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호

짝 없는 노인들의 性풍속도 황혼동거

힘 있어서, ‘약’ 있어서, 빚 있어서… “한다”

  •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입력2006-03-27 16: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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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짝 없는 노인들의 性풍속도 황혼동거
    지난해 한 시골마을 농가에서 홀로 살던 60대 후반의 할머니가 실종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웃을 통해 드러난 할머니의 생활상은 경찰을 당혹케 했다.

    일찍이 남편과 이혼하고 세 자녀를 모두 출가시킨 할머니는 서울에 사는 자식들과 떨어져 20년 가까이 홀로 지냈다. 이 기간에 그는 마을을 전전하며 할아버지들과 동거했다. 이웃의 소개로 만난 할아버지와 몇 년간 동거하다 그가 사망하자 할머니는 또 다른 상대를 찾아 나섰다. 아는 사람의 주선으로 선을 본 뒤 70대 초반 할아버지와 또다시 동거를 시작한 할머니는 얼마 못 가 ‘성격차이’로 헤어졌다. 할머니는 그 후 세 번째 할아버지와 교제하던 중 행방을 감췄다. 사건을 맡은 형사는 이렇게 말했다.

    “외지에서 우리 마을로 들어온 할머니였는데, 홀로 농사를 지어 생활하고 있었다. 나이 든 노인이 농사를 지어봤자 얼마나 돈이 됐겠나. 도시에 사는 자식들은 가끔 용돈을 부쳐주는 게 전부였다. 서로 왕래도 없다시피 했다. 할머니도 굳이 여러 할아버지를 전전하며 구차하게 사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뿔뿔이 흩어져 도시로 나가 살던 자식들은 그동안 어머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몰랐다. 연락을 받고 경찰서에 와서야 그간 어머니의 행적을 알게 됐다.”

    “참한 할머니 한 분 구하세요”

    도시로 나간 자식과 떨어져 시골에서 홀로 사는 노인들의 ‘황혼 동거’는 더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지방 소도시나 시골마을의 미장원이나 다방은 이들의 사랑방이자 중매 혹은 맞선 장소가 된 지 오래다.



    동네 분위기를 살필 겸 한 시골마을의 터미널 인근 다방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 손님 한 명과 60대 초반의 주인 여자가 나누는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영감님, 요새도 그 몸으로 혼자 밥하고 빨래하고 있어요? 자식들이 좀 안 들여다봐요?”

    “밑반찬이야 갖다주긴 해도 가뭄에 콩 나듯 오지 뭐.”

    “그러지 말고 참한 할머니 하나 구하세요. 돈도 있겠다, 뭐가 아쉬워 그러고 혼자 사세요?”

    별 대꾸 없이 다방 문을 나서는 할아버지 등에 대고 주인은 “내가 한번 알아보고 연락 줄게요”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나가자 주인 여자는 “매일 오다시피 하는 단골 영감이다. 몇 년 전 풍(뇌졸중)을 맞고 쓰러졌다 이젠 웬만큼 거동이 편해졌는데도 혼자 사신다”며 말을 건네왔다. 그는 “그동안 할머니들하고 혼자 사는 영감님 대여섯쯤 다리를 놔줬다. 젊을 때처럼 농사일에 미쳐 사는 것도 아니고, 생활에 바쁜 자식들이 자주 들여다보는 것도 아닌데 나이 든 노인네들이 우두커니 방안에 틀어박혀 무슨 낙으로 살겠나. 그런 사정을 훤히 아니까 외로운 노인끼리 이리저리 엮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할아버지 몸도 불편한데 할머니가 무슨 재미로 함께 살려고 하겠어요?”라고 묻자 주인 여자는 말뜻을 눈치챈 듯 “저래 보여도 잠자리는 문제없는 영감님”이라며 큰소리로 웃었다.

