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호

400억대 매출 기업 일군 새터민 전철우

“실패 즐기다 보니 성공이 눈앞에 있네요”

  • 김정호 자유기업원장 kch@cfe.org

    입력2008-07-09 15: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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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0억대 매출 기업 일군 새터민 전철우

    ●1969년 평안남도 남포 출생<br>●북한 김책공업종합대 졸업, 동독 드레스덴 공업종합대 유학, 한양대 전자공학과 졸업<br>●1989년 한국 입국, MBC개그맨, 고향랭면 사장, 영화 ‘남남북녀’ 시나리오 감수<br>●現 코레푸드 대표

    “실패를 많이 겪다 보니, 실패를 즐기는 지경까지 됐어요.”

    필자가 고정출연하는 모 라디오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어떤 출연자의 말이 방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 말은 평소 나의 지론과 같았다. 자유는 실패까지 책임져야 한다. 실패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자유를 누릴 자격도 없는 것이다.

    누가 그런 용감한 말을 했을까. 궁금해서 스튜디오 안을 들여다봤다. 눈에 들어온 사람은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었다. 누굴까 기억을 더듬는 사이에 그는 방송을 마치고 방을 나갔다. 작가에게 들어보니 새터민 전철우란다. 맞다! 요즈음 내 기억력이 이렇다. TV에서 숱하게 봐놓고도 기억을 못하다니. 인사라도 해둘 걸….

    방송을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동안 그에 대한 궁금증이 가시지 않았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인터넷 자료를 뒤져봤더니 그 이유를 알 만했다.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체제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답지 않게 그는 남한에 온 후 큰 성공을 거뒀다. 방송인으로도 이름을 날리고, 고향랭면이라는 음식점을 차려서 프랜차이즈로 발전시켜 큰돈도 벌었다. 그러나 그는 사업에서도, 인생에서도 큰 실패를 맞은 적이 있었다. 자포자기해 자살을 생각할 정도까지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경험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낙천적인 태도를 되찾았고, 무일푼 상태에서 재기에 성공했다. 2900원짜리 국밥을 파는 ‘고향국밥’ 음식점을 개업해서 지금은 연매출 80억원을 올리고 있다. 홈쇼핑과 할인점에까지 판매망을 넓혀놓았다. 그의 이름으로 판매되는 제품들의 연매출이 400억원에 달한다니, 실패를 딛고 정말 ‘큰 장사’를 일구어낸 셈이다. 결혼도 다시 해서 행복한 가정도 꾸렸다. 그 정도가 되니 실패를 즐긴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겠다 싶다.



    탈북동포들 중에서 전철우만큼 자유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도 드물 것 같았다. 파란만장한 그의 지난 이야기도 듣고 다른 새터민들과 북한 이야기도 들어볼 겸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 흔쾌히 허락했다.

    평양→드레스덴→서울

    김정호 전 사장께선 자유의 소중함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실 것 같습니다. 자유를 찾아 남한에 막 도착했을 때부터 학생, 코미디언 등 여러 가지 활동을 부지런히 하셨죠.

    전철우 네, 당시 1인 3역을 했어요. 한양대 전자공학과 학생이자 방송인, 대우전자 산학프로그램 연수생이었으니까요. 저는 북에서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졸업하고 동독에서도 기계를 전공했어요. 그래서 남에 와서도 자연스럽게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대우전자에서 산학 연수생으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이 독일 기계를 많이 쓰고 있었고 동독 진출을 위해 그쪽 문화를 아는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김정호 그럼 방송 쪽으로는 어떻게 진출하게 됐습니까. 당시 여러 프로그램에서 무척 활발하게 활동했던 것 같은데요.

    전철우 처음 남한에 왔을 때는 TV에 나가지도 못했어요. 제가 워낙 말을 솔직하고 거침없이 하니까 국정원에서 방송에는 나가지 말라고 하더군요. 저도 방송에 별 관심이 없었고요. 북에서는 방송인이라는 직업을 ‘딴따라’라고 해서 아직도 많이들 무시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뜻하지 않게 KBS ‘남북의 창’이라는 프로그램에 나가게 됐어요. 눈이 오는 날 녹화를 했는데 사회자가 “북에서는 눈이 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귀찮아 죽겠는데 치우라고 한다”며 솔직하게 얘기했더니 너무 재밌어 하는 거예요. 그간 다른 북한 출신 출연자들은 딱딱하게 각 잡고 앉아서는 “당에서 강제로 시킨다”는 식으로 대답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격식 차리지 않고 주절주절 얘기를 한 거예요. 그런 모습을 시청자들이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제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시청률도 높았다고 하더라고요.

