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호

‘풍수박사’ 최창조가 들려주는 재벌과 풍수

워커힐 억센 기운에 맞선 최종현, ‘명당’ 아니면 공장부지도 바꾸는 이건희

  • 이은영 신동아 객원기자 donga4587@hanmail.net

    입력2007-07-10 10: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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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수박사’ 최창조가 들려주는 재벌과 풍수
    의외였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풍수이론가 최창조(崔昌祚·58)씨가 서울 구로동에 살고 있다는 것이. 풍수의 대가답게 배산임수(背山臨水), 즉 ‘산에 등을 기대고 앞에 물을 향하는 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살 줄 알았다.

    최창조가 누구인가. 풍수를 본격적으로 공부해보겠다고 1992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자리를 박찬 그가 아닌가. ‘자생풍수’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풍수를 대중화한 주역이다. 그간 ‘한국의 자생풍수’(1997), ‘북한 문화유적 답사기’(1998), ‘땅의 눈’(2000), ‘풍수잡설’(2005), ‘닭이 봉황 되다’(2005) 등 15권의 베스트셀러를 썼다.

    최근 그는 ‘도시풍수’라는 책을 통해 “나 이제 풍수를 떠나야겠다”고 말했다. 풍수에 미쳐 잘 가꾼 정원 같은 대학사회를 나와서 들판의 잡초 바닥을 샅샅이 돌더니 불현듯 ‘명당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를 만나러 가는 6월11일은 초여름을 알리듯 태양이 뜨겁게 작열했다. 신도림역에서 내려 구로5동까지 걸어가는 동안 내내 의문스러웠다. 풍수의 대가께서 왜 이토록 복잡한 시가지, 그것도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걸까?

    현관문을 여는 순간, 의문이 사라졌다. 거실은 난초로 빼곡했다. 그가 “단칸방에서도 명당을 찾을 수 있다”면서 “거울이나 커튼, 화분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걸 놓고 정을 붙이고 살면 그곳이 바로 명당”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땅의 氣는 나무가 자라는 만큼 올라가

    ▼ 베란다 쪽으로 나무가 보여서 아파트라는 느낌이 전혀 안 드는 군요.

    “(아파트) 1층의 장점이죠. 대체적으로 땅의 기(氣)가 나무가 자라는 만큼 올라가요. 잠실에 있는 아시아선수촌아파트는 나무들이 키가 커서 5층까지 올라가더군요. 땅의 기운이 좋은 거죠. 요즘은 전통적 풍수개념으로 해석할 수 없어요. 생활환경이 그만큼 달라졌잖아요. 고전적 풍수의 이상향인 영월이나 삼척에 가서 살면 좋겠지만 저 역시 못 견딜 걸요(웃음).”

    ▼ 구로를 선택한 건 의외입니다.

    “구로가 어때서요. 구로(九老)는 ‘아홉 노인네가 장기를 두고 있는 곳’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데, 할 일 없는 노인들이 모여서 장기를 두는 곳이니 ‘별 볼일 없는 동네’라는 의미였어요. 공단이 할 일을 만들어준 셈이지요. 제가 ‘구로’를 선택한 이유는 딱 한 가지예요. 돈이 부족했거든요. 돈에 맞춰서 마음에 드는 집을 고른 셈이죠. 그런데 와보니 좋았어요. 제겐 명당입니다.”

    도시 속에서 명당 찾을 때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서울대를 그만둔 이후인 1993년, 그간 살던 112평 단독주택을 팔아서 관악산 바로 아래 빌라를 샀다고 한다. 당시 2억9000만원. 8년 후 구로 쪽으로 이사하기 위해 이 빌라를 1억8000만원에 팔았다. 서울에서 8년 만에 집으로 1억원을 손해 본 셈이다. 풍수를 대중화했는지는 몰라도 ‘집테크’와는 거리가 먼 인생인 듯했다. 그는 “8년간 살았으니 땅값을 치렀다고 생각한다”면서 천상병의 시 ‘땅’을 읊으며 이런 얘기를 했다.

