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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민 미래국가전략 최고위과정 지상중계 ②

공로명 전 외무장관의 新 한일관계론 특강

“냉철한 친일파는 많을수록 좋다,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 공로명 한림대 일본학연구소장, 전 외무부 장관

공로명 전 외무장관의 新 한일관계론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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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로명 전 외무장관의 新 한일관계론 특강

지난 8월16일 국회 독도특위 소속 여야의원 16명이 독도를 방문, 경비대원들을 격려했다.

최근 싱가포르대 키쇼 마부바니 공공정책대학원장은 ‘타임’지에 쓴 ‘아시아의 현대화(The Making of Modern Asia)’에서 “19세기말∼20세기초 일본이 이룩한 산업화가 오늘날 아시아가 경제성장을 일궈낸 자극제가 됐다”고 주장했다. 한국을 벗어나서 보면 이 같은 시각은 보편적이다. 이를 부정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마부바니 원장은 “한국이 일제 강점기 때 가혹한 식민통치를 받았으나, 한국이 비약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일본의 사례를 따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산업의 대부분이 일본의 공작기계, 중간재, 원자재에 의존하는 현실을 보자. 한국 정보통신(IT) 산업의 꽃이라고 하는 휴대전화 부품의 60∼70%를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일본과 맺게 될 자유무역협정(FTA)은 우리 경제 활동의 영역을 넓혀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단기적으로 물품 교역상의 적자폭 확대만 걱정할 게 아니라 무역외수지도 포함해 계산해야 한다. 일본의 직접투자 확대 가능성, 자격증의 상호 인정 등에서 창출되는 이익까지 감안해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의 자세는 교섭하겠다기보다 기(氣) 싸움만 하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향후 한일관계는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제주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더 이상 과거사 문제는 거론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옳다. 다만 그러한 자세가 오래가지 못한 것이 흠이다.

일본의 과거사 청산 문제는 더 거론해도 별다른 성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가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서 거론할 것은 다 거론했다. ‘공동선언’에서 오부치 총리는 “일본이 한때 식민지 지배로 한국 국민에게 막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한다”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따른 미래 지향적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이 시대의 요청”이라고 말했다. 서로 할 말은 다 한 셈이다.

아키히토 일왕의 깜짝 공개



반성에 대한 일본의 태도와 관련해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내가 1993∼94년 주일대사로 있을 때 오자와 이치로 의원(민주당의 부총재)이 사죄 문제를 놓고 “한국은 우리가 땅에 무릎을 꿇고 빌기를 원하느냐”며 “당신들이 우리 조상을 동북으로 쫓아낸 것은 잊었느냐”고 항의했다. 6∼7세기 신라와 백제의 유민들이 일본으로 건너갔을 때 일본 조정은 이들을 지금의 도쿄, 즉 관동지방으로 보냈다. 관동지방에 고려신사가 있고, 도처에 한국 지명이 남아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 살던 일본인은 동북지방으로 쫓겨났다. 오자와는 이때 쫓겨난 사람의 후손이라 볼 수 있는 동북지방의 이와테현 출신이다. 나도 이 같은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억지 주장에 어이가 없어 실소했다.

지난 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했던 현홍주 전 주미대사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회의에서 일본의 역사 인식 문제가 논의됐을 때 카를 카이저 전 독일 외무성 국제문제연구소장이 “독일은 1970년 빌리 브란트 총리가 바르샤바의 유대인 기념 묘지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며 “우리는 이처럼 전세계에 독일 국민의 진지한 역사 반성의 메시지를 전했는데, 왜 일본은 이와 같은 제스처가 없느냐”고 지적했다.

과거사 청산과 관련, 일본 왕가의 움직임을 살펴보자. 아키히토 일왕은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개최를 앞둔 2001년 12월 ‘생신 기자회견’에서 간무덴노(桓武天皇)의 생모는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며 스스로 천황가의 혈통과 한국의 인연을 밝혔다. 이는 일본 궁내청이 준비한 시나리오에는 없던 얘기였다. 이처럼 일본 왕가가 한국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표명해온 것은 오래된 일이다.

일본에서 발행되는 재일동포 신문 ‘통일일보’ 8월15일자는 아키히토 일왕의 학우인 하시모토 아키라씨와 최서면 원장의 대담을 게재했다. 여기에서 하시모토씨는 아키히토 일왕이 1990년 노태우 대통령 방일 당시 하시모토씨에게 이렇게 심경을 토로했다고 한다.

“내가 한국에 가서 일본의 과오를 말하면 한국 국민이 우리를 이해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한국 대통령을 일본으로 영접해 얘기하는 것보다 우리 마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권력 다툼

광복 60년이 지난 지금, 일본 국왕이 한국을 공식 방문한다면 역사 청산에 커다란 진전이 있을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 이래 역대 한국 대통령들이 일본을 공식 방문해 일왕의 방한을 요청했다. 그러나 일왕이 한국을 방문할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이유로 오늘날까지 실현되지 않고 있다. 일왕은 1992년 일·중 국교 정상화 20주년 때 중국을 방문한 바 있다. 그의 방한이 이뤄지려면 우리 국민이 일본을 동맹에 준하는 ‘우호협력국’으로 인식해야 한다. 다음 정부가 들어서는 시기쯤 일왕의 방한을 실현시켜 역사 문제에 종지부를 찍는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보자.

이렇게 말하면 친일파적 발언이라고 비난받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이런 얘기를 하고 싶다. 광복 후 김구 선생은 “일본이 이웃인데 친일파는 많을수록 좋다”며 “없다면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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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로명 한림대 일본학연구소장, 전 외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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