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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 재개발 왕십리 2구역 ‘세입자들’

포클레인과의 전쟁… “뒷짐 지지 마! 악다구니로 막아!”

  • 이혜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뉴타운 재개발 왕십리 2구역 ‘세입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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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 얼굴을 갖고 하란 말야!”

분위기가 을씨년스러운 2층 건물(세입자대책위원회 임시사무실)에 사람들이 올라온다. 2층 안방 문 앞에 때 묻은 운동화와 통굽구두가 하나둘 놓인다. 목소리 큰 여성위원장이 은미 엄마, 현정이 엄마를 부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족히 열 사람이 모여 방바닥에 앉았다.

검정 체육복 차림에 캡 모자를 쓰고 있는 젊은 애기엄마는 긴장했는지 멀뚱멀뚱 여성위원장을 바라보고 있다. 누군가 휴대전화로 아들에게 따뜻한 물로 머리 감으라고 말하다 주위 눈치에 전화를 끊었다. 손이 벌겋게 부어오른 중년 여자는 방에 깔린 요 안으로 다리를 밀어 넣는다.

10년째 식당을 한다는 여성위원장이 어느새 호통을 친다. 장수처럼 목소리가 크다.

“그렇게들 히히덕거려서 되겠어? 웃으면서 하는 게 아니라 싸워야 해! 걔네 봐, 웃을 거 다 웃고 이 건물 밀 때는 안면에 딱 철판 깔잖아! 우리도 원천적으로 활동 못하게 철판 딱 깔고, 아시바 못 하게 해야 해! 법이 예전하고 달라져서 걔네들도 우리를 마음대로 못해!



우리도 인간이고 걔네도 인간이니까 좋게 지낼 수도 있어, 나도 이해해. 간 쓸개 빼줄 땐 빼줘! 한 얼굴 가지고 하면 안 돼. 두 얼굴 가지고 하란 말야. 걔네들이 철거만 10년 넘게 했는데, 요령이 없겠어?”

다들 동의하는지 묵묵히 앉아 있다. 그때 뚱하고 앉았던 중년 여자가 갑자기 말한다.

“그래도 아시바 칠 때는 남자 넷 여자 넷은 있어야 해. 쇠막대기가 얼마나 크다구.”

“한 명이 악다구니를 쓰면 장비(포클레인)도 막을 수 있어. 무슨 소리야, 아시바 막는 데 무슨 사람이 그렇게나 많이 필요해! 나 죽이고 가라고 붙들고 늘어지면 못할 게 없어! 앞으로는 조직부장이나 조장만 나서지 말고 다 같이 행동해! 내 형제가 할 때만이라도 뒷짐 지지마! 누구는 피 터지고, 멍들고, 뼈 꺾이고…. 이런 사고방식으론 할 수가 없어! 이런 식으로 하면 좋아하는 건 (재개발) 조합장뿐이라구!”

사람들의 눈에서 저마다 결의가 느껴진다. 풀죽어 있던 좀 전의 모습은 간 데 없다. 그때 회색 머플러를 매만지고 있던 파마머리 학부형이 웃으며 말한다.

“(웃음) 나도 고집 있어. 할 땐 한다고, 왜 이래~.”

뚱한 중년여성도 머쓱했는지 사람들 앞에서 다짐하듯 말한다. 떨리지만 우렁찬 목소리다.

“나도 독한 구석이 있어. 할 땐 한다고. 두고 보라지, 누가 이기나.”

대화중 전략도 나온다. 중장비를 다루는 사람들이 밥을 먹으러 간 틈을 타서 장비를 점령하자는 것.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조합의 공사현장을 지키는 대책위 사람들에겐 점심시간이 따로 없다. 철거용역 담당자들이 경계를 늦춘 때 끼니를 해결하니, 틈새를 노리기 쉽지 않다.

그렇지만 점심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이가 드물다는 것도 문제다. 몇몇 사람이 밥을 사먹고 오면 돈이 없어 밥을 굶는 노인들은 욕을 한다. 그래서 아예 굶는 게 낫다는 엄마들도 생겼다. 한때는 식당을 하는 이가 밥을 해줬지만 그마저도 돈벌 속셈이 있다고 누군가 흉보는 바람에 없어진 지 오래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자 회의는 잠시 중단된다. 여성위원장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어이구, 우리 아들~, 집에 왔어? 배는 안 고파? 엄마 금방 갈게~.”

#3. “나라가 깡패 양성소인가요?”

그동안 시비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무엇보다 주민들에게 무서운 건 밤마다 순찰을 도는 대여섯 명의 용역직원들. 주민들에게 “돈 안 벌고 뭐했냐, 그렇게 버러지처럼 받아먹으면 좋냐”고 을러댄다는 그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사람들은 너나없이 억울한 표정으로 하소연한다.

“젊은 사람들이 욕하면서 밤길 조심하라고 협박하면 정말 무섭죠.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그 친구들이 나타난 뒤에는 밤엔 밖에 나가질 않고 낮에도 큰길로만 다녀요.”

“껌이라도 씹고 있으면 뱉으라고 을러요. 제가 남자이긴 하지만 어깨들이 시비 거는데 움츠러들 수밖에요. 검정 점퍼에 검정 티셔츠, 바지까지 통일해서 입고 다니는데 무섭죠, 무서워.”

“차라리 군인이나 경찰이 투입되는 게 낫겠다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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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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