    “천상병 시인은 ‘땅을 가지고 싶지만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했어요. 땅에 대한 정의를 이토록 정확하게 말한 시가 없어요. ‘땅을 사기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건 정말 명언입니다. 욕심이 없기로 소문난 시인이 왜 땅을 가지고 싶었을까요. 복 받고 싶어서가 아니었어요. 나무 가꾸고 꽃을 심겠다는 소망 때문이었죠. 이것이 본래 인간이 땅을 가지려는 이유입니다.”

    풍수 용어 중에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배산임수’다. 그는 배산임수를 “터를 가림에 있어서 반드시 그 풍기(風氣·지세의 기운)가 모이고 전면과 배후가 안온하게 생긴 곳”이라고 설명했다.

    “도시화로 풍수는 이제 의미가 없어요. 작년에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 도시화 비율이 80.8%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더군요. 전 국토의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는 거죠. 전통적 풍수는 농촌을 대상으로 생겨난 땅 개념입니다. 요즘은 개발로 백두대간이 다 끊어지고 갈라졌잖아요. 자고로 ‘군자가 되면 시장 속에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도시 속에서 명당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 명당이 도시화로 다 파괴됐다는 건가요.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는 거죠.”

    ▼ 답답한 결론이네요. 그래서 풍수를 떠나겠다고 하신 건가요.

    “전통적 명당 찾기를 떠나겠다는 겁니다. 풍수는 객관화할 수 없어요. 사람마다 기분이 다르고 기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애매하면 기로 설명하는데 기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긴 참 어렵습니다. 땅과 기운을 주고받는 건 사람마다 달라요. ‘안온하면서도 기운이 서린 곳’이 풍수가 찾고자 했던 땅입니다. 그런데 ‘안온하다’는 건 객관적일 수 없잖아요. 개인의 직관입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라는 노래가 있어요. 상식적으로 ‘기찻길 옆에서 아기가 잘 수 있나’ 싶겠지요. 하지만 아기한테는 그곳이 명당인 겁니다.”

    명당은 자궁 같은 곳

    그는 “땅을 사람 대하듯 해야 한다”면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입지조건 외에 왠지 마음을 잡아끄는, 혹은 떠미는 듯한 땅이 있다”고 했다. 그런 땅을 사서 마음의 평온함을 찾고 자신감을 얻는다면 그 땅이 바로 자신에게 명당이라는 논리였다.

    “명당은 여성의 자궁 같은 곳입니다. 그런 땅에서 살면 마음이 편해지고 가족이 행복하게 되니까 다 잘된다는 이치입니다. 땅 고르는 것이 배우자 고르는 것과 흡사해요. 눈에 딱 들어오는 땅이 있거든요. 또 자신에게 맞는 땅이 있어요. 마음에 드는 거죠. 요즘 사람들, 욕심 때문에 무리하게 집 사고 땅 사잖아요. 결코 평온할 수 없습니다.”

    그는 또 “전통 풍수에서 말하는 명당의 의미가 요즘도 적용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고 했다.

    “조선시대 실학자 홍만선은 ‘청룡(남향을 기준으로 동쪽)에 물, 백호(서쪽)에 길, 주작(남쪽)에 연못, 현무(북쪽)에 언덕이 있는 곳이 좋은 터’라고 했어요. 풍수의 교과서인 ‘금낭경(錦囊經)’에서는 청룡(동쪽)엔 뱀이 꿈틀거리며 나아가는 모양의 완만한 산이, 백호(서쪽)엔 호랑이가 사납지 않게 비굴하리만큼 납작하게 엎드린 정도의 산이 있는 것이 명당 형세라고 했어요.

