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호

졸속 ‘대학평가’ 현장

빈 강의실 문패 바꿔 달기, 대상 학과 예산 몰아주기, 평가 끝나면 ‘화장’ 지우고 ‘원위치’

  • 글: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5-03-23 14: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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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속 ‘대학평가’ 현장
    ‘대교협 대학순위 발표, 일파만파.’‘대교협, 대학평가순위 최초 공개.’‘대학평가 결과 의미·파장… 名門 지도 바뀌나.’

    지난 2월22일 조간신문 1면을 장식한 기사 제목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가 발표한 ‘2004년도 대학평가’ 결과가 공개되면서 뜨거운 논쟁에 휩싸인 것. 지금까지 ‘최우수’ ‘우수’ ‘인정’ ‘개선요망’ 등으로만 발표돼온 대교협의 평가결과가 올해 처음으로 순위까지 공개되면서 구조조정을 앞둔 대학가엔 싸늘한 칼바람이 불었다.

    이번 평가에서 이른바 ‘명문대’의 학과 순위가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반면, 명문대에 끼이지 못하던 여러 대학들이 학과 순위에서 서울대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름뿐인 부실 명문대 명문학과는 지고, 탄탄한 지방 사립대 명문학과가 새롭게 도약할 것’이라는 낙관적 해석도 흘러나왔다.

    그런데 대교협이 공개한 평가순위를 놓고 석연치 않은 뒷말이 나돈다. 무엇보다 평가위원회에 참여한 교수들의 ‘입맛대로’ 평가가 도마에 올랐다. 외형적 지표에만 치중하는 양(量)적 평가기준 역시 평가의 신뢰도 논란을 증폭시켰다. 평가철이 되면 자료준비로 몸살을 앓는 대학 관계자들은 “사활을 걸고 평가 준비에 매달린 대학만이 높은 점수를 받는 시스템”이라며 ‘평가 무용론’까지 제기하는 형편이다.

    같은 조에서 나온 1, 2 ,3등



    1982년부터 시작된 대교협의 대학평가는 대학 교육의 수월성 제고, 대학 경영의 효율성 제고, 대학의 책무성 향상 등을 목적으로 도입됐다. 평가는 크게 대학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대학종합평가와 학문분야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분야 평가로 나뉜다.

    대학종합평가는 5년 주기로 매년 일정수의 대학을 평가하는 것. 대학재정, 발전전략, 교육·사회봉사 등 평가영역의 점수를 합산해 100점 만점으로 환산, 95점 이상이면 ‘최우수 대학’으로 인정받는다. 또 90점 이상 95점 미만은 ‘우수대학’, 70점에서 90점 미만을 받으면 ‘인정대학’으로 평가받는다.

    1994년부터 2000년까지 7년간 1주기 대학종합평가가 완료됐고, 2001년부터 5년 동안 2주기 대학종합평가가 진행되고 있다. 국내 대학들이 5년 중 한 해를 정해 대교협의 실사를 받는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대학종합평가 순위는 지난해 평가에 응했던 41개 대학의 평가 결과다. 주요 대학으로 꼽히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이 모두 종합평가 대상에서 빠져 전국 순위로 보기는 어렵다.

    올해 논란의 핵심이 된 것은 대교협의 학문분야 평가. 학문분야 평가는 3회 이상 졸업생을 배출한 전체 대학 학과 중 신청 대학을 대상으로 이뤄졌는데, 소위 명문대로 꼽히는 대학들이 대거 참여했다. 교육목표 및 과정, 학생·교육 성과, 교수, 교육여건 등 6가지 항목이 평가대상이며 항목별 가중치가 다르게 적용됐다. 올해는 기계공학 81개대, 생명공학·생물 75개대, 신문방송·광고홍보 58개대 등 3개 분야에 거쳐 116개대에 대한 평가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그런데 전체 대학을 한 줄로 세우는 결과가 최초로 공개되면서 숱한 의혹이 쏟아져 나왔다.

    ‘신동아’가 입수한 ‘2004 기계공학분야 평가 자료’(표 1)는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평가위원으로 위촉된 수십명의 교수들이 조를 이뤄 자신에게 할당된 학교를 평가하는데, 올해 기계공학 분야에서 1∼3위를 차지한 대학이 모두 한 평가조에서 나온 것. 어떤 평가조를 만나느냐에 따라 대학 순위가 결정된다는 의혹을 피할 수 없게 된 셈이다.

