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호

파멸의 지름길, 불법 ‘깡’판친다

현물깡, 휴대폰깡, 옥션깡은 인생 ‘꽝’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04-05-31 13: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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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멸의 지름길, 불법 ‘깡’판친다
    포털사이트 전면에 뜬 대출광고를 클릭하고 ‘상담신청서’를 작성한 지 딱 10분 만에 상담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물건을 사기만 하면 됩니다. 고객님이 직접 대형마트에 가서 사도 되고 저희가 대신 사드릴 수도 있어요. 요즘은 가전제품을 주로 사요. 고가인 데다 되팔 곳도 많거든요. 파는 것도 저희가 알아서 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수수료는 25%입니다. 00카드라고 하셨죠? 그럼 24개월 동안 나눠서 갚을 수 있으니 큰 부담이 안 되겠네요. 지금 신청하시면 오늘 저녁에는 필요한 돈을 입금해드립니다.”

    상담원은 거리낌 없이 ‘카드깡’을 하라고 했다. 사무실이 너무 멀어서 당장은 찾아갈 수 없다고 하자 택배(퀵서비스)로 카드를 보내주면 자신들이 알아서 물건을 산 다음 다시 보내주겠다고 했다. 기자가 머뭇거리며 “카드 연체가 많다”고 하자 상담원은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물건을 사기 전에 먼저 돈을 드려요. 이 돈으로 카드 값을 갚으면 카드가 정상이 되잖아요. 그러면 저희에게 빌린 만큼 카드로 물건을 살 수 있죠. 카드연체가 있으나 없으나 원리는 똑같아요.”

    그러나 이렇게 카드깡으로 돌려 막기를 시작하면 끝은 뻔하다.



    신용카드로 물품을 구입해 되팔거나 위장가맹점을 통해 구입한 것처럼 꾸며 현금을 융통하는 행위, 즉 카드할인(소위 카드깡)이 사회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제는 사업자등록, 대부업등록까지 마친 합법적인 대출중개업체에서 불법 카드깡을 종용한다는 것. 이런 업체들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대대적인 광고를 하고 있어 평범한 주부, 학생들까지 쉽게 ‘카드깡’에 빠져들고 있다.

    “카드소지자 신용대출, 카드연체자금대출 등 말은 거창한데 실은 모두 카드깡이에요. 홈페이지도 은행처럼 멋지게 꾸며놓았더군요. 아내가 저 몰래 장인어른에게 돈을 빌려드리려고 이 사이트에서 1600만원 정도 대출을 받았어요. 그런데 아내는 그게 불법 카드깡인 줄 몰랐다는 거예요. 그냥 중소형 은행인줄 알았다는 거죠. 저도 처음에는 카드담보 대출인 줄 알았습니다.”

    부인 정모씨가 카드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는 사실을 안 장모씨는 바로 카드분실 신고를 했고 대부업체에 전화해서 빌린 돈을 갚겠다고 했다. 대부업체 담당자는 부인의 카드 한도만큼 대출해준 후 카드정보를 이용해 위장가맹점에서 분재를 구입한 것처럼 꾸며 대납금을 회수하려 했다고 털어놓았다. 아직 카드깡을 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장씨는 곧 원금 1600만원을 갚았지만 대부업체에서는 원금 외에 200만원 상당의 수수료를 내라고 요구했다.