    일리가 있습니다. 청룡(東) 쪽 산이 백호(西)보다 높고 웅장할 것을 요구하는 표현인데, 해뜰녘 햇살은 여름철에도 그리 강렬하지 않으니 차단해줄 산세가 필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해질녘 서쪽 태양이 매우 뜨거워서 그 햇살을 가려줄 정도의 백호세가 필요한 거죠. 요즘 사람들도 참고할 만해요.”

    ▼ 전통적인 풍수로 봤을 때 우리나라의 명당 자리는 어딘가요.

    “삼척 대이리 골말이 명당에 해당하지요. ‘정감록’에 ‘태백산에는 삼재(전쟁, 가뭄, 돌림병)가 들지 않는 궁해염지라는 이상향이 있다’고 적혀 있어요. 골말 마을을 두고 한 얘기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승지의 땅이죠. 험준한 산악지대라서 논은 없고 옥수수, 감자를 부쳐 먹던 화전민의 마을이었어요. 대이리 입구에서 산허리를 꼬불꼬불 돌아 30리를 들어가면 폭 패인 땅이 있어요. 바로 골말입니다. 마치 어머니의 자궁 속 같은 모양의 땅이죠. 제가 세상에 알려 관광지가 돼버렸어요. 큰 실수를 했어요.”

    ▼ 명당이라면 골말 마을에서 인재를 많이 배출했겠군요.

    “그렇지 않아요. 땅으로 부(富)와 권력을 욕심 부려선 안 됩니다. ‘인재가 많이 나왔다’는 마을은 심리적인 영향 때문입니다. 어떤 마을에선 판·검사가, 어떤 마을에선 장군이 많이 나올 수 있어요. 한 사람이 고시에 합격하면 자극을 받겠죠. 옛날에는 더욱 그랬을 겁니다. 요즘 강남이 그런 식이지요. 골말 마을에서 인재를 가장 많이 배출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잖아요. 땅도 사람 잘 만나 팔자가 달라질 수 있어요. 부자가 모이면 부(富)한 땅이 되는 거죠. 전통적 풍수이론이 결과를 놓고 갖다 붙이는 경향이 있어요. 명당과 인재는 인과관계가 전혀 없어요. 출세는 사람이 할 일이지 땅이 도와주는 건 아닙니다.”

    압구정동은 ‘변기’에 해당

    ‘풍수박사’ 최창조가 들려주는 재벌과 풍수

    최창조씨는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고 말했다.

    ▼ 대통령이나 기업인이 태어난 생가는 특별하지 않을까 생각하잖습니까.

    “그렇진 않아요. 다만 ‘생명이 잉태되는 순간의 장소가 어디냐’의 문제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진 않았지만 영향을 받아요. 좋은 땅, 나쁜 땅은 없어요. 하지만 사람마다 인생의 가치관이 다를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은 고관대작이 꿈일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부자가 되고 싶을 수 있는 거죠.

    땅의 기(氣)에 따라 사람의 성향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어요. 기가 센 땅에선 권력지향적인 사람이 태어나고, 온화한 땅에서는 문학 쪽 인재가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자들은 기가 요동치는 땅에서 태어난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아무리 좋은 집터인들 아기 낳을 엄마 심리보다 더 중요하겠습니까. 엄마가 행복했던 순간 잉태되는 게 가장 좋은 거죠. 만약 시댁에서 피곤하고 기분이 안 좋은데 잉태됐다면 안 좋겠지요. ‘하필이면 거기서?’ 하고 생각한다면 최악의 선택이 아닐까요.”

    그는 “땅이 사람의 몸 구조와 흡사하다”고 했다.

    “서울의 지세가 전형적인 풍수 모양입니다. 서울의 명당수가 청계천이에요. 청계천을 사람에 비유하자면 입에서 항문까지로, 통로로 볼 수 있어요. 청계동천이니 옥류동천이니 하는 발원지는 바로 입(口)에 해당됩니다.