    기계공학부의 경우 4명의 교수가 한 조로, 9개 평가조가 평균 9개 대학씩 맡아 평가했다. 조 편성은 무작위로 이뤄졌다. 그런데 같은 조에서 평가한 대학들의 순위가 몰려 있는 양상을 띤다. 4위와 9위를 기록한 대학 역시 같은 조의 평가를 받았고, 5, 6위 및 10위의 대학도 한 평가조에서 나왔다. 반면 다른 4개조가 평가한 대학 중에는 11위 안에 든 곳이 하나도 없었다. 15위를 기록한 서울대 역시 이들 4개조 중 1개조의 평가를 받았다. 평가단별로 평가결과가 너무 크게 차이 나면서 각 대학 관계자들의 볼멘소리는 더욱 커졌다.



    이번 평가 결과에 대해 안타까움을 가장 많이 토로하는 곳은 서울대다.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김종원 교수는 “2004년 12월 교육인적자원부가 발표한 BK21 기계사업단 평가에서 우리는 포항공대와 KAIST를 제치고 기계분야 최우수사업단으로 선정돼 7억70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그런데 2개월 만에 81개 대학 중 15위로 추락했다니 의아할 지경”이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대교협 평가지원부의 한 관계자는 평가단의 주관적 편차가 심하다는 지적에 대해 “공교롭게도 한 평가조가 우수한 대학들의 심사를 동시에 맡아 불필요한 오해를 산 것 같다”며 “평가위원들은 동일한 기준을 갖고 평가에 임하므로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는 적다”고 해명했다.

    ‘定性 평가’는 ‘精誠’의 문제

    대교협의 평가 신뢰성 논란은 비단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2003년엔 대교협의 학문분야 평가가 해당분야 교수들의 반발로 무산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평가를 받기로 돼 있던 경제학·물리학·문헌정보학과 교수들이 “현행 평가는 부정확, 불공정하고 비효율적, 비민주적으로 진행돼 대학교육의 자율성과 학문 발전을 저해한다”며 평가의 무기한 연기를 요구했던 것.

    당시 평가대상 분야 교수들은 학문별로 평가개선위원회를 구성, 대교협 평가 편람의 개혁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결국 평가위원회와 대교협의 줄다리기 끝에 2003년 학문분야 평가는 졸속으로 이뤄졌다. “평가에 배당된 예산을 써야 한다”는 대교협의 설득 끝에, 각 대학은 평가 문항을 40여개에서 10~19개로 대폭 줄이고 결과도 일부 영역은 상위 10% 또는 30%를 순위 없이 발표하거나 적합·부적합만 밝히기로 하고 두 달 만에 평가를 끝냈다. 평가기준과 방법에 대한 논란이 일었으나 이듬해 평가도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진행됐다.

    충북대 물리학과 정진수 교수는 당시 평가개선위원회를 이끌며 대교협에 평가 개혁을 요구한 인물이다. 2003년 초 참가했던 대교협 주최 평가 워크숍은 그로 하여금 대학평가를 더욱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대교협은 매년 그해의 평가방식을 설명하는 1박2일 연수회를 엽니다. 지난해 평가위원과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한 학교의 담당자들이, 올해 평가를 받게 될 교수들을 상대로 ‘점수 잘 받기 노하우’를 전수하는 자리지요.

    그런데 연수회에서 듣는 이야기가 참 가관입니다. ‘평가단이 하루에 두 학교를 심사하니 피곤하지 않게 비타민 C가 풍부한 과일을 갖다놓아라’ ‘담배 안 피는 심사위원들을 위해 공기청정기를 준비해둬라’… 뭐 이런 것들입니다. 합리적 대학 평가를 고민하는 자리에서 ‘어떻게 평가위원들에게 잘 보일까’를 논의하고 있으니 문제 아닙니까.”

