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호

“반말에 욕설에 협박에…정말 도를 닦아요”

강원랜드 카지노의 빛과 그림자

  • 조성식 기자 | mairso2@donga.com

    입력2015-07-23 1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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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말에 욕설에 협박에…정말 도를 닦아요”
    수백 명의 사람이 입장권을 들고 서성거린다. 전날 혹은 며칠 전부터 게임해온 손님과 새로 도착한 손님이 뒤섞여 새벽 인력시장처럼 시끌벅적하다. 밤새워 게임하고 폐장시간(오전 6시)에 잠시 물러났던 사람은 표가 난다. 까칠한 얼굴에 지친 기색이 뚜렷하다. 정각 10시. 안내방송에 따라 1~60번까지 먼저 입장한다. 한번에 몰리는 혼잡을 막으려 번호 순서대로 들여보내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로 설치한 열화상감지기 앞에 잠시 섰다가 신분증과 입장권을 내밀고 들어간다. 음주 측정에 걸리는 사람도 있다. 평일엔 7000명, 주말엔 1만 명 안팎이 매일 이런 검문소를 통과해 ‘환상의 나라’로 입국한다.

    강원랜드 카지노는 동화 속 왕국 같다. 겉은 궁전처럼 화려하고, 안은 고급 미술관처럼 우아하다. 영업장 바로 아래 3층 특설무대에선 바이올린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영화 ‘여인의 향기’ 주제곡이다. 동유럽 출신 미녀 바이올리니스트는 외모와 의상이 그리스 여신을 연상케 한다.

    카지노에 들어가 붉은색 카펫을 밟노라면 흡사 구름 위에서 노니는 듯하다. 여기저기서 금화와 은화가 나뒹구는 듯한 마법의 세계가 펼쳐진다. 머신들이 뿜어내는 전자음은 영화 ‘스타워즈’의 레이저 총격처럼 현란하다. 빛과 소리와 돈의 향연이다. 자본주의의 적통인 배금주의와 한탕주의의 최전선. 행운을 좇아 불나방처럼 모여든 인간군상. 기어코 ‘파랑새’를 잡아 새장에 넣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한국인’들. 탄식과 분노와 환희가 꽃가루처럼 허공에 흩날린다.

    도박하는 사람의 기분은 종잡을 수 없다. 일희일비하고 자그마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돈 잃은 고객 중 일부는 직원들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다. 인격비하 발언과 욕설을 퍼붓고, 더러는 성희롱과 폭력까지 행사한다. 송혜교가 딜러로 나와 멋진 사랑을 하는 드라마 ‘올인’은 드라마일 뿐이다.

    “그날인가 보네”



    미혼인 여성 딜러 이화정(33) 씨에게 일부 고객의 성희롱 발언은 감당하기 힘들다. 부산 출신인 이씨는 대학에서 호텔카지노학을 배우고 2003년 강원랜드에 입사했다.

    “손님들끼리 게임 용어를 저속하게 표현하는데 듣기에 영 거북하다. 예를 들어 하우스(카지노 측)가 자주 이기면 손님들이 ‘딜러 오늘 그날인가 보네’ 한다. 블랙잭에 스플릿(split)이라는 용어가 있다. 스플릿을 하면 딜러에게 ‘한번 벌려보라’고 한다.”

    스플릿은 딜러에게서 받은 두 장의 카드 숫자가 같을 경우 카드를 나눠 두 패로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베팅도 한 번 더하게 된다.

    ‘카지노의 꽃’이라 하는 딜러는 8시간씩 3교대로 근무한다. 쉬지 않고 팔을 움직이고 말을 하면서 고객과 게임을 해야 하므로 피로감이 엄청나다. 특히 밤샘 근무에는 강한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하다. 이씨는 “여성 딜러는 신체 바이오리듬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호소했다.

    강원랜드 카지노 테이블은 총 200대로 일반 영업장이 180대, 회원(VIP) 영업장이 20대다. 딜러는 한 테이블에 20분씩 두 테이블을 돌고, 20분 쉰다. 한 시간 단위로 끊어지기 때문에 식사는 쉬는 시간에 해결해야 한다. 식당까지 이동하는 거리가 제법 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먹어야 한다. 소화불량, 위장장애에 시달리는 딜러가 많다는 말이 이해된다. 이씨는 “겉모습은 멋있고 프로페셔널해 보이지만 내면엔 외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저마다의 아픔이 있다”고 말했다.

    여성 딜러의 경우 ‘딜러 반점’이라는 게 생기기도 한다. 일종의 피로골절로, 테이블과 자주 마찰하는 옆구리 아래에 일정한 자국이 생기는 것이다.