    정부청사, 광화문, 미 대사관, 무교동 일대가 상류입니다. 위와 소장에 해당됩니다. 하류는 예전의 세운상가에서부터 청계 6, 7, 8가로 대장에 해당돼요. 중랑천과 한강이 합류하는 뚝섬 인근은 항문에 해당됩니다.

    강 건너 압구정동은 변을 받아내는 변기에 해당되는 셈이죠. 땅의 성격과 사람의 쓰는 기능이 똑같아요. 정부청사와 대기업 본사가 몰려 있는 상류에서 영양분이 집중적으로 흡수되는 식입니다. 하류로 내려오면서 중고품상 헌책방 등 싼 물건을 팔고 있고 항문 부근에는 하수처리장이 자리를 잡고 있어요.”

    그는 풍수에서 땅만큼이나 집 안의 구조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통적 풍수에서 음택, 양택, 양기 등을 중요시했다면 요즘은 인테리어 풍수가 뜨고 있다. 환경심리학적 면을 고려한 건축학, 조경학 등이 바로 이에 해당된다.

    “인테리어 풍수도 객관적일 수 없어요. 유행에 목매지 말고 각자 취향대로 꾸미면 됩니다. 특히 아이의 특성을 최대한 존중해줘야 해요. 어질러놔야 하는 성격이 있고 정돈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 있어요. 손님을 위한 공간을 제외하곤 각자 스타일대로 꾸미도록 해야 합니다. 어질러놔야 하는 아이는 혼란함 속에서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스타일이기 때문입니다. 체질에 따라 일하는 시간대가 다르듯이 집 구조도 주관적 명당론에 맞춰야 해요.

    사람들이 모두 산을 좋아하지는 않잖아요. 산에 올라가는 무리가 있고, 올라가지 않고 산 밑 주막촌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싶어하는 무리가 있어요. 취향대로 마음의 평온을 찾아다니게 되거든요. 자주 가는 식당이 있어요. 그곳이 자기와 맞는 곳입니다.”

    “후손이 뭘 하는지 파악하라”

    ▼ 집 인테리어 풍수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입니까.

    “건축가 김중업씨는 ‘집구석에서 울 곳이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굉장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몸에 대소변 배설구가 있듯이 집에도 배출구가 있어야 해요. 옛날엔 다락방이 그런 공간이었어요. 아이들은 야단맞으면 방으로 가면 되지만, 요즘 남자들, 거실로 베란다로 쫓겨나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졌어. 안방은 아내의 전용 공간이 돼버렸어요.”

    ▼ 조선시대 가옥에선 사랑방이 남성의 전용공간이었지요.

    “조선시대 가옥구조를 보면 여성이 명백히 상위였어요. 운현궁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대부인(민씨)이 머물던 안채가 대원군의 사랑채보다 더 높아요. 안채의 돌계단이 사랑채보다 한 계단 더 높거든요. 조선시대 안주인들은 곳간 열쇠를 쥐고 있어서 재산권에서도 우위였어요.”

    ▼ 집 인테리어를 할 때 오행(五行)을 참고하면 좋다고 하던데요.

    “도움이 된다면 되는 거죠. 오행은 천지조화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중요 도구입니다. 서양인은 오행을 다섯 가지 요소로 해석하는데, 잘못된 거예요. 계절은 변화하고 공간은 주체에 따라 좌우상하로 변질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것이 불변의 요소가 아니라 움직임인 행(行)이지요. 인테리어를 할 때 각자 오행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수(水)가 부족하면 어항을 둔다거나 목(木)이 부족하면 나무를 심는 식이죠. 그렇게 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믿음이 생기면 하라고 권해요.”

    명당을 논할 때 묘터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음택 풍수 저변에는 발복(發福)을 기대하는 미신이 자리잡고 있다. 최창조 교수는 산소 자리잡기 풍수를 완강히 부정했다.

