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호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인터뷰

“후회는 없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땐 전쟁이었다”

  •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입력2007-01-15 1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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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인터뷰
    외환위기 이후 10년을 돌아보려면 이전 10년도 추적해야 한다. 위기를 배태한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하면 결과로 나타난 현상을 원인으로 지목할 위험이 있다. 취객이 길거리에 쓰러졌다면 음주도 원인이겠지만, 그가 폭음한 원인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그 취객이 대한민국 전체였다면 말이다. 적어도 앞뒤로 10년은 봐야 한다고 했을 때, 적임자는 강봉균(康奉均·64)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이다.

    외환위기는 없다?

    강 의장은 1969년 경제기획원 사무관을 시작으로 1990년 경제기획원 차관보, 1993년 대외경제조정실장, 1994년 세계화추진기획단장, 그리고 외환위기 직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했다. 환란 이후엔 청와대 경제수석,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외환위기 전후 20년을 관통한 핵심관료였다. ‘신동아’ IMF 사태 10년 특집의 필자들은 관료들의 지나친 시장개입을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에 대한 그의 견해가 궁금했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마(大馬)’ 대우가 해체될 때 김대중 대통령을 보좌한 실세 경제관료였다. 누구보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을 많이 만나 회생 방안을 토론했다. 따라서 대우의 패망 당시 사정과 주요 논점을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그는 현재 집권여당의 정책위의장이다. 최악의 경기부진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그가 진단한 정부의 실패는 무엇인지도 들어보고 싶었다. 지금은 과거의 분석만큼 미래의 전망도 중요한 때다.

    ▼ 1997년 12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기 직전까지도 정부 관료들은 ‘외환위기는 오지 않는다’고 강변했습니다. 당시 증권사 이코노미스트들이 참석한 한 세미나에서 강경식 경제부총리는 물론 강 의장도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참석해 ‘외환위기는 없다’고 했죠. 몰랐던 겁니까,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겁니까.



    “강경식 부총리는 나와 아주 가까운 사이였는데도 내게 한 번도 외환위기에 대해 말하지 않았어요. 국무회의에서도 논의한 일이 없습니다.”

    ▼ 몰랐다는 겁니까.

    “그 정도로 심각한 줄은 몰랐어요. 외환위기는 꼭 기업이 부도나는 것과 같았어요. 회사가 위험하다는 것 정도만 감지할 수 있지, 어느 시점에 부도가 날 줄은 모르죠.”

    YS의 新경제 구상

    ▼ 외환위기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포괄적으로 얘기하면 우리 경제의 역사성에서 찾아야죠. 우선 금융시스템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어요. 1990년대 중반부터 외환시장을 개방했지만 거기에 적응할 만한 훈련이 안 돼 있었어요. 대기업은 은행 차입을 통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해 구조적으로 취약했고요. 이런 구조적인 문제가 노출되면서 동남아에서 발생한 외환위기가 우리나라로 확산된 겁니다. 한국이 쉽게 전염된 원인은 국제금융시장이 한국을 불신했기 때문이에요. 정부가 환율을 경직적으로 운용했고, 금융시장이 발달하지 않아 금융기관이 무리하게 단기외채를 들여와 장기 운용하기도 했으니까요.”

    ▼ 외환위기의 본질은 외환보유고의 고갈이잖습니까. 그것은 수출보다 수입이 많았다는 얘깁니다. 수입이 많았던 것은 기업의 설비투자가 엄청 늘었기 때문이고, 설비투자가 증가한 것은 김영삼 정부가 무리하게 경기를 부양한 탓이지요.

    “외환위기 발생 4년 전부터 국제수지 적자가 났어요. 환율이 원인이었지. 수출이 적고 수입이 많으면 환율을 조정했어야 했는데, 정부가 시장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죠. 원화가치를 낮춰야 했는데, 거의 3년 동안 손놓고 있었죠.”

    ▼ 왜 그랬습니까.

