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호

점입가경 문화계 保革 갈등

‘돌격 앞으로’ 민예총 ‘뒤로 돌아’ 예총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03-10-27 16: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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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입가경 문화계 保革 갈등
    “우리 00지역에서는 그동안 예총이 모든 문화예술 정책 및 행사를 주도해 왔다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내년부터 지방 정액 보조금의 상당 부분을 민예총이 가져간다고 한다. 지방에서 느끼는 위기는 서울과 비교도 할 수 없다. 정말 머리 깎고 띠 두르고 농성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예총 지방지회 관계자)

    “참여정부 출범과 더불어 예총의 위상과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위협을 받고 있다. 문화관광부 소속기관 및 단체장에 민예총 계열 인사들을 대거 인선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현정부는 문화계마저 코드 인사로 얼룩지게 할 생각인가.”(성균관대 정진수 교수)

    10월7일 서울 장충동 소피텔 앰배서더호텔에서 열린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이하 예총) 정기 심포지엄은 예총 관계자 300여 명이 참가해 한 목소리로 현 정부의 인사정책과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이하 민예총)의 급부상을 성토했다. 이날 심포지엄 주제는 ‘참여정부에서 예총의 위상과 역할’‘중심을 잃어버린 우리의 문화예술단체들’로 최근 예총의 위기감을 말해주었다. 심포지엄의 주제 선정과 관련해 박주순 예총 사업과장은 “현 정부의 편파인사가 극에 달하면서 이를 묵인해선 안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40여 년 동안 문화예술인들의 구심점이었던 예총이 이처럼 위기감에 휩싸인 까닭은 무엇인가.

    참여정부 출범 6개월이 지난 지금 문화계는 예총과 민예총으로 대변되는 보수·진보 단체간 갈등이 표면화되고 정부 인사정책에 대한 불만이 곳곳에서 분출되는 등 분란에 휩싸였다. 9월19일에는 차범석 예술원장을 비롯해 정진수, 윤호진, 유인촌, 심재찬 등 연극계 원로와 중진으로 구성된 100명이 문화관광부(이하 문광부) 문화기관단체장 편파인사와 문화예술진흥원(이하 문예진흥원)의 문화예술위원회(이하 위원회)로의 전환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정부가 민예총이라는 특정 조직의 구성원 일색으로 문화기관 단체장을 인선하는 것은 정치권력을 이용해 예술계를 편 가르기 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며 “문예진흥기금을 배분하는 문예진흥원을 위원회로 바꾸면서 기금마저 특정세력이 독점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정기 국정감사에서도 문예진흥원과 문화부 산하 단체장 인사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15, 20, 21대 예총 회장을 역임한 한나라당 신영균 의원은 “현재 진보계열인 민예총 중심의 문화계 판짜기가 이루어지고 있다”며 “이창동 장관이 부임한 후 편 가르기식 편중인사로 문화예술계의 분열과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40년 예총시대 막 내리나

    1962년 문화예술인들의 친목과 권익옹호를 위해 창립된 예총은 음악협회·국악협회·문인협회·사진작가협회·연예협회·미술협회·연극협회·건축가협회·무용협회·영화인협회 등 10개 회원단체, 전국 시도에 100여 개 지부, 회원수 15만에 이르는 거대 단체다.

    그러나 예총의 전신인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1947년 결성)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예총이 문화계에 군림하면서 지나치게 ‘권력’과 가까워졌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일단 문화부 산하 문예진흥원장 등 주요 문화예술단체장은 예총 출신이 독식하다시피 했고, 현역의원인 한나라당 신영균 의원 외에 16, 17대 조경희 회장(예술원 회원)이 노태우 대통령 시절 정무장관을 지냈고, 19대 강선영 회장은 예총회장 시절 민자당 전국구로 14대 국회의원(현재 한나라당 상임고문)을 지내는 등 예총 회장 자리가 정계 진출의 발판처럼 인식돼 왔다.

    하지만 참여정부 출범 이후 문화계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현 정부와 이른바 ‘코드’가 맞는 개혁 성향의 인사들이 요직을 차지한 것. 지난 2월 민족문학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 이사장인 현기영씨가 문예진흥원 원장으로 취임했고, 5월 현원장은 작가회의에서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강형철 작가회의 상임이사를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문예진흥사업을 연구하는 핵심기구인 문예진흥행정혁신위원회에 민예총 ‘일일문화정책뉴스’ 담당 편집자인 안성배씨와 작가회의의 김형수 시인을 외부위원으로 기용했다.