    “아직 카드깡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수료를 낼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그러면 100만원만 내라는 거예요. 그래서 금융감독원에 신고하겠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없던 일로 하자’고 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된 줄 알았다. 하지만 부인 정씨는 나중에 은행 대출을 받으려다 그때의 실수가 평생 자신을 쫓아다닌다는 것을 알고 뒤늦은 후회를 했다. 대부업체와 거래를 했다는 기록이 정씨의 신용정보에 남아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가전제품은 현물깡 인기 품목

    최근 카드깡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국세청은 2000년부터 2003년 상반기까지 총 1만3228개의 신용카드 위장가맹점을 적발했는데, 그 수가 매해 증가하고 있다(2000년 3631개, 2001년 3033개, 2002년 4356개, 2003년 상반기 2208개). 또 경찰청에서 2001년부터 2003년까지 특별기획수사를 실시해 카드깡 혐의자 7210명을 검거했는데 2001년 879명, 2002년 1199명, 2003년 5132명으로 특히 2003년은 전년에 비해 거의 4배 이상 증가했다. 2003년에는 ‘대부업자 불법행위 특별단속’도 함께 진행했는데, 카드깡이 총 검거건수의 57%를 차지해 대부업자 상당수가 카드깡을 병행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런 증가세는 카드사들이 회원의 현금서비스 한도를 축소한 데다, 인터넷에 난립한 대출중개사이트들이 카드깡을 유도하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불법행위를 유도하는 중개사이트들이 실제로는 합법적인 대부업체들이 직접 운영하거나 동업하는 곳인 경우가 많아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한국대부소비자금융연합회 김명일 사무총장은 대부업체에서 카드를 대신 소지하지만 않는다면 “카드 연체금을 대납하거나 카드를 담보로 대출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합법적인 대부업체들은 이런 테두리 안에서 대출을 해주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일부 업체들이 카드깡을 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최근 가장 많이 나타나는 카드깡 형태는 가전제품을 이용한 ‘현물깡’이다. 기자가 연락을 취한 대다수 업체에서도 ‘가전제품을 사라’고 종용했다. 가전제품의 경우 고가인 데다 거의 원가대로 되팔 수 있기 때문. 현물깡은 직접 물품이 거래되기 때문에 ‘카드깡’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 현물거래가 없는 카드깡의 경우 여신전문금융업법에 의해 처벌이 가능하지만, 현물깡은 카드깡 업자와 공모했음이 드러나지 않는 한 처벌할 근거가 없다.

    전통적 카드깡이 인터넷 중개사이트를 통해 증가했다면 신종 ‘깡’들은 인터넷 공간을 이용해 급증하고 있다. “돈 되는 것은 전부 다 깡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온라인쇼핑몰깡, 휴대폰깡, 옥션깡, 소액결제깡, 게임아이템깡 등 온갖 기상천외한 깡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난무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컴퓨터수사부(부장검사·이창세)는 지난해 8월 1000억원대 카드깡을 해온 도소매업자 38명을 무더기로 적발했다. 주범인 카드깡 도매업자 홍모씨는 인터넷쇼핑몰 5개를 운영하면서 카드깡 소매업자 수십 명의 의뢰를 받아 허위매출을 발생시켰다. 카드결제 대행업체(PG·Payment Gateway)를 통해 결제한 후 매출액을 받아 수수료 6.5%를 공제해 소매업자들에게 넘겨주면 카드깡 소매업자들은 다시 수수료 6.5%를 뗀 금액을 카드깡 의뢰인에게 지급했다. PG업체도 결제 대행시 수수료를 챙기기 때문에 의뢰인 입장에서는 13%가 넘는 수수료를 지불한 셈이 된다(인터넷쇼핑몰의 경우 카드사와 직접 계약을 맺는 게 아니라 PG사와 계약을 맺는다. 그러면 PG사는 카드사와 계약을 맺어 온라인쇼핑몰의 결제를 대행해주며 약 3~5%의 수수료를 챙긴다).

