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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재구성 ④ 로마의 카르타고 침략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백만의 죽음은 통계일 뿐

전쟁 범죄

  • 이창무│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형사사법학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백만의 죽음은 통계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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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해진 로마는 카르타고가 더 이상 성장하는 것을 그대로 놔둬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다. 카르타고가 국력이 세지면 언젠가는 로마를 위태롭게 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로마는 카르타고가 더 크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한다는 생각에서 침공 결심을 굳히고 침입 명분을 만들고자 카르타고의 이웃 나라인 누미디아를 끌어들인다. 카르타고의 선박과 영토를 마음대로 약탈하라고 누미디아를 부추기면서 뒤를 봐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 것.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뒤 카르타고의 모든 영토 분쟁은 원로원의 중재를 받아야 한다고 못 박아놓았기 때문에 카르타고와 누미디아의 영토 분쟁이 일어나면 원로원이 개입할 수 있었다.

누미디아의 계속된 침입에 카르타고는 조약에 따라 로마에 누미디아를 제재할 것을 청했지만 원로원은 누미디아 편만 들었다. 기원전 151년부터 시작된 누미디아의 카르타고 영토 침입과 해상 약탈은 2년 가까이 계속됐고 그로 인해 카르타고의 경제적 손실은 매우 컸다.

쇠귀에 경 읽기 식으로 부탁을 외면만 하는 로마에 지치고 화가 난 카르타고는 더 이상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카르타고는 누미디아의 침입을 힘으로 직접 해결하고자 6만여 명의 용병을 모았다. 누미디아가 침공하자 용병을 주축으로 삼아 누미디아 영토로 쳐들어갔다. 로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조약 위반이라고 카르타고를 비난한 후 조사단을 파견했다. 원로원에서도 카토를 중심으로 카르타고 타도를 외치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져갔다. 그리스에서 로마에 대항한 반란이 일어난 터라 분위기는 더욱 강경해졌다.

카르타고 역시 로마와 전쟁을 벌이는 문제로 대립했다. 강경파는 국력이 상당 부분 회복됐기 때문에 로마와 전면전을 해도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온건파는 누미디아의 침입과 약탈로 경제적 타격이 적지 않아서 로마와의 전쟁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전쟁을 수행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한 카르타고는 로마와 화친을 결정했고 누미디아 공격에 나선 장군을 처형하는 한편 로마에 사죄하기 위해 사절단을 보냈다. 그러나 카르타고를 아예 멸망시키는 것이 목적인 로마는 카르타고의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을 꺾고 로마에 승리를 가져다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손자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를 대장으로 하는 군대를 아프리카로 보내 카르타고를 포위했다.

승자가 얻는 보너스, 살육



로마가 카르타고에 내건 협상 조건은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먼저 카르타고의 모든 무기를 로마에 넘기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카르타고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두 번째 조건을 제시했다. 카르타고를 파괴하고 모든 주민이 해안에서 15㎞ 떨어진 곳으로 이주하라는 것이었다.

카르타고는 전쟁 외엔 대안이 없었다. 화평을 주장하는 사람을 모두 처형하고 결사항전의 자세를 굳혔다. 단기간에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은 3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로마는 육지와 바다로 통하는 모든 출구를 봉쇄하고 카르타고를 옥죄어들어갔지만 카르타고의 필사적인 응전에 성을 쉽게 함락하지 못했다. 카르타고는 성안의 모든 것을 무기로 활용했다. 성벽을 일부 헐어 투석용 돌로 이용했고 여자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활의 줄로 사용했다.

로마는 카르타고가 스스로 제 무덤을 팠다면서 침공과 파괴 행위를 합리화했다. 피해자 부인인 셈이다. 이미 두 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에서도 드러났듯 로마는 카르타고와는 공존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카르타고의 해상무역 능력은 탁월했고, 경제력 성장은 로마에 위협으로 다가왔다. 이미 지중해를 장악한 로마의 심기를 건드린 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갖게 한 죄 등이 카르타고를 흔적도 없이 파괴한 구실이 됐다.

충성심에 대한 호소 역시 로마의 카르타고 침공의 구실로 작용했다. 로마 병사들은 개인적인 복수가 아닌 ‘위대한 로마’를 위해 카르타고 사람을 죽이고 도시를 파괴했다.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은 어떤 범죄 행위도 서슴지 않게 하는 추진력이 되는 것이다.

사실 모든 전쟁은 피해자 부인과 충성심에 대한 호소라는 요소를 갖고 있다. “쳐들어가서 미안해”라면서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경우는 없다. 궁색해도 이런 저런 이유를 갖다 붙여서 침공을 합리화한다. 정의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식의 합리화를 통해 끔찍한 전쟁은 시작되고 숱한 무고한 생명은 스러져 간다. 그러나 어떤 합리화와 정당성 부여도 결국 궁색한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전쟁 범죄는 박수이론(clap theory)을 통해서도 설명이 가능하다. 이 이론에 따르면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처럼 모든 범죄는 잘못된 코딩(coding)과 기회의 결합에 의해 발생한다. 코딩과 기회는 범죄의 필수요소다. 둘 중 어느 하나만 없어도 범죄는 발생하지 않는다. 전쟁 범죄를 포함해서 말이다.

코딩이란 학습에 의해 머리에 각인되는 것을 말한다. 전쟁은 범죄가 아니라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코딩의 결과다. 전쟁은 필요악이라거나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합리화 역시 잘못된 코딩의 결과다. 전쟁을 이끄는 사람들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살육과 약탈, 강간, 파괴를 묵인하고 때로는 부추긴다. 이처럼 살육과 약탈, 파괴를 승자가 얻는 보너스로 인식하는 그릇된 생각이 전쟁 범죄를 더욱 잔인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행위를 범죄로 인식하지 않는 잘못된 코딩의 결과가 인류 문명에 미친 해악은 너무나도 크다. 국제법과 협약으로 불필요한 살상과 파괴를 금지한 이후에도 이러한 대량 학살과 약탈, 파괴는 끊이지 않고 있다.

알렉산더, 시저, 한니발, 진시황, 칭기즈 칸을 비롯해 우리가 영웅이라고 호칭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전쟁 범죄자다. 죄 없는 사람 수십만, 수백만 명을 죽였건만 정복한 땅의 넓이만큼 이들은 높이 칭송된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이 전쟁에 대한 착각을 낳게 하고 또 다른 전쟁의 씨앗으로 작용한다. 침략을 통한 살인과 강도를 국익(사실은 왕이나 실력자 개인의 이익)이라는 그럴싸한 용어로 그릇되게 코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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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무│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형사사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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