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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심리학·마지막회

칭찬에 춤추는 고래는 과연 행복할까?

자사고 폐지 논란에서 실종된 것

  • 허태균 |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taekyun.hur@gmail.com

칭찬에 춤추는 고래는 과연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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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러 보도에 따르면 한국 청년들이 과거와 달리 악착같지 않다고 한다. 취업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이 시기에, 좋은 직장에 취업해도 금방 그만두는 청년이 늘고 있다고 한다. 취업할 노력을 하지 않고 의지도 없는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이 증가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도 있다. 근무 강도가 높은 정규직보다 조건이 나쁘더라도 출퇴근 시간이 정확한 직장을 선호하고, 심지어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청년이 늘어간다는 자료가 쏟아진다.

청년의 포기는 나쁜 걸까? 

많은 기성세대는 이러한 현상을 걱정한다.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모르고 풍요롭게 자랐으며 입시 공부에만 매달린 청년들이 취업난에 직면해 너무 쉽게 포기하고, 무의미하고 소소한 재미만을 찾아 이기적 삶을 산다고 비난한다. 극심한 경제적 불황으로 지난 20년을 잃어버렸다고 하는 일본에서 일어난 현상과 비슷하다면서 이런 청년들 때문에 한국 경제가 더 나빠진다는 듯 불만스러워한다. 

하지만 청년들의 포기(실제로 뭘 포기하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지만)가 과연 나쁜 것일까. 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매달리면 사회가 이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취업, 돈, 명예 등 세속적 성공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기만 하면 경제가 발전해 선순환에 들어가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는 근거가 뭔지 모르겠다.

저성장 경제구조에 들어가 있어 실제로 많은 청년이 세속적 성공에 상대적으로 덜 매달리고 살아가는 선진국은 잘못되고 있는 걸까. 상당한 경제발전을 이룩한 선진국 대부분은 저성장 문제를 일찌감치 경험했다. 이런 나라의 청년들이 개인 시간을 중요시하는 현상은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세속적 성공을 포기한 삶을 선택한 청년들도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후루이치 노리토시가 쓴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이라는 책은 얼마나 많은 일본 젊은이가 포기하면서 사는지를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그 포기한 젊은이들이 결코 불행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세속적 성공을 포기한 청년 비율로만 보면 선진국들이 한국에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단지 차이는 그들은 아주 체계적으로 세속적 성공을 포기할 기회를 제공받아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포자기로 살지 않는다. 세속적 성공을 대체할 만한 수많은 다른 가치를 사회가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종교든 문화든 예술이든 봉사든 어떤 것이든 어려서부터 세속적 성공이 아닌 다른 가치를 일깨워준다. 그렇다면 이들은 포기한 게 아니라 다른 삶을 선택한 것이다. 어찌 보면 평범하지만 행복한 소시민의 삶을 영위한다고도 하겠다.

하지만 한국은 청년 대부분에게 세속적이면서 똑같은 성공의 삶을 권하고 강요한다. 교육의 거의 유일한 가치는 세속적 성공과 그것을 위한 학업이다. 그래서 한국 청년들은 다른 가치를 모른다. 한국 청년들의 포기는 진짜 포기다. 아무런 대안 없이 그냥 실패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회는 여전히 포기하면 안 된다, 그러면 영원히 실패하는 것이라고 주입한다. 마치 그들 때문에 한국 사회가 어려운 것처럼 말한다. 그들은 실패자면서 피해자다. 취업을 못해서, 성공을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평가할 다른 가치를 갖지 못했기에 실패자요, 피해자다. 

‘재미’를 가르치자  

한국 교육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재미다. 청소년, 젊은이가 재미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러니 매일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감각적이고 일시적인 쾌락만 추구한다. 대학 축제에 가보면 학생들이 대개 ‘술장사’를 한다. 학과별로 가장 중요한 축제 활동이 주점 운영이다. 자신들의 축제인데도 놀지 않고 돈벌이에 전념한다. 대학 축제뿐 아니라 한국 축제 대부분이 이렇다. 전국에 700개가 넘는 축제가 있는데, 성공적인 것은 손꼽을 정도다. 왜? 주민은 아무도 안 즐기고 돈벌이만 하기 때문이다. 주민은 장사만 하고 관광객이 뭔가를 한다. 축제의 가장 큰 목적 또한 지역경제 활성화다.

외국의 많은 성공적 축제는 주민들이 실제로 참여하는 형태다. 관광객 유무에 상관없이 매년 또는 매달 대대로 내려온 자신들을 위한, 자신들의 행사를 치른다. 상인이나 운영자가 아닌 참여자로서 직접 주인공이 되고, 관광객은 그것을 구경하거나 가끔 운이 좋아 그들 사이에 끼어 뭔가를 해보면서 즐거워한다. 한국 사회와 한국인은 재미를 너무나도 모른다.

칭찬에 춤추는 고래는 과연 행복할까?
허태균

1968년 출생

고려대 심리학과 졸업,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문학석사(일반심리학)·노스웨스턴대 철학박사(사회심리학)

저서 : ‘가끔은 제정신’


교육의 다양성은 자사고 폐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재능과 관심을 가진 청소년에게 각자의 재능과 관심에 적절한 교육을 제공할 때 이뤄낼 수 있다. 입시 성공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라, 수많은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라는 춤을 추려는 청소년에겐 그에 맞는 ‘음악’을 주면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칭찬할 일이 생긴다. 하지만 다른 춤을 추려는 청소년에게 칭찬을 통해 억지로 공부 춤을 추게 하지 말자. 그들은 공부를 포기할 권리, 다른 춤을 출 권리를 가졌다. 각자 원하는 춤을 출 때 가장 재미있어할 것이고 사회는 행복해질 것이다. 우리 교육의 의무는 그들이 원하는 ‘음악’을 제공하는 것이다.

신동아 2015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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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균 |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taekyun.hu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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