    시골 미장원은 이발비가 이발소의 절반 수준이라 할아버지들은 주로 미장원을 이용한다. 한 공간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주 얼굴을 맞대다 보니 눈이 맞는 커플이 종종 생긴다. 그뿐 아니라 동네 사정을 훤히 꿰고 있는 미장원 주인이 홀로 사는 노인을 상대로 중매쟁이 노릇을 하기도 한다. 마을 경로당도 혼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마음에 드는 짝을 만날 수 있는 장소다. 미장원이나 경로당에 드나드는 할머니, 할아버지끼리 눈이 맞아 함께 살림을 차려도 노인이 많은 시골에선 별난 일이 아니다.

    시아버지 주머니에 비아그라가…

    마음 맞는 노인끼리 맺어져 동거하는 경우가 늘면서 시골 경찰서에선 종종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 소도시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형사는 얼마 전 마을에서 벌어진 소동을 들려주며 씁쓸해했다.

    60대 중반의 할머니가 아는 사람 소개로 70대 후반 할아버지를 만나 동거를 약속했다. 그 대가로 3000만원을 받은 뒤 돈만 챙겨들고 도망가자 화가 난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고소했다. 할아버지는 떼인 돈을 할머니의 자식들에게서 받아내고서야 고소를 취하했다. 전후 사정을 몰르던 자식들은 망신을 톡톡히 당한 뒤 할머니와 연락조차 끊어버렸다.

    또 다른 형사에 따르면 80세 할머니가 한 동네에 사는 70대 중반 할아버지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한 사건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부인이 있는데도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할머니와 성관계를 맺었다. 이런 사실을 동네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떠벌이다 소문이 퍼져 할머니 귀에까지 들어간 것. 고소 사건이 벌어진 뒤 자초지종을 알게 된 할아버지의 부인은 ‘동네 망신’이라며 이혼하자고 소란을 피웠다. 담당형사는 “나로선 무엇보다 80세 할머니가 성관계가 가능하다는 게 놀라웠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해 사랑의 전화 복지재단 사회연구소에서 60세 이상 노인 2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10명 가운데 6명이 성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자 가운데는 70∼80세 노인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야한 영화나 잡지를 보며 자위행위를 하는 경우, 부인 외에 이성친구나 성매매 여성을 상대로 성관계를 갖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통계에 비춰보면 ‘80세 할머니의 성행위’는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노인 성 문제 전문가들은 “요즘 노인들은 평균수명이 크게 늘었고 건강상태도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을 뿐 아니라 의료기술의 발달로 성생활을 돕는 방법도 다양해졌기 때문에 노인들에게 성생활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진단한다. 한 지방 경찰관은 “명절 때 시댁에 내려와 빨래를 하던 며느리가 70대 시아버지 주머니에서 비아그라가 나와 놀란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충청도의 한 도시 중심가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50대 주인은 “성매매가 불법이지만 아직 시골지역 티켓다방들은 암암리에 ‘장사’를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그나마 다방에서 받아주는 사람은 50∼60대까지라 더 나이가 든 노인은 어디 가서 성욕을 풀 데가 마땅치 않다”고 전했다. 그러다 보니 동네 할머니와 정분이 나거나 자식들에게 알리지 않고 동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인기품목은 젤과 ‘특수 콘돔’

    인구가 많지 않아 한산해 보이는 이곳의 길 모퉁이에는 성인용품점이 네 곳이나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중 한 상점 주인은 “60∼70대 할아버지 손님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서울은 젊은 사람이 주고객이라지만, 시골은 거의가 노인 손님이다. 하루 5∼6명이 오는데 대부분 성인용품을 써본 경험이 있는 고정 고객이다. 이들은 성 파트너인 할머니를 위해 1만∼2만원짜리 젤을 주로 사간다”고 했다.

    또 다른 성인용품점에서 만난 20대 남자 주인은 “할아버지 손님들이 가끔 들러 발기촉진제, ‘특수 콘돔’ 같은 걸 사간다. 동네가 빤해서 할머니들은 소문날까봐 절대 못 온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들 사이에 인기가 많다는 특수 콘돔은 일반 콘돔과 달리 발기된 상태의 남성 성기 모양으로 생겼는데, 속이 비어 있다. 그는 “이걸 성기에다 끼우고 잠자리를 하는데, 할아버지들은 발기력이 신통치 않으니까 크기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반(半)고형이라 쉽게 힘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특수 콘돔의 장점이다. 시골 할아버지들한테 3만원이면 적은 돈이 아닌데도 잘 나간다”고 했다.

