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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 25

경의선 제7호 특급열차 뭉칫돈 도난사건

달리는 열차, 철통 보안 뚫고 벌어진 희대의 ‘완전범죄’

  •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경의선 제7호 특급열차 뭉칫돈 도난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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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제7호 특급열차 뭉칫돈 도난사건

베개 파는 소년이 차장 복장의 남자를 보았다고 증언한 당시의 삼등실 객차 내부.

오키모토 전무차장은 금촌역에 부릴 화물을 점검하기 위해 귀중품 화차를 나섰다. 금고 열쇠는 늘 허리춤에 차고 다녔다. 부산역을 출발한 이후 12시간째, 홍인상은 귀중품 화차에서 한 발짝도 떠나지 않았다. 쳐다보는 것만으로는 안심이 안 됐던지 금고를 의자 삼아 걸터앉아 있었다. 차창 밖 스산한 가을풍경이 어둠에 묻혀 사라지고 지루한 여행길 말동무가 돼준 오키모토마저 곁을 떠나자 갑자기 피로가 엄습했다. 기관차 쪽에서 날아오는 석탄 타는 냄새가 오늘따라 유난히 역하게 느껴졌다. 눈꺼풀이 스르르 감기다가 놀라서 눈을 뜨고, 졸음을 쫓으려 얼굴을 도리질 치기를 몇 번. 홍인상은 깜박 잠이 들었다.

제7호 특급열차는 일산역을 통과한 지 13분, 경성역을 출발한 지 56분 만에 금촌역에 정차했다. 오키모토 전무차장은 일반 화물칸 소하물 점검을 끝내고 귀중품 화차로 돌아왔다.

“아니 이 친구, 그 사이 졸고 있어?”

부산에서 펑톈까지 여정은 24시간이 넘었다. 한가할 때 조는 것은 눈감아줄 만한 일이었다. 상관에게 핀잔을 들은 홍인상은 졸음을 쫓기 위해 길게 기지개를 켰다. 기지개 한번 켜고 나면 웬만한 졸음은 달아나는데, 그날만큼은 머리가 어지러운 게 좀처럼 졸음이 가시지 않았다. 홍인상이 담배를 피우며 졸음을 쫓고 있을 때 금촌역 소하물 담당 직원 이태운이 귀중품 인출을 위해 서류를 들고 화차 안으로 들어왔다.

“아니, 왜 열쇠를 금고 위에 올려두셨어요?”



이태운의 한 마디에 얼음물을 끼얹은 듯 졸음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아닌게아니라 귀중품 금고 위에는 정체불명의 열쇠가 놓여 있었다. 오키모토 전무차장은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손이 갔다. 다행히 금고 열쇠는 허리춤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열쇠로 귀중품 금고를 열어보았더니 금고문은 거짓말처럼 열렸다. 눈대중으로 보기에 금고 안에 든 내용물이 없어진 것 같지는 않았다.

금촌역은 정차 시간이 짧아서 금고 내용물을 장부와 대조해가며 일일이 점검하기 어려웠다. 오키모토 전무차장은 일단 이태운에게 금촌역에 내릴 귀중품을 찾아주고는, 열차가 출발한 이후 전담 승무원 홍인상과 함께 내용물을 하나씩 점검했다. 수십 건의 귀중품 중 딱 하나가 비었다. 식산은행 본점에서 선천지점으로 보내는 귀중품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오키모토는 낙담해 주저앉았다. 겉면에 내용물이 표시되지 않아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은행에서 보내는 귀중품 소하물 중 열에 아홉은 현금이었다. 그것도 몇만원, 몇십만원대의 뭉칫돈이었다.

오키모토 전무차장은 도난사고 발생을 하루타 열차구장(총책임자)에게 보고하고, 다음 정차역인 개성역에 전보를 쳐 지원을 요청했다. 제7호 특급열차는 금촌역을 떠난 지 37분 만에 수십 명의 경관이 대기하고 있는 개성역에 정차했다.

현금 2만원이 잠깐 동안 정차한 금촌역에서는 없어질 겨를이 없었다. 처음 적재한 경성역에서도 역시 도난을 당할 겨를이 없었다. 홍인상이 잠깐 졸았던 일산과 금촌 사이 13분 동안 도난당한 것이라고밖에는 달리 추측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홍인상은 조는 동안에도 금고를 깔고 앉아 있었다. (‘미궁의 열차 도난 2만원 사건’, ‘신여성’ 1934년 4월호)


사건은 의문투성이였다. 우선 홍인상이 조는 동안 누군가 침입해 금고문을 열고 현금을 꺼내갔다면 어떻게 금고 위에 걸터앉아 있던 홍인상에게 들키지 않았는지 의문이었다. 홍인상이 등받이도 없는 금고 위에 걸터앉아 졸면서 그처럼 깊은 잠에 빠졌을 리 없었다. 더욱이 금고에 보관 중이던 귀중품에는 내용물이 표기돼 있지 않았고, 범인이 금고를 뒤지거나 포장을 뜯은 흔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범인이 금고에서 알짜만 콕 집어 빼내간 것은 내용물이 무엇인지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음을 의미했다. 범인이 만능열쇠가 아니라 사전에 준비해간 복제열쇠로 금고문을 연 것도 의문이었다. 오키모토 전무차장이 늘 차고 다니던 열쇠를 어떻게 빼돌려 복사할 수 있었는지, 그처럼 용의주도한 범인이 범행 현장에 복제열쇠는 왜 남겨두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단서를 종합해보면, 범인은 내부자거나 최소한 철도업무에 정통한 사람임에 분명했다.

꼬리를 무는 도난사고

사건이 접수되자 경의선의 모든 역에는 비상이 걸렸다. 개성경찰서에 수사본부가 설치됐고 경기도 경찰부에서 지원대가 파견됐다. 피해액이 큰 사건인 만큼 수사지휘는 경기도 경찰부 노무라(野村) 형사과장이 직접 맡았다. 오키모토와 홍인상, 이태운 등 사건에 직접 관련된 인물은 물론 제7호 특급열차 승무원 전원이 개성경찰서에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승무원 조사에서 결정적인 단서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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