    400억대 매출 기업 일군 새터민 전철우

    전철우 사장(왼쪽)은 “위기나 약점을 기회로 만들어야 성공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김정호 다른 방송사에서도 섭외가 들어왔겠군요.

    전철우 네. MBC가 먼저였는데, 거기서 ‘통일전망대’라는 프로에 출연했습니다. 축제가 열리는 곳 등 여러 장소를 방문해 새터민이 남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과정을 보여주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이었어요. 제가 성격이 밝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라 즐겁게 촬영에 임했지요. 같이 출연한 남한 사람들도 신기해하면서 친근하게 잘 해주셨고요. 그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SBS에까지 진출했죠. 감동과 눈물이 있는 코미디 ‘대동강 편지’를 기획하면서 제게 출연을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그해 제가 방송 3사의 신인상을 휩쓸었습니다. 그때 저와 경합하던 친구들이 요즘 한창 인기 좋은 ‘컬투’ 그룹이죠, 하하.

    김정호 방송활동도 바빴을 텐데, 고향랭면 사업은 어떻게 시작했습니까.

    전철우 그 무렵 서울 등촌동 SBS 공개홀 바로 뒤에 살았기 때문에 녹화를 쉴 때면 동료들을 집으로 불러다 밥을 해주곤 했습니다. 그러면 다들 맛있다고 난리였죠. 이봉원 선배는 “음식점 열면 냉면 하나만 잘해도 대박 날 거야”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죠. 나중에 음식사업을 하겠다고 마음먹게 된 건 그런 칭찬을 많이 들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던 중 선배 한 분이 남영동 한 빌딩에 빈 가게 자리가 있는 것을 보고 얘기를 해줬어요. 그전에 서너 가게가 망해 나가서 아주 폐허가 되다시피 한 곳이었습니다. 그때는 상권 같은 걸 전혀 볼 줄 몰랐어요. 빌딩 주인한테 물어보니 아주 싸게 임대할 수 있다기에 친구와 동업을 시작했습니다. 3000만원으로 시작했는데, 한푼이라도 아껴보겠다고 저희가 인테리어 공사까지 직접 했습니다.

    김정호 사업이 처음부터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전철우 그렇더군요. 방송활동을 활발하게 하던 때라 주방장을 모집하니 제 얼굴만 보고 찾아온 지원자가 꽤 많았습니다. 구두로 계약을 하고 막상 가게를 보여주면 다들 꼬리를 빼는 겁니다. 가게 자리가 너무 나쁘다는 거지요. 몇 달 안에 망할 거라고 다들 고개를 젓더군요. 그래서 주방장의 급을 한 단계 낮춰서 뽑았어요. 그리고 제가 음식을 꽤 잘 만드는 편이니 옆에서 돕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대박이 난 겁니다.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가 됐지요.

    김정호 북한 출신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핸디캡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것 때문에 사업에 영향을 받진 않았습니까.

    전철우 저는 어떤 위기나 약점도 기회로 바꿔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북에서 왔다고 하면 좋지 않은 선입관을 가질 수 있겠죠. 그래서 그걸 역으로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저희 가게 전단지를 북에서 온 삐라마냥 아주 자극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빨간 종이 위에 “위대한 고향랭면 만세! 냉면 먹으러 우리 모두 똘쳐 나서자!”라는 등의 자극적인 문구를 삽입했어요. 사람들이 일단 받아 들면 안 볼 수 없게, 그리고 안 웃을 수 없게요.

    “위대한 고향랭면 만세!”

    김정호 핸디캡을 오히려 장점으로 활용한 셈이네요.

