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호

돈에 울고, 돈이 돌고, 돈에 웃다

두 번째 르포 : 한강로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0-01-29 16: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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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에 울고, 돈이 돌고, 돈에 웃다
    배혜자(74) 할머니가 배추김치를 담근다. “국수 말아 이제껏 살았다”며 웃으신다. ‘옛집’이란 간판을 내건 국숫집은 낡은 건물 안쪽 작은 공터에 있다. 전차가 다닐 적 정거장 터란다. 숭례문, 서울역을 지나온 전차가 이곳에 섰다. 남산 한강 이태원으로 길이 갈리는 삼각지의 지번은 서울 용산구 한강로 1가.

    삼각지 로터리엔 34층 높이 주상복합건물 ‘용산파크GS자이’가 서 있다. 한국건축문화대상을 받은 한강로의 랜드마크. 한강로는 지금 헐리고 새로 지어진다. 삼각지에서 한강로2가, 3가 방향으로 고층건물이 진격 중이다. 높은 건물이 새로 서는 곳엔 어김없이 다툼이 생긴다. 한강로2가에선 사람들이 불에 타 죽었다.

    ‘옛집’은 ‘용산파크GS자이’ 맞은편 우리은행 용산지점(옛 조선실업은행 용산지점) 뒤쪽에 있다. 조선실업은행 용산지점은 1921년 4월1일 개점했다. 조운선(漕運船) 포구이던 용산은 일제강점기 때 경인선 철도가 지나면서 돈이 돌았다. 1899년부터 영업한 첫 근대(近代) 은행인 대한천일은행은 조선실업은행과 합병하면서 이름을 잃었다.

    배 할머니는 30년 넘게 이곳에서 국수를 말았다. 전라도 승주 산골서 여천의 산골로 시집갔다가 남편과 함께 상경해 동작구 흑석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30여 년 전 남편이 죽은 뒤 강을 건너와 가게를 냈다. 할머니는 남편 얘기를 하다 말고 눈물을 훔쳤다. 3남1녀를 낳았는데 아들 하나를 잃었다고 한다.

    2평 남짓한 방엔 깎아놓은 무가 가득하다. 배추 140포기, 무 8가마로 1주일 동안 손님에게 낼 김치를 담근다 했다. “중국산 김치가 싼데, 왜 사서 고생하시느냐”고 묻자 “배고픈 사람 상대로 그따위로 장사하면 죄 받는다”고 면박을 준다. 젓갈이며 멸치를 보여주면서 “여천서 올라온 놈들”이라고 자랑한다.



    대기업 광고에도 나올 만큼 소문난 ‘옛집’의 3000원짜리 ‘온국수’는 소박하다. 멸치국물에 소면을 말아 내는데 ‘담백하다’는 말 외엔…. 솔직히 국수보다 김치 맛이 더 좋았다. 할머니의 손은 세월의 흔적으로 거칠었다. ‘옛집’ 주변 풍경은 지금도 1960년대다. 할머니의 걱정은 오래된 집이 헐리고 새 건물이 들어서는 거다.

    “국수 팔아서 자식 키웠는데…. 헐리면 돈 벌 데가 없어. 다행히 이번엔 빠졌어. 다음엔 들어갈 것 같은데….”

    ‘옛집’에서 나와 한강 방향으로 5분 남짓 걸어가면 한강로 2가다. 용산재개발 4구역 남일당 건물 1층엔 분향소가 있다. 누군가 ‘살인 개발도, 폭력정권도 없는 곳에서 편히 쉬소서’라고 써놓았다. 1월9일 용산참사 희생자 장례식이 열렸다. 지난해 1월20일 희생된 이들은 ‘민중열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삼우젯날 분향소는 썰렁했다. 세입자 2명이 분향소를 지켰다.

    “작년 봄까지는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는데….”

    장례식을 치르기까지 1년 가까이 걸렸다. 희생자들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돈을 둘러싼 줄다리기 때문에 시간이 걸렸다. 희생자 5명의 보상금은 35억원.

    “조건이 1년 전과 달라졌느냐”고 두 세입자에게 묻자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전철련(전국철거민연합)한테 물어보라. 전철련에 모든 걸 위임했다”고 답했다. 한 세입자는 “돌아가신 분 몫이 많아…”라고 말끝을 흐렸다. 희생자는 세입자가 2명, 전철련 회원이 3명이다.

    분향소 옆 골목에서 ‘장안약국’을 운영하는 이상화 할아버지도 세입자다. 할아버지는 “세입자 보상은 달라진 게 없다”면서 시큰둥해 했다.

