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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심리학

더 나은 세상 위해 불공정 감수할 순 없나

어린이집 CCTV 논란으로 본 정의의 한계

  • 허태균 |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taekyun.hur@gmail.com

더 나은 세상 위해 불공정 감수할 순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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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과 객관 사이

더 나은 세상 위해 불공정 감수할 순 없나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존재조차 확인할 수 없는 원초아 자아 초자아 등의 개념에 착안해 정신을 분석했다.

절차적 공정성 혹은 합리성이 가장 중요한 학문 분야가 어찌 보면 심리학이다. 절차적 공정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심리학은 그냥 뜬구름 잡는 소리나 사기에 가까운 궤변이 될 수밖에 없다. 왜? 심리학은 직접 확인할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얘기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대부분의 개념은 심리학자도 직접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주의, 생각, 느낌, 감정, 성격, 태도 등 심리학이 다루는 개념은 실제로 존재를 확인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들이 없다면 우리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기에 ‘있어야만 하는 것’ ‘그냥 있다고 전제한 것’이다.

필자 개인의 생각으로는 (훌륭한?) 심리학자가 되기 위한 덕목 중 하나가 상상력이다. 오감으로는 직접 확인이 안 되는, 우리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과정을 눈에 보이는 듯 상상하고 눈으로 본 듯 타인에게 설명하는 능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일례로 지크문트 프로이트(1856~1939)가 제시한 마음속의 무의식은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할 길조차 없다. 그럼에도 정신세계를 빙산에 비유하며 의식과 무의식, 원초아와 자아, 초자아 간 갈등을 마치 눈앞에서 일어난 사건처럼 묘사한 프로이트의 상상력이 역사상 최고의 심리학 이론을 탄생시켰다. 프로이트는 뭔가를 실제로 보여준 게 아니라 뛰어난 상상력으로 사람들이 거부할 수 없는 (최소한 그 당시에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프로이트급의 상상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설득력은 과학적 방법론, 다시 말해 절차적 합리성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현대 심리학은 과학적 방법론을 강조하면서 철학으로부터 분리돼 발전해왔다. 심리학은 타인을 논리적으로 압도하는 합리성을 무기로, 부인하기 힘든 객관적 자료를 보여주는 방법으로 이론을 제시한다.



그러려면 대부분의 사람이 납득할 객관적이고 표준화한 척도와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또한 이 과정에서 주관성을 철저히 배제하는 것을 추구해왔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는 식의 표준화한 척도와 절차를 개발하고, 인간이 주관적으로 관여하지 못하는 자동적이거나 암묵적인 반응을 연구하고, 나아가 신경세포 단위의 활동을 조사한다. 이러한 노력은 새로운 지식과 강력한 학문적 설득력을 제공해줬다.

잠재력을 증명하라니…

이렇듯 객관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움직여온 기조는 심리학의 의미와 가치를 모호하게 하는 역설적 위험도 지녔다.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인간에게서 주관성을 거세하면 심리학이 연구하는 대상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세계는 있지만, 인간에게 객관적인 세계는 없다. 인간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 애기하는 객관성은 제3자의 눈에 비친 객관성, 다시 말해 대부분의 사람이 인식하는 것을 객관적 사실이라고 규정한 것일 뿐 절대적 객관성은 아니다. 인간은 무의미한 자극에 반응하지 않으며 의미가 있는 자극에만 반응한다. 여기서 의미, 무의미는 주관적으로 해석되는 것이지, 자극이 객관적으로 갖고 있는 게 아니다. 따라서 주관적이지 않은 객관성은 존재할 수 없는데도 심리학은 편의상 객관성이 존재하는 것처럼 간주해온 것이다.

과학적 합리성이나 절차적 공정성은 이렇듯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주관적 해석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다. 성격을 측정하는 척도나 영어 실력을 측정하는 시험도 마찬가지다. 성격검사 결과나 토익 점수는 성격과 영어 실력을 부분적으로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해 점수가 곧바로 특정한 사람의 성격이나 영어 실력인 것은 아니다. 척도와 시험 문제를 결정한 사람의 주관성과 그것에 답하는 사람이 그 순간 선택한 주관성이 반영된 매우 주관적인 결과다. 어쩔 수 없이 그것이 객관적인 것처럼 서로 약속하고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객관적이라고 받아들여지는 자료의 사회적 영향력은 엄청나다. 절차적 공정성이 확보됐다는 환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척도나 방법이 실제로 무엇을 측정하는지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많더라도 자료가 제공되는 순간 그것을 무시할 수 없다. 그것을 무시하려면 또 다른, 더욱 강력한 자료가 필요하다. 그래야 사람들이 공정하다고 믿어주기 때문이다.

잠재력을 중요시한다면서 잠재력을 증명하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증명이 가능하다면 그게 잠재력이 맞나. 잠재력은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은 어떤 능력을 말한다. 드러나지 않은 능력을 증명하라는 게 말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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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균 |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taekyun.hu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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