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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의 전쟁’ 원작만화가 박인권의 사채업계 5년 체험

“아버지는 자살, 딸은 윤락가로… 사채는 암보다 무섭다”

  • 최호열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neypapa@donga.com

‘쩐의 전쟁’ 원작만화가 박인권의 사채업계 5년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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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깡패들에게 빌려준 돈은 못 받는다고 봐야죠. 깡패들이 돈 빌리러 왔다는 건 그냥 돈 내놓으라는 이야기예요. 그러면 사채업자는 동생들 앞에서 ‘가오(체면)’ 한번 세운 것으로 만족해야 해요.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어요. 갓 깡패가 된 녀석을 자기들끼리 ‘삐리’라고 부르는데, 삐리는 ‘칼침’도 놓아보고 감옥도 가보고 해야 ‘깡패 호적’에 오를 수 있어요. 그래서 경험 삼아 두목이 지목하는 사람에게 칼침을 놓기도 하는데, 돈을 안 줬다가 재수 없으면 그 연습대상이 될 수도 있어요. 그게 무서워서라도 돈을 주는 거죠.”

깡패는 사채업자를 등칠 뿐 아니라 직접 사채를 놓기도 하는 모양이다. 주 대상은 유흥가와 윤락업소의 여성들이라고 한다. 이쪽 여성들에게 돈을 꿔주면서 업주에게 인보증을 서게 한다. 업주들은 이를 반긴다. 사채 때문에라도 깡패들이 감시를 해주기 때문에 여 종업원 관리가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 곳엔 일반 사채업자는 명함도 못 돌려요. 자기네들끼리 해먹는 거죠. 그 여성들이 왜 사채를 쓰냐고요? 명품 사고 성형하느라 돈이 필요하니까요. 허한 마음을 그렇게 푸는 거죠.”

깡패 사채업자에게 유흥업소 여성이 ‘봉’이라면 일반 악덕 사채업자에게 최고의 봉은 공무원, 군인, 교사라고 한다. 이런 직업군(群)의 사람이 사채를 빌린다면 대개 도박에 빠진 경우라고 한다.

“원래 돈을 빌려주면서 용도를 묻지 않는 게 이 세계 철칙이에요. 하지만 공무원, 교사, 군인들에겐 넌지시 용도를 물어보고 감을 잡아요. 도박 때문이다 싶으면 원하는 대로 100% 빌려줘요. 그리고는 확실하게 뜯어먹죠. 폭력도 서슴지 않아요. 도박 사실이 밝혀져 직장을 잃게 될까봐 신고도 못해요. 법도 무용지물이죠. 이들에겐 고리(高利)의 이자만 뜯는 게 아니에요. 가령 ‘당신 만나러 가다 교통사고가 나 차 수리비가 300만원 들었다’며 내놓으라고 해요. ‘그걸 왜 내가 물어줘야 하냐’고 따지면 ‘그러면 당신네 학교 교장에게 받아야겠네’ 하는 식으로 협박해요. 보통 1000만원 빌려주면 700만원은 뜯어낸다고 봐야죠.”



신문을 보면 종종 몇백만원의 사채를 썼다가 1억원 넘게 뜯긴 경우를 보게 된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아무리 고리라 해도 이자만 가지고 그렇게 불어날 수는 없죠. 그런데 악덕 사채업자들끼리 서로 팔아넘기는 수법이 있어요. 그런 식으로 빚을 불려요. 특히 남편 몰래 사채를 쓴 여성의 경우 신고할 확률이 낮으니까 머리채를 휘어잡는 등 폭언과 협박을 하면서 극도의 공포감을 조성해요. 그런 후에 돈을 빌려줄 다른 사채업자를 슬쩍 소개하면 지금의 시달림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얼른 그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리죠. 그러면서 갚아야 할 돈이 두 배로 늘어나요. 그렇게 몇 번 팔리다 보면 몇백만원이 1년 만에 1억원을 넘어가기도 합니다.”

여성은 ‘걸어다니는 담보’

박 화백은 사채에서 제일 위험한 게 인보증을 서는 것이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담보가 없으면 처음부터 인보증을 요구하기도 하고, 이자를 못 갚을 때 이자를 유예해주겠다며 미끼로 인보증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절대 여기에 넘어가면 안 된다는 것.

