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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크로스(CROSS) 인문학 ⑩

소음은 어떻게 우리 삶에 관여하는가?

  • 장석주| 시인 kafkajs@hanmail.net

소음은 어떻게 우리 삶에 관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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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법의 글쓰기, 불명확한 재현, 단속적인 대화체, 그리고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는 말없음표”(마르크 드 스메트, 앞의 책) 등은 가장 흔한 침묵의 양태들이다. 말줄임표는 통사적 망설임, 판단유보의 기화다. 군데군데 배치되어 있는 그 침묵들은 독자를 책 속으로 끌어들이고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읽히는 침묵. 그것은 음향적 현실에 겹쳐지는 하나의 부주제(副主題), 자아에 대한 성찰과 세계 인식의 장소다.”(마르크 드 스메트, 앞의 책)

침묵은 닫힌 뇌와 지각을 열고, 감정을 풍부하게 할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선험과 영감의 중추를 자극한다. 대개의 훌륭한 책들은 문자와 문자 사이, 의미와 의미 단위 사이에 침묵을 배치한다. 때때로 책을 읽다가 문자 너머로 광막하게 펼쳐진 침묵과 고요의 공간을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문자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그 침묵 속에서 오롯하게 침묵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잠시 동안의 침묵도 우리에게 풍요로운 미지의 세계를 안겨줄 수 있다. 정신을 집중하고 경험을 흡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함께 있는 사람이 뜻밖에 놀라운 존재일지 모른다는 신호를 보내고, 말로 표현할 수 없어도 진실을 가슴에 울려 퍼지게 하며, 자신이 좀 더 위대한 존재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조지 프로흐니크, 앞의 책)



침묵은 소리의 부재에서 빚어진 소극적인 사태가 아니라 능동적인 현상이다. 침묵은 의미의 융합이고 고요의 폭발이며 기쁨의 쇄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미 있는 “언어의 도약대”(마르크 드 스메트, 앞의 책)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혼자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을 여행한다. 그 여행에서 소리와 침묵이 한데 어울려 있는 것을 느꼈다. 소로는 어둠 속에서 침묵은 두터웠고, 그 깊은 침묵이 내려앉은 자연 속에서 노를 저을 때 노가 물을 치며 내는 소리와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며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소로는 모든 소리가 “침묵의 공급자이자 하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소리는 침묵과 대조를 이루고 침묵을 보듬을 때에만 듣기 좋다”고 적었다. 침묵이 의미 있는 삶에 불가결한 요소라면, 우리 주변에서 점점 더 침묵이 고갈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우리가 사는 대도시에서 침묵은 거의 사라졌다. 대신에 소음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소음은 그 자체로 ‘작은 신’이 되어 우리의 경배를 받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배한다.

침묵은 소음의 안티테제가 아니다. 침묵은 스스로 존재를 평정하고 스스로 태어나는 존재다. 그 무엇의 안티테제가 아니란 뜻이다. 차라리 소음은 침묵의 사체, 혹은 돌연변이다. 침묵은 소음을 기르지 않는다. 침묵이 젖을 물려 기르는 것은 소리들이다. 소리들은 침묵에서 멀리 나갔다가도 침묵으로 돌아가려 하는 성질을 끝내 유지한다. 침묵과 소리는 혈연관계다. 소리의 파동을 조사해보면 파동의 사이사이에 짧은 침묵이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좋은 소리 속에는 침묵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좋은 소리들은 침묵을 좋아하고 침묵을 경청하는 경향이 있다. 침묵과 소리는 상호 삼투한다. 소리는 침묵 속에서 피정(避靜)하며 묵은 때를 벗는다. 그렇게 소리는 침묵을 받아들임으로써 고귀해진다. 거꾸로 침묵은 소리를 받아들임으로써 스스로 침묵임을 증명한다. 소리가 없다면 침묵도 없다. 그러나 소음은 다르다. 소음은 침묵과는 무관하게 존재한다. 차라리 그것은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흩뿌림이다. 소리는 침묵의 존재를 또렷하게 하지만, 소음은 침묵을 가차 없이 살해한다. 침묵과 소리는 공존이 가능하지만, 침묵이 소음과 공존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소리와 소음의 차이

침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가치를 갖고 있다. 나는 더 많은 침묵을 누리고 싶다. 침묵의 풍부한 가치를 음미하며 침묵의 축복 속에서 살고자 한다는 것은 “바로 현재 시점에서 침묵을 포용하는 장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수도원을 순례하면서 침묵의 가치에는 미지의 세계를 부활하는 것이 포함된다고 결론 내렸다. 자신이 매우 잘 안다고 느끼는 생활양식에서 방법을 찾는 사람이 많은 시대에, 숙고와 경이에 접근하는 통로로써 침묵의 가치는 무한하다.”(조지 프로흐니크, 앞의 책)

소음은 어떻게 우리 삶에 관여하는가?
장석주

1955년 충남 논산 출생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입선

동덕여대, 경희사이버대 출강

저서: ‘느림과 비움의 미학’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몽해항로’ 등


결론은 명료하다. 소음은 우리의 생활과 건강을 망가뜨리고,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데 한몫을 한다. 반면에 “고요와 소리 사이의 특별한 균형”인 침묵은 지각의 힘을 촉진시키고, 우리 삶에 신성함이 깃들게 한다. 한마디로 소음은 우리를 죽이고, 침묵은 우리를 살린다. 소음의 세계와 단호하게 결별하고, 저 깊고 평화로운 침묵의 세계를 향해 걸어가는 것이다. 자, 당신의 선택은 침묵 너머의 세계인가, 아니면 현실의 소음들인가.

|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조지 프로흐니크 | ‘침묵의 추구’ | 안기순 옮김 | 고즈윈, 2011

●마르크 드 스메트 | ‘침묵 예찬’ |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2007

●막스 피카르트 | ‘침묵의 세계’ | 최승자 옮김 | 까치, 1996

신동아 201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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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 kafka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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