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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취재

“우린 여기 있어왔지. 또 계속 있을 거고”

세운상가의 오늘, 그리고 내일

  • 강지남 기자|layra@donga.com

“우린 여기 있어왔지. 또 계속 있을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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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목마에 달린 손가락 마디만 한 목각 망아지 네 마리가 귀를 간질이는 음악 소리에 맞춰 오르내리며 돌아간다. 가게 앞 유리창에 놓인 네 대의 작은 오르골에는 ‘ORGEL MUSIC BOX, 오르골 판매, 5000원부터’란 손 글씨가 적혀 있다. 이 가게 주인, ‘차산전력’ 사장 차광수(60) 씨가 손바닥 위에 오르골 하나를 올려놓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나 이거 미국인한테도 팔았다고” 하는 차씨에게 이웃 상인이 “거, 오르골 정도는 뚝딱 만드는 사람이 중국산을 팔아서 되겠어?” 하며 괜한 면박을 준다. “만들 수야 있지. 그런데 수지가 안 맞잖아.” 커피 아주머니가 타주는 500원짜리 인스턴트커피를 한 잔씩 나눠 마시며 차씨가 허허 웃는다.

차씨는 ‘세운상가 발명왕’으로 통한다. 사회생활은 전파사에서 시작했다. 냉장고 고치고 전기시설 손보다가 1980년대 세운상가로 들어와 워크맨과 비디오플레이어, 앰프 등 전자제품 수리 일을 했다. 그러다 한두 건씩 전자제품을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받자 독학으로 기술을 익혀 전자 분야 장인이 되었다. 그의 작업용 책상엔 ‘토이스토리’ 주인공 버즈 라이트이어의 얼굴에 머리카락으로 색색의 전선을 붙인 발명품이 놓여 있다. 버튼을 누르면 몸통과 팔이 움직이고 불도 들어온다.

차씨는 요즘 세운상가 ‘붐’을 타고 여기저기서 부름을 받고 있다. 청년 창업가들과 세운상가 장인들의 교류를 목적으로 한 전시회에 자신이 개발한 연쇄반응 기계장치, 플레이와 스톱 버튼만 있는 카세트통 등을 선보였다.

“세운상가 재개장 이후에 달라진 건 그다지 없습니다. 손님이 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뭔가 계속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전시회에도 나가고, 가게에 오르골도 갖다놓은 겁니다. 지나가는 사람들 이목 좀 끌어보려고요.”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가 3년 6개월에 걸친 리모델링을 마치고 9월 19일 재개장했다. 종로와 인접한 초록띠공원은 행사가 열릴 수 있는 광장 형태로 새롭게 단장됐고, 2005년 청계천 복원 때 철거된 세운상가와 대림상가 사이의 3층 높이 공중보행교(총연장 58m)가 되살아났다. 서울시는 2020년까지 대림상가 북쪽으로 삼풍상가~호텔PJ~인현상가~진양상가~남산순환로를 잇는 공중보행로를 완성할 계획이다. 종묘에서 남산까지 1km 남짓 거리가 보행로로 연결되는 것이다.



“화장실 어디예요?”

9층 옥상에는 전망대와 텃밭, 쉼터 등이 조성됐고, 상가 지하에는 다목적홀이 마련됐다. 3층에는 스타트업 창작 공간 ‘세운 메이커스 큐브’가 생겨 17개 기업 및 단체가 입주했다. 세운상가가 준공된 것이 1967년이니 무려 50년 만의 첫 재단장이다. 서울시는 이 같은 ‘다시·세운 프로젝트’에 535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재개장한 지 한 달 남짓 됐을 때 찾아간 한낮의 세운상가는 산뜻했다. 공중보행교 ‘다시세운교’는 널찍했고, 앉아 쉴 만한 계단도 있었다. 평일 낮임에도 보행교를 따라 산책하는 젊은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러나 점포가 촘촘하게 들어선 세운상가 안은 한산했다. 오가는 손님보다 각 점포를 지키는 상인이 더 많았다.