    “‘묘터를 잘 써서 자식이 잘 된다’는 건 어림도 없는 말입니다. 지관들의 후손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조사해보면 알 수 있겠지요. 장관과 부자가 수두룩하게 나왔을까요? 그렇진 않아요. 조선 영조 때 성호 이익 선생이 전주 감찰사로 부임해 민묘를 이장해야 할 일이 있었어요. 난리가 났죠. 이익 선생이 지관을 모아놓고 ‘후손이 뭘 하고 있는지 파악하라’고 지시를 내렸어요. 실학자들은 실증적 자료에 의거했던지라 좋은 산소를 쓴 사람들의 후손을 파악하고자 했던 거죠. 그 결과 자손이 적어도 참판을 해야 할 묏자리인데 손자가 종적을 감췄고, 묘가 안 좋아서 대(代)가 끊겨야 하는데 멀쩡하게 벼슬을 하고 있더랍니다. 풍수가 얼마나 허망한지를 알려주는 얘기지요.”

    시신은 빨리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 묘를 잘못 쓰면 시신이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일이 있다고 들었어요.

    “귀신이 곡할 일이 벌어집니다. 심하면 시신이 뒤집혀버리거나 돌아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그건 묘를 잘못 써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땅이 그런 거죠. (우리나라 땅은) 표토가 깊지 않고 매스 웨이스팅(mass wasting·토지가 이동하는 현상)이 심해요. 시신을 매장한 이후 땅속이 움직여 묘 봉분 밑에 있지 않고 도망가거나 곽이 뒤집히는 걸 ‘도시혈(逃屍穴)’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침수지형이라 풀이나 나무뿌리가 잡아주지만 토양이 4면 이동을 할 수 있어요. 토양 입자 하나하나의 운동이 달라서 소용돌이가 되는 경우도 있고…. 어디에서든 약간의 움직임이 있어요.”

    ▼ 왕릉에 묻힌 시신들은 움직이지 않잖아요.

    “깊게 파서 그렇습니다. 임금 왕(王)자에 열십자가 있잖아요. 풍수지리설에 따라 북현무, 남주작, 좌청룡, 우백호로 둘러싸인 곳 끝머리에 황룡이 있는 곳이 왕릉터였어요. 보통 자기 키 정도 깊이로 묘터 땅을 파는데 왕을 묻을 땐 5~6자 이상 파 들어가요. 자기 키 이상 들어가면 잘 안 썩거든요. 흉당으로 벌레가 나오는 ‘충렴’, 수맥이 흐르는 ‘수렴’, 시체가 없어지는 ‘도시혈’을 들 수 있어요. 흉당이기보다 땅을 얕게 팠기 때문입니다. 얕게 파면 물이 스며들고 벌레가 모입니다. 왕릉은 깊게 팠기 때문에 시신의 부패 속도가 느리고 움직이지 않는 것뿐입니다.”

    ▼ 일반적으로 묘터로 좋은 땅은 어떤 곳입니까.

    “원칙적으로 좌우 앞을 아늑하게 감싸주는 곳이죠. 남향을 원하고 수맥을 피하죠. 전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장묘 문화에 반대해요. 한번이라도 이장(移葬)하는 걸 본 사람은 화장을 원해요. 정말 끔찍하거든요. (시신은) 인공을 가하더라도 빠른 시간 내에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게 좋아요. 그런 의미에서 수목장을 권하고 싶어요. 화장을 해서 유골을 나무나 꽃 밑에 묻는 겁니다. 영국에서는 주로 꽃에, 독일과 스위스는 나무에 시신을 묻는다고 해요.”

    ▼ 일전에 고(故) 정주영 회장의 묘터인 경기 하남시 창우동 장지가 명당이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말한 적 없습니다. 가보지도 않았어요. 어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기자들이 그냥 제 이름을 넣어 썼겠지요.”

    “워커힐은 풍수지리적으로 안 좋아”

    ▼ 유명 기업인들이 묘터 봐달라고 연락하지 않습니까.

    “기업인들은 묘터에 별로 안달하지 않아요.”

    그는 풍수지리에 아랑곳하지 않는 재벌가로 SK그룹을 꼽았다.