    전철우 그렇지요. 그것으로 손님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거죠. 또 북한 출신답게 정통 냉면을 만들고 있다고 선전했고요.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끔 냉면도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냉면 면발이 다들 굵었는데, 저희 가게는 굉장히 가늘게 뽑아내 느낌을 달리했습니다. 이런 제 생각들이 다 잘 맞아떨어졌죠. 그래서 20평(66.12m2)이 안 되는 가게에서 하루 매출이 200만원 가까이 됐습니다. 음식 나르는 종업원들을 보고 손님들이 “쿵푸하는 사람들처럼 날아다닌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김정호 새터민이라는 이미지를 제대로 파셨군요. 그렇지만 사장이 북한 출신의 유명 방송인이라는 이유만으로는 그렇게까지 장사가 잘되진 않았을 겁니다. 음식은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제 입맛에 평양 음식은 간이 너무 심심하던데요.

    전철우 맞습니다. 그래서 남한 사람들 입에 맞추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 이북 사람들이 먹는 것 가지고 장사하면 남한 사람들 모두 안 먹을 겁니다. 가난해서 음식 재료가 영 부실합니다. 그런데 옛날 이북 양반 음식은 참 맛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소문난 한정식이나 궁중요리는 부자들 음식 아닙니까. 그래서 냉면, 만두전골 다 책을 보고 예전 양반 음식 그대로 재료와 만드는 방법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녹두전이며 만두 만드는 과정을 손님들께 다 보여드렸습니다. 저는 카운터에서 맷돌에 간 녹두로 녹두전 부치고 다른 직원은 만두를 빚고 있으면 음식이 더 먹음직스러워 보이게 마련이거든요. 그래서 냉면만 드시러 오셨다가도 녹두전, 만두 다 드시고 가셨습니다.

    ‘어차피 빈손으로 왔는데…’

    400억대 매출 기업 일군 새터민 전철우
    김정호 당시 가맹점이 60여 개가 됐는데 가맹점 운영하는 일은 어땠습니까.

    전철우 가맹점 간에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처음엔 우리 공장에서 제공하는 육수와 재료를 쓰니 문제가 없었죠.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방장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가 직접 해보겠다고 점주들한테 우기는 거예요. 점주들은 행여나 주방장이 갑자기 일을 그만두기라도 할까봐 그러라고 하고요. 그 다음이야 뻔하지 않습니까. 어설픈 솜씨를 발휘하다가 음식 맛이 떨어져 한 번 기분이 상한 손님은 다시 안 오니 가맹점들은 어려움을 겪게 되는 거죠. 그렇게 실패한 경험 때문에 지금은 그 부분을 철저하게 관리합니다. 모든 재료를 가공해 팩으로 꽁꽁 싸서 보내죠. 프랜차이즈를 운영할 때 브랜드 관리, 일정한 수준의 맛 관리만큼 어렵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김정호 그렇게 한 번 큰 실패를 겪고, 우여곡절 끝에 또 이렇게 새 사업을 시작했군요. 어떤 계기로 새로 사업을 시작할 용기를 냈습니까.

    전철우 거창한 용기나 계기, 뭐 그런 거 없습니다. 그저 먹고살려다 보니 또 시작하게 됐습니다. 과거엔 혼자라 많이 외로웠고, 빈틈이 많아서 사기도 당했습니다. 한때는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어차피 이 사회에 빈손으로 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못 일어나면 내 손해다 싶었습니다.

    김정호 가족이 모두 북에 있으니 위로해줄 사람도 없었겠네요.

    전철우 아닙니다. 제 주변에 참 좋은 분이 많이 계셔서 늘 위로하고 응원해주셨습니다. 저녁이면 제가 외로울까 불러주시고, 일부러 심부름 시켜서 남은 돈으로 용돈 쓰게 한 분들도 계시죠. 그래서 기운을 차렸습니다.

    지금은 코레푸드라는 제법 큰 회사가 됐지만 시작은 10평(33m2)짜리 ‘고향국밥’이었습니다. 그나마 제 돈은 얼마 들어가지도 않았고요. 지금 이 기회만큼은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죽을 힘을 다해 덤볐어요. 지금은 프랜차이즈, 유통 모두 매출이 나날이 늘고 있습니다.

    “낙천적으로, 자기 페이스로…”

    김정호 홈쇼핑에서 매진되고 대형 마트마다 ‘전철우’라는 이름이 들어간 음식들이 있더군요. 일본으로도 사업을 확장하고 계시죠?