    앞서 소개한 할머니 실종사건 담당 경찰에 따르면 500∼600가구가 모여 사는 중소 규모의 시골마을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동거하는 경우가 많다. 시골 노인은 배타적이라 낯선 사람을 경계한다. 이런 까닭에 익명성이 적당히 보장되면서 몇 사람 건너면 상대에 대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마을 사람 중심으로 만난다는 것.

    “대도시에 사는 노인들은 대개 경제력도 웬만큼 있고, 여관 같은 즐길 곳도 많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서로 만날 기회가 많은 데 비해 시골은 그런 여건이 못 되다 보니 아는 사람을 통해 만난다. 함께 사는 조건으로 돈을 주고받는 사례도 꽤 흔하다.”

    충북 제천 출신인 주부 유모씨는 “고향에 할아버지 한 분이 같은 동네 할머니의 빚 2000만원을 대신 갚아준 뒤 함께 살고 있다. 옆 동네 할머니와 결혼한 할아버지는 현금으로 1000만원을 줬다고 들었다. 할아버지들이 괜히 짜증내고 아프다며 꾀병을 부리면 자식들이 눈치껏 ‘밥해주는 할머니’를 붙여주면서 할머니에게 돈을 건네는 사례도 종종 있다”고 했다. 시골에서 흔히 ‘밥해주는 아줌마’로 통하는 할머니는 홀로 사는 할아버지의 동거 상대를 일컫는다. 이들은 얼마간의 돈을 받고 동거를 시작하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있는데, 1000만∼2000만원이 통상적으로 오가는 액수다.

    경제력 없는 노인들의 성범죄

    지방 경찰서 강력계 이모 형사는 “시골에서 현금 1000만∼2000만원이면 큰돈이다. 혼자 사는 돈 있는 할아버지들은 할머니를 구해 함께 살 수 있지만 경제적으로 능력이 안 되는 할아버지들은 짝을 구할 수도 없다. 이런 상황이 성범죄로 연결되기도 한다”며 우려했다. 그에 따르면 특히 정신지체 여성이나 어린이가 이들 성범죄의 표적이다. 힘없는 노인에겐 다루기 쉬운 상대이기 때문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권주희씨는 “지난해 상담소에 접수된 60세 이상 가해자에 의한 유아 성추행사건은 76건에 달했다. 가해 노인들은 아이들이 할아버지를 경계하지 않는다는 점을 노렸다”고 했다. 특히 시골의 경우 아이들은 잘 알고 지내는 동네 할아버지를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이웃간에 왕래도 잦아 노인이 아이 혼자 있는 집에 드나들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골에서 발생하는 노인 성범죄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은밀하게 감춰지는 경우가 더 많다.

    한 중소도시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에 따르면 몇 년 전 18세 정신지체아가 임신했는데 누구 아이인지도 모른 채 낙태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또 14세 정신지체아를 상대로 목사를 제외한 동네 남자 20여 명 전부가 돌아가면서 성추행을 한 사건도 있었다. 그런데 가해자 대부분이 60∼70대 노인이었다.

    “문제가 불거지자 가해자들은 피해자 아버지에게 막걸리 한잔을 사주고 없던 일로 덮어버렸다. 시골 노인들 사이엔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심각한 범죄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설사 사건이 일어나도 매일 얼굴 맞대고 사는 이웃끼리 얼굴 붉히기를 꺼려 은폐되는 경우가 많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노인들의 황혼 동거와 그에 따라 오가는 돈 거래, 노인 불륜, 성범죄 등 홀로 사는 노인을 둘러싼 성 문제는 지방이나 시골마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독거노인이 많이 거주하는 서울 영등포역 뒤편 쪽방 골목 주변은 윤락가에서 밀려난 50∼60대 여성의 활동무대이기도 하다. 이들은 지나가는 할아버지나 노숙자를 상대로 성매매를 알선하거나 직접 윤락에 나선다. 집창촌에서도 외면당하는 60∼70대 할아버지들은 몇 푼 안 되는 돈을 들고 이들에게 이끌려 골목길로 사라진다.