    고객이 풍기는 입냄새와의 전쟁도 버겁다. 담배 피우고 커피 마시면서 몇 시간씩 게임을 하니 악취가 안 날 수 없다. 트림도 예사다. 냄새가 심해지는 시간대는 자정 이후. 돈을 잃은 고객이 ‘푸’ 하고 한숨을 내쉴 때마다 딜러는 속으로 한숨을 삼켜야 한다. 어떤 딜러는 간부한테 허락을 받아 고객들에게 껌을 나눠주기도 한다.

    딜러 서세광(37) 씨에 따르면 그나마 형편이 많이 나아진 것이다. 영업장 내 흡연이 가능했던 스몰카지노 시절 딜러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현재 일반 영업장은 지정구역에서만 담배를 피울 수 있다. 다만 회원 영업장은 여전히 흡연이 허용된다.

    “딜러 7~8년 하면 스님”

    뭐니뭐니 해도 가장 힘든 점은 고객과의 신경전이다.

    “돈을 잃으면 굉장히 거칠게 나온다. 눈빛, 말투, 행동이 달라진다. 딜러에게 왜 카드를 빨리 안 돌리느냐, 왜 칩을 세게 놓느냐, 왜 내 말에 대꾸를 안 하느냐는 둥 온갖 시비를 건다. 온갖 불평에 협박에…. 딜러는 그저 게임을 진행하는 사람일 뿐인데 자기 돈을 빼앗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딜러는 기본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손님들이) 하대와 반말과 욕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딜러의 기술에 따라 판이 좌우되는 건 아닐까. 서씨가 고개를 내저었다.

    “기술을 쓸 이유가 없다. 카지노가 무조건 따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카지노가 다 그렇다. 그렇지만 딜러도 프로이니만큼 승부를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다. 고객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지만 한편으론 회사를 대표해 손님과 게임을 하는 것이니….”

    딜러가 많이 잃어 ‘균형’이 무너지면 카지노 측의 견제가 시작된다. 진행 속도를 조절하거나 딜러를 교체한다. 고객의 페이스를 흐트러뜨리는 것이다. 반대로 고객이 요청해 딜러를 바꾸는 경우도 있다.

    딜러는 고객에게 팁을 받기도 한다. 팁은 딜러 개인이 갖지 않고 모든 직원이 공평하게 나눠 가진다. 주로 돈을 딴 고객이 기분 좋아 건네는 것이지만, 이화정 씨에 따르면 더러 잃고도 팁을 주는 고객도 있다고 한다.

    “매너 있는 손님들은 돈 잃었어도 ‘너희가 진행 잘해서 기분 좋게 놀았다’면서 팁을 주고 떠난다. 대체로 테이블 분위기가 좋았을 때다.”

    강원랜드 카지노 딜러는 1300여 명. 딜러가 되려면 먼저 3개월간 양성교육을 받는다. 이어 3개월 실습교육을 거쳐 6개월간 인턴으로 일한다. 이 과정에서 탈락자도 꽤 나온다고 한다. 1년간의 수련기가 끝나면 비정규직으로 1년 근무한 뒤 정규직 딜러가 된다. 초창기엔 딜러 이직률이 높았다고 한다. 전문직 종사자로서의 포부를 안고 왔다가 비인격적 대우에 실망해 떠난 것이다. 12년차 딜러인 서씨의 분석이다.

    “어린 나이에 뭐든 할 수 있겠지 싶어 왔다가 기대한 바와 다르니 많이들 떠났다. 딜러는 고객과 충돌해도 표정을 밝게 해야 한다. 딜러 7~8년 했다면 도 닦는 스님이 됐다고 봐야 한다.”

    2013년 신축한 5층 영업장에는 머신이 없다. 오로지 테이블 게임만 한다. 기계소리가 없어선지 4층보다 한결 쾌적한 느낌이 든다. 최대 베팅액이 30만 원인 테이블 게임에선 사이드 베팅(정원 외 베팅)이 허용되지 않는다. 게임을 하지 않는 빈 테이블에 마스크를 쓴 중년 여성 몇 명이 죽치고 앉아 수다를 떤다. 무표정한 여성 딜러와 웃는 남성 딜러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간혹 딜러와 인사를 나누는 고객도 있다. 한 여성 딜러가 하품을 한다. 업장 내 은행에는 돈 찾는 사람이 줄 서 있다. 12시 45분. 낮이 아니라 밤이다 .