    “거기서부터는 나의 주관적 판단이 들어가야 하는데…. 정치적으로 얘기하면, 환율이 올라가면 달러로 환산한 1인당 국민소득이 떨어져요(정치적으로 부담된다는 뜻). 또 환율에 대한 국민의 이해관계가 제각각이에요. 수입에 의존하거나 외국에서 돈 빌린 기업은 부담이 크고, 수출기업에는 혜택이 돌아가고. 정부가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절하지 못한 겁니다.”

    ▼ 김영삼 정권 들어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했고, 세계화를 주창하다보니 뭔가 활력 있는 분위기가 필요했던 것 아닙니까. 기업이 투자를 늘려 경기를 부양해야 정치적으로 도움이 될 테니까요.

    “환율을 다루는 재경부나 청와대 경제수석실 또는 한국은행 사람들이 정치적 계산을 하고 환율을 방어했는지는 모르겠어요.”

    ▼ 강 의장께선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고 보십니까.

    “환율을 결정하는 라인에 있지 않았으니 모르죠. 나는 재경부에 환율을 정치적으로 운영해서는 안 된다고 누차 얘기했어요.”

    ▼ 정부가 그렇듯 시장에 무리하게 개입한 것이 외환위기 발발에 중대한 원인을 제공한 것 아닌가요.

    “금융자율화가 좀더 일찍 진행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어요. YS 정부가 들어설 때 나는 경제기획원 차관보였어요. 당시 박재윤씨가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는데, 나더러 ‘신(新)경제계획’을 만들자고 해요. 그래서 ‘7차 5개년 계획이 있는데 뭘 또 만듭니까’라고 반문했더니, 이젠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개발계획은 그만두고, 시장에 맡기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했어요. 그거 말 된다고 했죠. 어떤 내용을 골자로 신경제계획을 만들 것인지 구상하라고 하더군요.

    내가 만든 보고서의 핵심은 금융개혁이었어요.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경영하고 경영성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게 금융자율화의 핵심이죠. 그래야 정경유착이 사라진다고 봤어요. 기업이 정치권에 손 벌리면 정치권이 금융기관더러 돈 빌려줘라 하는 게 정경유착 아닙니까. 그런데 청와대에선 금융에는 손대지 말라고 해요. 이것 없는 신경제는 의미가 없다고 싸웠어요. 이런 일이라면 나에게 시키지 말라고 했더니, 차관보 자리에서 쫓겨났어요.”

    ▼ 청와대에서 금융개혁은 안 된다고 주장한 이유는 뭡니까.

    “금융개혁은 경기가 풀린 뒤에나 해야 한다고 했어요. 새 정권이 들어선 1993년은 경기가 좋지 않았어요. 경기를 부양하는 게 급하다고 생각했겠지.”

    ‘비밀이 새나갔다!’

    ▼ 금융자율화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다는 점이 YS 정권에 부담을 주지 않았을까요. 정치헌금을 받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반대한 것은 아닙니까.

    “그건 모르겠고. 일단 경제상황이 나쁘니까, 금융자율화가 우선순위에서 밀린 거죠.”

    ▼ 그때 금융개혁이 이뤄졌다면 금융기관이 경쟁력을 갖출 시간을 더 많이 벌었겠습니다.

    “그럼요. 한 가지 더 얘기하면, 1994년에 세계화추진기획단장을 맡았을 때 일이에요. 세계화하려면 기업이 세계로 뻗어나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재벌의 지배구조가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복잡다단한 순환출자구조나 오너의 1인 지배 시스템으로 세계에 나간다면 위험하다고 봤어요. 그래서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세계화의 주요 과제로 삼았습니다.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인터뷰

    강봉균 정책위의장은 “지금은 질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제2의 구조조정기”라고 말했다.

    그런 쪽에 관심 있는 학자들을 불러 모으면서 우리가 논의하는 것을 비밀에 부쳐달라고 당부했어요. 근데 그게 새나갔어요. 누군가 재벌에 알려줬고, 재벌은 청와대에 고자질을 한 겁니다. 얼마 뒤 청와대에서 전화가 왔어요. ‘누가 그런 거 하라고 시켰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덮어버렸지.”