    지금껏 휴업 보상비만 3개월에서 4개월로 늘어났을 뿐이다. 갈등의 핵은 상가 권리금. 시행사는 권리금을 보상해줄 의무가 없다. 전철련이 개입하면 투쟁은 공격적으로 바뀐다. 그렇다고 ‘떼법’이 통하지도 않는다. 근원적 처방은 논의되지 않는다. “더 줘라” “못 준다” 다툴 뿐이다. 결국 ‘명분’은 사라지고 ‘돈’만 남는다. 약간의 뒷돈을 챙기고 대열을 이탈하는 세입자가 나타나고, 그 수가 늘면서 동력은 약화한다. 각개격파(各個擊破). 지도부가 가장 먼저 뒷돈을 챙기고 뜨는 예도 많다.

    돈에 울고, 돈이 돌고, 돈에 웃다
    장안약국에서 감기약을 산 30대 남자는 “죽은 경찰은 또 무슨 죄냐. 나는 경찰이 안쓰럽다”고 말했다.

    약국 골목을 따라 동쪽으로 5분 남짓 걸으면 옛 세계일보 부지에 올라선 ‘시티파크’가 나온다. 2004년 청약 광풍이 분 곳. 청약증거금만 6조9000억원이 몰렸다. 이 기록은 아직껏 깨지지 않았다.

    시티파크 입구 노른자위 땅에선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책임자한테 “뭘 짓느냐”고 물었더니 “누구냐”고 되묻는다. 명함을 줬다. “사진 찍지 말라”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이 건물은 통일교 성전이다. 1500명이 동시에 예배 볼 수 있는 규모다.

    통일교 간부는 “그동안 세계일보의 적자를 ‘시티파크’ 사업으로 다 벌충하고 앞으로 운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남았다. 문선명 총재의 선견지명 덕분이다”라고 했다.

    한강로의 땅주인은 하나같이 대박을 터뜨렸다. 현 시세는 3.3㎡당 1억2000만~1억5000만원. 한강로는 지금 돈이 넘친다. 고층건물이 한강 쪽으로 진격하면서 ‘서울 in 서울’로 거듭나고 있다.

    용산역은 한강로 3가에 서 있다. KTX 호남선 전라선 장항선 국철1호선 지하철4호선 지하철6호선이 한강로를 지난다. 신공항철도(용산-인천국제공항) 광역전철망도 완공을 앞뒀다. 돈은 길을 타고 돌게 마련이다.

    용산역사엔 현대아이파크몰이 들어섰다. 이 쇼핑몰 서남쪽 철도기지창 일대가 건설사를 몸 달게 하는 ‘서울 in 서울’의 허브다. 컨벤션센터, 공항터미널, 초고층빌딩이 들어선다. 최동주 현대아이파크몰 사장은 사무실 벽에 붙은 서울지도에서 한강로 일대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서울은 앞으로 용산 개발 이전과 이후 시대로 구분될 겁니다. 풍수로 봐도 용산만큼 좋은 곳이 없어요. 풍수에서 물은 돈입니다. 물이 곡선으로 돌아나가는 둥근 땅에 돈이 모여요. 압구정동, 여의도가 그렇죠. 용산은, 압구정동 여의도보다 물이 더 크게 돌아 흐릅니다.”

    건설사들은 미국 맨해튼 버금가는 도시를 짓겠다면서 수주전에 뛰어든다. 용산동1~6가 미군기지 터에 들어서는 용산역사공원, 한강르네상스 사업, 한강예술섬(노들섬), 국제여객선터미널 등 호재가 쌓여 있다.

    “대통령선거판보다 더 뜨겁다.”

    66평형을 분양받은 한 재건축 조합원의 수주전 관전평. 건설사들은 1표라도 더 얻고자 조합원을 ‘사장님’ ‘사모님’으로 모신다. 일대일 접촉, 도우미 활용, 각종 접대로 환심을 산다.

    반대파 vs 수용파

    ‘옛집’의 배 할머니는 무를 깎아 쌓아놓은 좁은 방에서 잔다. 부엌이 딸린 작은 셋방이 할머니의 공간이다. 가게는 공터 맞은편에 있다. 할머니는 새벽 3시에 일어나 골목에서 가장 먼저 불을 밝힌다. 밤새 연탄불로 우려낸 국물에서 다시마, 멸치, 파, 양파를 건져내고 굵은소금으로 간을 본다. “가스불로 멸치국물을 내면 맛이 없다”고 한다.

    ‘옛집’은 3년 전 국수 값을 12년 만에 2000원에서 2500원으로 올렸다. 인근 국방부 직원들이 “우리도 양심이 있다. 못 먹겠다”고 억지를 부렸단다. “돈을 좇으면 사람을 잃는다”는 게 할머니의 생각이다.