    “반말에 욕설에 협박에…정말 도를 닦아요”
    조폭과의 기 싸움

    김희수(34) 씨는 카지노 안전팀 소속이다. 직무 특성상 김씨와 같은 여성 요원은 소수다.

    “주로 돈 잃었을 때 거친 언행이 나오지만 습관적으로 그러는 고객도 많다. 욕설이 가장 많고, 밤길 조심하라거나 밖에서 보지 말자는 둥 협박을 일삼기도 한다. 손으로 때리려는 시늉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제재를 피하려 굉장히 지능적으로 행동한다. 고객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출입제한 조치다. 중독성이 강한 손님일수록 그렇다. 그래서 딜러에게 욕을 해놓고도 발뺌한다. 상담해보면 속상해서 혼잣말했다는 식으로 둘러댄다.”

    딜러에게 욕설·폭행을 하거나 사기도박을 한 사람은 출입제한 조치를 당한다. 김씨와 같은 안전팀 직원은 고객 간 싸움을 말리다 맞기도 한다. 입장을 제지당한 음주 고객이 입구에서 거세게 항의할 때 달래서 돌려보내야 하는 것도 안전팀 업무다. 폭력행위가 도를 넘은 경우 경찰에 넘기기도 한다.

    안전팀 매니저 서형일(40) 씨는 2000년 스몰카지노 개장 때 입사한 베테랑이다. 서씨는 안전팀을 “강원랜드의 파출소”라고 규정하면서 “고객의 신변과 회사의 자산을 보호하는 것이 주 임무”라고 했다. 듬직한 체구와 부드러운 인상이 돋보이는 그는 “15년간 온갖 손님의 행패를 봐왔는데, 다행히 맞은 적은 없다”고 털어놓았다.

    ”난폭한 고객을 제지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신체 접촉이 생긴다. 그러면 고객이 소송을 건다. 먼저 때렸으면서도. 고소를 당하면 수사기관에 출두해 조사받아야 한다. 이런 일을 개인적으로 처리해야 하니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지금은 주로 법적으로 대응한다. 그런데 회사 법무팀에 찾아가 상담하는 것도 결국 내 시간 뺏기는 일이다. 그러니 웬만하면 참는다. 가벼운 폭력은 눈감아주기도 하고.”

    “반말에 욕설에 협박에…정말 도를 닦아요”
    가장 골치 아픈 손님은 역시 조폭. 이들이 행패를 부리면 1차적으로 안전팀에서 제압하지만 통제가 잘 안 될 경우 경찰력을 동원한다. 온몸에 문신을 한 사람이 옷을 벗고 난동을 피운 사례도 있다. 안전팀 내 유도팀 창단 주역이기도 한 서씨의 얘기가 재미있다.

    “결국 기 싸움이다. 문신 내보이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람을 우리 쪽에서 일부러 자극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대 맞을 각오하고 말이다.”

    말하자면 강력한 경고를 보내거나 도발을 유도해 제압함으로써 사고 요인을 미리 제거한다는 얘기다. 여성 안전요원의 경우 물리적 충돌은 거의 없지만, 잡다한 일이 많다. 경호원에, 119 요원에, 상담사 노릇까지 한다. 바지에 실례를 해 악취를 풍기는 노인 고객을 데리고 나와 씻게 하는가 하면 자살하겠다고 위협하는 손님을 달래기도 한다. 직원들 앞에서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는 사람도 있었다.

    “자살 소동을 벌이는 사람이 많다. 일단 자살 얘기를 꺼내면 가족에게 연락하고 119에 신고한다. 그런데 대부분은 말만 그렇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진 않는다. 다신 안 올 것처럼 행동하고는 다시 오더라.”(김희수 씨)

    “주 업무가 안전과 서비스라면, 초창기엔 안전 비중이 훨씬 컸다. 안전이 70이라면 서비스가 30이었다. 지금은 서비스와 안전 비중이 똑같을 정도로 질서가 잡혔다. 고객의 안전이 최고의 서비스다.”(서형일 씨)

    “셋이 할 일을 둘이 한다”

    “반말에 욕설에 협박에…정말 도를 닦아요”
    ‘음지’에서 고생하는 대표적인 부서가 식음팀이다. 직원 230명이 12개 영업장에서 일하는데, 감정노동자로서의 고충은 딜러 못지않다. 개장 첫해인 2000년 입사한 차윤미(36) 씨는 고참의 관록을 풍겼다.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말투에서 풍파를 견뎌낸 사람의 관조가 느껴진다.