    전철우 일본에서 제의가 왔습니다. 지금 코레푸드는 사업 규모를 늘리려고 여러 사람의 투자를 받고 있습니다. 제가 가진 재주 중에 참 귀한 것이 제 사람, 제 편을 잘 만드는 겁니다. 저는 사업 열심히 해서 잘 키워 동업자들끼리 후하게 나누자는 주의거든요. 그래서인지 동업자들도 절 좋아해요. 자화자찬이지만 저는 지금껏 동업자와 깨진 적도, 원수가 된 적도 없습니다. 아마 제가 남한에 혼자 왔기 때문일 겁니다. 혼자이기에 더 이해하고 양보해서 내 사람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었어요.

    김정호 전 사장께선 남한 사회에 참 잘 적응했습니다. 하지만 새터민들 중엔 적응을 제대로 못하는 이도 적지 않죠. 왜 그렇다고 보십니까.

    전철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격이라고 봅니다. 사실 (새터민 중에) 아주 민감하고 세심한 사람들은요, 남한 사람들 중 누가 웃기만 해도 자신을 비웃나 해서 상처 받고 그럽니다. 전 그런 성격이 아니거든요. 누가 제 말을 이해 못해도 그냥 막 말해버리는 성격이지요. 그런데 이런 일들로 상처 받는 사람은 점점 자신감을 잃고 남한 사람들 앞에, 남한 사회에 나서는 게 겁이 나고 싫어지게 돼요. 그럼 적응하기가 더 어려워지죠. 지금 새터민들 중에 성공한 분들은 하나 같이 성격이 낙천적이고 자기 페이스로(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쪽이에요.

    김정호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남한 사회에서 차별을 많이 받습니까.

    전철우 북한 출신이라는 것은 분명히 핸디캡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 핸디캡이라는 게, 자신이 핸디캡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핸디캡이 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핸디캡을 스스로 극복하려는 노력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의 노력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사회에서도 해결해줘야 할 문제가 있죠.

    김정호 남한 사람들이 어떻게 도움을 줘야 할까요?

    전철우 정부가 새터민들을 교육시키고, 취직할 경우 근로장려금으로 기업에 월 50만원씩 보조합니다. 그래도 새터민들은 아주 세세한 생활의 지식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단순 노동직말고는 일자리를 구하고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요. 가령 북한 사람을 고용해서 택배 심부름을 보내면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택배란 무엇인지에서부터 우체국 가는 길, 요금 내는 법 등 모든 것을 일일이 설명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중간에 길을 잃거나 방법을 몰라 헤매고 그냥 들어오는 경우가 허다해요. 사람이 전혀 다른 시스템 아래서 적응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거죠. 그래서 그들에게 남한 시스템에 대한 세세한 교육을 꾸준히 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누나만 하더라도 재작년에 남한에 갓 왔을 때 돈도 못 벌면서 보험을 마구 들어놨더라고요. 보험설계사들의 단 소리에 넘어간 거죠. 그래서 누나한테 잠시동안만이지만 파출부 일을 해보라고 권했습니다. 남한 사회의 힘든 면을 누나가 느꼈으면 해서요. 자기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돈도 못 받고 멸시받는 게 남한 사회의 한 단면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길 바랐습니다. 이 사회가 절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새터민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北에 사업할 사람 많다”

    김정호 북한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북한이 어떻게 해야 잘살 수 있을까요.

    전철우 많이 투자해야죠. 그런데요, 전 지금 당장 통일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당장 통일하면) 남한 국민들은 세금 때문에 힘들어질 겁니다. 북한도 남한 기업들이 쑤욱 밀고 들어가면 자생력을 다 잃을 테고요. 북한이 점진적으로 개방을 하면서 한국 기업이 진출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남한 기업은 북한의 낮은 임금을 활용해 물건을 만들고, 북한은 자생력을 조금씩 키우면 서로 윈-윈할 겁니다.

    김정호 지금 북한이 꽉 막혀 있는데 그처럼 속사정을 내보일 자신이 있을까요.