    “그런데 밀가루, 배추 값이 올라 종업원 월급도 못 주겠더라고. 내가 죽겠는데 어떡해. 그래서 500원 더 올렸어.”

    돈에 울고, 돈이 돌고, 돈에 웃다
    9년 전 한 TV 프로그램이 할머니를 소개하면서 ‘옛집’이 유명세를 탔다. 사연인즉 이렇다. 사업에 실패해 노숙하던 남자가 파라과이로 이민 가 금의환향했다. 이 사업가가 방송을 통해 할머니를 찾는다. 오래전 넝마주이를 하며 살던 그가 ‘옛집’에서 국수 두 그릇을 무전취식(無錢取食)하고 도망갔는데, 할머니가 큰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다음에 또 와. 넘어질라. 다치니까 걸어가…. 또 와도 돼.”

    배 할머니는 이촌2동의 연탄불 때는 아파트에 오랫동안 살았다. 한강대교 북단 한강로 서쪽의 이촌2동을 서부이촌동이라고 부른다. 한강로 동쪽의 이촌1동은 동부이촌동. 서부이촌동엔 가난한 이가 살았고, 동부이촌동엔 부자가 살았다. 이촌2동엔 지금도 초등학교가 없는 대신 무허가 건물이 많다.

    할머니는 1999년 살던 아파트가 재건축되면서 입주권을 받았다. 건축비를 낼 엄두가 안 나 딱지를 팔려다가 고민 끝에 빚을 내 분양을 받았다. 결국 전세를 끼고 33평형 아파트를 얻었다. 전세보증금을 내줄 방법이 마땅치 않아 지금껏 삼각지에 살지만 할머니는 부자다. 서부이촌동 아파트가 8억~9억원을 호가한다.

    국제업무단지 앞마당인 서부이촌동 수변지역엔 워터프런트가 조성된다. 메트로폴리탄 한복판에 ‘서울항’이 들어선다. 한강-경인운하-황해를 잇는 물길로 여객선이 물살을 가른다. 용산-여의도를 모노레일이 달린다. 용산민족공원-국립중앙박물관-남산은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그린웨이(Greenway)다. 쪽빛 청사진대로라면 그렇다.

    사정이 이런데도 서부이촌동은 어수선하다. 국제업무단지의 조망권을 확보하고자 아파트가 수용되기 때문이다. 지은 지 10년 안 된 아파트도 헐린다. 마을엔 ‘용역 개에게 생선(재산권처분동의서)을 맡기면 가시 발라서 버린다’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서부이촌동수용개발반대주민연합, 서부이촌동통합개발반대주민연합은 ‘반대파’다. 그런데 조직되지 않았을 뿐 사람 수는 ‘수용파’가 더 많다. ‘재산권처분동의서’를 낸 사람이 6대 4 비율로 더 많다. 주판을 놓아본 결과에 따라 주민들의 의견이 갈린다. ‘반대파’ ‘수용파’의 다툼도 벌어진다.

    50대 남자가 ‘청암 최익현 공인중개사 사무소’에서 공인중개사 최익현씨와 대화를 나눈다. 7년 전 서부이촌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그는 ‘수용파’다. 배 할머니 집보다 위치가 좋아선지 3억5000만원에 구입한 33평형 아파트가 13억원을 넘어섰다.

    “입주권을 받아서 이 동네에 계속 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지분이 적은 사람들만 반대하는 거예요.”

    서부이촌동 아파트는 호가만 있을 뿐 거래되지 않는다. 2007년 8월31일이 보상 기준일로, 그날 이후 아파트를 산 사람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 공인중개사 최씨는 “거래가 없어 죽을 맛이다. 빨리 결론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대파’는 입주권을 받더라도 건축비를 내는 게 부담스럽다. 건축비를 포함하면 지금 아파트를 파는 게 ‘이득’이라고 여긴다. 시행사는 도우미를 고용해 ‘반대파’를 일대일로 설득해 재산권처분동의서를 받고 있다.

    같은 골프연습장을 다니는 주민들이 철도기지창과 담을 맞댄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인다. 콩나물국에서 김이 피어오른다. 수은주가 영하 10℃ 밑으로 떨어졌다. 주민들 나름의 계산은 제가끔 엇갈린다. 송지훈(49)씨는 “정신 사나워 못 살겠다. 조용히 살고 싶다. 예전이 더 좋았다”면서 웃었다.

    사람들은 한강로에서 돈에 울고, 돈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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