    “카지노 영업장에는 안전요원과 카메라가 있기에 행패 부리는 손님을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식음업장에는 그런 게 없다. 돈 잃은 손님들이 와서 짜증 내고 화풀이하는 곳이 여기다. ‘음식 맛이 왜 이렇냐’부터 ‘숟가락·젓가락이 왜 이리 더럽냐’까지 온갖 트집을 잡는다. 심지어 자신이 원해 마셨으면서도 ‘여기서 마신 술 때문에 (카지노) 입장을 못했다’고 시비 거는 손님도 있다. 감정노동자가 뭔가. 잘잘못을 떠나 무조건 ‘죄송하다’고 해야 한다. 경험 많은 직원은 차를 제공하면서 손님 기분을 달래려 하지만, 갓 입사한 직원은 회의를 느끼고 다른 부서로 옮겨가려 한다.”

    카지노 영업장과 달리 식음업장에는 일반 손님도 많다. 대체로 가족 단위 손님이다. 돈 잃은 카지노 고객의 비뚤어진 행태는 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는 매출에도 지장을 준다.

    “일부 카지노 손님은 자리에 앉으면 신발 벗고 양반다리를 한다. 물티슈로 발가락을 닦기도 한다. 우리가 정중하게 시정을 요청하면 미안해하며 자세를 바로잡는 손님도 있지만, 막무가내로 화내는 손님도 많다. 그 스트레스, 말도 못한다.”

    식음팀 직원들의 숙원은 인원 보강이다. 차씨는 “그 점을 꼭 강조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같은 식음팀 소속 홍성준(43) 매니저도 그 얘기부터 꺼냈다. 차씨와 마찬가지로 2000년 입사자인 홍씨는 대기업 소속 호텔에서 근무하다 옮겨왔다. 그는 “세 명이 할 일을 두 명이 한다”는 말로 식음팀의 업무 과중을 호소했다.

    “3교대 근무라면 3개 조가 편성돼야 한다. 하지만 식음팀은 워낙 근무시간대가 다양해 11개 조까지 나온다. 새벽 5시부터 시간대별로 근무조가 다르다. 3교대 근무 부서는 한 달 단위로 시프트(위치 교대)가 이뤄지지만, 우리는 매일매일 바뀐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다시 아침근무로 들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홍씨는 인력 부족에 따른 서비스 질 저하를 우려했다.

    “호텔에서 근무할 때는 서비스를 잘하면 칭찬을, 못하면 꾸지람을 들었다. 여기선 서비스 판단 기준이 다르다. 아무리 좋은 서비스를 해도 돈 잃은 사람은 만족하지 못한다. 돈 딴 사람은 별것 아닌 서비스에도 흡족해한다. 인력이 부족하면 서비스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고객에게 간다.”

    회사 측도 문제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인원을 늘리고 싶어도 맘대로 못 늘린다는 데 고민이 있다. 공기업에 적용하는 정원총량제 때문이다. 함승희 강원랜드 사장은 “감정노동자가 대부분인 카지노를 일반 공기업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반말에 욕설에 협박에…정말 도를 닦아요”


    오전 9시 반. 개장 30분 전이다. 텅 빈 카지노에 정적이 감돈다. 곳곳에서 딜러들이 미팅을 한다. 기계 작동 여부를 점검하고 청소도 한다. 미팅이 끝난 테이블에서는 딜러들이 자세를 갖추고 대기한다. 대열을 갖춘 딜러들은 마치 중세시대 출정 준비를 끝낸 기사단 같다. 잠시 후면 소박한 희망을 품거나 화려한 욕망에 불타는 사람들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올 것이고, 딜러들은 다음 날 동이 틀 무렵까지 이들과 혈전을 치러야 한다. 한 여성 딜러에게 “긴장되느냐”고 물으니 “전혀!” 하며 빙긋 웃는다.

    사내 커플 많은 까닭

    인력 충원 못지않게 직원들이 바라는 것은 승진이다. 강원랜드 직급 구조는 피라미드형이 아니라 다이아몬드형이다. 초창기에 대량으로 입사한 직원들을 다 승진시키지 못한 데다 신규 채용을 줄인 결과다. 적체가 가장 심한 직급 구간은 대리-과장이다. 한 직원은 “과장 달기가 워낙 힘드니 과장이 된 이후로는 그 이상의 승진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씁쓰레한 표정으로 말했다.

