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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개발 신호탄 과학기술위성 성공 드라마

한 차례 발사 연기, 10차례 교신 실패, 드디어 성공!

  • 글: 이충환 동아사이언스기자 cosmos@donga.com

우주개발 신호탄 과학기술위성 성공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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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더 지난 월요일에야 NORAD는 6기 위성의 정보를 모두 공개했다. 인공위성연구센터 유광선 박사는 “NORAD는 로켓에서 분리된 순서대로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에 어느 것이 우리 위성인지를 가려낼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러시아 발사업체는 6기의 위성이 세 그룹으로 나뉘어 로켓에서 분리됐는데 과학기술위성 1호는 두 번째 그룹에 속한다는 정보를 주었다. 하지만 이것도 잘못된 정보였다. 결국 S밴드를 이용한 교신 시도도 6차례나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일부 언론은 월요일 저녁에 나오는 가판용 신문(화요일자)에서 ‘과학기술위성 1호 사실상 우주 미아’라는 제목을 크게 달고 있었다. 하지만 유박사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며 “우주 미아라고 단정짓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나중에 전해들은 바로는 최후의 방법으로 6기 위성 하나하나에 대해 우리 위성인지를 확인할 계획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미 인공위성연구센터를 비롯해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항공대학교 등의 전문가들로 대책반이 구성됐다. 회의를 통해 의견교환과 기술지원이 펼쳐졌다. 발사 참관단 중 한 전문가가 우리 위성이 첫 번째 그룹에 속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여러 개의 위성이 함께 실릴 때 돈을 가장 많이 지불한 나라(이번 경우에는 영국으로 추측된다)가 로켓에서 위성의 분리 순서를 맘대로 결정하는데, 마지막 순간에 분리 순서가 바뀐 것 같다는 말이었다.

결정적으로 11차 교신 시도가 있기 1시간 반쯤 전인 밤 10시에 영국 서리대학에서 자기네 위성 3기에 대한 궤도 정보를 보내왔다. 또 3기 모두 두 번째 그룹에 속한다는 정보도 있었다. 러시아의 잘못된 정보 때문에 계속 엉뚱한 위성에게 헛손질을 해댔던 셈이다. 드디어 11차 교신 시도에서 첫 번째 그룹에 속하는 한 위성에게 지상국의 수신기를 향한 결과 우리 위성과의 교신에 성공할 수 있었다.

29일 밤 11시24분. 56시간 동안의 침묵을 깨고 인공위성연구센터 지상국의 수신모니터에 위성의 신호가 잡혔다. 한국 주도로 제작된 첫 우주관측 위성이 성공을 향한 첫 신호탄을 쏘아올리는 순간이었다. 최근 원격으로 위성의 온도와 자세, 그리고 제어 컴퓨터의 상태를 진단한 결과 다행히 위성의 건강이 양호한 것으로 전해진다.



설계, 조립, 시험을 순 우리 기술로

과학기술위성 1호는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에서 만든 우리별 1·2·3호에 이은 우리별 4호에 해당하는 소형 위성이다. 우리별 1호를 개발하던 당시 우리나라에는 인공위성을 제작할 만한 자체 기술이 없었다. 우리 젊은이들이 영국 서리대학에서 고생하며 배우고 연구한 끝에 빚어낸 작품이 바로 우리별 시리즈다.

과학기술위성 1호는 어찌 보면 우리별 시리즈의 완결판인 셈이다. 설계부터 조립, 시험에 이르기까지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 과학기술위성에는 지구관측용인 기존의 우리별 지도제작용 아리랑 위성, 방송통신용 무궁화 위성과 달리 우주를 관측할 수 있는 장비가 실려 있다. 과학기술위성 1호는 한국 주도의 첫 우주관측용 위성이기도 한 셈이다.

14년째 위성센터를 지켜온 맏형 격인 이현우 박사는 영국 서리대학에서 위성공학을 전체적으로 배우면서 우리별 1호의 개발에 동참했다. 그는 “위성은 일단 우주공간에 올라가면 지상에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위성을 설계할 때 신뢰성이 높아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며 “특히 전자회로를 설계할 때 간단하지만 신뢰성 높게 만드는 방법은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KAIST에서 위성제어 분야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위성제어 기술은 영국에서 위성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스스로 터득해나갔다. 현재는 과학기술위성 1호의 제어를 담당하고 있는데, 위성제어의 노하우는 우리별 1·2호를 제어하면서 얻은 것이다.

과학기술위성 1호의 개발은 ‘우주개발 중장기 계획’의 일환으로 1998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박사는 “우리별 3호의 후속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과학적 임무를 띤 위성을 개발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주임무를 담당할 장비인 ‘원자외선 분광기(FIMS)’와 ‘우주물리 시험장치(SPP)’는 1998년 12월 과학기술위성 1호의 탑재체로 최종 결정됐다. 1999년 5월 탑재체 개발에 한국천문연구원이 참여했다. 같은 해 7월 인공위성연구센터는 미국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학과 공동 연구 협약을 맺었다.

한국이 주도적으로 개발한 우주망원경인 ‘원자외선 분광기’는 NASA로부터도 주목을 받았다. 원자외선 분광기의 개발책임을 맡은 KAIST 물리학과 민경욱 교수는 “NASA로부터 12억원의 연구자금을 지원 받았다”고 밝혔다. 물론 원자외선 분광기 개발에 필요한 나머지 예산은 과학기술부와 천문연구원으로부터 각각 17억원씩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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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충환 동아사이언스기자 cosm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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