    또 문광부 산하단체인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장에 이영욱 문화개혁시민연대(이하 문화연대) 정책부위원장이, 한국영상자료원장에는 독립영화계에 몸담으며 문화개혁운동을 펼쳤던 이효인 경희대 교수가 각각 임명됐다. 또 문광부 내 자문기구인 문화행정혁신위원회에는 박인배 민예총 기획실장과 문화연대 문화개혁감시센터 소장을 지낸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 등이 참여했다. 장관의 ‘브레인’이라고 할 수 있는 정책보좌관은 이영진 작가회의 문화정책위원장이 맡았다. 이때부터 문화계에서는 “코드가 비슷한 특정 단체에 대한 배려가 지나친 게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연초 민예총·문화개혁시민연대(이하 문화연대)·스크린쿼터문화연대가 공동주최한 ‘새 정부 문화정책 관련 정책제안 토론회’에서 강내희 문화연대집행위원장(중앙대 교수·영문학)이 “새 정부에서는 예총 같은 단체들은 물러서고 민예총 같은 세력이 전진배치돼야 한다”고 한 발언이 문화계 ‘홍위병’ 논쟁으로 이어진 터라, 예총의 위기감은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예총을 비롯한 문화계 보수 성향 인사들이 행동에 나서게 된 결정적 계기는 9월초 국립현대미술관장과 국립국악원장 선임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이었다. 두 기관 모두 개방형 공모제를 내세워 공채형식으로 국립현대미술관장에 김윤수 민예총 이사장을, 국립국악원장에 김철호 민족음악인협회 이사장을 임명했다. 그러나 심사위원 선정과정과 심사기준 등이 명문화되지 않은 데다가 문광부 주도 아래 비공개로 진행된 것이 발단이었다. 그나마 김윤수 관장의 경우 민중미술 진영의 맏형 격으로 3수 끝에 입성한 것이어서 공개적인 반발이 없었지만, 김철호 원장은 여러 측면에서 ‘짜맞추기 인사’라는 의혹을 남겼다.

    특히 심사위원 선정 과정에서 막판에 예총 소속이거나 보수 성향의 인사를 배제한 것으로 알려져 반발이 컸다. 이들은 심사위원으로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고 심사비를 받을 은행계좌번호까지 알려줬는데 이유 없이 명단에서 빠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문광부 관계자는 “심사위원 정수의 2∼3배수로 뽑은 ‘인력풀’이었을 뿐 정식 심사위원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전국대학 국악과 교수 포럼’은 9월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립국악원 차기 원장 임용 무효 및 이창동 문광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김정수 공동대표는 “심사위원에 특정학교 출신과 특정세력이 포진해 정치적으로 특정후보를 밀려는 짜맞추기식 선정”이라며 “개혁적 단체에서 일했다는 경력을 앞세워 기라성 같은 선배를 제치고 원장이 된 것은 전통을 중시하는 국악계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후 9월19일 코드인사에 반대하는 연극인 100인 성명이 이어졌고 이 문제는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됐다. 이처럼 문화권력이 진보·개혁진영으로 대폭 이동하고 있는 데에 위기를 느낀 예총이 심포지엄을 열고 대책을 강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예총 내부에서는 현 정부의 ‘코드 인사’가 문화계 세력 개편을 기도하는 것으로, 마치 중국의 문화혁명을 연상시킨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인다.

    정권 바뀌면 사람도 바뀐다

    하지만 민예총을 비롯한 이른바 진보성향의 문화계 인사들은 현 정권의 ‘코드 인사’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말한다. 민예총 정남준 사무총장은 “정권이 바뀌면 사람도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조심스레 반문했다.

