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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 한 번 받지 않은 서울대 합격생 수기

“혼자 힘으로 공부하려는 고집, 결코 헛되지 않았어요”

  • 이종준 서울대 인문계열 신입생

과외 한 번 받지 않은 서울대 합격생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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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시험 준비엔 수업만큼 확실한 공부가 없었다. 수학시험은 수업에만 의존해선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학원을 다닌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시중에 나와 있는 어려운 수학 문제집들을 사서 풀었다. 혼자 어려운 문제들을 풀다보면 해답을 봐도 이해가 안 되는 문제들이 더러 있다. 나는 우선 혼자 힘으로 풀어보려고 노력했고, 그중 몇 문제는 학교 선생님께 여쭤봤으며 나머지는 모르는 채로 넘어갔다. 여러 문제를 풀다보면 어떤 문제는 굳이 풀지 않아도 된다는 걸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꼭 문제를 풀어보고 싶다면 주위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주위의 도움이 결코 스스로 하는 공부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무엇이든지 나만의 방법으로 재구성하고, 확실히 이해했다는 생각이 들 때 비로소 온전히 나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외고 불합격의 得과 失

중3 때, 대원외고에 진학하고자 대치동에 있는 유명 학원을 잠깐 다녔다. 갑자기 외고에 가고 싶었던 것은, 외고 출신이 외국 대학에 많이 진학한다는 기사를 접했기 때문이다. 영상으로 접하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기억에 가장 또렷이 남은 것은 철저하게 학생 위주로 운영되는 대학 강좌다. 단 한 명의 학생이 수강신청을 해도 기꺼이 강좌가 개설되고, 교수도 열의를 갖고 강의하는 장면을 보았다. 한국 대학에서는 그런 여건을 갖추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외국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다.

학원의 수학과 영어 수업은 난이도가 매우 높았다. 오래전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입시에서 성공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이 고1 수준의 수학을 이미 배웠다는 전제하에 수업이 진행됐고, 영어는 수능보다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나마 영어 수업은 웬만큼 따라갈 수 있었는데, 수학 수업은 거의 따라가지 못했다.

역시 오랫동안 학원에서 외고 입시 준비를 한 친구들이 주로 합격했다. 나와 가족 모두 꽤 오랫동안 ‘불합격’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행히 그 충격은 중3 겨울방학을 알차게 보내는 계기가 되었고, 그 알찬 결실은 고등학교에서 확인됐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수학을 제대로 공부해보자고 마음먹고 ‘수학의 정석’을 샀다. 설명이 워낙 자세히 나와 있어 생소한 내용도 찬찬히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었다. 학원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더 꼼꼼히 살펴보려고 했다. 친구들이 대부분 넘겨버리는 기초적인 문제들도 묵묵히 다 풀었다. 모르는 문제는 책 뒤에 나온 해답을 베껴쓰면서 공부했다. 해답을 보는 것이 좋은 방법 같지는 않지만 10∼15분 동안 고민해도 도저히 풀 방법을 모를 때 해답의 명쾌한 풀이를 보면 우선 속이 후련했다. 한편으로 나는 그렇게 풀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책감과 함께 다음에는 나도 이렇게 풀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붙었다.

공책에 번호를 쓰고 푸는 식으로 해서 하루에 한 과씩 겨울방학이 지나가기 전에 고등학교 1학년이 배울 수학 내용을 모두 예습했다. 하루에 네댓 시간씩 수학 공부를 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 쓰기 시작한 수학 문제풀이 공책은 고등학교 3년 동안 16권이 되었고, 지금 그 공책들은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보물이다.

고등학교 첫 시험에서 평균 98점을 넘었다. 전교 7~8등의 성적이었다. 중학교에서 전교 20등 전후였던 것에 비하면 성적이 아주 좋아진 편이었다. 특별히 과외수업을 받거나 공부법이 바뀐 것도 아닌데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겨울방학 때 혼자 꾸준히 공부한 덕분이다. 그때 공부한 내용이 시험에 그대로 나와서가 아니라 공부를 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

성적을 크게 올릴 수 있었던 데는 같은 반 급우의 영향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우리 반에는 성적이 꽤 좋은 학생이 나를 포함해 3명이었는데, 서로에게 유익한 경쟁을 했다.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받으며 모두의 실력이 향상됐다. 1학년 때 본 4번의 시험에서 반 1등자리는 매번 바뀌었지만, 3명의 전교 등수는 꾸준히 높아졌다.

고등학교 1학년은 그렇게 잘 흘러갔다.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꿈은 TV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로 구체화했고, 문과를 선택해 2학년으로 올라갔다. 고2 여름방학 때 아리랑TV의 퀴즈 프로그램인 ‘Quiz Champion’에 출연했다. 교내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Dream, and realize’라는 글로 은상을 수상한 후 선생님의 권유로 친구들과 ‘MVPs’라는 팀을 결성해 출연했다. 모든 순서가 영어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1점 차이로 석패했다. 그러나 그저 영어를 좋아하는 내게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친구들은 큰 자극이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영어를 구사하는 일은 그야말로 필수적임을 깨달았고, 따라서 더욱 확실하게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고2를 마치고 고3으로 올라가면서 이런저런 고민이 생겼다. 학원에 다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회탐구 과목 중 한국근현대사와 국사를 인터넷 강의로 배웠다. 언어·수리·외국어영역은 내 방법대로 공부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고 믿었고, 경제와 한국지리도 스스로 공부할 자신이 있었다. 고3이 되기 직전에 본 모의고사 점수는 500점 만점에 420~450점이었다. 언어영역은 80점대 후반에서 90점대 초반을 왔다갔다했고, 수리영역은 시험에 따라 편차가 컸다. 80점대를 받을 때도 있었고 100점을 받을 때도 있었다. 외국어영역에서는 96점 아니면 98점의 점수를 꾸준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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