    ▼ 다시 아까의 질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YS 정부의 경기부양과 기업의 무리한 설비투자, 그로 인한 수입의 과대한 증가로 외환보유고가 고갈된 것 아닙니까.

    “YS가 기업더러 투자 많이 하라고 했다는 증거는 찾기 힘들 거요. 그때만 해도 대기업들은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신화 속에서 살았지. 망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빚이 늘어도 걱정하지 않았어요. 재벌들이 마구 영역경쟁을 했잖아요. 다른 재벌이 하는 것은 우리도 안 할 수 없다면서 삼성은 자동차산업에 진출하고 어느 그룹은 화학에 진출하고….”

    ▼ 재벌의 영역확장이 왜 그 시점에 집중됐을까요.

    “한두 해 현상이 아니었어요. 확장에 대한 욕망은 재벌의 본성이에요.”

    ▼ YS 정부가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성급하게 가입해 기업들이 앞 다퉈 영역을 확장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마치 선진국이 된 것처럼 행동했다고 할까요.

    과학성 없는 주장

    “경제협력개발기구가 우리에게 뭘 하라고 강요한 것은 없어요. 그게 문제는 아닙니다. 좀전에도 얘기했듯이 외환시장의 자율화 속도에 맞게 금융기관의 자율규제 능력을 키웠어야 했어요. 단기로 돈을 빌려서 장기로 빌려주는 행태는 변화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죠. 정부가 대책 마련에 소홀한 점은 있어요.”

    ▼ IMF 체제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1998년 이후의 상황으로 넘어가겠습니다. IMF가 요구한 고금리 정책은 무리였다는 불만이 많습니다.

    “그건 외환위기가 발생해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면 받아들여야 하는 일종의 교과서예요. 금리는 높이고, 환율은 절하하고, 재정은 대폭 축소해야 하는 게 기본이죠. IMF가 나서서 국제금융기관들에 ‘한국을 도와줘라’ 하려면 IMF가 요구하는 것을 정책으로 채택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고금리 정책이 나온 거고요. 그런데 중소기업이 줄줄이 도산했어요.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바꿔달라고 요구했고, 반영이 됐죠.”

    ▼ 정부가 고금리 정책을 통해 기업의 확장 욕구를 제어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이참에 재벌들을 길들이자는.

    “정부가 제어한 게 아니라 금융기관이 제어한 거예요. 예전에는 부실대출을 해도 은행장이나 임원이 옷을 벗는 일이 없었잖아요. 그런데 망하는 금융기관이 생기니까, 방만하게 운영했다가는 쫓겨나겠구나 싶으니까 대출 심사를 엄격하게 하고, 부실한 기업으로부터는 자금을 회수하게 된 거죠.”

    ▼ 대우그룹의 해체는 외환위기 이후 최대의 사건입니다. 대우 패망의 원인은 뭐라고 봅니까.

    “무리한 확장욕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모든 기업은 돈을 빌려서라도 사업을 확장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빌린 돈으로 투자한 것을 조직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데 대우는 그렇지 못했어요.”

    ▼ 1998년 초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은 정부에 400억달러 수출흑자를 달성해 IMF에서 빌린 돈을 갚겠다고 했습니다. 그 발상을 두고 논란이 많았습니다.

    “김 회장의 주장은 과학성이 없어서 나와 많이 다퉜어요.”

    ▼ 현실성이 없다고 판단한 겁니까.

    “김 회장은 수출은 늘리고 수입은 줄이겠다고 주장했어요. 그건 논리적으로 잘 안 맞아요. 특히 수입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 핵심적인 주장이었는데, 수입은 쉽게 줄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기업이 필요에 따라 해외에서 부품을 수입하는 것인데 어떻게 말립니까. 김 회장은 부품을 국산화하면 가능하다고 했지만, 국산품이 수입품보다 값싸고 품질이 우수해야 하는데 그게 단기간에 쉽게 되겠습니까. 국가가 수입을 마음대로 줄일 수 있다면 왜 국제수지 적자가 나겠어요.”

    위기극복은 시간문제?