    “50년 동안 예총이 문화계에서 주도권을 행사한 것은 다 아는 일이다. 그랬기에 문화정책이 기존의 엘리트, 선각자 중심으로 추진돼왔다. 하지만 이제 진보, 개혁세력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기저에서 예술을 창작하는 문화예술인들과 이를 향유하는 국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1988년 민족예술의 발전과 문화예술운동의 대중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민예총은 주로 진보적인 문학가를 중심으로 예술·영화·연극·음악에 종사하는 예술인들이 참여한 단체다. 정남준 사무총장은 “민예총은 문화정책연구소와 문예아카데미 등을 통해 문화행정 및 정책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해왔다”고 말한다. 즉 편파인사가 아니라 역량이 뛰어난 이들이 갈 만한 자리에 간 것이라는 주장이다.



    1월21일 민예총, 문화연대 등 진보적 문화예술 단체들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문화정책 10대 과제’라는 정책제안서를 제출했다. 문예진흥원의 위원회로의 개혁, 문화인프라 구축, 남북간 문화예술 교류 추진, 지역문화 활성화 등 현재 우리 문화계가 안고 있는 과제들과 세부적인 추진방법 등을 적시하고 있다. 현 정부로서는 이렇듯 문제의식을 가지고 활발한 정책제시를 해온 인사들을 눈여겨보았을 것이다.

    이창동 문광부 장관의 ‘브레인’이라 불리는 문광부 이영진 정책보좌관도 “예총의 경우 정책연구를 하는 기구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 더 준비된 사람을 뽑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며 “코드 인사가 아니라 철저하게 능력 위주로 뽑았다”고 강조했다. 민예총 출신인 사단법인 한국문화정책연구소의 정희섭 소장은 “단순히 수치나 사실관계만으로 편파인사라고 단정지어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지난 정권까지 문광부 산하 및 소속단체 공직에 민예총 회원이거나 개혁적 성향을 가진 인사가 들어간 경우는 고 문호근 선생님이나 김명곤 국립극장장밖에 없다. 그러다가 현 정부 들어 5개 단체장을 민예총 계열에서 차지하게 되니, 민예총이 정권을 장악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민예총이나 개혁적 인사의 참여 기회가 조금 넓어진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문광부 산하 및 소속단체 총 42곳 중에서 현 정부 이후 새로 임명된 단체장은 10명이고 이중 민예총 계열 인사는 4명에 불과하다. 김명곤 국립극장장의 경우 지난 정권에 임명됐다. 문광부 이영진 정책보좌관은 “어디 출신인가를 문제삼지 말고 능력으로 평가해달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민예총 산하인 작가회의 회원이면서 동시에 예총 산하인 문인협회 회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그럼에도 정책보좌관으로 임명됐을 때 언론에서 민예총 출신이라는 사실만 부각시켰다”며 “문화계 보혁갈등은 우리사회의 편 가르기식 사고에 의해 부풀려진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문화계 보혁갈등에서 ‘코드 인사’ 다음으로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 예산문제다. 한나라당 신영균 의원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문예진흥기금의 예총에 대한 지원은 감소하고 민예총에 대한 지원은 늘었다”고 주장했다. 예총과 산하단체에 2001년도에는 16억7750만원이 지원되다가 2003년 11억9700만원이 지원되어 29%가 줄어든 반면, 민예총과 산하단체 지원액은 계속 늘어나 지난 2년간 42%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예진흥원 강형철 사무총장은 “신영균 의원은 예총에 대한 지원이 2년 전보다 5억원 정도 줄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예총 산하의 연극협회와 무용협회가 주축이 되어 개최하는 서울공연예술제에 5억원이 투입되면서 그만큼 예총 본부에 대한 지원이 준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또 민예총의 경우 42% 늘어났다고 하지만 실제 액수는 4억에서 6억5000만원으로 늘어나 절대액수에서 아직도 예총과는 큰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예산문제는 지난해 결정된 일로 이번 인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설명이다.

    오히려 김성호 의원(통합신당)은 “예총은 인건비를 포함한 경상비까지 문예진흥원에서 지원받는 유일한 단체”라고 지적하며 “이는 일종의 특혜 아니냐”고 꼬집었다. 즉 문예진흥기금 지원에서 예총이 민예총을 비롯한 다른 단체들보다 혜택을 받으면 받았지 차별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예총 입장은 다르다. 지금까지 예총의 104개 지방연합회와 지부는 정부로부터 정액보조금(각 연합회 연간 3500만원, 각 지부 2200만원)을 받아왔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민예총을 비롯한 다른 단체와 경쟁을 통해 예산을 따내야 하는 상황이다. 즉 예총 입장에서는 정액보조금이 줄어들거나 아예 받지 못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편파인사나 지원금 삭감 외에도 예총은 1999년 이후 공사가 중단된 예술인회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1992년 대통령선거 공약사업인 예술인회관 건립은 1996년 4월 서울 목동에 지하 5층 지상 20층 규모로 공사가 시작됐다. 당시 계획은 국고보조금 150억원, 건물임대료 244억원, 예총 자체 모금 30여억원을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IMF 이후 예총이 공사비를 조달하지 못해 1999년 6월 이후 공사가 중단되자 지난해 정부는 국고보조금 50억원을 추가로 교부하면서 공사재개를 촉구했다.