“제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젊은 여성들이 많이 당해요. 인터넷에 ‘여성전문대출’을 앞세운 대부업체가 있을 만큼 여성에게는 무조건 돈을 빌려주는 데가 많아요. 물론 건전한 곳이 대부분이겠지만 개중에 위험한 곳이 적지 않아요. 여성은 ‘걸어다니는 담보’라고 할 수 있어요. 유흥업소로 보낸다든지 하면 바로 현금으로 ‘환전’할 수 있으니까요. 또 채무자 당사자는 물론 가족들을 협박하기도 쉽고요.”

특히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여대생들은 인보증을 서달라고 매달리는 친구의 간절한 요청을 거절하기 힘들어한다. 그래서 우정이란 이름으로 보증을 섰다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제 만화를 본 한 여성이 하소연을 해왔어요. 성형수술을 하려고 200만원을 빌렸다가 결국 친구 3명을 인보증 서게 만들어 모두 유흥업소까지 가게 됐다고요. 악덕 사채업자들은 인보증을 받아서 한 명에 2000만원씩 받고 유흥업소에 팔아넘겨요. 말은 ‘알바(아르바이트)라도 해서 돈을 갚으라’는 거지만 유흥업소에서 하는 일이 알바라고 다른가요. 더구나 빚에 얽매여 있으니 업주가 시키는 대로 해야죠.”

성형수술이나 명품을 사기 위해 사채를 쓰는 젊은 여성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생각보다 많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이 2006년 말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부업체 이용자의 절반이 20대 여성이었다.

“문제는 사채를 쓴 여성이 빚 독촉에 몰린 후에야 가족들이 알게 된다는 거예요. 당연히 부모로서 화가 나겠죠. 하지만 이미 딸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친구들도 다 잃고, 사채업자에게 시달릴 대로 시달려 정신적 공황에 빠진 상태예요. 그럴 때 야단치고 다그치면 제 발로 유흥업소에 들어가든지 자살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쉬워요. 일단은 보듬어줘야 해요. 돈 잃고 나서 딸까지 잃을 수는 없잖아요. 아버지가 사채를 써서 그런 상황이 됐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가족이 포용해줘야 합니다.”

그는 “사채를 쓰지 않고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는 게 제일 좋지만 어쩔 수 없이 사채를 썼다가 피해를 봤다면 서슴지 말고 관계기관에 신고하고 상담을 받으라”고 충고했다. 가족이 알게 되는 게 두려워 속앓이만 하다 보면 사태를 더욱 키울 뿐이라는 것.

“그게 더 이상의 피해를 막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스스로 해결하려고 악덕 사채업자들이 시키는 대로 하다 보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듭니다. 일단 사채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사채업자의 말로

문득 사채업자의 말로가 궁금했다. 그렇게 서민의 피눈물을 빨아먹고 그들은 떵떵거리며 잘살까.

“사채업 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큰돈을 벌었다고 하는데, 알고 보면 대부분 망했더라고요. 많은 사채업자가 어떤 식으로든 큰돈을 떼이게 되니까요. 찜질방을 전전하며 발발이(사채업자 대신 돈 받으러 다니는 사람)나 박카스 파는 일(도박장에서 급전 꿔주는 사람)을 하는 사람도 많아요. 탈법을 해서 감방 가는 사람도 있고요. 그렇지 않은 사람도 대부분 가정이 파탄 직전이에요. 돈 안 갚는 채무자들 찾으러 밤낮 없이 나다니려니 가정을 제대로 돌볼 수 없죠.”

사채업자들 중에 금나라처럼 의롭게 돈을 받아내는 사람도 있을까. 아쉽게도 그런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그렇게 했다간 망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마음 약한 사람은 사채시장 바닥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가 처음 취재를 시작한 게 2002년부터였다고 하니 벌써 5년이 지났다. 그동안 사채시장은 어떤 변화가 있을까.

“많이 순화됐다고 봐야죠. 하지만 안타까운 게, 2002년경엔 경제인구 3200만명 중에 금융권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사람이 400만명이었는데 지금은 700만명으로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추산되고 있어요. 부동산투기를 잡는다고 은행대출을 엄격히 한 것이 애꿎은 서민층을 사채시장으로 몰아넣은 셈이 된 거죠.”

그는 사채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사채는 암보다 더 무서운 겁니다. 사채를 쓰는 건 자신의 신체 일부를 잘라내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액수에 따라 손가락이, 손목이, 또는 다리가 이미 잘려 나간 것이라고요. 그만큼 사채는 위험합니다. 악성 사채업자들로부터 서민이 보호받는 그날까지 저의 ‘쩐의 전쟁’은 계속될 겁니다.”

신동아 2007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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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열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neypa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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