    전철우 개방을 하면 김정일 정권은 끝날 겁니다. 북한 주민들은 왜 지금까지 우리만 이렇게 가난하게 살았느냐고 난리겠지요. 그런데 원래 나라가 변할 때는 지배계급이 한번 뒤집혀야 돼요. 이전 정권을 비판할 명분이 필요하거든요. 김정일이 김일성의 아들인 이상 북한은 지금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절대 얻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어요. 개방을 하고 자본주의가 꽃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정호 북한에도 기업을 일굴 만한 이들이 있나요.

    전철우 사업할 사람은 참 많습니다. 지금은 당국이 시장에서 장사도 허용하고 돈도 벌게 하거든요. 제 누나는 시장에서 열심히 장사해서 자기 집도 짓고 큰소리 치고 살았대요. 얼마나 잘살았느냐고 하니까, 당 간부들 집에 유리도 들여주고, 집에서 기르는 셰퍼드한테는 고기만 먹였답니다, 하하하.

    김정호 시장에서 장사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전철우 밀주 장사가 많답니다. 그런데 제 누나 경우는 신용을 제법 쌓아서 북한 당국의 물건을 팔기도 했대요. 처음에는 ‘북에서 장사해봐야 뭘 했겠어?’ 싶었는데 웬걸요. 원가 계산하고 북한식으로 회계장부 작성해서 이익이 얼마나 남을지 똑부러지게 계산해내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장사하는 사람은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다 똑같겠구나 싶더라고요.

    김정호 북한 사람들과 남한 사람들 간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까.

    전철우 성격상 차이가 좀 있습니다. 남한 사람들이 더 차분하고 여유 있어요. 북한은 산세가 험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억세고 성격이 아주 급해요. 자존심도 엄청 강합니다. 만약 북한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다면 그들의 자존심만큼은 절대 건드리지 마세요. 남한에 와서도 자존심 때문에 수억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일을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회 진화할수록 키 작아진다’

    김정호 북한 내부에 지역적 격차가 있습니까.

    전철우 평양과 함경도는 차이가 좀 있습니다. 평안도 쪽이야 공업지대도 있고 하지만 함경도는 가뭄이라도 들면 굶어죽기 시작하는 동네인 걸요. 북쪽 사람들이 대부분 키가 작지만, 지역마다 키도 다릅니다.

    김정호 남한 젊은이들이 대개 부모 세대보다 키가 큰 반면 북한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보다 작더군요.

    전철우 저도, 제 조카도 저희 아버지보다 작아요. 학생들은 모내기, 추수는 물론 도로 청소 같은 온갖 잡일에 다 동원됩니다. 밥도 많이 못 먹고 무거운 짐을 지고 밤늦게까지 일하면 정말 배가 고픕니다. 한 가지 재밌는 건요, 제가 어릴 때 ‘사회가 진화할수록 사람 키가 작아진다’고 배웠어요. 사회가 진화할수록 사람들이 걷지는 않고 생각만 많이 하니까 자연스레 키가 작아지고 머리는 커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그걸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그러다 동독에 유학 가서 깜짝 놀랐죠. 북한보다 훨씬 발전했는데 국민들 키랑 덩치는 엄청 크잖아요. 그때 알았죠, 다 거짓말이었구나….

    김정호 북한의 가족관계나 가정생활은 어떻습니까.

    전철우 효성은 지극한 편입니다. 부모를 모시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요. 원래 못사는 사회일수록 구성원이 뭉쳐야만 살 수 있기 때문에 혈연을 기초로 다들 똘똘 뭉쳐서 사는 편입니다. 워낙 다 같이 못 사니 돈 때문에 의 상할 일도 없고요.

    김정호 부부관계는요? 가부장적일 것 같습니다만.

    전철우 예, 무척 가부장적입니다. 여성평등이 뭔지도 모르고 여성이 자기 권리를 찾을 줄도 모릅니다. 정권 잡은 사람들이 다 남자니, 여성인권 정책도 없습니다. 학교에서조차 모내기를 가면 낮에 똑같이 일하고도 여학생들이 밤에 남학생 옷을 빨아줘야 합니다. 부부도 마찬가지로 여자가 일을 많이 합니다. 때때로 아내를 구타하는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김정호 통일이 된다면 북한 주민들이 남한에 잘 적응할 것 같습니까.