    그는 현실을 왜곡하는 불합리한 평가기준에 대해 더 큰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학문분야 평가는 평가 대상자가 교육목표와 교과과정에 대해 서술하는 정성(定性)평가와 교내 시설 및 수업시수 등 외형적 지표를 측정하는 정량(定量)평가로 나뉘는데, “정성평가의 경우 시간을 투자하면 만점을 그냥 챙길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0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현행 제도가 ‘자료 준비도’만을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물리학과 평가를 준비할 땐데, 처음에 있던 자료를 그대로 산정했더니 결과가 기대 수준에 전혀 못 미치더군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학교가 점수를 높일 항목들에 재정도 긴급 투입하고, 없던 자료도 뚝딱 만들었어요. 금방 A급 수준이 됐지요. ‘투자가 늘었으니 좋아진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평가가 끝나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10여년 전 우수한 평가를 받은 대학이나 미흡한 평가를 받은 대학 모두 평가 후 달라진 건 하나도 없죠.”

    경남지역 사립대의 L교수는 “몇 해 전 ‘전 학과에 e러닝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교육목표를 제시해 대학종합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아직 e러닝 시스템은 구경도 못했다”면서 “제대로 된 정성평가가 이뤄지려면 그 대학이 내세운 교육목표가 실현되는지부터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밤새워 작성한 3년치 상담카드

    ‘교육의 질(質) 제고’를 목표로 한 대학평가는 오히려 학습 분위기를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그해 평가대상 학문분야가 공시되면 해당학과 교수들과 대학원생들은 ‘고난의 행군’을 시작한다. 좀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한 전략회의와 광범위한 자료수집에 들어가는 것이다. 재정 운용이 자유롭지 못한 국립대에 비해 사립대의 평가 준비 열풍은 과열돼 있다.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 공대 대학원생 김광호(가명·29)씨는 ‘평가’란 말만 들어도 노이로제가 생길 지경이다. 평가 준비는 회의와 잡무의 연속이었고, 교수들은 강의 준비와 연구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수업은 뒷전인 채 수개월간 자료조사에 매달리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대학원생은 평가 준비할 때 ‘밥’이에요. 방향을 설정하는 거야 교수들의 임무지만 모든 기초자료 준비는 대학원생들의 몫이죠. 대학평가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학생마다 할당량이 정해져요. 며칠간 밤새우는 건 기본이죠.

    졸속 ‘대학평가’ 현장

    이현청 대교협 사무총장은 “1주기 대학평가에서 수집한 자료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평가를 준비하는 대학의 수고를 덜겠다”고 밝혔다.

    먼저 평가항목에서 요구하는 기초자료 조사를 마치면, 그것을 실제 평가에서 요구하는 점수와 비교해봅니다. 그 후엔 다시 점수를 올릴 수 있는 항목의 자료를 만들게 되죠. 결정이야 교수들이 하지만 실무는 대학원생들이 담당해요. 평가 준비에 관련된 학생들은 공부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다른 학과도 비슷하게 겪는 일이라 그런가 보다 했죠.”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대학들은 편법 동원도 서슴지 않는다. 이렇게 급조한 자료로 대학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김광호씨는 학교의 기민한 준비에 혀를 내둘렀다.

    “한 실험실의 문패가 다섯 번이나 바뀌는 걸 봤어요. 해마다 전자공학과 실험실, 토목공학과 실습실 하는 식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거든요. ‘학생 복지시설 항목’ 평가 점수를 높이기 위해 빈 공간을 도서관, 상담실 등으로 명칭만 갈아치우기도 했고요. 학생 상담률에 대한 평가 항목도 있는데, 없던 상담기록을 만들기 위해 대학원생들이 동원돼 3년치 평가카드를 작성했습니다. 작문 실력, 훌륭히 발휘했지요.”

    외형만 중시하는 형식적인 평가는 대학들이 쓸데없는 포장에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다. 대교협 평가 실사단의 방문을 앞두고, 일부 대학에선 화단 가꾸기는 물론 평가단 환영 플래카드까지 내걸리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40대 시간강사 H씨(여)는 수도권 한 사립대에서 경험한 씁쓸한 일화를 들려줬다.