    온라인쇼핑몰깡 또는 사이버카드깡으로 불리는 이 카드깡은 유령 인터넷쇼핑몰만 있으면 된다. 위장가맹점은 필요가 없는 것. 매출이 PG업체 명의로 발생하기 때문에 경찰 등의 추적을 피하기도 용이하다. 이창세 부장검사는 “상당수 카드깡이 위장가맹점이 아닌 위장 인터넷쇼핑몰을 통해 발생하고 있다”며 “사이버 카드깡이 늘어나면서 더욱 막대한 카드 부실이 초래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PG업체는 약 600개에 이르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만도 100여개나 된다. 각 PG업체들이 계약을 맺은 쇼핑몰이 큰 업체만 해도 7000∼8000개나 되니, 수많은 인터넷쇼핑몰 중에서 카드깡 혐의가 있는 곳을 밝혀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대표적 PG업체인 한국사이버페이먼트(KCP) 리스크관리팀 김동욱씨는 “매출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온라인쇼핑몰이 카드깡을 위한 것인지, 아닌지를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저희로서도 카드깡을 하는 쇼핑몰과는 거래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업체들은 그만큼 연체가 많기 때문에 저희에게도 그대로 연체가 됩니다. 카드사의 입장에서 연체가 많은 PG업체가 반가울 리 없죠. 그래서 일반 쇼핑몰보다 할부 비율이 월등하게 높거나 고액 결제가 많은 등 카드깡 소지가 보이는 쇼핑몰들을 집중 단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인터넷쇼핑몰을 이용한 카드깡이 다소 주춤해진 상태다. 지난 2월부터 금융감독원이 고객들의 정보보안을 위해 인터넷쇼핑몰에서 신용카드로 10만원 이상 물건을 살 때는 공인인증서 사용을 의무화했기 때문. 4월부터 9월까지는 한시적으로 공인인증서 의무화 최소 단위가 30만원이다. 이는 30만원 이상은 인터넷쇼핑몰을 통해 카드깡 하기가 힘들어졌다는 말이다.

    어제 사서 오늘 팔고

    인터넷 경매사이트를 통해 물품을 사고 판 것처럼 위장하는 이른바 ‘옥션깡’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옥션깡은 전문 카드깡 업자는 물론 급전이 필요한 개인들이 공모하는 경우도 많다.

    대학원생 우모(28)군은 노트북을 가지고 있는 친구와 경매사이트를 통한 카드깡을 시도했다.

    “친구가 경매사이트에 노트북을 올리면 제가 그것을 할부로 결제하는 거죠. 그러면 경매사이트에서 친구 계좌에 돈을 넣어주잖아요. 그것을 우선 받아놓고 매달 결제금액을 갚으면 되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꽤 절차가 까다롭더라고요. 물품을 배송한 흔적을 남겨야 해서 택배회사에 물건 하나 보내고 송장을 받아 사이트에 제출했어요. 하지만 경매사이트에 내는 수수료 외에는 따로 들어가는 비용도 없고 해서, 앞으로도 돈이 모자라면 이 방식으로 마련하려고 해요.”

    카드 한도가 남아 있는 경우 아예 스스로 물건을 산 후 환불하거나 곧바로 경매사이트에서 팔아버리기도 한다. 모 경매사이트에서 만난 대학생 김모(26)군은 최신형 노트북 2대를 한꺼번에 팔려고 내놓았다.

    “어제 샀어요. 하나는 235만원이고 다른 하나는 200만원인데, 15만원 정도 저렴하게 팔려고요. 그래도 400만원은 받을 수 있잖아요. 그걸로 방학 때 배낭여행을 갈 거예요. 그런데 이런 것도 카드깡으로 봐야 하나요? 업자에게 수수료를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제가 물건 사서 되파는 것뿐인데.”

    모 명품 사이트에서 만난 회사원 이모(23)양의 생각도 비슷했다. 이양은 140만원짜리 명품 가방을 구입한 날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바로 사이트내 경매 코너에 내놓았다. 판매가는 125만원. 이양이 이런 식으로 4월 한달 동안 판 물품만 10개, 거의 500만원대에 이른다. 이양은 “다 할부로 샀으니까 조금씩 갚아가면 된다”면서 “이런 식으로 1000만원 넘게 현금을 만드는 친구들도 있으니 나는 약과”라고 말했다. 앞에서 언급했듯 전문 카드깡 업자들이 대형마트에서 ‘현물깡’을 한 후 그 물품을 경매사이트에 내다 팔기도 한다.

