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역사기록, 그 진실과 왜곡 사이

창조적 사유, 위험한 오용

‘비유’라는 양날의 칼

  •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창조적 사유, 위험한 오용

3/4
국내 역사학계보다는 외국 역사학계에서 이런 비유가 성행하는 편이다. 이들 용어엔 서술하려는 대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왜곡시킬 수 있는 ‘무의식적 비유’가 포함돼 있다. 참으로 많이 쓰는 용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들 용어가 개념적으로 사전에 실릴 만큼 엄격하다고 여기기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역사사전에 다 등재돼 있지만.

예를 들어, 근대 계몽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시대는 ‘빛’으로, 봉건시대는 ‘어둠’으로 비유했다. ‘계몽(啓蒙)’이란 ‘Enlightenment’의 번역어인데, 암흑시대(Dark Age)와 광명시대의 비유를 적절히 표현해주는 번역어다. ‘어리석음[蒙]을 깨우는[啓] 것’이기 때문이다. 이 비유를 통해 중세=봉건은 어둠, 야만, 정체 등의 의미를 띠게 됐고, 근대는 이성(理性), 문명, 자유, 해방의 시대로 묘사됐다. 이런 비유를 쓰는 순간 빛과 어둠이 선명히 대비되고,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투적, 무의식적 비유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명사형 용어에만 이런 오류가 발생하는 건 아니다. 동사, 형용사, 부사를 통해서도 이런 오류가 발생한다. 정부는 ‘전복되고’, 혁명은 항상 ‘폭발한다’. 경제는 ‘붐이 일거나 파산하며’, 문화나 문명은 장미꽃 정원도 아니면서 곧잘 ‘꽃피운다’.

‘명나라는 미국과 같다’

창조적 사유, 위험한 오용

축구공과 사과. 비유를 잘못하면 축구공을 보고 먹기 좋다고 말할 수도 있다.

‘완벽한 비유의 오류’란 두 실체의 부분적인 닮은꼴에서부터 아주 정확히 상응한다고 유추하는 것이다. 이는 A와 B가 어떤 점에서 일치한다는 사실로부터 이 둘이 모든 점에서 같다는 잘못된 결론으로 추론이 진행되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기억해둘 게 있다. 유추나 비유란 그 성격상 둘 또는 그 이상의 사물 사이에 나타나는 유사성이며, 이 유사성을 빼면 기타 측면에선 같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완벽하다는 말이 통상적으로 동일성을 함축한다고 본다면, ‘완벽한 비유’란 용어 자체가 모순이다. 이에 대한 좋은 사례가 있다.



현재 한국 사회의 민족주의적 관점을 지닌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이 하나 있다. 바로 명나라와 미국을 동일시하는 관점이다. 미국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가질수록 명나라는 물론 명나라에 대해 사대를 했다는 이유로 조선 ‘지배층’ 역시 폄하의 대상이 된다. 명나라와 미국 사이에 제국주의 국가라는 비유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조선 지배층이나 백성의 처지에서 볼 때 무척 억울한 평가다. 조선 사람들은 한양에 명나라 군대를 주둔시킬 땅을 내주지도 않았고, 군사작전권을 내주지도 않았다. 6·25전쟁에 미군이 개입한 것이 내전(內戰)에 개입한 것이라면, 명나라의 개입은 일본의 침략에 대항한 참전이었다. 따라서 미국과 명나라는 제국의 성격이라는 점에서만 유비 관계가 성립할 뿐 조선과 명나라, 한국과 미국은 유비 관계가 성립하기 어려운 경우다.

명나라와 미국을 동일시하는 이러한 오해가 상식처럼 당연시되는 이유는 동아시아 각국의 공존 논리인 사대(事大)의 보편성과 질적 차이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해가 부족했던 이유는, 사대를 콤플렉스 없이 정면으로 응시할 지적 토양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엄밀한 의미에서 식민사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유나 유비의 오류엔 이밖에도 여러 형태가 있다. ‘어리석은 유비의 오류’라고나 할 만한 것도 있다.

1) 이 축구공은 둥글고 저 사과는 빨갛고 둥글며 부드럽고 껍질이 반짝반짝한다.

저 사과는 아주 먹기가 좋다.

그러므로 이 축구공은 아주 먹기가 좋을 것이다.

2) 이 축구공은 둥글고 저 사과는 빨갛고 둥글며 부드럽고 껍질이 반짝반짝한다.

저 사과는 크리스마스 양말에 들어 있으면 아주 좋다.

그러므로 이 축구공은 크리스마스 양말에 들어 있으면 아주 좋을 듯하다.

1)번의 유비는 언뜻 보기에도 명백히 바보 같은 추론이다. 그러나 2)번의 경우, 어떤 미감에서 볼 때는 옳다. 이렇게 둘의 논리가 타당성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는, ‘이 축구공은 둥글고 저 사과는 빨갛고 둥글며 부드럽고 껍질이 반짝반짝한다’는 축구공과 사과의 질에 대한 비유 묘사가 보기 좋은지 아닌지 하는 미감의 문제이지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3/4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목록 닫기

창조적 사유, 위험한 오용

댓글 창 닫기

2022/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