    달리 성적 욕구를 해소할 방법이 없는 할아버지들의 ‘길거리 부킹’이 주로 이뤄지는 곳은 노인이 많이 모이는 종로 탑골공원 주변과 관악산 일대 등이다. 길거리 부킹을 통해 성관계가 이뤄지기에 성병에 걸릴 위험성이 매우 크다. 노인들은 성병에 걸려도 잘 모르고 방치하거나, 알아도 의료기관에 드나드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독거노인이나 배우자가 없는 노인의 성 문제는 또 다른 사회문제로 확산될 불씨를 안고 있다.

    홀로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사이에 즐겁게 시간을 보내면서 춤을 추고 이성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최근 인기를 끄는 곳이 콜라텍이다. 원래 10대 청소년들의 건전한 놀이문화 공간으로 탄생한 콜라텍이 10대들로부터 외면당하면서 이른바 성인 콜라텍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종로의 한 콜라텍에서 막 문을 나서는 60∼70대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 명을 만났다. 차림새로 보아 웬만큼 경제적 여유가 있을 법한 ‘멋쟁이’들이었다.

    그중 한 할아버지가 “젊은 여자가 왜 이런 곳을 기웃거리냐”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홀로 된 아버지가 계신데 콜라텍 소문을 듣고 둘러보려고 들렀다”고 둘러대자 그는 반색을 하며 자신을 ‘결혼상담소장’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대뜸 “아버지 연세가 몇이냐? 재혼할 생각은 없으시냐? 이 사람은 어떠냐?”며 할머니 한 명을 잡아끌었다. 민망해하는 할머니의 태도에는 아랑곳없이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아버지가 경제력이 좀 있느냐? 결혼하게 되면 돈을 얼마나 줄 수 있느냐?”며 집요하게 물었다.

    시골에서 ‘밥해주는 할머니’들이 챙기는 대가가 1000만∼2000만원이라면, 서울 등 대도시에서 황혼 동거나 재혼을 결심한 할머니에게 건네지는 돈은 대략 4000만∼5000만원이라고 한다. 콜라텍에서 만난 결혼상담소 소장이 거론한 돈도 바로 이 비용을 두고 한 말이었다.

    “결혼 전 통장에 4000만원 넣어라”

    짝 없는 노인들의 性풍속도 황혼동거

    영화 ‘죽어도 좋아’의 주인공 박치규 할아버지와 이순예 할머니. 노인의 성생활을 다룬 첫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2년 전 70세 시아버지의 재혼 문제로 결혼상담소를 찾았던 조모씨는 노인들의 재혼에 수천만원의 결혼비용이 필요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곳에서 시아버지와 열 살가량 나이차가 있는 할머니를 소개받고 이야기가 진행되자 상담소장이 “여자 쪽에서 원하는 요구조건”이라며 중재에 나섰다.

    그는 “만약 아버님이 돌아가시면 두 분이 함께 살던 아파트는 여자에게 줘야 한다. 매달 생활비는 얼마나 줄 수 있나? 결혼 전에 통장으로 4000만원을 미리 넣어줘야 한다”고 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당황한 조씨에게 상담소장은 “남자가 나이 들어서 재혼하려면 여자 쪽에 나중에 혼자 살 집 한 채와 5000만원 정도는 기본으로 해줘야 한다. 그게 요즘 관례”라고 충고했다.

    서울 강남에서 결혼상담소를 운영하는 60대 여성 소장은 “재혼 상담을 하는 여자들 중엔 ‘빚을 갚아달라’ ‘딸 시집 보낼 비용을 달라’는 등 별별 요구가 많다. 이유야 어떻든 아무리 나이 많은 노인이라 해도 출가한 자식들한테 기댈 수 없는 게 요즘 세상이다. 그러니 재혼하면서 경제적 안정을 따지고 남편이 죽은 다음의 노후를 걱정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니냐”고 되물었다.