“(재개장한 이후) 완전히 마이너스예요. 손님인 줄 알고 뛰어나와보면 관광객뿐입니다. 가게 문 불쑥 열고 ‘화장실이 어디냐’ ‘옥상으로 어떻게 올라가냐’고 물어봐서 일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세운상가 3층에서 전기전자 도매점을 하는 박영식(가명·62) 씨는 재개장 이후 오히려 더 골치가 아파졌다고 했다. 그가 2000년대 초반부터 임차해 쓰는 점포는 공중보행교와 가까운 위치인데, 재개장 후 카페나 빵집을 차릴 목적으로 기웃대는 사람들이 종종 나타나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고 했다. 박 씨는 “세운상가에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뉴스에 나오니까 당장 건물주가 월세를 올리려고 한다”며 “아무리 서울시와 주인들이 상생협약을 맺었다고 해도 월세를 두 배로 올려주겠다는 사람 앞에서 어떤 건물주가 흔들리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박씨는 애초에 건물을 산뜻하게 단장하는 일이 상인들에게 도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이들의 고객은 주로 기업체이고, 기존 거래처의 소개와 알음알음으로 새로운 고객과 연결되는 식으로 영업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고무부품점을 운영하는 장영한(가명·65) 씨는 “부산 자갈치시장 꼴 날까 겁난다”고 했다.

“관광객들이 몰려오니까 몇몇 맛집만 잘되고 나머지 가게들은 괜히 가겟세만 올라 다들 나갔다고 합디다. 여기도 벌써 월세를 ‘30% 올려달라’ ‘50% 올려달라’ 하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요. 장사가 잘되면 기분 좋게 올려줄 수 있지요. 그런데 지금 그렇지도 않은데 임대료 올린다니까 기분이 확 상하는 거야.”


돈 맡겨야 물건 구하던 시절

네가 욕망하는 거라면 뭐든 다 줄 거야
환한 불빛으로 세운상가는 서 있고
오늘도 나는 끊임없이 다가간다 잡힐 듯 달아나는
마음 사막 저편의 신기루를 향하여…
- 유하, ‘세운상가키드의 사랑2’ 중에서



세운상가의 전성기는 ‘세운상가 키드’가 이곳을 드나들던 1980,90년대였다. 비록 1970년대 이후 세운상가는 ‘서울의 벽’ ‘도심의 흉물’로 꾸준하게 미움받아왔지만, 그 기능까지 배척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니다. 세운상가에서 IBM과 애플 컴퓨터가 조립됐고, 선풍기는 없어서 못 팔 정도였으며, 최신 일제 워크맨을 구할 수 있었다. ‘사람 빼고는 다 만든다, 미사일과 탱크도 만든다’는 세운상가의 명성은 이때 만들어졌다. 불법 총기류까지 수리·제작할 정도여서 1994년 지존파 사건에 연루되기도 한다(지존파 일당들은 세운상가를 통해 가스총과 대검 등을 구했다). 최근 세운상가에서 사업을 시작한 에이브이컴 사장 최찬우(54) 씨는 1980년대 후반부터 전자회사 구매과 직원으로 세운상가를 출입했더랬다.

“회사 선배들한테 처음 배운 게 세운상가 화장실 위치였습니다. 다른 데는 갈 것도 없이 세운상가만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물건을 구해야 하니까 화장실이 어딘지 알아놓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요(웃음). 1990년 들어서는 노래방 기계가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가게에 미리 돈을 맡겨놔야 물건을 받을 수 있을 정도였지요.”

‘세운상가와 그 이웃들1’(서울역사박물관·2010)에 따르면 2010년 무렵 세운상가와 그 주변 상권의 평균 임대료는 13평 점포 기준으로 월 165만 원가량이었다. 이 책에 실린 한 펌프수리업체 사장은 “30년 전에도 임대료가 100만 원으로 매우 비쌌다”며 “그래도 다들 들어오려고 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세운상가 임대료는 과거와 비교하면 상당히 낮아졌다. 권영길 세운상가시장협의회 회장은 “청계천 복원 이후 상권이 많이 축소된 데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세운상가를 전면 철거하겠다고 하면서 사람들이 세운상가가 이미 없어진 걸로 여겼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세운상가가 옛 명성을 잃은 것은 여러 요인이 복합된 결과다. 1979년부터 다섯 차례나 재개발 계획이 세워졌으나 모두 중간에 좌초된 것은 주요한 요인 중 하나. 2009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세운상가군(群)을 전면 철거하고 종묘~남산을 잇는 녹지 축을 복원하겠다며 1단계로 종로와 인접한 현대상가를 철거하고 세운상가 서쪽 입정동 쪽 상인들을 내보냈지만, 결국 이 계획도 무산됐다. 권 회장은 “세운상가는 장사동, 예지동, 입정동 등 주변 지역과 서로 상부상조하는 상권을 이루고 있었는데, 정치적 부침을 겪으며 상권이 망가지고 말았다”고 말했다.



