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사람과 사람

손길승 전 SK 회장 부인 박연신씨

청각장애 아들 서양화가로 키우고,13년째 장애인 잡지 만드는 아름다운 어머니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손길승 전 SK 회장 부인 박연신씨

3/5
…이제는 사위도 딸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아기를 위해 눈이 되어주고 있고, 이런 헌신을 통해 아기는 생활에 잘 적응해 가고 있다. …나 자신도 손녀를 바라보며 이제부터는 장애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 외에 발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히로코, 전신마비 아들을 연세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시킨 이원옥씨, 장애인과 비장애인 근로자가 함께 일하는 ‘SK동해주유소’, 중증장애인들에게 차량 봉사하는 대전 ‘되살미사랑나눔봉사대’, 장애인 관련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는 호주 시드니 여행기, 지체장애자 주성철씨가 만든 귀금속 공예작품 지상 갤러리…. 장애인과 언제 장애인이 될지 모르는 비장애인들에게 유익한 읽을거리가 정성스럽게 담겨 있다. 사람들의 무관심이 문제다.

“책이 남으면 자원봉사자 어머니들이 들고 나가 거리에서 팔아요. 대학이나 공원 등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 나가 책 한 권 사달라고 사정하다시피 해요. 그런데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극히 드물어요. 장애인이 TV에 나와 관심을 끌고, 장애인의 감동적인 사연들이 여기저기서 화제가 되고 있지만 막상 ‘자기 일’이 되면 사람들은 냉정해져요. 인정이 메마르고, 남의 어려운 사정에 사람들이 점점 더 무감각해져가는 것 같아요. 물론 책은 안 받아도 된다며 돈만 주겠다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그건 우리가 바라는 게 아니에요.”

그는 자원봉사자들이 길에 나가 책을 파는 궁극적인 목적은 돈을 모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애인들의 사는 이야기, 그들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일의 중요성, 특히 장애인에게 일할 기회는 생명수나 다름없다고 얘기하는 그는 ‘열린지평’을 통해 장애인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해왔다. 장애인에게 적극적으로 원고를 청탁하고, 비장애인에겐 원고료를 한푼도 주지 않지만 장애인 원고료는 후하게 쳐준다. 그들이 얼마나 어렵게, 얼마나 정성들여 썼을지 보지 않아도 훤하기 때문. 올초 폐쇄하기 전까지 인터넷 홈페이지 운영도 장애인들에게 용역을 맡겼다. 그는 기자에게도 거듭 “나를 인터뷰할 게 아니라 장애를 딛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장애인 문인들이 쓴 시, 수필, 칼럼 등을 실어달라”고 당부했다.



‘홀로 사막을 걷다’

어느덧 2시간 가까이 흘렀다. 그는 “약속이 있어 나가봐야 한다”며 기자를 달래듯 책 한 권을 건넸다. 최근 발간된 그의 수필집 ‘홀로 사막을 걷다’였다. 그는 198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골동품’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한 시조시인. 그간 ‘산목련 이야기’ ‘어머니 곁에 제가’ ‘하늘닿게 걷고 싶다’ 등의 시조집을 펴냈고, 수필집으로 ‘감꽃목걸이’가 있다. 그가 수필집을 건네며 한 이야기가 재미있다.

“우리 부부와 관련된 기사에는 늘 내가 남편 외조 덕분에 신춘문예에 당선됐다는 이야기가 들어가요. 신춘문예 시상식 후 ‘조선일보’에서 내게 묻지도 않고 남편의 외조가 컸다고 한 것을 기자들이 계속 받아 쓰는 거죠. 사실은 남편 외조 전혀 없었어요. 일밖에 모르던 사람이라 내가 신춘문예에 작품을 낸지도 모르고 있다가 시상식 날 아침에야 당선된 걸 알았죠. 시상식장에도 5분쯤 앉아 있다 갔어요. 그런데 남편이 외조를 잘해줘 시조시인이 됐다고 나오니….”

그렇게 헤어지고 난 며칠 뒤 인사동 편집실을 다시 찾았다. 그에게 꼭 듣고 싶은 얘기가 있었다. 치장을 덜 끝낸, 수수한 인사동을 만날 수 있는 오전 11시 무렵이었다. 문고리를 잡아당기니 열리지 않는다. 아직 출근 전인가 싶어 머뭇거리다 편집실 바로 아래층에 있는 화랑에 들어갔다. 그를 만나러 왔다가 화랑 신세를 지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위 아래층을 쓰는 이웃이라 그런지 화랑 직원이 먼저 들어와 있으라고 한 적도 있다. 화랑엔 마침 책 발송 작업을 도우러 나온 자원봉사자가 편집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동엔 크고 작은 화랑이 많다. ‘열린지평’ 바로 아래층에 있는 ‘광록화랑’은 규모가 작은 편이다.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의 크기가 다양하지만 대체로 작다. 그중 노랑, 빨강, 파랑 등 밝은 느낌의 원색이 많이 들어간 비슷한 분위기의 그림 여러 점이 눈에 띄었다. 붓질이 거칠면서도 형태가 단순한 게 아이들이 그린 그림 같기도 하다. 밝고 귀엽다. 화가 손영선의 작품이다.

그림을 둘러보고 있는데 자원봉사자가 먼저 일어섰다. 그가 온 것이다. 지난번 친절하게 물을 따라줬던 자원봉사자와 함께. 먼저 와 기다리고 있는 자원봉사자를 보며 미안한 듯 웃음짓던 박씨가 기자를 보더니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못 들어오게 막을까 싶어 “장애인 관련 신간을 좀 가져왔다”며 둘러대고 먼저 편집실로 들어갔다.

장애인 잡지 만드는 진짜 이유

혼자 쓰기에도 결코 넓지 않은 작은 공간에 막 나온 ‘열린지평’ 가을호와 봉투가 잔뜩 쌓여 있었다. 며칠째 발송을 위한 봉투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봉투에 일일이 펜으로 받을 사람의 이름과 주소를 적고, 책을 담아 봉하는 발송 준비 작업에만 꼬박 일주일이 걸린다. 그나마 10년 넘게 도와주는 자원봉사자들이 있어 일주일 만에 마무리되는 것이다. 알고 보니 화랑에서 함께 기다리던 자원봉사자는 그의 여고동창생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 몇 명이 10년 넘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열일 제쳐두고 나와 작업을 거든다.

3/5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목록 닫기

손길승 전 SK 회장 부인 박연신씨

댓글 창 닫기

2022/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