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호

20대 리포트

혼밥, 혼술…이젠 ‘혼여’

  • 입력2017-10-1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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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20대 대학생과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는 ‘혼여’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혼밥(혼자 밥 먹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에 이어 일상을 벗어나는 여행까지 혼자서 즐기는 새 풍속도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혼자 사는 가구는 520만3000가구로 전체 가구의 27.1%에 달한다. 2025년엔 1인 가구가 세 집에 한 집꼴인 31.9%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혼자 사는 사람이 늘면서 지난해 ‘공감 신조어’로 ‘나홀로족’이 1위에 올랐고, ‘혼밥’ ‘혼술’ ‘혼영(혼자 영화 감상)’ 같은 관련 단어가 쏟아져 나왔다. 이러한 경향은 이제 혼여로 이어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는 말이 ‘욜로(YOLO)’다. ‘단 한 번뿐인 인생(You Only Live Once)’이라는 뜻으로,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하기보다는 현재의 행복을 중시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지금 당장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자기주도적 소비 성향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분야가 여행이다.



    ‘단 한 번뿐인 인생’

    여행업계에 따르면, ‘나 홀로’ 개인주의, 소셜미디어 기반 ‘21세기형 노마드(nomad·유목민)’ 문화, ‘욜로’ 인생관이 결합되어 ‘혼여’가 확산 중이라고 한다. 한 서울시내 여행사 관계자는 “얼마 전까진 가족여행, 단체여행, 연인과의 여행이 주종이었지만 이제 혼자 여행이라는 새로운 패턴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여행사 I투어에서 지난해 1년간 항공 예약자를 분석한 결과, 전체의 31.6%가 동행자 없이 혼자 여행을 간 사람이었다. 지난해 7월 1일부터 올 1월 31일까지 6개월간 호텔 1인용 패키지도 전년 동기 대비 14%포인트 판매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한 소셜커머스의 해외여행 담당자는 “혼여족의 증가는 사회적 흐름과 맞물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혼여족은 특히 온라인을 통해 일정을 짜고 교통편과 숙박시설을 예약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여행 상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시장에선 혼자서도 항공, 숙박, 자유여행이 가능한 맞춤형 상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소셜미디어에선 ‘혼자서 먹기에 적합한 식당’과 같은 나 홀로 여행 정보가 다양하게 제공되고 있다. 이 중 자유여행기술연구소 ‘투리스타’는 혼여족에 특화된 정보를 주로 제공한다. 이곳에선 ‘혼여’를 위한 맞춤 컨설팅이나 설명회를 실시한다. ‘혼여’ 중에 발생할 수 있는 긴급 상황에 대비한 24시간 밀착 서비스도 제공한다.

    필자가 20대 남녀 대학생과 직장인 100명에게 대면, 전화, SNS를 통해 문의한 결과, 절반이 넘는 55명이 “1회 이상 혼자 여행을 해봤다”고 답했다. 혼여를 해본 경험이 없는 45명 중 18명은 “앞으로 혼여를 해볼 의향이 있다”고 했다. 이처럼 요즘 젊은 세대에게 혼자만의 여행은 낯선 문화가 아니다.

    그렇다면 혼자 여행을 하는 젊은이들은 혼여에 대해 어떻게 말할까. 필자는 최근 3박4일 일정으로 나 홀로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혼여족 10명을 직접 만나 혼자 여행하는 이유를 들어봤다. 그들이 말하는 혼자 여행의 이유는 △혼자 살기에 자연스럽게 혼자 여행한다. △완전한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혼자 여행한다, △오만 가지 고민에서 탈출하기 위해 혼자 여행한다는 세 유형으로 분류됐다.



    “혼자 사니 혼자 여행”

    실제로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 중엔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았다. 1인 가구 증가가 혼여 문화로 이어진다는 점이 어느 정도 확인된다. 제주도 남원읍 N게스트하우스에서 혼자 여행 중인 박모(여·22·경북 구미시) 씨를 만났다. 박씨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혼자 자취생활을 해오고 있다”면서 “혼자 밥을 먹고 생활하는 게 편해져서 여행도 자연스럽게 혼자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도에서 살아보고 싶어 장기 여행을 계획했지만 친구들과 일정을 맞추기 어려웠다. 별 고민 없이 혼자 왔다”고 했다. 박씨는 다음엔 혼자서 유럽 여행을 갈 예정이라고 했다.

    회사원 조모(29·서울 송파구) 씨도 제주도를 혼자 여행하던 중이었다. 조씨는 차귀도 바다가 보이는 한 카페에 들러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숙소와 렌터카 예약도 끝냈다고 한다. 그는 “2년 전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회사에 일주일 휴가를 내고 혼자 제주 올레 길을 걸었다”며 “처음 이틀은 주변 사람을 의식했다. 그러나 3일 정도 지나자 아무도 내가 혼자 다니는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조씨도 혼자 산 지 10년이 다 되어간다고 한다. 그는 “혼여는 언제든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고 남과 일정을  맞추기 위해 기다릴 필요가 없어 좋다. 혼자 여행하다 보면 주변 가까운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기도 한다”고 했다.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완전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 혼자 여행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혼자서 10번 이상 여행했다는 취업준비생 김모(28) 씨는 동행자로부터 자유를 침범당하고 싶지 않아서 혼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누군가와 함께 여행하면 숙박·식사·구경거리 등 사소한 것까지 타협해야 한다. 굳이 여행 와서도 이런 고민을 해야 하나 의문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안양시에 사는 직장인 허모(여·27) 씨는 누군가와 함께 일정을 잡기가 어렵다고 했다. 허씨는 “나는 지금 떠나고 싶은데 주변 사람은 시간이 나지 않는다. 주변 사람의 일정에 맞춰주기보다는 그냥 혼자 다닌다”고 했다. “다른 사람 눈치 안보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 편하다”고 했다. 그녀는 한 친구로부터 “갑자기 맑은 공기를 쐬고 싶어 계획 없이 떠났다”는 말을 듣고 자신도 따라 하게 됐다고 한다. 



    오만 가지 고민에서 탈출…

    ‘N포 세대’라는 별칭이 붙은 20대는 수많은 고민거리를 안고 산다. 몇몇은 혼여를 이런 고민거리에서 잠시나마 탈출하는 수단으로 여긴다.

    필자는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는 S 카페에 들어갔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서 이모(여·21) 씨는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필자의 합석 제의를 이씨는 뿌리치지 않았다. 이씨는 경남 마산에 거주하고 있으며 K대를 휴학 중이라고 했다. 스스로를 ‘집순이’라고 칭할 정도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이씨는 “취업 문제 등 고민이 많다. 9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시험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생각도 정리할 겸 혼자 여행을 왔다”고 말했다. 그녀는 “혼란스러웠던 문제가 해결되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경기도 광명시에 사는 오모(여·26) 씨는 얼마 전 다니던 무역회사를 그만두고 그길로 28일째 국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제주도로 왔다고 했다. 오씨는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장기간 여행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이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오씨는 “1인분 메뉴가 없는 식당도 있어 어쩔 수 없이 2인분을 시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필자가 만난 20대 혼여족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혼자만의 여행을 떠났다는 점이다. 3개월째 제주도를 혼자 여행 중인 강모(여·25·경남 김해시) 씨는 “혼여족 중 상당수가 사람들로 북적이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문다. 비용 때문만은 아니다. 낯선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과 어울리면서 잠시라도 현실을 잊고 싶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강씨는 서귀포시 N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태프로도 일했다고 했다.

    ※ 이 기사는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언론실무교육’ 과목 수강생이 신성호 교수의 지도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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