    “최종현 회장은 제가 서울대를 그만뒀을 때 처음으로 저를 도왔던 분입니다. 처음에 재벌이 만나자고 하기에 ‘뻔한 일’인 줄 알았어요. 산소 자리 봐달라고 하겠지 싶었어요. 손길승씨가 저를 찾아왔더군요. 자연스럽게 SK그룹에 강사로 초빙됐어요. 최 회장과 인연이 닿아 그 집에 가보았어요. 최 회장이 살던 워커힐호텔 구내에 있는 빌라는 풍수지리상 별로 좋지 않은 터였어요. 남한강과 북한강이 양수리에서 만나 광나루 쪽을 찌를 듯 달려드는 살벌한 곳이었어요. 본래 큰물이 집 쪽으로 쏟아질 듯이 몰려오면 기가 너무 세거든요. 젊은 사람도 이기질 못합니다. 심리적으로 공포감이나 두려움을 유발할 수 있어요. 그때 최 회장은 암 투병을 하실 때였어요.”

    최 교수가 “집터가 좋지 않다”고 말하자 최 회장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수많은 사람을 데리고 일합니다. 풍수 때문에, 그것도 물 때문에 굴복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겨낼 수 있다고 봅니다. 사람이 제일 귀한데 어찌 땅과 물의 기운에 눌릴 수 있겠습니까.”

    “최 교수가 안 된다면 안 된다”

    일반인도 ‘집터가 좋지 않다’고 귀띔하면 찜찜해서라도 집을 옮길 법한데, 최 회장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평소 기 수련을 좋아한 분이라 풍수에 귀기울이리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더군요. 그분은 ‘집이란 잠시 머물다 떠나는 곳’이며 ‘유목민의 이동식 천막’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만일 제 말을 듣고 이사했다면 그분을 존경하지 않았을 거예요. 산소호흡기를 달고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데도 ‘능히 이겨낼 수 있다’고 말씀하니 참 존경스럽더군요.”

    ▼ 그렇다면 최 회장은 집터 때문에 사망했다고 봐야 하나요.

    “그렇진 않아요. 최 회장은 그 집안에서는 꽤 장수한 편에 속했어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풍수이론을 직원들을 위해 참고하는 편”이라고 한다. ‘터가 안 좋다고 소문나면 직원들이 잡생각을 하고 결국 사고로 이어진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는 것.

    “이건희 회장과 몇 번 공장 부지를 보러 간 적이 있었어요. 이미 결정된 부지인데 제가 ‘아닙니다’라고 말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와버립니다. 임직원들이 회장이 온다고 잔칫상을 준비했는데 저로선 정말 난감한 일이었죠. 이 회장은 ‘최 교수가 안 된다고 하면 안 된다’는 식이었어요.”

    ▼ 이건희 회장은 공장 부지를 고를 때도 명당을 찾았다는 얘기군요.

    “명당이다, 아니다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터가) ‘안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 직원들의 심리에 나쁜 영향이 미칠까 걱정해요. 평온함을 찾는 것이 명당론이라면 이 회장은 정확하게 생각하는 거죠. (터가 안 좋다는) 소문이 나면 공사하다가 인부가 다칠 수 있거든요.”

    ▼ 삼성가(家)의 가족모임에 자주 초대받으신다고 들었어요.

    “서너 번 갔다 왔어요. 주로 평창에 있는 피닉스파크 이 회장 방에서 식사를 했어요. 이 회장은 임직원들이 술 마시는 건 싫어하는 편인데 저에겐 포도주를 권하더군요. 저는 막걸리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와인을 막걸리 마시듯이 비워냈어요. 그랬더니 종업원이 아예 제 뒤에 서서 따라주더군요. 제가 불편해하니까 부인 홍라희 여사가 ‘그러지 마세요. 저분에겐 직업입니다. 거절하면 자리를 잃는 거예요’라고 했어요. 늘 헬기를 타고 서울까지 왔어요. 잠실에 전용 헬기장이 있어서인지 주로 헬기를 타고 다니더군요.”