    ▼ 그렇다면 대우그룹 해체는 필연이었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IMF 위기 때 유독 대우만 부실요인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현대도 상당한 부실요인이 있었고 다른 재벌 기업도 마찬가지였어요. 대부분 부채비율이 300%가 넘었고요. 그런데 차이가 뭐냐면, 다른 그룹은 이제 상황이 달라졌구나, 부실한 투자는 덜어내고 국내외 금융기관으로부터 신뢰를 받아야 돈을 빌릴 수 있겠구나 하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어요. 삼성도 신뢰를 회복하려고 알짜 사업부 일부를 매각했어요.

    그런데 대우는 하나도 안 팔아. 김우중 회장을 자주 만나 이렇게 얘기했어요. ‘내 생각뿐이 아니라 청와대의 생각도 그렇다. 대우가 어떻게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서 살아나기 바란다. 대우가 망하면 경제에 미치는 부담이 너무 크다. 노력해달라. 청와대에 잘 보이고, 도와달라고 해야 답이 나오는 게 아니다. 금융시장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 대우가 뭔가 달라지고 있구나 하는 몇 가지 증거만 보여달라.’ 그러자 대우가 힐튼호텔 등을 팔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제대로 실행을 못했어요. 예를 들면 대우가 교보생명 주식을 900억원어치나 갖고 있었는데, 그런 위험한 상황에선 팔아야죠. 그게 상식이지. 그런데 안 팔아요. 조금만 지나면 풀릴 것 아니겠냐며 위기극복을 시간문제로 본 것 같아. 아무것도 놓기가 싫었던 거지. 그러니까 시장에선 대우가 위험하다는 소문이 났고, 돈 빌려주는 금융기관이 없다보니 자금사정이 더 어려워졌어요.”

    ▼ 변화된 상황을 깨닫지 못했다는 얘기군요.

    “김 회장이 전경련 회장인데다 새로 들어선 권력이 도와줄 것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우리로선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는 형편이었어요. 그렇게 얘기해도 못 알아듣더라고. 내가 김 회장에게 ‘특혜금융을 바란다면 그건 안 된다’고 했어요.

    대우에 돈 빌려준 금융기관이 50개가 넘어요. 당시 금융기관은 밤낮으로 회의를 하면서 기업의 구조조정 플랜을 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 회장은 ‘정부가 금융기관에 3조원만 빌려줄 것을 지시해달라’, 또 나중엔 ‘6조원’을 빌려달라고 했어요. 내가 그랬어요. 한두 개 금융기관이면 몰래 불러서 지시하면 될지 몰라도 50개 금융기관을 불러 모으면 비밀이 유지되겠냐고. 그럼 또 청와대가 특정 재벌에 돈 빌려주라고 지시한다고 욕할 거 아닙니까. 그럼 한국 전체가 불신받는 상황으로 가는 거죠.”

    “그땐 전쟁이었어”

    ▼ 대우자동차만은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요. 김 회장도 그걸 간절히 바랐고요.

    “나도 그렇게 되길 바랐어요. 1999년 초 김 회장에게 대우의 주력기업은 자동차니까 자동차산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해달라고 했어요. 삼성자동차를 대우가 인수해서 운영하라고 했죠. 그래서 대우가 삼성자동차를 인수하려고 한 달 동안 경영진단도 했잖아요. 그런데 협상이 깨졌어요. 내가 그걸 성사시키려고 애 많이 썼어요. 깨진 원인은 (대우가) 삼성의 금융계열사를 통해 대우에 2조원의 돈을 대출해주고, 연간 50만대 생산하는 삼성자동차도 삼성그룹에서 소화해달라고 요구한 것 때문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니까 안 된 겁니다.”

    ▼ 가정입니다만, 지금 김 회장을 만난다면 무슨 얘기를 하겠습니까.

    “한 달 전쯤인가, 김 회장을 면회하고 왔다는 분을 만났어요. 경제기획원의 대선배인데, 김 회장이 내 얘기를 하더래요. 생각해보니까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대요. 당시 내가 한 말을 좀 새겨들었더라면 좋았겠다고 했답니다.”

