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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난중일기’로 만난 이순신과 조선

유비무환 곱씹으며 겸손하게 하늘에 묻다

  • 박종평 | 이순신 연구가

유비무환 곱씹으며 겸손하게 하늘에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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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무환 곱씹으며 겸손하게 하늘에 묻다
아내 거의 못 만나

1594년 9월 1일. 맑았다.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잠들지 못했다. 촛불을 밝힌 채 뒤척였다. 이른 아침에 손을 씻고 고요히 앉아 아내의 병세를 점쳤다. “중이 환속하는 것과 같다(如僧還俗)”는 점괘를 얻었다. 다시 쳤더니 “의심하다가 기쁨을 얻은 것과 같다(如疑得喜)”는 괘가 나왔다. 아주 좋았다. 아주 좋았다. 또한 병세가 좋아질지 어떨지에 대한 소식이 올지를 점쳤다. “귀양 땅에서 친척을 만난 것과 같다(如謫見親)”는 괘가 나왔다. 이 또한 오늘 안에 좋은 소식을 들을 징조였다.

한 여인의 남편 이순신이 점을 친 일기다. 8월 27일 일기에는 “아침에 아들 울(蔚)이 보낸 편지를 보았더니 아내의 병이 위독하다고 했다. 그래서 아들 회(?)를 내보냈다”고 한다. “이날 아침 탐후선이 들어왔는데, 아내의 병이 아주 위독하다고 했다. 이미 생사가 결정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랏일이 이러니 다른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아들 셋, 딸 하나가 장차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다… 밤 9시부터 마음이 어지러워 잠을 들 수 없었다.”8월 30일의 일기다.

당시 이순신의 부인 상주 방씨는 아산에 있었다. 이순신과는 전쟁 중 거의 만나지 못했던 듯하다. 이순신은 남쪽 바닷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하거나 대치하며 군사와 백성들을 먹여 살리기 바빴다. 방씨는 남편 이순신을 나라와 백성에게 빼앗겼고, 이순신은 사랑하는 아내 대신 군사와 백성을 사랑하며 지냈다.

그런 중에 들려온 아내의 병 소식은 이순신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미안한 마음과 죄스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탓하며 이순신은 하늘에 기댔다. 이순신의 지극 정성이 통했는지 점괘는 좋았다. 점을 친 다음 날인 9월 2일 일기에는 “저녁에 탐후선이 들어왔다. 아내의 병이 조금 나아졌는데, 원기(元氣)가 아주 약하다고 했다. 매우 걱정되었다”며 점괘처럼 아내가 회복되고 있는 사실이 나온다.



불태(不殆)의 장수, 불패의 장수 이순신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유비무환의 행동방식이다. 사소한 징후까지 세심하게 미리 살피고, 철저히 경계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이순신은 장수로서 전투를 대비하기 위해 점을 치기도 했다.

1594년 9월 28일. 흐렸다. 새벽에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왜적을 토벌할 일에 대한 길흉을 점쳤다. 첫 번째 점에서는 “활이 화살을 얻은 것과 같다(如弓得箭)”였다. 다시 쳤더니, “산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如山不動)”였다. 바람이 순하지 않았다. 흉도(胸島) 안 바다에 진을 치고 잤다.

1596년 1월 10일. 맑았으나 서풍이 크게 불었다. 이른 아침에 적이 다시 나올지 어떨지 점쳤다. “수레에 바퀴가 없는 것과 같다(如車無輪)”가 나왔다. 다시 점을 쳤더니, “임금을 만난 것과 같다(如見君王)”는 괘가 나왔다. 모두 길한 괘라고 기뻐했다.

전투 예측하는 점

이 두 사례는 전투를 앞두었거나 적의 동향을 파악하려 할 때 친 점이다. 1594년 9월 28일의 점은 도원수 권율과 도체찰사 윤두수가 주도해 육군과 수군이 합동으로 전개할 장문포 전투 전날 친 것이다. 이순신은 전투를 앞둔 상태에서 점을 통해 전투를 예측하고, 준비 상태나 예상할 수 없는 문제점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점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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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평 | 이순신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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