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정윤수의 종횡무진 공간읽기 ⑨

아파트 모델하우스

욕망의 전시장, 간절한 꿈의 신기루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아파트 모델하우스

3/4
아파트 모델하우스

모델하우스 내부.

이렇게 출발한 모델하우스는 1970년대 강남권 개발과 1980년대 상계동, 목동, 과천 개발을 거치면서 ‘견본주택’을 통한 조기 분양의 고리로 변화했다. 이는 1990년대 초의 일산, 분당, 평촌 같은 신도시 건설 시기까지 관철된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모델하우스는 ‘견본주택’이었다. 게다가 아파트에 대한 현실적이거나 심미적인 욕망이 부글부글 끓어오른 시기였기 때문에 특별히 모델하우스를 근사하게 치장할 필요가 별로 없었다. 짓기만 하면 팔리던 때였다.

모델하우스가 하나의 ‘심미적 전략 포인트’로 작용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극심한 부동산 침체를 돌파하려던 시점이다. 때마침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면서 ‘아파트 브랜드 대전’이 달아올랐다. 이전만 해도 아파트는 행정구역상 동네 이름 뒤에 ‘1차’ ‘2차’ ‘3차’를 달거나 ‘진달래’ ‘개나리’ ‘달빛’ ‘옥빛’ 같은 수식어를 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2000년 3월 삼성물산이 경기도 용인에 구성1차 ‘래미안’을 론칭하면서 모델하우스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얼어붙은 부동산 경기를 돌파하려는 건설사의 브랜드 전략은 삼성물산의 래미안을 시작으로, 한번 듣고는 그 뜻을 좀처럼 헤아릴 수 없는, 실은 그 어휘의 사전적인 정확한 뜻보다 그 낱말이 연상시키는 뿌연 이미지를 확산시키는 전략으로 순식간에 번져갔다. ‘하이페리온’ ‘푸르지오’ ‘자이’ ‘리첸시아’ ‘힐스테이트’ 같은 말들이 흐린 하늘에 띄워 올린 애드벌룬처럼 이 한반도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최고 지성 상류 능력 탁월한’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이마저 부족했는지 ‘래미안 하이어스’처럼 원래의 의도를 더욱 강조하는 수식어까지 덧붙인다. 익숙했던 전통의 공간을 말끔히 밀어낸 자리에 키치적인 이름을 앞세운 고층 브랜드의 행렬이 이어졌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의 얼굴이다’

이러한 ‘명품 브랜드’ 전략은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는 식의 강력한 정서적 위화감을 전면에 내세우는 광고전으로 확산되어 톱스타 모델 기용, 압도적인 광고비 지출, 인테리어 및 마감재의 고급화 등으로 이어졌고 이는 곧 분양가 상승과 해당 지역의 아파트 가격 상승이라는 악순환을 낳았다. 각 건설사는 영어, 불어, 러시아어에 중세풍의 유럽이나 도회적인 미국의 고루한 이미지를 누더기처럼 이어붙인 브랜드 이미지를 집 한 채 장만하려는 서민의 심연에 낙인처럼 남겨놓았다. 멀쩡히 잘살고 있던 아파트 이름을 지우고 최신 브랜드로 새롭게 페인트칠 하는 풍경이 곳곳에서 벌어졌고, 그렇게 페인트칠만 새로 했을 뿐인데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그 한복판에 모델하우스가 있다. 아파트 브랜드 대전 이후 모델하우스는 단순한 ‘견본주택’이 아니라 주택 경기의 심리적 지표이자 대형 건설사의 전쟁터가 되었다. 최근의 사례만 해도 분당 파크뷰, 자양동 포스코더샤ㅍ, 용산 시티파크, 여의도 자이, 인천 청라와 송도 지구 등 인기 지역의 모델하우스에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이 인파가 어느 정도인지를 두고 해당 지역이나 브랜드의 홍보 및 분양 실적을 가늠하기도 한다. 그래서 건설사들은 수동 계수기에 의한 방문객 수, 카탈로그 배포량, 분양 문의전화 등을 다각도로 분석해 청약률이나 초기 계약률을 예측하는 한편 이를 다시 분양대전의 광고 전략으로 삼는다.



일반적으로 모델하우스는 두 달 안팎의 공기(工期)를 거쳐 완공된다. 3개 평형을 전시한다고 했을 때 대략 10억원대의 공사비를 들이고 보다 큰 부지에 이벤트 시설까지 부가할 경우 20억원 남짓한 예산으로 작업을 한다. ‘청약’을 목표로 하는 임시 건물이기 때문에 수명이 대략 6개월 안팎인 경우가 많고 길어도 1년을 넘지 않는다. 그 이상 운영된다고 하면 그 아파트 분양은 실패한 경우다. 운영이 끝난 모델하우스는 대략 2000만~4000만원의 비용으로 철거하고 임시 가건물의 특성상 구조체와 합판이나 목재 등은 다른 부지로 이동해 재활용되는 수가 많다.

최근 대형 건설사들은 100억원이 넘는 대대적인 투자로 주택전시관을 짓고 있다. 이런 모델하우스나 주택전시관에서는 단순히 어떤 모형을 둘러보는 정도가 아니라 클래식이나 서양 미술 강좌, 수지침이나 요가, 부동산 공개 강좌나 입시설명회까지 열린다.

3/4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목록 닫기

아파트 모델하우스

댓글 창 닫기

2021/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