    ▼ 강 의장께선 김 회장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미안하죠. 그때 나는 진심으로 대우를 살리고 나라 경제를 살릴 방법이 있다면 뭐든지 했을 거예요.”

    ▼ ‘미안하다’는 말의 의미는.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대우가 많은 기업을 일구고 양적으로 한국 경제에 기여한 것은 틀림없어요.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IMF가 터졌을 때, 상황이 어떻게 변했다는 얘기를 했을 때, 경청하고 뭔가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게 섭섭할 뿐이오.”

    ▼ 당시 대우가 뿌려놓은 해외 자산에 대해 정부가 야박하게 평가한 것은 아닌가요.

    “대우가 여러 나라에 투자한 것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재원은 어떻게 조달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어요. 파악이 안 돼요. 재경부에서도 문제의식은 있었지만, 정경유착의 시대엔 그냥 뒀죠. IMF 이후에도 대우 투자의 실체가 뭔지, 평가할 만한 정보가 없었어요.”

    ▼ 숱한 대기업이 문을 닫았고, 금융기관이 사라졌습니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재경부 장관으로 활동했는데, 지금 후회하는 것은 없습니까.

    “후회는 별로 없어요. 30년 이상 관료 생활을 했지만, 그때만큼 복합적이고 다급한 상황을 경험한 적이 없어요. 다른 나라에서도 유사한 경험을 찾기가 힘들었고요. 그런데도 개혁의 속도는 빨라야 했어요. 처음 해보는 거니까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당시는 전쟁이었어요.”

    투자의 이중구조

    ▼ 정경유착, 재벌의 선단식 경영, 불투명한 회계 시스템, 금융의 후진성 등이 외환위기 이후 드러난 문제였고, 상당 부분 치유됐다고 봅니다.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가 있다면.

    “제도나 법률은 다 정비됐어요. 그러나 기업과 은행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외이사제를 봅시다. 재벌이 투명경영을 하고, 오너가 독단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사외이사를 두고 있잖아요. 사외이사가 소액주주를 대변해서 기업의 의사결정을 감시하는 거죠. 그 취지대로 지금 대기업이 운영하고 있느냐 하는 점에선 안타까워요. 감시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거죠. 기업 오너와 친분이 있는 사람을 앉히는데 제대로 되겠어요. 금융기관도 마찬가지예요. 공적자금이 들어간 은행에서 사외이사제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국정감사 때 물어봤더니, 한 달에 한 번 회의 한대요. 10시에 회의를 시작해서 12시에 점심 먹으러 간다고 합니다. 은행의 가치를 올려야 할 사외이사가 그렇게 활동해서 되겠습니까.”

    ▼ 외환위기는 극복했지만, 경제성장의 동력을 잃어버린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이나 은행이 스스로 경영을 책임지는 시스템이 도입됐습니다. 이제부턴 정부의 책임이 아니에요. 법이나 제도, 명령으로 기업이 성장하는 게 아니에요. 이제는 내용적으로, 질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제2의 구조조정기에 들어섰다고 생각합니다.”

    ▼ 그러나 요즘 기업은 투자의욕을 상실한 채 손을 놓고 있습니다. 이유가 뭐겠습니까.

    “과거에 비해 기업이 영역을 넓히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변화된 모습인데…. 문제는 투자의 이중구조에 있어요. 몇몇 대기업만 투자하고, 중소기업은 투자하지 못합니다. 예컨대 현대자동차에 강력한 노조가 있으니까 정규직 임금을 많이 올려야겠고, 그러자면 하도급기업의 납품 단가를 깎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면 하도급기업에선 비정규직을 쓰게 되고, 임금격차가 생기죠. 투자도 못하고요. 그게 양극화의 원인이에요. 대기업 혼자 잘나갈 수 없어요. 도급 맡는 중소기업이 잘나가야, 그들도 투자해서 대기업에 좋은 제품을 납품할 수 있고 그래야 대기업도 삽니다. 대기업이 그런 노력을 소홀히 하는 것 같아요.”

    ▼ 정부의 역할은 없을까요.