    국방부 조사본부장(헌병 최고위직) 출신 홍종설 카지노본부장도 “과포화상태” “숙제”라는 표현으로 승진 체계의 문제점을 인정했다. 홍 본부장은 우선 딜러 직급구조를 바꿔 승진 적체를 해소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현재 딜러는 과장, 차장으로 진급해야 상위 직책인 플로어 퍼슨(Floor Person·딜러 6명 관리), 핏 보스(Pit Boss·플로어 퍼슨 감독)를 맡을 수 있다. 이를 기능직 보직인 카지노 매니저, 카지노 마스터로 바꾸고, 직급과 상관없이 장인 자격을 갖춘 사람을 임명해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구상이다.

    카지노 직원들을 힘들게 하는 건 근로조건만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외진 지역이라 교육·문화·의료·교통 등 일상생활 전반에서 겪는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강원랜드가 위치한 정선군 사북읍은 과거 대표적인 탄광지대였다. 탄광들이 문 닫은 후 지역경제는 침체되고 죽은 도시가 됐다. 거기에 자본주의 오락문화의 첨병인 카지노가 들어선 것이다. 강원랜드는 현지인 채용 등으로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다. 카지노 손님을 겨냥한 술집과 모텔, 식당, 당구장, 마사지 업소 등이 늘었다. 하지만 생활수준은 그다지 향상되지 않았다.

    올해 4월 현재 강원랜드 직원은 3322명. 이 중 1200여 명이 회사 근처 기숙사에서 거주한다. 2인 1실의 아파트형 두 동으로, 통근버스로 10분 남짓 거리에 있다. 나머지 직원들은 인근 지역에서 출퇴근한다.

    휴무일에도 마땅히 즐길 만한 여가시설이나 문화시설이 없어 대부분의 직원이 회사 주변을 벗어나지 못한다. 자연히 외부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적다. 그래선지 사내 커플이 유난히 많다.

    “집이 원래 대구다. 집 밖에 나가면 대형 마켓이 있고 지하철로 몇 정거장 가면 영화관이 있는 곳에 살다 여기 오니 아이가 적응을 못한다. 여기서 영화 보려면 차 타고 한 시간 반을 가야 한다. 아이들 교육 문제로 원주나 강릉에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다.”(차윤미 씨)

    “같이 입사한 동기들끼리도, 근무시간이 다르고 쉬는 날이 다르니 서로 얼굴을 잘 못 본다. 심하면 몇 년씩이나.”(김희수 씨)

    “주중이나 주말이나 쉬는 날이 일정치 않으니 동호회 활동도 못한다. 경조사에도 거의 못 간다. 명절에 고향 가본 지는 오래됐고.”(이화정 씨)

    “반말에 욕설에 협박에…정말 도를 닦아요”
    ‘친절은 가슴에서’

    의료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인근 정선이나 태백에 큰 병원이 없고 의료시설이 부족한 탓에 아이의 일상적 질병도 대도시로 나가 진료받는다. 산부인과 정기검진도 마찬가지다. 강원랜드는 ‘닥터헬기’를 운용하는데 응급환자는 원주 기독교병원으로 후송한다.

    카지노 직원의 급여 수준은 산업자원통상부 산하 공기업 중에서 상위급에 속한다. 반대로 임원급 연봉은 낮은 편이라고 한다. ‘공기업 카지노’라 제약이 많다. 수익을 많이 내도 임금을 맘대로 올리지 못한다. 임금총량제, 수익총량제라는 규제 때문이다. 홍종설 본부장은 “보수나 승진도 중요하지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함승희 사장은 딜러의 고충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오후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 일하는 딜러는 정말 힘들다. 아침에 퇴근하는 그들을 보면 정말 안쓰럽다. 그들의 초췌한 얼굴을 떠올리면 여기서 번 돈 10원이라도 허투루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딜러 휴게실 입구에는 이런 표어가 붙어 있다. ‘미소는 얼굴에서, 친절은 가슴에서’.

    손님과 딜러가 실랑이를 한다. 소란이 커지자 안전요원이 출동한다. 다른 쪽에서는 중년 여성들끼리 자리를 놓고 싸움을 벌인다. 날이 밝으면 박쥐처럼 사라질 인간 욕망의 부스러기들. 테이블은 말할 것도 없고 머신도 빈자리가 없다. 나의 운을 벼랑 끝까지 밀어보고 싶다고? 돈이 지배하는 세상의 질서를 파괴하고 싶다고? 인생의 합리성에 대한 저항이라고? 어차피 다 잃고 말 것이라고 예감하면서도 딸 수 있으리라는 이 근거 없는 희망의 원천은 뭔가. 하긴 삶 자체가 모순덩어리 아닌가. 졸음을 참고 마음속으로 점점 더 강력한 주문을 건다. 시간이 흐를수록 꿈은 작아지리라. 시계를 쳐다보기가 두렵다. 새벽 2시 3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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