    ‘깡’ 신대륙, 게임아이템 거래사이트

    최근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게임아이템깡 역시 원리는 옥션깡과 비슷하다. 게임아이템깡은 주로 아이템 거래사이트에서 이뤄진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아이템 거래’라고 입력하면 관련 사이트가 100여개 검색된다. 주로 리니지, 뮤, 디아블로 등 롤플레잉게임의 아이템이나 한게임 포커머니 등이 보통 10만∼20만 원대에서 거래된다.

    아이템 거래사이트 관계자는 “하루에 7만건 정도 등록되고 이중 10%인 7000건 정도가 거래된다”고 밝혔다. 건당 거래액을 10만원으로만 잡아도 하루에 7억원 상당의 게임 아이템들이 거래된다고 추정할 수 있고, 한 해 동안 아이템 거래사이트를 통한 거래금액은 5000억원에 이른다. 또 수백만원대의 아이템 거래도 심심치 않게 성사된다. ‘팝니다’ 코너를 클릭하면 1페이지에 4∼5건은 거래액이 10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아이템베이(www.itembay.com)의 2002년 최고 거래액은 무려 1000만원이었다.

    파멸의 지름길, 불법 ‘깡’판친다

    포털사이트 대출 관련 카페의 게시판에는 휴대폰깡, 소액결제깡 등 각종 ‘음성적’인 대출정보가 넘쳐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아이템 거래사이트들이 게임아이템깡의 온상지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역시 옥션깡처럼 공모자가 있어야 한다. 공모자가 아이템을 매물로 올려놓으면 카드깡을 하려는 사람이 그 물품을 카드로 결제한다. 그리고 공모자의 통장에 입금된 돈을 가지고 오면 된다. 게임 속 아이템이야말로 실제로 물품이 오갔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게다가 아이템 거래사이트는 수수료가 3∼5%로 무척 저렴하다. 즉 100만원짜리 아이템으로 카드깡을 하면 수수료 5만원을 뺀 95만원을 고스란히 가져올 수 있다. 개인뿐 아니라 전문적인 카드깡 업자들까지 아이템 거래사이트를 적극 이용하는 이유는 저렴한 수수료에다 100만원 이상의 고액 카드깡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촌의 한 PC방에서 만난 20대 중반의 윤모씨는 수시로 아이템 거래를 한다는 ‘뮤’ 마니아다. 그는 아이템 거래사이트에서 누가 순수한 거래자고 누가 카드깡 업자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사람들은 카드깡을 위해 아이템거래사이트를 이용하기 때문에 정작 게임에 대해선 잘 몰라요. 가끔 별로 좋지 않은 아이템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매물로 올라오고 금세 카드로 팔리는 것을 보면 ‘아, 카드깡이구나’ 싶어요. 그런데 카드깡이 이렇게 쉽다면 저도 돈이 급할 때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아이템베이 등 인기있는 거래사이트들은 아예 카드결제를 금지했다. 하지만 대개의 사이트들은 카드결제를 허용하고 있고 카드깡 업자들의 발길 또한 계속 이어지고 있다. 또 카드깡 업자들이 위장 인터넷쇼핑몰을 만들듯 위장 아이템 거래사이트를 만들어 카드깡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아이템 거래사이트가 아니더라도 사이버머니를 다루는 인터넷 게임사이트 역시 ‘깡’에 이용될 가능성이 많다.

    소액은 휴대폰깡으로

    “특히 인터넷 도박사이트들은 신용카드로 사이버머니를 충전하게 해놓았어요. 사이버머니로 배팅해서 이기면 더 많은 사이버머니를 확보하게 되고, 이를 인터넷 환전사이트에서 현금화하는 경우가 최근 급속히 늘고 있어 수사중입니다. L도박사이트 같은 경우는 아예 홈페이지에 환전사이트를 링크해놓았죠. 이는 도박죄에 해당되며 고액의 카드 사용자일 경우 처벌이 가능합니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박철수 전자상거래팀장의 이야기다.

