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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파리 사이 101장면 ⑥

예술가의 시선으로 뒤집어보기

  • 정수복│사회학자·작가

예술가의 시선으로 뒤집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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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47 육교를 건너며

요즘 서울에선 육교가 대부분 사라지고 있지만 새로 생기는 곳도 있다. 강남 고속터미널 남쪽에 있는 메리어트호텔과 가톨릭서울성모병원 사이에 들어선 푸른색 아크릴 장식의 아름다운 육교가 대표적이다. 다리 이름은 ‘센트럴 시티 브리지’다. 낙엽이 지던 지난해 늦은 가을의 어느 날 나는 메리어트호텔 쪽에서 성모병원 쪽으로 육교를 건너고 있었다. 어느 할머니 한 분이 힘겹게 육교 계단을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때 할머니 뒤를 따라오던 젊은 여성이 “할머니 좀 도와드릴까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아니야, 괜찮아… 고마워!” 하면서 지지대를 잡고 열심히 계단을 걸어올라갔다.

그날 내가 본 그 젊은 여성은 어린 시절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았는지도 모른다. 어떤 동기에서건 잘 모르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도와주겠다고 손을 내민 그 젊은 여성의 마음이 전달돼 나는 일순간 흐뭇함을 느꼈다.

파리에서는 그런 광경을 볼 수 없다. 자기 일로 바쁜 파리 젊은이들의 눈에는 힘겹게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노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노인들도 독립적이어서 젊은이들의 도움을 기대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노인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끝까지 독립된 개인의 자리를 지키려고 한다. 그들은 남의 도움을 받는 상태를 수치로 여긴다. 그걸 모르는 어느 한국 유학생이 지하철 계단에서 좋은 마음으로 프랑스 할머니의 무거운 여행 가방을 들어주려고 했더니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며 도둑놈 취급을 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풍경 # 48 의자 위의 가부좌



서울에 와서 카페에 가보면 탁자 위에 책을 펴놓고 공부하는 사람이 많다. 카페를 사무실처럼 쓰는 사람들을 카페와 오피스라는 말을 합쳐 ‘카피스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카피스족 가운데 신발을 벗고 의자 위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여성들을 흔히 보게 된다.

옛날 한식집에서 좌식 생활을 할 때는 가부좌를 틀고 앉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아파트가 주요 주거 형태가 된 시대에 태어난 젊은 여성들이 의자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은 내 눈에 매우 생소해보였다.

일차적으로는 남녀평등을 내세운 여성운동의 영향으로 젊은 세대 여성들은 여자로서의 조신한 몸가짐을 해야 한다는 전통적 굴레에서 벗어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왜 의자 위에서 방바닥에 앉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가? 그런 자세로 앉아 있는 여성들은 대체로 그 장소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다. 그런 자세가 편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이 오랜 세월 좌식생활을 해오면서 형성된 습관이 요즘 세대 여성들에게까지 전달되었단 말인가? 그런 자세가 DNA 속에 암호로 들어 있다는 말인가?

가부좌만이 아니다. 서울에서는 여성들이 식당이나 카페에서 하이힐을 벗고 구두 위에 발을 걸치고 있는 모습도 가끔씩 눈에 들어온다. 고생한 발에 잠시 휴식을 주자는 배려인 것 같다. 그런데 파리에서 살다온 나에게 그 풍경은 매우 이채롭고 한국적이다. 파리 사람들은 결코 공적 공간에서 신발을 벗지 않는다. 누구라도 공공장소에서 신발을 벗고 있다면 무례한 야만인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번 여름 나는 신발을 벗는 것보다 더한 무례도 여러 차례 보았다.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 로비에서 아예 신발을 벗은 채 주위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편하게 드러누워 있는 사람들의 풍경을 보게 된 것이다. 냉방이 된 도서관 로비에서 낮잠을 즐기는 아저씨도 있고 함께 누워 있는 젊은 남녀도 있었다.

나라마다, 세대마다 몸가짐이 다를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공적 공간과 자기만의 사적 공간에서의 몸가짐은 구별돼야 한다. 예절이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다. 남의 시선이나 불편함을 아랑곳하지 않고 “나 좋을 대로 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두고 ‘개념이 없다’는 표현을 쓰는데 그때 ‘개념’이라는 말은 공적 장소에서 타인을 의식하고 배려하는 최소한의 ‘예의’인 듯하다. 옛날에는 ‘개념’이라는 말 대신 ‘공중도덕’이라는 말이 쓰였는데 그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풍경 # 49 횡단보도 신호등 앞에서

서울과 파리의 횡단보도 앞 풍경에는 차이가 있다. 파리의 보행자들은 빨간불일 때도 차가 없으면 그냥 길을 건넌다. 경찰이 바라보고 있어도 버젓이 길을 건넌다. 경찰도 아무 말 안 한다. 자동차 운전자들은 으레 그러려니 하고 횡단보도 앞에서는 속도를 줄인다.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는 셈이다. 1980년대 초 유학생 시절 그런 모습을 보면서 혼돈감에 빠지곤 했다. 선진국 사람들은 교통질서를 잘 지킨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는데 선진국이라고 생각되는 프랑스 파리 사람들이 교통신호를 안 지키는 게 너무 이상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지도교수와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게 되었다. 빨간불이었다. 그런데 세계적인 학자가 무턱대고 길을 건너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도 그의 뒤를 따랐다. 저쪽에서 트럭 한 대가 조금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걸 본 지도교수는 “멈춰! XX야!(Arrete! Merde!)”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내뱉는 것이 아닌가? 교수의 머릿속에는 빨간불 파란불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고 자동차가 나중이라는 생각이 박혀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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