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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 - 문명의 교차로에서 ④

삭발한 개들이 저지른 야수적 살인이 남긴 것

기독교 광신주의와 고대문명의 종말

  • 송유레 서울대 HK교수·서양고대철학 esong@snu.ac.kr

삭발한 개들이 저지른 야수적 살인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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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기원전 3세기에 건립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의 전폭적 지원 아래 번영을 구가했고, 알렉산드리아를 문화적 황무지에서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로 바꾸어놓았다. 더불어 알렉산드리아는 나일강 일대에 자생하는 파피루스를 가공하는 종이산업의 본고장이자 지중해 지역 서적 무역의 중심지로 도약한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당시 존재한 모든 학문 분야에 걸쳐 책을 사들였다. 특히 호메로스의 작품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돼 다양한 종류의 필사본이 수집됐다. 기원전 3세기 초에 활약한 칼리마코스는 도서관 장서를 체계적으로 분류해 정리한 ‘목록’(원제는 ‘전 학문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들과 그들의 작품을 기록한 목록’이다)을 편찬했다. 기원전 2세기에는 ‘사라페이온’에 두 개의 소형 도서관이 건축됐다. 무세이온의 주도서관에는 50만~70만권의 두루마리 책이, 사라페이온의 부도서관들엔 5만권의 책이 소장돼 있었다고 전한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왕립 대학 무세이온 (‘museum’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의 산하기관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로열 아카데미’는 고대의 학문을 집대성하겠다는 문화적 야심의 산물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개창한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뮤즈의 신전’을 짓고, 세계의 유수한 작가·시인·과학자·철학자를 불러 모아 높은 봉급과 함께 숙식을 제공하면서 연구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기하학자 유클리드와 지구의 원주를 근소한 오차로 계산해낸 지리학자 에라토스테네스 그리고 해부학의 창시자 헬로필로스가 초빙됐다. 무세이온은 특히 수학과 의학 분야에서 명성을 떨쳤다. 무세이온의 회원으로 알려진 최후의 인물이 바로 테온, 그러니까 히파티아의 아버지다.

고대문명의 보고(寶庫)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어떻게 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소문만큼 이론(異論)도 많다. 7세기 아랍의 정복자들에 의해 파괴됐다는 전설이 있지만, 이슬람을 중상하기 위해 꾸며낸 허구일 소지가 크다. 기원전 48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전술상의 이유로 알렉산드리아 항에 정박 중이던 자신의 함대에 불을 질렀을 때 불길이 번져 위대한 도서관을 태웠다고도 하지만, 도서관 전체가 아니라 일부가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그 후로도 도서관은 수차 화마를 겪은 것으로 전해지며, 270년경, 팔미라 왕국의 폭동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전쟁으로 인해 왕궁과 함께 주도서관이 파괴된 것으로 간주된다. 늦어도 391년 사라페이온이 완전히 파괴됐을 때 부도서관들도 (그때까지 건재했다면) 자취를 감추게 됐다. 히파티아가 죽기 25년 전의 일이다. 영화 ‘아고라’에서는 도서관이 이교도들에 의해 파괴되는 것으로 나온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라페이온의 파괴



삭발한 개들이 저지른 야수적 살인이 남긴 것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391년 테오도시우스 대제는 이교의 제사의식을 금지하고 사원을 철폐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로써 옛 종교는 공적인 삶의 영역에서 영구히 추방된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밀라노 칙령’을 내려 기독교를 공인한 지 80년이 되지 않았을 때였다. 이교 사원 철폐령에 따라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테오필로스는 기독교인들을 이끌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수호신 사라피스의 신전으로 가서 헬레니즘의 거대한 ‘우상’을 파괴했다. 그가 젊어서 모시던 성 아타나시우스의 오랜 염원이 드디어 이뤄진 순간이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를 역임한 아타나시우스(293~373)는 교회 내 이단논쟁에서 성자의 신성(神性)을 부정한 아리우스파를 몰아내고 성부와 성자가 본질상 동일하다는 내용의 ‘정통교리’를 확립한 주인공이다. 교회의 일대 ‘내전’을 종식시킨 아타나시우스는 말년에 눈길을 교회 밖으로 돌렸으며, 특히 이교의 상징인 사라페이온을 부수길 희구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이교’(異敎)는 기독교와 유대교를 제외한 ‘다른’ 전통 종교를 가리킨다. 다분히 기독교와 유대교를 기준으로 하는 편향된 말이다. 하지만 ‘이교’로 번역되는 원어 ‘paganism’은 이보다 더 심한 말이다. 이 말이 유래한 라틴어 ‘paganus’는 원래 ‘시골뜨기’ 내지 ‘무식한’을 뜻하며, 미신에 빠진 사람이나 범죄자 또는 환자라는 뉘앙스를 풍기는데, 이후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정착됐다. 정작 ‘이교도’로 불린 사람들은 기독교의 압제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하나의 집단의식을 형성하게 된다.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정치적 권한이 확대되면서, ‘교회의 파라오’라 불리던 테오필로스 총대주교의 세력도 강화됐다. 흥미롭게도 테오필로스 시대에 성 안토니우스(250~350)가 시작한 이집트 수도원 운동이 절정에 달한다. 히파티아를 흠모한 시인 팔라디스의 보고에 따르면, 당시 2000여 명의 수도승이 알렉산드리아 주변에 살았고, 은수자 5000명가량이 니트리아 사막에 은거했다고 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총대주교의 요청에 따라 한꺼번에 엄청난 수의 수도승이 알렉산드리아로 달려왔다는 사실이다. 테오필로스는 수도승들을 자신의 ‘사병(私兵)’으로 활용한 것이다. 수도승들은 사라페이온의 파괴에도 한몫을 했다. 세상의 유혹을 끊고 오직 신을 찬미하기 위해 불모의 사막으로 떠났던 성 안토니우스의 후예들이 주교의 군대가 되어 도시로 되돌아온 것이다. 검은 망토를 두른 수도승들은 테오필로스의 사촌이자 그를 이어 총대주교의 자리에 오른 성 키릴로스에게도 충성을 바쳤다. 이들이 바로 흰 망토를 두른 철학자 히파티아의 살해 용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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