    “하루는 캠퍼스 길목이 온통 알록달록한 꽃들로 치장돼 있었어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강사 휴게실에 난데없이 인터넷이 가능한 컴퓨터와 프린터가 한 대씩 놓였죠. ‘이 학교가 드디어 강사의 연구환경 개선에 나섰다’며 좋아했는데 다음날 학교에 와보니 이 모든 시설이 사라졌어요. 나중에 알았죠. 그날이 대학평가하는 날이었다는 것을.”

    전임강사 보유율을 놓고도 대학은 나름의 편법을 구사한다. 실제 처우는 시간강사와 다름없는 겸임교수나 초빙교수가 9시간 강의를 진행할 경우 전임교수 1인으로 환산하는 기준을 악용하는 것.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 임성윤 부위원장(성균관대 강사·서양사학)은 “전임강사 보유율에 겸임교수나 초빙교수의 수업시수가 반영되기 시작하면서 대학들이 시간강사를 해당학과의 초빙교수로 둔갑시키거나 초빙·겸임 교수를 늘리며 시간강사 내쫓기에 골몰한다”고 폭로했다. 그는 똑같은 사람을 강사에서 겸임교수로 돌린다고 교육의 질이 갑자기 좋아지는 것이 아니건만, 평가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현실을 납득할 수 없다.

    그해 학문평가 분야가 정해지면 해당학과에 예산을 몰아주는 일은 이제 연례행사가 돼버렸다. 보통 해당학과는 평가기간이 지난 후 3년 정도는 더 적은 예산을 배정받게 된다. 이렇듯 임기응변과 편법을 동원해 만든 화려한 자료는 대학순위를 높이는 일등공신이 된다.

    양적 평가의 한계

    대교협의 학문분야 평가 기준은 외형적 지표에 치중돼 실제 교육의 질을 측정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대학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교육과 연구. 그러나 연구성과를 보여주는 교수의 논문점수가 전체 평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올해 기계공학부와 생명공학부의 경우 7%에 불과했다. 그것도 논문의 질이 아닌 발표 편수로만 측정됐다. 학생들의 실력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 교육성과를 보여주는 취업률 역시 5~7%밖에 반영되지 않았다.

    대교협의 평가기준이 대학 순위를 매기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애초 현행 평가 항목은 대학이 고급 교육기관으로서 최소한의 조건을 만족시키는지 인증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됐다. 그러다 보니 항목별 최고점 기준도 매우 낮게 설정돼 있다.

    예를 들어 현행 평가에서 총 100점 만점 가운데 연구능력을 나타내는 교수의 논문 발표 실적은 3점에 불과하다. 더구나 기본점수가 0.6점이나 되고 논문의 질은 고려하지 않은 채 발표 편수만 반영해 많은 대학이 만점인 3점을 받았다. 순위를 발표하기 위한 평가라면, 대학 교육과 연구의 질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기준을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서울대 공대 한민구 학장은 “현행 대교협 평가는 ‘적합·부적합(pass or fail)’을 가르는 최소한의 기준으로 대학을 ‘하향 평준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며 “양적 지표에 기댄 평가는 결국 현실을 왜곡하고 대학 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 주장했다.

    획일적인 대학평가 잣대는 자칫 교육의 자율성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 규모와 성격이 다른 모든 학교를 하나의 기준으로 줄 세우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학문분야 평가는 각 학문의 특성을 무시한 채 모든 학문분야에 같은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인하대 교육학과 이기우 교수는 “대교협 평가는 획일적 평가기준을 통해 정부의 입맛대로 대학의 교육과정, 운영방식, 시설을 통일할 위험성이 있다. 미국처럼 연구중심대학, 종합대학, 전문대학 등 분야를 세분해 특성화한 평가를 진행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서울 유명 사립대 기획처의 한 관계자는 “대학평가 기준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대교협 2주기 평가의 목표가 해외 유명 대학 수준을 표방하는 것이라면 국제적 논문이나 국제학술대회 발표 논문만을 평가 기준으로 삼거나, 적어도 국제적 연구실적의 배점 가중치를 국내 논문 발표실적보다 더 높게 부여해야 한다. 또 단순히 그 학과에서 발행하는 국제적 논문의 수량을 평가할 것이 아니라, 대학의 규모 차이를 감안해 ‘교수 1인이 발표한 국제적 논문의 수’를 평가지표로 삼아야 한다.”