    주변 사람의 소개로 조씨가 직접 만나본 또 다른 62세 할머니 한 명은 “딸 둘이 있는데 아직 결혼을 못 시켰다.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아 돈이 필요하니 5000만원을 달라. 그러면 재혼을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조씨는 “돈 없는 노인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아야겠다. 물정 모르는 시아버님께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난감하다”며 씁쓸해했다.

    얼마 전 친정아버지의 재혼을 앞두고 상대 여성의 사주를 보기 위해 역술원을 찾은 주부 김모씨는 70대 초반 원장의 푸념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 부인과 일찍 사별한 원장은 주변의 소개로 60대 할머니를 소개받았다고 한다. 처음 결혼 얘기가 나왔을 때 할머니는 빚이 2000만원 있다고 했고, 원장이 이를 갚아줬다. 동거 석 달 후에 또 5000만원의 빚이 있다고 해 어쩔 수 없이 갚아줬는데 얼마 뒤 할머니는 짐을 싸 집을 나갔다. 원장은 김씨에게 “뭐하러 아버지를 재혼시키려 하느냐”며 만류했다.

    동거든 재혼이든 홀로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결합에 돈 거래가 끼어들면서 갈등이 불거지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한다. 박모씨는 시골에서 홀로 사는 82세 외삼촌만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고 했다. 논밭 등 땅이 많은 박씨의 외삼촌은 동네사람의 소개로 63세 할머니를 만나 함께 살기 시작했다. 전남편과의 사이에 네 명의 자식을 둔 할머니는 동거 전 자식들이 살 집이 필요하다고 했고, 박씨의 외삼촌은 2000만원을 들여 전세 아파트를 얻어줬다.

    돈 잃고, 사람 잃고

    그런데 부지런한 성격의 할아버지와 달리 할머니는 걸핏하면 늦잠을 자고 끼니조차 제때 챙겨주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불만스러워하자 할머니는 6개월 만에 집을 나갔다. 박씨는 “외삼촌은 연세에 비해 정정했지만 논밭은 다 소작을 주고 텃밭만 가꿨다. 농사를 지으라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노인 한 사람 먹고 입는 것 챙기면 될 일인데 그것조차 못하겠다는 할머니가 시집은 왜 왔는지 모르겠다. 결국 돈만 날리고 혼자 남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자식들 몰래 동거하는 경우가 아닌 노인들의 재혼에는 ‘무늬만 재혼’이 많다. 자식들의 동의 아래 공개적으로 부부가 됐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다. 이는 현실적으로 발생할 문제, 다시 말해 재산상속이나 가족관계가 복잡해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권, 재산권을 쥔 할아버지나 자식 쪽에서 혼인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황혼의 신혼부부들이 크고작은 갈등을 겪기도 한다.

    “친정아버지 문제로 한 달째 골치를 앓고 있다”는 이모씨. 69세인 그의 아버지는 5년 전 부인과 사별하고 1년 반 전에 재혼했다. 이씨는 “재혼한 지 1년을 넘기면서 계모가 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현재 두 사람은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발기주사와 음경보형물

    “재혼할 때 아버지는 3000만원을 건네면서 ‘1년쯤 살아보고 혼인신고를 하자’고 했다. 그런데 그 사이 새어머니가 또 500만원을 받아갔다. 그 때문인지 아버지가 혼인신고를 미뤘고 다툼의 빌미가 됐다. 뜻대로 안 되자 새어머니는 생활비를 쇼핑하는 데 쓰면서 아버지 화를 돋우고 있다. 어렵게 함께 살게 됐는데 헤어지라고 할 수도 없고 지켜보자니 답답하다.”

