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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취재

필리핀 미군기지 반환사례로 본 의정부·동두천의 미래

현실 무시한‘장밋빛 비전’ 무참히 붕괴된 지역사회

  • 차두현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동아시아연구원 객원연구위원 lancer@kida.re.kr

필리핀 미군기지 반환사례로 본 의정부·동두천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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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 여파는 극복됐다?

미군 철수가 필리핀 국민의 자존심을 고양하고 국가의 상대적 위상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을지는 몰라도, 필리핀 정부는 이에 상응하는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주둔 기간 미군 당국은 필리핀 정부 다음으로 최대 인원을 고용한 고용주였다. 1988년 기준으로 미군이 직접 지출한 경비는 5억3000만달러 이상으로 당시 필리핀 전체 GNP의 1.6%를 차지했다. 직접적 비용 투입 이외에도 미국은 필리핀 경제성장에 대한 지원, 해외자본 유입의 보증인 노릇을 했다. 미군 철수로 인해 예상되는 직접 손실은 1992년을 기준으로 약 10억달러에 달한다는 추산이었다.

특히 클라크와 수비크 양대 기지 인근에서 미군을 상대로 생업을 영위하던 올롱가포, 디날루피안, 앙헬레스 지역 주민들은 기지 철수 예정일이 가까워오자 기지협정을 연장하지 않기로 한 정부의 결정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필리핀 정부는 미군 완전철수 이전에 인근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1992년 3월 ‘공화국 법률 제7227호’가 제정됐다. 반환기지 개발 및 민수(民需) 용도로의 전환을 위해 ‘기지전환청(Base Conversion and Development Authority·BCDA)’을 설립하고 수비크와 클라크 지역 개발계획을 수립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1993년 BCDA가 공식 출범했고, 수비크 지역은 자유무역항으로 지정됐으며, BCDA와 연계해 수비크지역의 개발을 담당할 ‘수비크만 관리기구(Subic Bay Metropolitan Authority·SBMA)’가 설립됐다. 클라크 지역에도 ‘클라크 개발센터(Clark Development Center·CDC)’가 설립되어 이 지역을 경제특구로 지정했다. 이들 기구에는 중앙정부의 특별 재정지원이 이뤄졌다. 그러나 기지전환 작업이 본격화하기까지는 이들 기구가 설치된 이후에도 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고, 반환 기지에 대한 마스터플랜이 마련된 것은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방대한 면적의 기지를 전환하는 데 필요한 재원의 조달이 필리핀 정부의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지 반환 후 14년이 지난 지금 필리핀 정부와 BCDA 등은 그 부정적인 여파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주장한다. 고용창출이나 부의 축적이라는 측면에서 주요 미군기지 지역의 경제는 이미 미군 주둔시기에 비해 나아졌으며, 장차 마스터플랜이 실현되면 동아시아의 물류 및 관광 거점으로 부상하게 되리라는 비전도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수비크 지역에는 쇼핑몰, 종합산업단지, 호텔, 리조트 등이 자리잡았다. BCDA는 미군 주둔 당시 2만명 안팎이던 고용인구가 2003년을 기준으로 5만여 명에 달한다고 설명한다. 수비크 지역에는 세계적인 물류유통회사인 페덱스의 아태 지역 허브가 자리잡았다. 클라크 지역의 경우 3개 공단을 포함한 제조시설, 농업단지, 레크리에이션 시설(카지노, 골프장 등), 국제공항 등이 입주했다. 미 공군이 쓰던 격납고도 필리핀 공군의 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장밋빛 비전의 이면

여기까지가 수비크에 체류하기 이전에 필자가 필리핀의 기지전환과 관련해 갖고 있던 배경 지식이다. 체류 기간 필자는 필리핀 정부가 제시한 비전과 통계자료가 실제 주민의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비교해보고, 이를 바탕으로 미군기지 재편을 앞두고 있는 우리의 경우, 특히 의정부와 동두천 등 경기 북부지역에 원용될 만한 교훈은 무엇인지 따져볼 생각이었다. 기지반환 이후 15년의 시간이 경과한 만큼 비전과 실제 사이의 괴리가 그리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가 깨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필자가 현지 주민들과 부딪치며 확인한 수비크와 클라크의 기지전환 현황은 결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것이었다. 현지에서 접한 각종 자료를 종합할 때 수비크 지역의 전반적인 개발현황은 2000년대 초반 상황에서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었고, 새로운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의 흔적 역시 찾기 힘들었다.

오히려 수비크 개발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는 페덱스 허브도 수년 내에 중국으로 옮겨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방대한 규모의 면세 쇼핑몰로 선전되고 있는 매장들은 우리 기준에서는 그저 그런 할인점에 불과하고, 종합산업단지에 입주한 공장들에서도 별다른 활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수비크 자유무역항 지구 내의 관광지는 물론 인근의 유명 관광지 역시 동남아 지역의 여타 경쟁지에 비해 경쟁력이 부족해 보였다.

클라크 지역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각종 해외기업의 투자가 줄을 잇고 있다는 선전과 달리 이 지역의 산업활동에선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수비크보다 다소 규모가 클 뿐 해외 구매자의 시선을 끌어들이기 힘든 그저 그런 매장들이 모인 면세구역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관광사업의 경우 1992년 이후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된 피나투보 화산으로 통하는 변변한 도로조차 개발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 같은 현상은 장기적인 개발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일시적 문제나 대형 개발사업에서 흔히 불거지는 초기 자본 유입의 지연 때문이 아니었다. 수비크와 클라크의 개발 비전이 많은 부분에서 과장됐거나 현실적인 문제점을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필자의 시각에서 필리핀의 기지전환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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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현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동아시아연구원 객원연구위원 lancer@kida.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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