    TV 광고 많이 하면 우수 대학?

    수십여개에 이르는 평가 항목 중 논란이 이는 것도 있다. 지난해 대교협 신문방송·광고홍보 분야의 평가위원으로 참가한 모 교수는 몇 가지 납득되지 않는 평가 항목으로 고민했다고 말했다.

    “무리하게 계량화된 평가 항목들이 과연 평가의 신뢰도를 얼마나 보장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습니다. 예를 들어 ‘해당학과의 학생 동아리 수가 몇 개인가’라는 항목이 있는데, 과연 동아리 수가 학교의 우수성을 측정하는 중요한 잣대일까요. 더구나 학과에 학생이 적을수록 동아리 수는 적게 마련 아닙니까. 정원 감축을 요구받고 있는 국립대에는 더욱 불리한 조항이지요.

    ‘우수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는가’라는 평가 항목도 있는데, 평가 준거가 방송·신문을 통한 광고나 유인물이더군요. 하지만 TV에 광고를 많이 한다고 해서 좋은 대학이라 할 수 있습니까? 이런 조항들은 없애거나 평가 준거를 달리 하자고 건의해봤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서울대측이 특히 불만을 갖는 항목은 ‘전임교수의 출신대학별 구성이 합리적인가’라는 질문. 비(非)서울대 출신 교수가 거의 없는 서울대로선 꼴찌를 도맡아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서울대측은 “교수의 출신대학별 구성비율이 교수 임용절차가 객관적이고 공정한지를 보여주는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며 “능력과 성과 위주의 선발 결과라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항변한다.

    대교협이 구성하는 평가단의 신뢰성 문제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대교협은 평가의 잡음을 줄이기 위해 국립대와 사립대, 서울과 지방대의 교수들을 고루 분배해 선발해왔다. 교수의 평가경력이나 전문성은 차후로 고려되는 사항이다. ‘후한 평가자’와 ‘박한 평가자’ 간의 점수 간극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평가철이 되면 평가위원에 대한 해당 학문분야 교수들의 ‘줄 대기’ 경쟁도 치열해진다. 수도권 사립대의 Y교수(교육학)는 “이번 학문평가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A씨를 소개해달라”는 청탁을 종종 받는다. 평가 전문가로 활동한 Y교수가 다른 학과 교수들과도 친분을 꽤 쌓아온 덕분이다. Y교수는 “피평가자들이 심사위원에게 뇌물을 건네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평가단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최고급 차를 동원하고 고급 음식점에서 식사를 대접하는 것은 흔한 풍경”이라며 씁쓸해했다.

    대교협은 이번에 공개한 대학평가 결과가 고3 수험생의 학과 선택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예측했다. 대학보다는 학과 중심의 진학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 발표한 학문분야별 대학평가가 수험생의 선택에 큰 도움을 줄 거라는 것. 대교협은 기업도 신입사원 선발 등에 개인 자료와 함께 대학평가 자료를 사용함으로써 회사가 필요한 인재를 더욱 수월하게 채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대성학원 이영덕 평가실장은 “대교협의 희망사항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의예과에 진학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명문대로 손꼽는 학교들이 차례로 떠오르죠? 수험생들 역시 얼마 전 발표된 대교협의 평가순위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요. 또 학생 선발 방법 자체가 학교마다 워낙 다양해 이제 학과를 한 줄로 줄 세우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고요.

    그러나 평가순위뿐 아니라 대학의 실상을 드러낼 등록률, 취업률 같은 정보들이 낱낱이 공개되면 대교협이 발표한 평가순위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학생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의 변화에 주목해야겠지요.”

    대교협의 평가순위가 더 널리 인정받고 쓰이기 위해서는 개혁이 시급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인식이다. 특히 교육의 질 위주 평가로 전환하는 것이 급선무다. 외국의 대학평가 방식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미국의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가 매년 시행하는 미국 대학 평가에서는 박사과정을 운영하는 대학과 학부만 있는 대학을 분야별로 구분해 평가한다. 평가 내용에서도 대학교수들의 동료집단평가(peer assessment)를 가장 중시해서 전체의 25%를 반영한다. 또 기업체 인사담당자들의 견해, 졸업생의 평균 초봉, 학생들의 입학성적 등 대교협 평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질적 평가지표들을 훨씬 중시한다. 취업률 역시 중요한 평가지표로 채택되는데, 그중에서도 전공과의 연관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평가한다.