    그는 성격이 좋은 기업인으로 LG 구본무 회장과 동양그룹의 현재현 회장을 꼽았다.

    “이건희 회장의 성격은 ‘도무지 모르겠다’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블랙홀’이라고 말하죠. 구 회장과 현 회장은 화통해요. 구 회장은 파주 LCD 생산공장 현장에서 사고가 났다면서 저를 불렀어요. 터에는 큰 문제가 없었어요. 대체적으로 기업인은 분명하고 명확한 성격입니다. 명분에 집착하지 않고 말을 둘러대지 않아요. 만일 정치인이 제게 강의를 맡긴다면 ‘민족문화 창달을 위한다거나 우리문화 독창성을 계발하기 위해 박사님을 지원하겠다’고 거창하게 말할 겁니다. 하지만 기업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임직원들에게 우리나라 문화를 알려줘서 자부심을 갖게 해야 합니다’라고 말해요. 기업인들은 ‘이익이 있는 곳에 투자를 한다’고 분명히 말하더군요.”

    인천공항에 세운 위지령비

    그는 “기업인들은 대체로 문제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풍수이론을 이용한다”면서 SK그룹 사옥에 얽힌 일화를 들려줬다.

    “을지로에 있는 SK 건물이 독특해요. 해외 건축가가 설계한 빌딩인데 건물이 휘어져 있어요. 3년 전이었어요. 최태원 회장이 감옥에 가 있을 무렵이었어요. 김진배 사장이 경기고등학교 후배인데, 갑자기 ‘만나자’고 연락이 왔어요. ‘본사 건물 구조가 나빠서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걱정을 해요. ‘은행장들까지 수군거린다’고 하더군요.

    손길승 회장이 본사 건물 도면을 제게 보여주면서 어느 건물이 좋은지 묻더군요. 하나는 고전적인 건물이었고 하나는 독특한 건물이었어요. 제가 ‘오래 살아야 하니 단순하고 유행 안 타는 건물로 지어라’고 했어요. 손 회장은 사내 투표를 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건물 짓는 건 전문가가 결정해야 할 문제지 왜 투표로 하냐’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과도기에 손길승 회장이 맡았으니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 정말 건물이 안 좋았나요.

    “소문인 거죠. (건물을) 헐 수도 없고 세를 준다고 해도 안 되잖아요. 비보책(裨補策)을 쓰자고 제안했어요. ‘옛날 풍수에서 효과가 있었으니 써봐라’고 했어요. 직원들에게 ‘SK그룹은 휴대전화 만드는 회사라 건물이 휴대전화처럼 생겼다’고 슬쩍 흘리고는 건물 끝에 대롱 같은 것을 달고선 ‘이렇게 문제를 극복했다’고 소문을 내라고 했어요. 예상대로 자연스럽게 마무리되더군요. 이걸 풍수에서 상징조작이라고 해요. 도시풍수의 한 방법이죠. 심리를 이용하는 거죠.

    포스코 본사 건물도 위쪽이 휘었어요. 건물이 휘면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게 돼요.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빌딩이 무너질 것 같거든요. 제가 멀리서 포스코 건물을 오랫동안 관찰했더니 상당히 많은 사람이 피해서 걸어가더군요.”

    ▼ 인천공항 부지를 최 교수께서 봐주셨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다 결정되고 난 뒤에 제가 갔어요. 강동석 당시 건설교통부 장관은 제가 낙원동 허름한 2층 건물에서 강의할 때 와서 들었던 양반이었어요. ‘인천공항을 짓느라 산을 너무 많이 없애서 괴롭다’고 하더군요. 만리장성을 쌓으면서 ‘산을 많이 손상시키고 끊었기 때문에 죽어야겠다’고 했던 진나라 관리처럼 강 장관도 괴로웠던 모양이에요. 저와 배를 타고 답사 다녔어요. 결국 ‘위지령비(慰地靈碑)’를 세우는 것으로 결론을 냈습니다. 산을 위로하는 의미에서 위지령비를 세운 것이었지요. 지금 공항 골프코스에 있어요. 외국인들에게 신선해 보이도록 비문을 영문으로도 적어놓았어요.”