    전철우 북한에 이미 자본주의의 싹이 다 터 있어요. 이젠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답니다. 제 조카가 군대에 갔는데 대대장한테 돈만 주면 1년 복무 중 10개월을 집에서 보내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누나도 돈 덕분에 남한으로 오는 게 어렵지 않았답니다. 지금은 당 간부보다 더 통하는 게 돈입니다. 북한의 자본주의가 외려 남한보다 더 치열합니다. 남한은 규칙이 적용되는 자본주의이지만, 북한은 잔인하고 치열한 초기 자본주의라고 하더군요.

    잔인하고 치열한 北 자본주의

    김정호 북한에 이미 자본주의의 싹이 터 있다니 놀랍군요.

    전철우 저도 최근에 북에서 오신 분들에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장의 통일보다는 북한이 북한만의 자본주의를 만들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남한 또한 1950년대 처음 자본주의가 시작될 때 여러 어려움을 겪고 나름의 자본주의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북한도 그러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고 봐요.

    김정호 남북의 통일 과정을 독일과 비교한다면.

    전철우 독일의 경우보다는 힘든 일이 많을 겁니다. 동독 사람들은 분단되어 있을 때에도 서독 TV를 봤고 동유럽 쪽으로 여행도 많이 다녀서 합리적이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지닌 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통일 후 동독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이 몰려오니까 서독 사람들이 그들의 숙소에 불을 지르는 등 별일이 다 있었습니다. 남한의 새터민들이 지금은 소수라 남한에 융화될 수밖에 없지만 나중에 통일이 되면 북한 사람들이 세를 불려 하나의 정치세력이 되겠지요. 그들이 멸시받으면서 힘들게 산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커질 겁니다. 워낙 다혈질들이라 들고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합치기 전에 ‘너희끼리 해봐라’ 하고 투자만 해주고 나름의 자본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와야 해요.

    김정호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가는 게 좋을까요.

    전철우 (한참을 생각하다가) 정답은 없습니다. 저는 지난 정권처럼 북한에 무조건 식으로 퍼주는 정책은 싫어합니다. 정작 새터민의 인권은 무시하고 북한에만 퍼주면서 정치적으로 너무 이용하는 것 같아서 되게 싫었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덕에 확실히 개성이랑 금강산이 열리게 된 것 같긴 합니다. 북한의 긴장을 풀었다는 점만큼은 정말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거죠. 그래서 정답은 없구나 싶었습니다.

    김정호 북한에 대해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듯하군요. 전 사장의 사업이 번창해서 언젠가 북에서도 왕성하게 비즈니스를 할 수 있길 바랍니다.

    전철우 제 바람도 그렇습니다. 그쪽에서 기회를 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날이 올 때까지 열심히 장사해야지요.

    ‘웃기는’ 국제 비즈니스맨

    400억대 매출 기업 일군 새터민 전철우
    김정호

    1956년 서울 출생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서울대 환경대학원 수료

    미국 일리노이대 석·박사 (경제학), 숭실대 박사(법학)

    한국산업경제연구원, 한국지방 행정연구원, 한국경제연구원 근무

    서울대, 연세대, 한양대 겸임교수

    現 자유기업원 원장

    저서 : ‘땅은 사유재산이다’ ‘7천만의 시장경제 이야기’(편역) ‘갈등하는 본능’ 등


    전철우 사장과 인터뷰를 하면서 뜻밖의 인상을 받은 게 두 가지다. 첫째는 그가 최신형 터치 화면 방식의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는 것. “새 상품이나 기계를 좋아하는 모양이다”라고 하자 “사업차 일본에 자주 가는데 이 전화기는 로밍도 필요 없이 한국과 전화를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엘리트 공학도 출신, 최신 기계를 좋아하는 국제 비즈니스맨이 그의 진짜 모습이었다.

    또 하나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개그맨의 이름들이었다. 이봉원, 최양락 등과 친구나 선후배로 지냈다는 사실이 내가 그에 대해 가졌던 이미지와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 못지않게 인기를 모았던 개그맨 역시 그의 진짜 모습이었다. 그와 가진 1시간 반가량의 대화는 시종 재미있었다. 그는 어렵던 시절 얘기를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우연히 개그맨을 한 것이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그런 긍정적 태도 때문에 짧은 시간에 사업에 재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른 새터민들과 북한 동포들도 전철우 사장처럼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비 오는 석촌호수 옆 삼전동 코레푸드 사무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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