    실제로 지난해 8월 인천지방경찰청에서는 인터넷 도박사이트를 개설, 신용카드 등으로 게임머니를 결제한 다음 이를 인터넷 환전사이트를 통해 현금화하는 수법으로 4억6300여만원을 챙긴 20대 피의자 4명을 검거하기도 했다.

    “소액코인 1분 스피드대출. 유선전화, 휴대전화, 메가패스를 사용하고 계시는 모든 분 가능. 소액코인금액의 45%를 입금해드립니다. 즉 10만원 결제시 4만5000원을 드립니다. 휴대전화 또는 유선전화번호와 성명, 주민번호를 알려주시면 바로 대출해드립니다.”

    실제로 인터넷 게임사이트에서 사이버머니를 충전하는 방법으로 신용카드 외에도 휴대전화, 유선전화, 초고속인터넷 등 다양한 결제수단이 사용되고 있다. 소액결제깡은 이 새로운 결제수단을 이용한 신종 깡. 휴대전화 결제로 이용할 수 있는 한도금액이 대부분 10만원 내외이기 때문에 금액이 작다. 주로 게임을 많이 하는 10대 청소년들이 즐겨하는 ‘깡’이다.

    한편 카드뿐 아니라 휴대전화도 ‘깡’의 수단이 되고 있다. 포털사이트 대출관련 카페의 게시판에는 ‘음성적’인 대출정보들이 넘쳐나는데, 요즘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이 바로 휴대폰 대출, 즉 휴대폰깡이다.

    “제일 편하고 확실하게 받을 수 있는 대출입니다. 1인당 4회선까지 가능한 휴대전화를 할부로 개설해서 저희 같은 사람에게 파는 거죠. 1대당 25만~35만원 정도 대출해드립니다. 대금은 12개월 무이자 분납하시면 되고요.”

    휴대전화는 한 사람 명의로 4대까지 개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를 한 대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3대를 더 개통할 수 있다. 보통 단말기가 50만원 정도 한다면 3대면 모두 150만원이다. 무이자 12개월 할부가 가능하니 월12만5000원씩 갚으면 된다. 이렇게 3대를 개통하여 넘겨주고 받는 돈은 보통 50%인 70∼80만원 정도. 휴대폰깡 업자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팩스로 신분증을 복사해서 보내주시면 은행계좌로 돈을 입금해드립니다. 믿지 못하겠다면 직접 사무실로 나오세요. 저희가 주로 거래하는 대리점이 있거든요. 거기 가서 휴대전화를 개통한 후 저희에게 넘겨주기만 하면 됩니다. 돈은 바로 드립니다.”

    이는 휴대폰깡이 휴대전화 대리점과 연계해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한 업자는 자신이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깡도 같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매입된 휴대전화들은 주로 해외로 수출된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른바 대포폰(타인명의의 휴대전화)으로 팔려 온갖 범죄에 악용되기도 한다. 최악의 경우 휴대폰깡을 한 사람이 타인이 사용한 휴대전화 요금까지 고스란히 물어야 할 수도 있다.

    서울중앙지검 컴퓨터수사부는 현재 위장 인터넷쇼핑몰을 통한 사이버카드깡에 대해 대대적인 기획수사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자체 개발한 데이터베이스 분석기법이라는 수사방법을 사용하는데, 이는 PG업체가 사용중인 데이터베이스를 압수·분석해 이들과 거래한 위장 쇼핑몰을 찾아내는 것. 현재 수사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다.

    이창세 부장검사는 “이번 수사를 하다 보니 사이버카드깡의 확산으로 막대한 규모의 카드부실이 초래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카드깡이야말로 신용불량자를 양산하고 카드부실을 초래한 주범”이라고 강조했다.