    할아버지를 믿고 동거하다 자식들에게 쫓겨나는 할머니도 있다. 60대 중반의 김모 할머니는 아내와 사별한 70대 초반 할아버지를 만나 함께 살게 됐다. 할아버지는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지만 자식들 눈총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동거 전, 할머니는 할아버지로부터 “장래를 위해서”라며 자신의 이름으로 된 통장을 건네받았다. 4년 뒤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자식들이 찾아와 통장을 빼앗고 집에서도 쫓아냈다.

    ‘한국 노인의 전화’ 강병만 사무국장은 “이성 문제로 상담해오는 독신 노인 가운데 80%가 ‘이성 친구를 갖고 싶지만 주위의 눈초리와 체면 때문에 섣불리 나서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홀로 사는 노인이 많아졌지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노인의 이성 문제와 성생활을 금기시하는 우리 사회 의식에는 변한 게 없다. 홀로 사는 많은 노인이 우울증을 앓거나 외로움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것은 이러한 사회 분위기 탓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성과학연구소 소장이자 이윤수비뇨기과 원장인 이윤수 박사는 “현대 노인의 성 문제는 파트너의 문제”라고 단언했다. 그는 “성욕도 있고 몸도 건강한 노인들이 공개적으로 파트너를 만날 수 있는 장소나 기회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그러니까 ‘박카스 아줌마’를 찾고 유아 성추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드러내놓고 표현을 하지 못할 뿐이지 노인들도 성욕이나 성에 대한 관심이 젊은이들 못지않다. 이들을 상대로 성 관련 강의를 하다 보면 머리가 허옇게 센 노인들이 눈빛을 반짝이며 집중한다”고 했다.

    그의 환자 중 60대 후반에 재혼한 할아버지는 음경보형물 삽입수술을 받았다. 수술 전 할아버지는 “여자를 데려오는데, 성욕은 풀어주는 게 도리가 아니겠는가. 내 몸이 좀 힘들어도 참겠다”며 수술을 감행했다. 그를 찾아오는 환자 10명 중 3명이 60∼70대 노인이다. 73세 할아버지는 거의 매일 병원을 찾아 발기주사약을 처방받고 집에서 손수 주사를 놓는다. “몸도 좋지 않은데 너무 무리하면 쓰러질 수도 있다”고 만류해도 “아내를 즐겁게 해주는 게 좋다”며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한다.

    ‘할 수 있다면 죽어도 좋아’

    ‘밥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성생활이 가능하다는 게 의사들의 얘기다. 질병이나 건강에 따라 개인차는 있지만 여자든 남자든 생물학적으로는 80∼90세에도 성생활이 가능하다. 나이가 들수록 성욕이 감퇴하지만 성적 욕구가 완전히 사라지거나 성 능력이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통계청의 ‘2005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노인이 홀로 사는 단독가구가 70만6000가구를 넘어섰다. 독거 할머니는 독거 할아버지보다 다섯 배나 많다. 이들 가운데 많은 수가 자식들에게 재산을 다 쏟아붓고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경기불황이 장기간 지속되고 계층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돼 자식들마저 부모를 외면한 탓에 할머니들은 돈이 있는 할아버지들에게 노후를 기대는 상황이다. 홀로 사는 노인의 이성교제나 결혼이 터부시되는 이면에 전국적으로 공공연히 오가는 황혼 동거 비용이 있고, 이는 우리 사회 노인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몇 년 전 70대 노인의 사랑과 성을 소재로 한 영화 ‘죽어도 좋아’가 상영되면서 떠들썩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영화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동거한 황혼부부의 일상을 감동적으로 담아냈다. 노인의 성을 억압하는 부정적 시각과 편견이 없어지고, 자유롭게 이성을 만나 연애하고 동거하는 문화가 정착될 때 빈부와 돈에 상관없이 애정으로 만나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는 노인이 많아질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60대 후반 할아버지의 말이다.

    “50대까지는 자식들 키우고 결혼시키느라 부부끼리 알콩달콩하게 살 여유가 없었다. 이제 시간도 많고 경제적으로 여유도 생겼지만 서로 보듬어주고 잠자리를 함께할 아내가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식들이 꼴사나워하든 말든 진작 연애라도 걸어볼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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