실정에 맞는 실제적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충당금 논란이 일게 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현행 충당금의 적정성 여부가 모두 외국의 연구결과에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실제로 어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한지 어느 누구도 똑 부러지게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충당금 산정의 기준이 된 것은 1983년에 이뤄졌다는 한·미 공동 연구다.

    한 전문가는 “민간 사업자들이 원전을 운영하는 미국의 경우 원전 사후처리에 드는 비용을 거의 해마다 산정해 공정한 부담을 기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국내 원자력 관련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이 분야의 한 전문가는 “그동안 한수원으로부터 원전사후처리 비용에 관한 연구를 의뢰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2008년이면 고리1호기가 설계수명에 도달하는 등 본격적으로 원전 폐기비용이 필요한 때가 다가오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비용 산정을 제대로 하기 위해 한수원은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위도에 방폐장이 설립되든 혹은 또 다른 후보지역을 물색하게 되든, 원자력 발전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한 그 부산물인 방폐물 처리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우리나라는 고리·영광·울진·월성 4개 지역에서 18개 원전을 운영·건설하고 있으며, 2015년까지 8기를 추가 건설할 계획이다. 수백년, 수만년 동안 끈질긴 생명을 이어갈 어마어마한 규모의 원전쓰레기에 대해 정부와 원전사업자는 과연 성실하게 대책을 마련해왔는가. 방폐장을 둘러싼 논란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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