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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말기 ‘일본패망운동’ 벌인 ‘시온산제국’ 스토리

“우리가 이겨냈으므로 ‘제국’은 이미 완성됐다”

  • 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일제 말기 ‘일본패망운동’ 벌인 ‘시온산제국’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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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말기 ‘일본패망운동’ 벌인 ‘시온산제국’ 스토리

시온산제국의 마지막 생존자 정운훈 노인.

‘산기도에서 돌아온 박동기 전도사는 강한 서북풍이 불어옴을 보았다. 이윽고 하늘이 뭉텅 열리고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다. … 십자가의 왼편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와 의성을 향한다. 연이어 십자가 우편에서 바람이 불어나와 대구 쪽으로 향한다. … 다시 십자가 중앙으로부터 강한 바람이 박 전도사에게 불어와 그의 몸 속으로 들어간다. 박전도사는 형언하지 못할 기쁨을 얻는 동시에 휴거하기 시작한다.…’ (‘교회사’ 중 ‘시온교회의 시작’ 일부)

1940년 11월29일 새벽, 경북 청송군 현서면의 한 교회 사택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이른바 ‘십자가의 영광’ 사건이 시온산제국이 만들어지는 계기였다. 포항 등 경북 일대의 교회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해야 한다”는 설교를 하다 일본 경찰의 추적을 피해 산골 깊숙이 있는 고향마을에 피난해 있던 박동기 전도사는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새벽기도운동’을 펼치기 시작한다. 경북 각지를 돌며 동지들을 모으던 그의 설교에 정노인과 형 정운권 씨가 감동해 동참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이들에게 우상숭배인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본은 ‘적그리스도의 제국’이었으며, 강압에 못 이겨 신사참배를 인정한 다른 교회들은 모두 ‘죄에 빠진 패배자’들이었다. 오로지 자신들만이 조선에서 유일한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확신이었다. 이 시기에 이르러 더욱 가혹해진 일제의 탄압으로 신사참배를 거부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감옥에서 죽고, 다른 대부분의 교회들이 신사참배를 인정하게 된 것은 시온산 운동이 사람들을 모으고 힘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근거였다. 기성교단의 변절에 분노한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의 모임은 오래갈 수 없었다. 의성과 경산 등지에서 이루어지던 모임에 대해 일본 경찰의 추적이 계속되고, 몸담고 있던 교회들이 속속 폐쇄되어가자 이들은 박 전도사의 고향이자 ‘십자가 영광’ 사건이 있었던 청송군 현서면 수락마을로 숨어든다. 이곳에서 일본의 탄압과 기성교단의 배신에 관한 기록을 남기던 이들은 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시온산제국을 건국하라는 명령이 내렸다”는 박동기 전도사의 말에 따라 대일항전을 위한 정치조직을 만들기로 한다.

1944년 4월25일, 수락마을의 교회에 100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시온산제국’의 건국을 선포하는 자리였다. 연호는 도광(道光),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의 수도는 경주. 국기와 국가도 별도로 만들어 공포했다. 전권총리와 내무대신, 육·해군사령관, 일본총독 등 총 9명의 내각은 물론, 전국을 12지파로 나누어 도지사와 군수, 면장에 이르기까지 수백 명의 지방관리도 임명했다. 물론 모두 시온산교회 신자들이었다.



정노인과 부인 곽정자(77)씨가 결혼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정신대에 끌려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결혼을 결심했다는 곽씨에게 이후의 삶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당시 시온산제국의 지도부는 수락마을 뒷산에 숨어 연합국의 승리를 준비했다. 열일곱의 꽃다운 나이였던 곽씨는 결혼 직후부터 이들과 함께 산골짜기에 숨어서 밥을 짓고 빨래를 해야 했다.

이들에게는 일본이 ‘적그리스도의 나라’인 만큼 그들과 싸우는 연합군은 ‘하나님의 군대’였고 태평양전쟁은 선과 악의 최후 결전이라는 ‘아마겟돈’임에 틀림없었다. 사이판, 괌, 오키나와에서 일본군이 패배할 때마다 이들은 수락마을에 모여 기뻐하는 예배를 드리고 노래를 지어 불렀다. 지도부 구성원들은 수락마을 뒷산에 마련된 산막에서 일본의 폭정을 기록하고 성경을 해석하는 내용의 책과 연합군이 상륙할 때 들고 나갈 수천 개의 ‘십자가기(旗)’도 만들었다. 이름하여 ‘성업(聖業)’이었다.

투옥 그리고 해방

‘5월21일 새벽 밥을 지어먹고 성업을 계속했다. 문득 저 아래를 내려다보니 몇 사람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윽고 가까이 온 그들은 알지 못하는 이들이었는데, 대뜸 우리에게 수갑을 채우고 방안에 들어가 성업서류를 챙기기 시작했다. 일본 경찰이었다. … 금호강 아양교를 건너 도청에 있는 고등과 형사실로 끌려갔다. 모두 유치장내 다른 방에 수감되었다. … 육중한 문을 닫더니 열쇠로 잠가버린다. 마귀를 무저갱에 가두어버리는 세상을 고대하던 우리가 그들 손에 의하여 지옥 같은 옥에 도리어 갇히게 된 것이었다.’ (‘교회사’ 중 ‘투옥’ 일부)

“들림이 있을 것이니 모든 교인들은 흰옷을 입고 금식하라”는 박 전도사의 지시에 따라 모든 교인이 수락마을에 모였던 5월20일, 그러나 기대했던 휴거(携去)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이튿날 아침 들이닥친 일본경찰에 의해 33명의 지도부가 경북 일대의 각 유치장에 감금되어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일제의 패망과 연합국의 승리를 예언한 수십 권 분량의 기록은 꼼짝없는 증거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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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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