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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 1946년 한국인 사유재산 ‘몰수’

한국 정부, 30년 뒤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보상

  • 글: 김진수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ockey@donga.com

미군정, 1946년 한국인 사유재산 ‘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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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재경부의 회신엔 ‘(한일협정에 따라 한국 정부는) 민간인에 대한 보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1966년 2월19일 청구권 자금의 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이 법률에 따라 제정한 대일 민간 청구권 신고에 관한 법률 및 대일 민간 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군정법령 제57호에 의한 예입금은 대일 민간 청구권 신고대상에 해당되어 1971년 5월21일부터 1972년 3월20일까지 10개월 동안 청구권 신고를 받아, 대일 민간 청구권 신고관리위원회에서 증거 및 자료의 적정성을 심사한 후 1975년 7월1일부터 1977년 6월30일까지 보상금을 지급했다’는 ‘결과적 사실’만 담겨 있을 뿐이었다.

임씨는 이를 납득할 수 없었다. 그의 양친은 당시 남한 내에서 미국 정부를 대표하던 미 군정청의 명령에 따라 일본은행권을 미국측이 지정한 은행에 예치한 것이지, 이미 패망해 일본으로 돌아간 일본은행에 예치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정법령 제57호와 관련한 문제는 명백히 미 군정청이 책임져야 하며, 최종적으론 남한 땅에 군정을 세운 미국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임씨는 지난 3월에도 같은 내용의 청원서를 청와대에 냈지만, 4월6일 돌아온 재경부의 회신 역시 ‘이미 보상이 끝나 현 시점에 정부 차원의 추가 보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임씨는 분통을 터뜨린다.

“미 군정청의 명령으로 엔화를 예치한 지 30년이 다 된 시점에 물가상승 수준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을, 그것도 대일 청구권 자금 명목으로 한국 정부가 상환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미국 정부는 군정법령 제57호 관련자들에게 예입금에 대한 은행이자는 물론 예금주에 대한 위자료 등 정당한 손해배상이나 사과 한마디 없이 한국 정부에 문제를 떠넘겼다. 그러니 결국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과 의무는 미국 정부에 있지 않은가.”

‘귀속재산’과 ‘사유재산’



주지하듯, 대일 청구권 자금은 한일협정에 따른 결과물로, 일본측이 한국 정부에 건네준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박정희 정권은 한일협정 체결 10년 후인 1975년 7월1일부터 1977년 6월30일에 걸쳐 일제 강점기의 한국 민간인 피해자에 대한 보상 자금을 확립해 자격을 갖춘 이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했다.

문제는 군정법령 제57호로 몰수한 돈이 19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전범국인 일본이 남한에 남기고 간 재산을 뜻하는 이른바 ‘귀속재산’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다. 귀속재산에 대해 규정한 것은 미 군정법령 제33호다. 미 군정청은 1945년 12월6일 남한 내 모든 공사(公私) 일본인 소유 재산을 미군정이 접수한다는 법령 제33호를 공포해 귀속재산을 군정청 소유로 두는 한편, 군정청의 허가 없이는 그 재산을 점유하거나 이전 또는 가치효용을 훼손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한 바 있다. 군정법령 제33호에 의한 귀속재산은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로 이관됐다.

반면 미 군정청이 강제 예입을 명령한 일본은행권은 광복을 즈음해 귀국한 재일(在日) 귀향민들이 일본 현지에서 피땀 흘려 벌어들인 순수한 ‘사유재산’으로, 귀속재산과는 성격이 엄연히 다르다. 군정법령 제57호는 공포 당시 엔화를 보유하고 있던 그들에겐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는 조치였던 셈이다. 이와 같은 공권력을 동원한 미국의 약소국 재산권 침해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

군정법령 제57호로 인한 ‘피해자’는 임씨만이 아니다. 그러나 미군정이 남한 에서 거둬들인 일본은행권이 과연 얼마만한 액수인지, 돈을 맡긴 사람은 몇 명이나 되는지에 대한 정확한 수치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1969년 1월7일자 ‘부산일보’ 기사엔 당시 엔화를 예치한 한국인 수를 추정할 만한 단서가 밝혀져 있다.

당시 ‘부산일보’는 군정법령 제57호에 의거해 조선은행 군산지점에 일본에서 23년간 일해 모은 한화 15만230원(圓) 상당의 일본은행권을 예치했다 돌려받지 못하고 있던 이제춘(당시 61세·부산시 수영구 민락동)씨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그의 입을 빌려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이 전국적으로 10만명이나 된다”고 보도했다. 당시 이씨는 또 “(미 군정청이 지정한 은행에 돈을) 예치하면 3개월 이내에 돌려준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씨의 이런 증언은 당시 수많은 한국인이 군정법령 제57호에 따라 일본은행권을 예치했다는 사실에 대한 방증일 것이다. ‘3개월 이내에 돌려준다’는 언급은 임씨의 양친이 한 말과 같은 것으로, 당시 미 군정청이 일본은행권 예입을 독려하기 위해 사술(詐術)을 쓴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가져볼 만하다. 앞서 언급했듯, 군정법령 제57호에는 예입금을 상환해준다는 규정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도 당시 이미 고령이던 이씨의 생존 여부조차 불확실해 그가 실제로 보상을 받을 수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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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진수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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