    “정부보다는 노사관계가 우선이죠.”

    ▼ 대기업 노조가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해서 하도급업체 직원의 임금을 높여준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이익을 최대한 챙기려고 하는 게 사람의 본성 아닙니까.

    “대기업 경영진이 이익 중 일부를 떼어내 중소기업의 납품 단가를 올려주면 하도급기업도 좋은 인력을 확보해서 품질 경쟁력을 갖출 게 아닙니까. 그래야 대기업 처지에서도 완성된 제품의 품질이 개선될 거고요. 기업들도 그렇게 하고 싶어 하죠. 문제는 자사의 노조를 합리적으로 이끌어가는 리더십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 노사관계를 만들지 못해요.”

    핑계, 핑계, 핑계…

    ▼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지 못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요.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1960년대 이래 유지해온 시스템을 바꿨습니다. 각자의 책임과 자율은 강화하고, 정부의 역할은 확 줄였어요. 기업, 금융기관, 공무원의 사고방식을 바꾼 겁니다. 그 변화를 위한 제도적인 틀은 갖췄어요. 그럼 이제 각자 변화된 환경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은 단단해지지 않은 거라. 장기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은 채 회사 핑계, 노조 핑계, 정부 핑계를 대고 있는 겁니다.

    제조업엔 이미 국경이 없어졌어요. 중국 제품보다는 뭔가 뛰어난 것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해야죠. 농산물이나 수산물도 이젠 얼마든지 외국에서 들여와 먹잖아요. 임금이 싼 국가의 농민이나 어부가 내놓은 것과 다른 차이를 만들어야죠. 이런 게 시간이 걸리는 거요. 변화 중이라고 봅니다.”

    ▼ 집권당 정책위의장이라서 그런지 정부에 대한 비판이 너무 적은 것 같습니다.

    “비판하려면 많지. 특히 사회적인 갈등을 풀어 나가는 노력이 부족했어요. 누구든 떼를 쓰면 정부가 들어준다면 국민의 자율적인 인식과 행동을 방해하는 겁니다. 이게 이 정부의 흠이죠.

    파업을 해도 손해 보는 게 없고, 또 밑져야 본전이면 누가 파업을 안 하겠습니까. 파업 잘 하면 이익도 보고, 그럼 누가 안 하겠습니까. 정부는 바른 룰을 만들고 이를 엄정하게 지켜야 합니다. 정부가 게으른 사람과도 함께 가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 외환위기의 교훈은 한국이 제조업 강국에만 머물 게 아니라 금융 등 서비스 강국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도 있지 않겠습니까. 한국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IT 대기업도 나와야 하고요. 그런데 우리는 조선 강국, 반도체 강국에만 만족하고 있는 듯합니다.

    “물론 배만 잘 만든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겠죠. 다른 것들도 잘해야죠. 조선이든 반도체든 신기술로 값어치가 있는 것은 모두 잘해야죠. 금융이나 마케팅은 이런 제조업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야 하고요.”

    “선진국 청년들은…”

    ▼ 요즘 젊은이들과 얘기해보면 인생에 별다른 목적이 없는 거 같습니다. 승진욕이나 일의 성취욕도 찾아보기 어려워요. 반면 취미생활엔 광적으로 몰두합니다. 국가가 젊은이들에게 비전을 제시하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는 헝그리 정신이 있었어요. 또 확장경제였기 때문에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승진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배가 고프지 않아요. 또 확장경제가 아니어서 위로 올라갈수록 자리가 없어요. 경쟁은 치열하죠. 그러니 한 번 잘못하면 회사를 떠나야 합니다. 이런 변화 때문이겠죠. 그래서 이젠 미국이나 유럽처럼 자녀들의 교육만 책임지고 그 뒤엔 집에서 내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출산율이 낮아 자녀가 하나밖에 없는데 어떻게 매정하게 내쫓겠습니까.

    “선진국도 우리 같은 발전단계를 거쳤잖아요. 그런 나라들이 젊은이들에게 일하고 싶은 욕구를 불어넣기 위해 애쓰는 것을 우리도 이젠 배워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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