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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왈츠를 추듯이

  • 백수린 소설가

[에세이] 왈츠를 추듯이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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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에는 새 수첩을 마련하곤 한다. 요즘엔 휴대전화에 메모장과 달력 기능이 있어 예전만큼 수첩을 자주 쓰게 되진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새해가 되면 새 수첩에 365일치의 날짜를 적고, 소소한 목표나 허황된 계획을 즐겨 적는다. ‘매일 운동하기’ ‘냉장고 청소하기’ ‘아침에 일찍 깨서 작업 시작하기’ 같은 생산적 목표부터 ‘한낮에 잔디밭에 누워 낮잠 자기’ ‘지하철 순환선을 타고 한 바퀴 돌아보기’처럼 무용해 보이는 계획도 있다.

매해 무언가 적긴 하지만 내가 새해 계획과 목표를 수첩에 적는 건 무심히 흘려보내기 쉬운 시간의 마디마디마다 멈춰 서서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날들을 맞이하기 전 숨을 고르는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에게 수첩에 적은 일들은 앞으로 다가올 한 해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이정표일 뿐,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약속이 아니란 의미다. 그러니 작심삼일이어도 크게 개의치는 않는다. 음력으로 해가 바뀌는 설에 다시 한번 시작하면 되니까. 이번에도 작심삼일이 돼버린다면? 그때는 학생들이 입학하고, 개강하는 3월에 또다시 새롭게 출발하면 된다.

무책임하고 허랑방탕하게 삶을 허비하겠다는 선언이나 내 고질적 게으름을 변명하려는 게 아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잠시 멈추어 나의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일일 뿐, 나는 계획을 얼마나 실천했는지로 스스로를 단죄하고 싶지는 않다. 내 하루하루가 목표한 대로 생산성 있게 흘러가지 않아 원하는 만큼 결과물을 내지 못했더라도, 그래서 내가 과거의 나보다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지 못했더라도 나 자신을 비난하는 데 내 인생을 더는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의지가 약해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룬 뒤, 내일로 미룬 일을 또 그 이튿날로 미루는 나일지라도 그런 나 자신의 한계와 허물, 물러 움푹 패어 있는 부분이나 모난 부분까지 나 자신의 일부라고 기꺼이 받아들이며 살고 싶다.

쓸모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오랫동안 1년 중 3월을 가장 좋아하지 않았다. 3월에 내 생일이 있다는 것도, 입학과 개학의 어수선함도 견디기가 어려웠다. 3월의 부산스러운 활기, 모두들 시작이라고 무언가를 다짐하는 분위기, 무엇보다도 낯선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 환히 웃어야 하는 것이 내게는 모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전학과 이사를 반복했던 나에게 어렵게 사귄 친구들과 헤어져 새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3월은 불안과 두려움, 외로움과 무력감을 뜻하는 달이었다.

어릴 적 나를 가장 두렵게 한 것은 내가 아무짝에 쓸모가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발각되면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리란 예감이었다. 이미 함께 놀 무리가 형성돼 있는 아이들 틈에 전학생이 돼 교탁 뒤에 설 때 나는 언제나 절박하게 상품을 파는 영업사원의 심정이었다. 팔아야 하는 물건은 물론 나 자신이었다. 교탁 뒤에 서 있는 나를 바라보고, 평가하고, 무리에 끼워줄 만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던 그 눈빛들. 아이들은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 때야 비로소 나에게 도시락을 같이 먹자거나 운동장이나 화장실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 모든 것이 지겨워지고, 더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애정을 갈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기 전까지) 누군가에게 나의 쓸모와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면, 어떤 것으로도 대체되지 않는 무언가를 가진 사람이라면 나는 더는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을 거였으므로. 어둠 속에 빛나는 전광판처럼 온몸을 다해 반짝이려고 애쓰고 또 애쓰면서. 누구든 나를 발견해 줘요. 나를 찾아와 줘요. 그리고 그렇게 애를 써서 발산하는 나의 빛이 시시하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면 쉽게 울적해졌다.

탁월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

내가 그런 마음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다른 이의 시선은 마법사가 주문을 걸어놓은 거울과도 같아서, 그것에 비춰 자신을 바라보면 우리는 반드시 불행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고 싶어 외관의 불을 밝게 켜놓아 봤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 할수록 내 안은 텅 비어가고, 아무도 살지 않는 컴컴한 방 안에서 나는 점점 초라해진다.

다른 이들의 시선으로부터 많이 자유로워진 이후 예전보다는 쓸모에 대한 강박이 많이 없어졌지만 이따금씩은 여전히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며 내 존재의 쓸모를 고민하던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움츠러들 때도 있다. 예를 들면 몸이 많이 피곤하거나 아파 마음마저 나약해져 있는데 글이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거나 (글은 언제나 잘 풀리지 않지만!), 우연히 내 글에 악평을 남겨놓은 리뷰를 읽게 되는 (그런 사람들은 왜 친절히 내 이름에 태그까지 걸어두는 걸까?) 그런 날들 같은 때.

내가 하는 일의 결과물이나 타인의 평가로 쉽게 스스로를 초라하게 느끼게 되는 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특별함이 탁월함으로 자주 오해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나의 탁월함을 타인에게 증명하기 위해 무엇이든 잘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안간힘을 써서 그걸 해내 봤자, 우리의 미션은 공부에서 연애로, 취업에서 결혼으로 심지어는 육아로 탈바꿈할 뿐이라는 걸. 세상은 우리가 행복해져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 말하지만 탁월해야만 특별해지는 세계에서 행복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꿈이다.

서툴기 때문에 아름답다

과학에 문외한이지만 나는 우주에 관한 책을 이따금씩 즐겨 읽는다. 한 인간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우연이 끊임없이 발생해야만 하는지를 한결같이 이야기해 주기 때문이다. 한 인간이 태어나기 위해 38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축적돼야만 하는 행운의 총량을 생각해 본다. 지구상의 인간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수없는 행운의 결과물로 인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인간의 삶은 얼마나 경이로운 일이 되는지.

이토록 수없이 겹치는 우연을 우리가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탁월함으로 우리를 애써 증명할 필요 없이,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특별한 게 아닐까. 우리는 왕자의 눈에 띌 만큼 탁월한 미모를 갖지 않더라도, 재투성이에 초라한 옷차림을 하고 있어도 기꺼이 무도회를 즐길 수 있다. 진정한 나를 특별한 존재로 발견해 낼 사람은 나를 재투성이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공주로 탈바꿈해 줄 요정이나 하룻밤짜리 마법의 힘이 없이는 초라한 나를 춤출 상대로 간택해 주지 않을 왕자가 아니라, 나 자신이니까. 그리고 그것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몸을 맡기고 왈츠를 추듯 가볍고 우아하게 스텝을 밟아가며 삶을 누리는 일뿐이리라. 때론 치맛자락을 밟거나 스텝이 꼬여도 괜찮다. 척추를 곧게 펴고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만 잘 잡고 있다면.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특별하고, 서툴기 때문에 아름답다.


백수린
● 1982년 인천 출생
●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서 소설 ‘거짓말 연습’ 당선으로 등단
● 2015, 2017, 2019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
● 2020년 현대문학상 수상



신동아 2022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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