희망과 낙담의 교차

인터넷 상거래 발달과 제조업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 등 산업 환경의 변화도 세운상가를 주저앉혔다. 권 회장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하도급을 주지 않으니, 중소기업은 세운상가로 물건을 사러오지 않는다”며 “올해 들어 발주가 너무 줄어 매출이 지난해 대비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했다. 세운상가에서 40년 가까이 전자제품을 개발·판매하고 있는 이규철(가명·65) 씨는 “점점 버티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중소·영세업체한테서 의뢰를 받아 샘플을 만들어줍니다. 업체가 그걸 팔기로 하면 다량의 주문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샘플만 의뢰하고 제작은 중국 가서 하는 거예요.”

박원순 서울시장은 세운상가 재개장을 맞이해 “과거 전자산업 메카였던 이 일대가 4차 산업혁명의 혁신적 거점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2014년 서울시가 ‘철거’에서 ‘재생’으로 세운상가 관련 방침을 180도 틀면서 세운 전략 중 하나가 20,30대 창업자와 50,60대 세운상가 기술 장인들이 서로 협업하도록 해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세운상가에 창작 공간 ‘세운 메이커스 큐브’, 아세아전자상가에 ‘H 창의허브 SE:CLOUD’ 등이 들어섰다. 이들 공간에는 지능형 반려로봇을 개발하는 ‘서큘러스’, 저비용 전자의수를 제작하는 ‘만드로 주식회사’ 등의 스타트업이 입주했고, 이러한 창업자와 기술 장인들이 만날 수 있는 행사 및 프로그램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세운상가 상인들이 체감하는 시너지 효과는 아직 없는 것으로 보인다. 상인들은 “전과 달리 젊은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자주 보기는 하는데, 뭘 사러오거나 의뢰하러 오진 않는다”고 했다. 세운상가에서 활동하는 한 창업가 또한 “급한 부품을 그때그때 구하기에 세운상가 인프라가 도움이 되지만, 우리가 하려는 사업이 세운상가 상인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권영길 회장은 “스타트업은 이제 뭔가를 새롭게 만들어보려는 사람들이고, 세운상가는 어찌 됐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시장”이라며 “세운상가가 서울시 바람대로 4차 산업혁명의 거점이 되려면 좀 더 세밀한 매칭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체험의 허브가 된다면

세운상가 상인들은 예순을 넘지 않으면 ‘젊은 친구’ 취급을 받는다. 60,70대가 대부분인 까닭이다. 장사가 잘되지도, 전망이 밝지도 않으니 자녀에게 가게를 물려주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한다. 상인들 사이에서도 희망과 낙담이 촘촘하게 교차한다. 장영한 씨는 “이런 식으로 가면 세운상가 상인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했다. 차광수 씨는 “그래도 계속 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제품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부품이 많게는 100가지입니다. 전자부품, 고무, 알루미늄, 철판, 파이프 등 내가 거래하는 부품가게만 50여 곳이에요. 그러니 우리는 여기에 함께 있어야지, 다른 곳으로는 못 갑니다. 어차피 승부는 여기서 내야 해요.”

최찬우 씨는 “세운상가가 도매만 할 게 아니고, 1980,90년대처럼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허브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씨는 요즘 한창 주목받는 아두이노(Arduino·오픈 소스 기반의 코딩 도구) 등 코딩 관련 부품 및 제품을 주로 취급한다. 점차 입소문이 나면서 서울 강남 엄마들이 자녀에게 줄 코딩 부품을 사러 온단다. 최씨는 10월 중순부터 매주 토요일 초등·중학생을 대상으로 ‘세운상가에서 놀자’란 이름의 코딩 교육을 시작했다. 코딩에 대한 관심을 높임으로써 세운상가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늘리려는 생각에서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이 화두인 이 시기에 세운상가가 전자·IT 체험의 장이 된다면 다시 한 번 부활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하며 기대를 내비쳤다.

권 회장은 “리모델링이 모든 고민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시가 주도한 리모델링으로 임차료가 더 오를 수도 있고, 새로 유입된 관광객들이 당장의 매출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순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재개장은 ‘아직 세운상가가 건재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이제는 상인들이 노력할 순서예요. 장사는 남이 대신 해주는 게 아니란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게 우리 상인들입니다.”





신동아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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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남 기자|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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