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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에 눈물짓는 광주

“정치인 여러분, 우리를 ‘기억’ 하지만 말고 먹고살게 해 주쇼!”

  •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poic@hanmail.net

‘화려한 휴가’에 눈물짓는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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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번기 광주 경제는 ‘보릿고개’

‘화려한 휴가’에 눈물짓는 광주

5·18민주화운동을 기리기 위해 옛 전남도청 앞에 세워진 ‘그날’이라는 제목의 조각.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금남로 대로변 옆 골목에 위치한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혹시 휴가 중인가 싶어 인근 슈퍼마켓 주인에게 물었더니 “장사가 안돼 문을 닫았다”며 “금남로 인근에 문을 닫거나 업종을 변경한 가게가 적지 않다”고 했다. 도청 이전이 그러잖아도 소비도시인 광주의 경제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말을 덧붙이며. 전남 도청이 떠난 지 1년9개월. 금남로는 도시공동화 현상의 특징을 극명히 보여주는 듯했다.

“광주는 반(半)농업도시입니다. 전라남도 사람들이 농사지어서 광주에 유학한 자식들에게 보낸 돈이 광주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농업도시나 다름없지요. 광주는 당최 먹고살 것이 없단 말이요. 강원도보다도 훨씬 못한 곳이 광주란 말입니다. 서울 사람들이 강원도에는 땅도 사고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투자도 하지만, 광주에 투자한다는 소리 들어봤습니까. 광주는 돈의 흐름이 막힌 지 오래됐어요. 광주에서 돈이 안 도니까 우미, 호반건설 같은 중견 건설업체들이 다 본사를 서울로 옮겼어요. 광주에서 돈 나올 데라고는 기아자동차와 삼성전자밖에 없다니까요. 기아차가 파업한다고 하면 광주시민이 두 손 들고 말립니다. 광주의 가장 큰 기업체인 기아차가 파업하면 광주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는 걸 알기에 시민들이 파업을 막는 겁니다.”

인테리어업에 종사하는 양상현(46)씨의 말이다. 농번기인 4~5월, 9~10월이 되면 광주시의 경제는 ‘보릿고개’에 가깝다고 한다. 전라남도에서 자식을 광주로 유학 보낸 사람들이 농사일에 바빠 광주를 드나드는 횟수가 줄어드는데다 광주에 ‘올려 보내는’ 돈이 줄기 때문이라는 것. 반대로 농한기에 접어들면 광주의 경기가 조금 살아난다. 농업으로 벌어들인 돈의 일부가 광주에서 돌기 때문이다.

양씨뿐 아니라 취재 중 광주에서 만난 주부, 교사, 의사, 식당·술집 주인과 종업원, 대학생, 시장 상인, 택시기사 등 40여 명의 광주시민은 한결같이 광주 경제의 어려움, 즉 일자리 부족을 지적했다. 이들은 “광주가 집값도 싸고 물가도 싸 ‘살기’에는 좋은 곳이지만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해 ‘먹고살기’에는 안 좋은 도시”라고 입을 모았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광주를 찾는 정치인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그러나 호남 표심(票心)의 ‘핵심’인 광주의 표밭 관리에 신경 쓰는 정치인의 광주 방문에 광주시민의 반응은 냉담하다. 정치 문제보다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채널 돌려요!”

광주의 정치적 민심(民心)은 어떨까. 증권사 객장에서 만난 박창래(71)씨는 입에 거품을 물고 전·현직 대통령과 대선 예비주자, 그밖의 정치인을 싸잡아 비난했다. 여·야 대선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느냐고 물었더니 “정치를 제대로 해야 나라가 바로설 것 아니냐”며 “차라리 개(犬)가 나오면 개를 찍어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박씨는 “총선이든 대선이든 표가 필요할 때는 머리를 조아리며 구걸하다가도 뽑아주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당리당략을 위해 이합집산하는 무리가 바로 정치인”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정치인들이 필요에 의해 ‘광주’를 활용하고는 사후관리를 빵점에 가깝게 한다는 것이다. 없는 돈에 대학 보낸 자식에게 취직할 일자리가 없는 것도 정치인 때문이라고 원망했다. “잘못된 정치 탓에 불쌍한 것은 국민이고, 죽어나는 것도 국민뿐”이라고도 했다. DJ에 대해서는 “이제 현실 정치에서 손을 떼고 국가원로로서 조용히 지냈으면 좋겠다”고 충고했다.

거침없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낸 박씨에게 “기사에 실명을 넣어도 괜찮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내가 못할 말 했느냐, 틀린 말 했느냐”면서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정치인들이 더 이상 광주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거듭 목소리를 높였다.

박씨의 얘기를 듣더니 주변에 있던 50~60대 남성 두 명이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들의 생각도 박씨와 다르지 않았다. 여야 할 것 없이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관없으니 제발 먹고살기 편한 세상을 만들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이들은 “대선주자와 정치인들이 지금의 광주시민을 김대중·노무현을 지지할 당시의 광주시민으로 여기면 큰코다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들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광주에 득 된 게 무엇이냐. 오히려 배신을 당했으면 당했지 도움 받은 일이 뭐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 광주시민은 김대중(97.3%)-이회창(1.7%)-이인제(0.7%) 순으로 지지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이회창(3.58%) 후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노무현(95·18%) 후보에게 몰표를 던졌다.

취재 중 열다섯 차례 택시를 타면서 민심의 흐름을 가장 잘 파악하는 것으로 알려진 택시기사들에게 정치와 대선에 쏠린 광주시민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물었다. 이들의 얘기는 한결같았다.

“예전엔 택시 안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면 좋은지 의견을 나누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사람이 거의 없어요. 뉴스에서 정치인 이야기가 나오면 ‘채널 돌리라’는 손님도 많아요. 대다수 시민이 먹고살기에 급급해 정치엔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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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poi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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