    9월22일 문광부 국정감사에서 통합신당 김성호 의원은 현재 예술인회관이 안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문광부가 이를 환수해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종합복지공간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의원은 “예총이 부담하는 공사비는 총사업비 854억원 가운데 26억원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국고와 임대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나마 26억원도 현재 예총 능력으로 보아 모금하기 힘들 것 아닌가. 결국 사업 주체의 추진 능력 및 의지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임대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만큼 ‘돈 되는 공연’이나 전시만 치러질 우려가 있고 이에 높은 임대료를 지불할 능력이 없는 대다수 문화예술단체들의 예술인회관 입주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김성호 의원은 아예 정부가 전액 지원을 해서 건립사업을 마무리지은 후 이를 환수해 다수 예술단체와 예술인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종헌 예총 사무총장은 “혜화동 예총 건물을 105억원에 팔고 그 돈을 예술인회관 건립에 투자했다. 우리가 약속한 26억원 조달기간이 30여 개월이나 남았고, 어떤 방법으로든 마련할 계획이다. 이런 우리의 노력을 무시하고 정부가 예술인회관을 환수하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현재 예총측은 자칫 현 정부 눈밖에 나면 예술인회관마저 빼앗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게다가 예술인회관 건립을 위해 서울 혜화동에 있던 예총 건물을 이미 문예진흥원에 매각한 상태여서 최악의 경우 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다. 궁지에 몰린 예총 입장에서는 현 정부의 인사와 정책에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단체 내부의 파워게임

    한편 일련의 사태가 표면상 문화계 보혁갈등으로 비쳐지고 있으나 안을 들여다보면 각 단체 내부의 ‘파워게임’ 성격도 띠고 있다. 10월9일 ‘연극인 100인 성명’은 예총 산하 연극협회가 주도했지만 정작 이사장이 없는 상태에서 전격 발표돼 의구심을 일으켰다. 당시 연극협회 최종원 이사장은 미국 공연중이었고 성명 발표에 대해 측근의 전화를 받고 알았다고 한다.

    “쟁점 사안이 연극계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고, 현 정부의 인사가 특별히 편파적이라고 볼 수도 없기 때문에 성명 발표는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인사에 대한 평가는 일정 시간이 지난 후 해야 한다. 성명을 내면 ‘자기 얼굴에 침 뱉기’라고 반대했는데도 귀국하니 이미 발표한 후였다.”

    최이사장은 지난 9월29일 연극협회 홈페이지에 ‘연극인 100인 성명에 대한 이사장 입장’이라는 글을 올려 성명내용을 전면 반박했다. 특히 ‘연극인 100인’의 대표성 문제를 거론하며 서명작업을 주도한 정진수 교수에 대해 맹공을 퍼부었다. 또 “100인 가운데 역대 정권에서 혜택을 누려온 연극인들도 포함돼 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에 앞서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정진수 교수는 즉각 연극협회 홈페이지에 글을 띄워 “새롭게 임명될 문화부 소속 및 산하단체장 자리에도 이미 민예총의 입김이 쏘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다”며 “그 가운데 최이사장 자신도 거론되고 있음을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라고 비꼬았다. 이에 최이사장은 “연초 강내희 교수의 발언이 문제가 됐을 때 ‘점령군이라도 된 듯 진보를 앞세워 홍위병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냐’며 강력히 항의한 사람이 바로 나”라며 반박했다.