    그는 기업인에 대해 얘기하다가 최근 보복폭행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한화 김승연 회장 얘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김승연 회장은 풍수에 관심이 전혀 없었어요.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고등학교 때부터 김승연 회장과 친했어요. 우리 셋 다 경기고 동문이거든요. 10년 전쯤 홍 회장이 ‘(김 회장) 가정문제가 심각하니 가서 이야기 좀 해줘라’고 권하더군요. 김 회장은 스물아홉 살에 회장이 돼 주위에 친구가 없었어요. 나이에 비해 폼을 잡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젊은 나이에 회장을 해 폼을 잡지 않을 수 없었다. 20대부터 머리에 기름 바르고 말도 느릿느릿하게 해서 이젠 버릇이 됐다’고 하더군요.

    청와대 터 안 좋아 대통령 독선

    김 회장은 가족을 끔찍하게 생각해요. 아주 섬세하고 자상한 편이지요. 저에게 ‘최 교수를 반드시 멋쟁이 만들겠다’고 평소에 말했어요. 한번은 외국을 갔다 오면서 구두를 사왔더라고요. ‘발 문수를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더니 제가 화장실 간 사이에 신발 밑창을 봐뒀다고 하더군요. 다 좋은데 성격이 급한 게 단점이에요.”

    ▼ 건물에도 기가 있다면 명당론 관점에서 청와대는 어떠한가요.

    “김대중 정권 때 두 번 들어가봤어요. 샅샅이 둘러봤죠. 왜 여기만 들어오면 독선적이 되는지 짐작이 되더군요. 북악산은 동산처럼 조그마한 산인데, 청와대에서 보면 웅장하고 아름다워요. 또 서울시내 고층 빌딩들 때문에 앞이 막힐 줄 알았는데 전혀 안 그렇더군요.

    광화문 사거리만 나와도 북악산은 왜소하고 인왕산이 덩치가 좋은데 청와대에선 그렇지 않은 거죠. 환경심리학적으로 청와대에 있으면 세상에 어려움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죠. 세상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거죠. 사람은 환경심리적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그런 이유로 ‘청와대 자리를 옮기면 좋겠다’고 제안한 거죠.

    풍수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만든 일해재단 자리가 참 좋아요. 제가 1994년 성남에 있는 일해재단을 답사한 적이 있어요. 전두환 정권 때 지하시설까지 다 만들어놨기 때문에 (청와대 이주에) 돈이 별로 안 들겠다 싶었어요. 무엇보다 땅이 다른 곳보다 높지 않아서 좋아요.”

    그는 “국회의사당 자리는 뱃사람이 몰려 있는 형국”이라면서 “여의도가 ‘행주섬’이라고 해서 배 모양의 섬인데, 국회의사당 자리가 뱃머리에 해당되니 사공이 뱃머리에 몰려서 떠들어대는 꼴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고 주장했지만 결론적으로 “땅은 평등하지 않다”고 했다.

    “한 자만 달라도 기운이 달라집니다. 전국이 도시화돼 평등한 것처럼 보일 뿐 땅만으로 보면 평등하지 않은 거죠. 전 아직 이 부분에 대해 정리를 못하고 있어요. 땅이 인간에게 영향을 주지만 인간도 땅에 영향을 줍니다. 인간이 땅의 팔자를 바꾸어놓았잖아요. 제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이런 것이죠. 명당의 개념을 현실적으로 정리하고 싶어요. 그런데 법안(法眼)에서 도안(道眼)으로 넘어가는 건 참 쉽지 않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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