    평판도 중시하는 ‘타임’지 평가

    영국 ‘타임’지는 매년 대학의 학과장을 대상으로 간단한 설문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점수화하고 학문영역별로 연구와 교육 부분을 구분해 전국 대학의 학과순위를 발표한다. 설문의 주요 내용으로는 ‘당신의 전공분야에서 가장 ‘연구의 양과 질’이 우수한 대학 5개를 순서대로 기입하라’ ‘당신의 전공분야에서 ‘학부 교육의 질’이 우수한 대학 5개를 순서대로 기입하라’ ‘과거 3년간 당신의 학과는 외부로부터 연구비를 얼마나 받았는가’ 같은 외부 평판도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평가지표로 적극 활용한다. 소모적 작업을 요구하는 항목은 거의 없다.

    평가 주체가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미국·유럽 등지의 대학평가가 정부로부터 독립된 민간기구를 주축으로 이뤄지는 반면, 한국의 대학평가는 교육부 산하 단체로 각 대학의 총장을 회원으로 하는 대교협이 관장한다.

    서울대 공대 한민구 학장은 “교육부 산하 관변단체가 아닌 제3의 기관이 대학평가를 주도해야 평가의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교협 평가의 신뢰도 논란이 계속될 경우 앞으로는 공학분야의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한국공학교육인증원(이하 공학인증원)의 평가만 받겠다”고 했다. 한국공학기술학회와 전국공과대학장협의회가 주축인 공학인증원은 자발적 민간기구로서 외형적 지표가 아닌 교육내용 평가에 치중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는 다양한 대학평가 주체가 등장했다. ‘중앙일보’는 1995년부터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의 대학평가 방식을 한국의 대학 환경에 맞춰 보완한 대학평가 준거를 내놓았다. 대학교수의 교육여건과 연구실적, 교수 1인당 학생수, 법정 교원 확보율, 자연계 교수 1인당 과학기술 인용문헌(SCI) 게재 논문편수 및 인용예상 빈도 수가 대학의 교육여건과 연구실적을 평가하는 대표 지표로 활용된다. 평가팀의 실사가 없다는 것이 대교협 평가와 가장 다른 점. 분야별 학문전담 평가기구도 탄생했다. 공학인증원과 한국의과대학인정평가위원회 등이 그것이다.

    고등교육평가원의 등장

    그러나 현재 대교협을 가장 위협하는 것은 고등교육평가원의 출현이다. 3월13일 교육부가 “고등교육평가원을 세워 재정지원사업의 경우 대교협이 하던 대학평가를 내년 3월부터 교육부가 직접 하겠다”는 복안을 내놓은 것. 평가의 전문성과 객관성을 높여 학교 서비스를 개선하고 학생·학부모·기업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겠다는 취지다. 국회나 공학인증원 등 분야별 평가기관은 교육체제 개편과 총괄·조정기구 설립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반면, 대교협은 고등교육평가원의 출현이 ‘옥상옥(屋上屋)’이라 비판한다. 국가기관에 의한 평가가 교육의 자율성을 침해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랜 평가 역사를 자랑하는 대교협은 이제 다른 평가주체들과 힘겹게 정면 승부를 해야 한다.

    대교협 이현청 사무총장은 “1주기 대학평가는 물론 한계도 있었지만 각 대학의 시설수준을 높이는 등 긍정적 역할도 했다. 2주기 평가는 이제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고 대학의 특성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며,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정량평가를 준비하는 대학의 수고를 덜겠다”고 밝혔다.

    최근 대학평가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것은 교육부가 추진하는 대학 구조개혁과 깊은 관련이 있다. 대학평가 결과를 공개함으로써 대학 구조조정을 자연스럽게 시장원리에 맡기려는 정부의 의지도 엿보인다. 그러나 “정부기관의 대학평가가 ‘대학 구조조정의 지표’로 자리매김하려면, 먼저 합리적 기준과 효율적인 평가방식부터 갖춰야 한다”는 충북대 정진수 교수의 말은 곱씹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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