    이처럼 예총이 심각한 내부 균열현상을 보이는 데는 내년 2월로 예정된 예총 회장 선거의 영향이 크다. 즉 회장 출마를 염두에 둔 인사들이 민예총과의 갈등을 필요이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예총 심포지엄에서도 이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정진수 교수는 “회장선거 때마다 정치판 뺨치는 부정과 비리가 저질러져 왔다”며 “예총이 지금과 같은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예총 회장선거부터 달라지고 선거의 부정을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교수 역시 예총 회장선거를 앞두고 연극인 100인 성명을 이끌며 ‘이슈 메이킹’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민예총 관계자는 “앞으로 예총이 ‘고토회복’을 외치며 사사건건 민예총과 대립각을 세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안팎으로 시끄러운 문화계에 또 다른 폭풍의 눈이 ‘문화진흥법’ 개정 문제다. 연극인 100인 성명에서도 볼 수 있듯 문화계 일부에서 “문화진흥법이 개정되면 현 정부와 코드가 비슷한 인사들이 단체장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 자본마저 독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문화진흥법이 개정되면 무엇이 달라지기에 이런 우려를 자아내는 것일까.

    문예진흥법 개정안은 16대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기존의 문예진흥원을 민간 주도의 위원회로 바꾸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문화부는 올 4월 대통령 업무보고를 하고 7월30일 입법예고한 상태. 정부안에 따르면 위원회는 문광부 장관이 위촉한 11인의 문화예술위원으로 구성된다. 지원기본계획 등의 수립·변경, 기금의 관리·운영, 위원회 운영 등에 관한 심의·의결 등이 위원회의 주임무다.

    하지만 문화예술계 일각에서는 현 추세대로 개혁 성향의 인사들이 위원회를 장악할 경우 ‘코드가 비슷한’ 단체에 집중적으로 지원금을 배분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문예진흥원 강형철 사무총장은 “위원회는 원장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현행 독임제에 비해 힘이 분산되는 민주화된 방식”이라며 “1명이었던 원장이 11명으로 늘어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문예진흥원이 위원회로 전환되는 문제는 지난 3년간 지속적으로 논의돼온 사안이다. 문학, 음악, 미술 등 각 분야별로 10∼15명의 소위원이 있어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다. 매우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인데 권력독점을 비난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오히려 능률이 떨어진다는 비판이라면 감수하겠다.”

    즉 문광부 장관이 위촉한 문화예술위원 11명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게 아니고 그 밑에 분야별, 사업별 소위원회를 두고 150여 명의 소위원이 참여하기 때문에 지원금 독식 같은 편파적인 지원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강총장은 “예전 문예진흥원이 주로 문예진흥기금을 관리하고 배분하는 역할을 했다면 민간 주도의 위원회는 문화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며 조정하는 역할까지 수행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문광부의 업무였던 문화예술계 관련 정책 수립 등이 위원회로 이관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실제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자신들의 현안문제를 논의하고 정책을 수립하며 재원을 관리할 수 있게 된다는 것.

    하지만 문예진흥원 노동조합의 견해는 이와 많이 다르다. 위원회로의 전환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 개정안은 개악의 개연성이 많다고 주장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권력 독점을 넘어 제왕적 위원회가 될 소지가 높다. 11인 위원이 정책설립과 사업추진 및 기금배분까지 모두 맡게 되면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3년 내내 돈줄을 쥐고 있는 이들에게 엄청난 로비가 있을 것이다. 기존에는 사업추진 주체와 기금배분 주체를 구분해 기금배분은 기금지원심의위원회가 담당했는데 개정안에서는 이마저 없애버렸다.” 문예진흥원 박명학 노조 위원장의 이야기다.

    박위원장은 11인 위원이 개혁성향이냐 보수성향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다. 문제는 권력이 집중돼 있어 어느 쪽 성향의 사람이 위원이 되든 특정세력이 사업추진의 주체가 되고 지원금을 독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민간 자율기구라지만 사업을 벌일 때마다 장관과 사전협의하고 사후평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문광부의 통제가 심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조에서는 문예진흥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현원장과 강총장에게 독소사항을 고쳐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입법 예고된 안을 보니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고 문광부가 만든 안 그대로다. 현기영 원장과 강형철 사무총장이 부임할 때는 우리도 기대가 컸다. 개혁 성향의 인사인 만큼 문광부에 종속되지 않는 자율적 행정을 기대했다. 비상임이던 원장직을 노조가 농성 끝에 상임으로 만든 것도 자율적 행정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현원장이 철저히 문광부 입장만 대변하고 있어 실망도 크다. 비상임 원장 시절과 다를 바 없다.”

