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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노도의 격동시대 뚫고 거울 앞에 서다

대선 뒤흔든 대한민국 50대의 자화상

  • 고승철│소설가 koyou33@empas.com

질풍노도의 격동시대 뚫고 거울 앞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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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넌 의대나 법대 가라”

전두환 정권의 경제 성적표는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강력한 정부의 힘으로 중화학공업 구조조정, 재정동결, 물가안정 등을 꾀하면서 역설적으로 시장자율화 기반이 마련됐다. 1980년의 마이너스 성장에서 1981~1982년엔 6~8%의 성장률을 보였고, 1986~1988년엔 대호황을 누렸다. 1987년의 성장률은 12.3%에 달했다. 현대자동차의 포니가 미국에 처음으로 수출됐고 LG와 삼성전자의 컬러 TV가 중저가 상품으로 전 세계에 팔려나갔다. 1986년의 아시아경기대회, 1988년의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름으로써 한국인의 자긍심은 올라갔다.

오늘날 50대는 1980년대엔 대개 대학생, 새내기 직장인이었다. 1960~1963년생은 ‘386세대’(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로 전두환 정권 타도를 부르짖었다. 1980년대에 한국 경제가 중진국 대열에 진입하면서 직장인들은 자가용을 갖기 시작했고 아파트를 장만하려 열을 올렸다. 필자도 승용차를 굴리게 됐고 해외출장도 자주 갔다. 1990년 7월엔 파리특파원으로 부임해 상상도 못했던 해외생활을 하게 됐다.

1990년대에 직장인들은 1997년 12월 외환위기를 맞을 때까지 저마다 부지런히 일하며 살림을 늘려갔다. 외환위기 때 여러 기업과 은행이 줄도산하면서 일터를 잃은 직장인이 수두룩했다. 이들은 자녀들이 앞으로 직장에서 ‘잘리는’ 곤경을 당하지 않게 하려고 의대, 법대로 가서 전문직에 종사하도록 종용했다.

21세기인 2000년대에 접어들자 은퇴 이후에 대한 걱정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찾아왔다. 그런 와중에 암으로 사망하는 친구가 늘어났다. 마산상고를 나와 야간대학을 마치고 사법시험에 합격했던 김성찬 군(변호사), ‘마방여자’ 등 경마소설로 이름을 날린 윤용호 군(소설가), 군인 시인 이기윤 군(전 육사 교수), 육사를 나온 독도연구가 진석근 군 등이 암 때문에 유명을 달리했다. 문자 메시지로 날아오는 부음 가운데 친구 부모상(喪)과 친구 본인상이 함께 몰린다.



은퇴한 친구와 후배들은 산에 가서 야생화 사진을 찍어 배포한다. 폭탄주를 몇잔씩 마셔대던 호기도 사라졌다. 필자도 기업인으로 성공한 친구 홍진수 군(남양인터내셔날 대표)의 장남이 결혼할 때 주례로 데뷔했으니 이제 ‘원로’ 대열에 진입한 기분이 든다. 세대별 여가생활 조사자료를 보니 50대가 가장 만족해하는 여가활동은 동창회, 계모임 등 친목모임(80.5%)과 종교모임(69.1%)이라고 한다.

1990년대 이후의 대통령선거에서 김영삼, 김대중 후보가 당선될 때만 해도 세대 간의 갈등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돌풍을 일으킨 배경엔 변화를 바라는 젊은 유권자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당시 386세대와 1950년대 출생자들은 정치의식에서 약간 차이를 보였다. 386세대 상당수는 노무현 후보의 불타는 투지에 열광한 반면, 직장에서 책임자급인 1950년대생들은 안정추구형이어서 이회창 후보를 선호했다. 2007년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정동영 후보를 압도적으로 이겨 박빙 승부의 묘미가 없었다.

방송3사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2012년 대선에서 50대의 89.9%가 투표에 참여했고 투표자의 62.5%가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 박 후보는 20대, 30대, 40대에서는 졌는데 50대의 적극적인 지지 덕분에 당선됐다. 50대는 왜 박 후보를 선택했을까. 몇몇 50대 유권자의 ‘표심’을 정리해본다.

“종편 본다고 ‘꼴보수’라니…”

“청년시절에 박통(박정희) 타도 시위에 나섰다. 그러나 한국 현대사를 냉철하게 살펴보니 박통은 김일성 체제의 북한에 맞서 국방력 강화와 경제발전을 이뤘다는 점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고 본다. 박근혜 후보는 박통의 딸이어서 일단 관심을 끌었다. 10대 시절의 배고픔을 박통이 해결했듯이 박 후보가 나의 노후 불안을 덜어줄 것 같아 표를 던졌다. 우리 연배는 직장에서 고속 승진의 맛을 보지 못한 억울한 세대다. 불안감과 억울함이 박 후보를 선택한 이유가 아닐까.”(1955년생 남자 A씨·대기업 퇴직자)

“젊은이들이 SNS로 소통하며 야당 후보에게 몰표를 준다기에 거부감을 느꼈다. 나도 친구들과 카톡, 페이스북 등으로 대화하며 50대의 응집력을 과시하고 싶었다. 종편 TV를 보니 정치 해설이 무척 흥미진진했다. 종편 채널을 본다는 이유만으로 ‘꼴보수’라 손가락질하는 젊은이들이 괘씸해 그들이 싫어하는 박 후보를 더욱 지지하게 됐다.”(1959년생 여자 B씨·유통업)

“나와 안철수 후보가 동갑이어서 처음엔 그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안철수의 생각’을 읽고 그의 발언을 들어보니 ‘과대포장’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안철수 현상’은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재인 후보에게 호감이 갔으나 그를 둘러싼 종북세력 때문에 표를 던지기 망설여졌다. 어쩔 수 없이 박 후보를 지지했지만 그녀는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었다.”(1962년생 남자 C씨·대학교수)

질풍노도의 격동시대 뚫고 거울 앞에 서다
고승철

1954년 부산 출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경향신문 파리특파원, 동아일보 경제부장 및 출판국장

現 나남출판 주필 겸 부사장

저서 : 장편소설 ‘은빛 까마귀’ ‘서재필 광야에 서다’ 등


“아들딸들이 ‘88만원 세대’니 어쩌니 하며 자신들만 불행하다고 여기며 대한민국의 과거를 부정하고 있다. 자신들이 해외연수, 배낭여행을 즐기는 여유는 등이 휘도록 일한 부모 세대의 노력 덕분 아니었나. 국내에 일자리가 없으면 외국에 나가서 찾아야 할 것 아닌가. 우리를 무시하면서도 우리의 노후자금을 탐내는 젊은이들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라도 박 후보를 찍지 않을 수 없었다.”(1963년생 여자 D씨·주부)

신동아 201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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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철│소설가 koyou33@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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