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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리포트

급증하는 화학물질 중독사고

폐 뚫고 간 찢는 10만 흉기, 온 가족을 노린다

  • 글: 강지남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layra@donga.com

급증하는 화학물질 중독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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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이나 자해 의도로 화학물질을 음독하는 성인과 달리 어린이의 경우 100% 사고로 인한 중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일본의 중독정보센터에 신고된 전체 오음(誤飮)사고 중 5세 이하 어린이 비율이 75%에 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어린이 화학물질 중독사고는 주로 가정에서 발생하는데, 서울 아산병원 임경수 교수에 따르면 2003년 국내에서 발생한 57건의 어린이 중독사고 중 가정에서 일어난 사고가 54건으로 거의 전부를 차지했다.

어은경 교수는 “알약, 스프레이, 튜브 등 다양한 바퀴벌레약을 집어먹고 실려오는 어린이가 가장 많다”며 “몇 가지 제품은 특히 위험하기 때문에 부모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한다.

가정용 화학제품 중 가장 위험한 것은 방향족 탄화수소가 포함된 석유제품과 세정제 등. 강한 산성이나 알칼리성을 띠는 이런 제품들은 마시는 순간 위나 식도를 부식시켜 손도 못댄 채 심각한 고통을 겪다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어 교수는 “세정제를 물에 섞어 약수통에 넣어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물로 오인하고 마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간암 증세 일으키는 두통약

통증을 다스리기 위해 먹는 의약품 또한 어린이들에게 심각한 위해를 끼칠 수 있다. 임신 여성들이 흔히 먹는 철분제제는 보통 초콜릿 모양의 알약으로 출시되는데, 이 때문에 어린이들이 한 움큼씩 집어먹는 사고가 빈발한다. 철분 성분은 위장에서 부식될 수 있고, 심장에 과부하를 일으켜 과다복용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



또 아스피린은 대사를 빨리 진행시켜 열이 나고 경련을 일으키다 역시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타이레놀이나 게보린, 펜잘 등 두통약에 들어 있는 아세트아미노펜은 간 독성을 유발, 간성 혼수에 빠지게 한다. 어 교수는 “두통약에 중독된 어린이는 간암 말기 환자의 증세를 보이다 사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독극물관리센터에 따르면 어린이의 성장단계별로 중독 원인물질이 다르다. 기어다니는 단계에서는 마루나 침실바닥, 부엌 싱크대의 아래 쪽에 보관하는 제품으로 인해 중독사고가 자주 발생한다. 막 걷기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뚜껑을 닫지 않거나 탁자에 놓인 제품, 기어오르기 시작하면 약장 속에 있는 약품 등이 중독 원인이 된다. 저녁 어스름 부모가 함께 있는 가정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전체 사고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물론 화학물질 중독사고가 어린이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성인의 화학물질 중독은 대개 자살이나 자해 등 의도적인 경우가 많지만, 실수나 무지, 착오에 의해, 혹은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화학물질에 중독되는 경우도 있다. 어은경 교수는 “종종 주유소 직원들이 휘발유를 통에 옮겨 담기 위해 입으로 호스를 빨다가 휘발유를 마시고 병원을 찾는다”고 전했다. 인하대병원 약물중독센터장 노형근 교수는 “건설공사 현장이나 공장에서 일하다 휘발성 연기를 흡입하는 사고, 어선에서 냉동에 쓰이는 냉각매가 유출되어 중독되는 사고가 종종 발생한다”면서 “약물중독센터를 찾는 성인 환자 열 명 중 한 명은 사고로 인한 중독환자”라고 말했다.

식탁에 오른 강력 세척제

위해성이 큰 화학물질에 의한 중독사고는 심각한 후유증을 낳는다. 정윤미(가명)씨가 바로 그러한 경우다. 올해 초 정씨는 외식을 하러 한 식당에 갔다. 식당 종업원은 물을 가져다준다는 것이 그만 착오로 세척제를 희석한 물을 가져다줬다. 이 세척제는 식당에서 석쇠의 그을음을 닦는 데 쓰이는 강알칼리성 화학제품. 물로 착각하고 세척제를 마신 정씨는 식도와 위가 부식되어 한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화상으로 치면 2도 화상에 해당하는 중상이었다. 정씨는 입원한 동안 식도와 위가 손상된 탓에 전혀 식사를 하지 못한 채 영양주사를 맞았다. 앞으로 식도에 협착(狹窄) 증세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데, 이 경우 식도의 통로를 넓혀주는 큰 수술을 받아야 한다.

3~4년 전에는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가 음료수병 안에 든 강산성의 화학물질을 한 모금 마신 40대 남성이 3~4주 만에 결국 사망한 일도 있었다.

노형근 교수는 “장기 내부의 점막은 매우 얇기 때문에 손상되기 쉽다”면서 “강한 산성이나 알칼리성을 띠는 화학물질이 닿기만 해도 색이 변하면서 조직이 죽고, 다량 출혈을 일으킨다. 이로 인해 2차 세균감염이 일어나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두통약이나 수면제 등 의약품을 습관적으로 과다 복용하는 것도 중독사고를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다. 의사들은 체중 50kg의 여성이 두통약에 들어있는 아세트아미노펜을 7g 정도 섭취했을 경우 간 독성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시중에 판매하는 두통약 한 알에 든 아세트아미노펜은 보통 300~500mg. 즉, 두통약 10~20알을 먹으면 간 독성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노 교수는 “머리 아프다며 한번에 서너 알씩 한 시간 간격으로 복용하는 만성 두통환자들이 있는데, 잘못하다가는 반나절 만에 간 독성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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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지남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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