    이에 강형철 사무총장은 “문광부에 무조건 끌려간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협의 끝에 문예진흥법 개정안을 만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공무원 조직에 대한 이해 없이 독단적으로 일을 진행시켜온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직원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풀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연 문화연대 문화사회연구소장은 “현재 임명된 인사들에 대한 평가를 잠시 미뤄놓는 여유가 필요하다. 행정기관의 장으로서 그들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가시적인 성과물이 있을 때 논의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개혁을 위해 노력해온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준다고 생각하자”고 말했다.

    1999년 민예총 출신인 김명곤씨가 국립극장 극장장으로 선임될 때도 예총과 민예총은 잠시 불편한 관계를 드러냈다. 당시 3명 후보 가운데 김후보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 알려지자 예총 산하 연극협회는 “심사과정에 공정성과 객관성이 결여됐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갈등의 불씨를 안은 불안한 출발은 곧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당시 김명곤 극장장 밑에서 공연과장을 맡았던 정희섭 소장은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어느 정도 적응을 한 후에는 다양한 사업을 벌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김명곤 극장장의 취임 후 극장가동률, 객석점유율 등이 개선됐고 관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가 많아졌다. 특히 재정자립도가 1999년엔 7.34%이었는데 비해 2000년부터는 16∼17%를 유지하고 있다.

    국립극장 이세묵 서무팀장은 “개혁 성향의 민간인 전문가가 극장장에 취임한 후 직원들의 마인드가 관객 중심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직원들을 달달 볶는다고 싫어했지만 변화를 피부로 느끼게 되니 직원들 모두 만족해한다”고 설명했다.

    정소장은 “김명곤 극장장은 사업 추진 때마다 예총 원로들께 끊임없이 자문했다”면서 “그분들의 경륜이 큰 도움이 된다. 어느 단체 출신이 맡든 문화계가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총의 김종헌 사무총장은 “그동안 우리의 정책 수립 능력이나 정보화 능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앞으로 예총 내부에 정책위원회를 설립해 젊은 인재들로 하여금 다양한 정책제시를 하도록 할 것”이라며 “현 정부의 인사에 대해 무조건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다만 잘못했을 경우 호되게 비판을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적극 도와줄 생각이다”고 강조했다.

    화합하는 모습 보여야

    이처럼 대다수 문화예술인사는 예총과 민예총을 대립적 관계에 두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말한다. 물론 각 단체의 수장을 비롯한 일부 세력간에는 갈등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영진 보좌관처럼 예총과 민예총 두 단체에 중복 가입한 사람도 많고 두 단체 모두에 가입하지 않은 채 창작에만 몰두하는 문화예술인도 많다. 또 두 단체에 동시에 가입했지만 정작 자신의 소속에 무관심한 예술인도 많다.

    민예총 정남준 사무총장은 “생활 속에 예술을 뿌리내리는 데 기여한 단체가 민예총이라면 순수예술 진흥에 이바지해온 단체가 예총”이라며 “예총과 민예총을 적대관계로 보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최근 예총이 북한과의 문화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통일문화운동 경험은 우리 쪽이 풍부하다. 그래서 민예총이 예총 쪽에 여러 가지 도움을 주고 있다. 우리 역시 예총의 도움을 받을 때가 있다. 예술을 추구하는 양식은 다르지만 예술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동질감을 느끼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 아니겠는가.”

    예총 심포지엄에서 ‘중심을 잃어버린 우리의 문화예술단체들’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한 이강렬 세종문화회관 사업본부장은 “요즘처럼 예총과 민예총, 신구세대를 갈라놓는 발상으로는 한국 예술의 발전은 없다”고 말했다. 문예진흥원 현기영 원장 역시 “이제 예술계를 예총과 민예총으로 양분하지 말라”며 “이데올로기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예술인이 많다”고 강조했다.

    문화계를 둘러싼 모든 논란을 떠나 문화계의 권력구조가 변화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변화의 과정에는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갈등을 단순히 권력을 잡기 위한 헤게모니 다툼으로 끝낼 것인지, 아니면 질적 향상을 위한 진통으로 삼을 것인지는 문화계 인사들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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