    금융감독원 비은행감독국 비제도금융조사팀 조성목 팀장 역시 “급전이 필요하지만 정상적인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카드깡을 의뢰한다. 따라서 제대로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한번 카드깡을 이용하면 대부분 또다시 카드깡을 통해 돌려막기를 하다가 결국 연체로 이어져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만다”고 밝혔다.

    실제로 A카드사에서는 2002년 1월 한달 동안 카드깡을 한 회원 1만6926명을 분석한 결과 2004년 1월 현재 87.3%(1만4769명)가 대손상각, 채권매각, 퇴출, 연체 등으로 부실화되었고, 8.4%(1422명)는 한도가 하향되는 등 부실이 진행중이며 정상 회원은 4.3%(735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인터넷 대출중개사이트에 들어가 별다른 생각 없이 상담신청서에 개인정보를 적었을 경우 평생 자신의 신용도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 있다. 다음은 조성목 팀장의 설명이다.

    “은행권은 대부업체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열람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데이터베이스에 자신의 개인정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개인의 신용정보에 대부업체와 거래한 흔적으로 남는다는 거죠. 실제 대출을 받지 않았어도 개인정보가 있기 때문에 대부업체로부터 대출을 받은 걸로 간주됩니다. 또 그런 사이트에 있는 개인신용정보조회를 이용하는 것도 좋지 않아요. 그런 신용정보는 대부업체들이 조회할 수 있는데, 대부업체가 조회한 것도 개인신용정보에 대부업체와 접촉한 걸로 남기 때문이죠.”

    우리은행 모 관계자는 “은행권에서 대출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린 게 아니겠냐”며 “개인의 신용정보에 대부업체와 거래한 내용이 있으면 암암리에 불이익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고 밝혔다.

    또 대출중개사이트들은 고객이 개인정보를 입력하면 이 정보를 다른 카드깡 업자에게 건당 2∼4만원선에 넘긴다. 하지만 상담신청서를 쓸 때 ‘개인정보의 제공 및 활용동의서’에 체크해야만 승인이 되기 때문에 고객정보를 파는 것에 대해 제재를 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한번 적어낸 자신의 신용정보가 수많은 대부업자들의 열람자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1000만원 빚이 4300만원으로

    카드깡은 카드사 부실의 주범이기도 한 만큼 카드사 차원에서 나름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LG카드는 지난 2월부터 ‘실시간 현금융통 검색시스템’을 운영하면서 현금융통(카드깡) 회원 1만3454명을 적발하고 약 349억원의 부실을 예방하는 성과를 거뒀다. 실시간 현금융통 검색시스템은 회원과 가맹점에 대한 체계적인 데이터 분석을 실시해 ‘요주의’를 분류하고, 이들에 대한 집중 모니터링을 하면서 현금융통의 기미가 보이면 실사, 적발하는 시스템이다. 적발 회원 및 가맹점은 은행연합회에 금융질서 문란자로 등록돼 최장 12년간 신용거래시 불이익을 받게 된다. 또 카드사들이 연체율 관리시스템을 운영하는 등 PG 가맹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며 사이버카드깡에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카드깡을 하는 사람들의 태도다. 취재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 상당수는 “내 카드 가지고 물건을 사서 되팔든 산 것처럼 꾸미든 무슨 상관이냐”는 입장을 보였다. 이들에게 “불법이니 하면 안된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일반 대출이 불가능한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 ‘깡’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30%에 육박하는 고리 수수료가 결국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취재 중 만난한 30대 여성의 이야기가 귓속을 맴돈다.

    “카드깡으로 빌린 1000만원을 갚기 위해 카드깡 돌려막기를 하다 보니 4300만원 빚더미에 앉고 말았어요. 빚 갚는 걸 포기했어요. 이젠 신용불량자가 될 일만 남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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