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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퇴진 정몽헌’의 現代장악 시나리오

  • 문주용 이데일리 산업부 기자

추적! ‘퇴진 정몽헌’의 現代장악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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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사람이다. 허물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가 현대정공 회장으로 있을 때 신규 진출한 사업이 성과를 내지 못하자 회사 내부에서는 관련 고위 임원의 문책이 불가피하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렇지만 몽구 회장은 그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를 때까지 당사자에게 일을 계속 맡기면서 독려했다. 한 번 사람을 쓰면 함부로 내치지 않고 능력을 발휘할 때까지 기다릴 줄 안다.”

하지만 이런 성격은 냉정한 승부사인 정 명예회장 성에는 차지 않았을지 모른다. 때문에 정이 많고 효자인 그에게는 그룹보다는 가계(家系)를 물려주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듯하다. 정 명예회장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MK의 약점은 또 있다. 그가 학연으로 이뤄진 측근들에게 끌려다닌다는 것이다. MH측의 한 인사는 이렇게 말한다.

“MK계 사람들은 과잉 충성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오로지 MK에게 잘 보이겠다는 뜻에서 결례를 범할 때도 많고, 자기들끼리 ‘인의 장막’을 치기도 한다. 아랫사람이 과잉 충성을 하는 것은 대개 윗사람이 이를 즐기기 때문이다. MK가 기아차 공장을 방문할 때면 공장을 새로 단장하느라 페인트가 동이 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MK가 이런 것을 좋아하니까 밑에서 알아서 기는 것이다. 이들 대부분이 경기고나 경복고 출신인 것도 문제다. 이 학교를 나오지 못하면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기 어렵다.”

MK 주변에는 이른바 ‘왕회장 사람’으로 불리는 가신 출신이 거의 없다는 점도 눈에 띈다. MK가 일찍부터 현대정공 등 자동차 소그룹의 경영에 전념하느라 가신들을 가까이 할 필요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두 사람은 경영 스타일과 능력에서도 대조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지난해 경영실적으로 보면 MH의 성적표가 신통치 않은 게 사실이다. MH 계열사의 지난해 총 매출액은 51조 원이었는데 당기 순이익은 고작 3300억 원이었다.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이 1%도 안될 만큼 창피한 성적이다. 현대건설은 적자가 1208억 원에 달했고, 37조 원의 매출을 기록한 현대종합상사의 순이익도 229억 원에 그쳤다.



MK의 성적 역시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MH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6개 계열사(현대강관, 현대우주항공 등 포함)의 총매출은 25조4000억 원, 순이익은 3500억 원 가량으로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이 1%를 넘는다.

지난해 실적은 급격한 구조조정으로 인한 특별이익이나 손실이 많았기 때문에 실제 경영실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지만 올해 1분기 MK와 MH 계열사의 경영실적을 비교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MK 쪽에서는 현대차, 기아차 등 자동차 부분의 영업 호조로 매출과 경상이익이 크게 늘어난 반면, MH 쪽에서는 핵심 계열사인 현대전자가 756억 원의 경상이익 적자를 기록하고 건설이 유동성 위기에 몰리는 등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이익치·김윤규·김재수의 임무

이런 사정 때문에 정 명예회장이 MK 퇴진을 지시했다는 건 왜곡일 수도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것. MK측 관계자는 “정 명예회장은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라고 했지, MK더러 퇴진하라고 하진 않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1차 왕자의 난이 마무리 될 무렵 정 명예회장이 MK에게 “자동차 부문에서 할 일이 많기 때문에 그 쪽에만 전념하라”고 주문한 것이 불과 두 달 전의 일이다. 그 사이에 정 명예회장의 마음이 바뀌었다면 그것은 본인의 순수한 뜻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대 사태는 MK측의 반발로 공이 MH측에 넘어간 상태다. MH는 회장 퇴진과 함께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을 약속했으니 만큼 조만간 이를 이행하리라는 액션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현대의 한 중립적인 인사는 “현재는 거의 결말이 지어진 단계”라고 말했다. 이미 시장에서 MK의 현대차 경영권 고수를 긍정적으로 인정한 마당에 또다시 인위적인 판도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시장의 신뢰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

일단 현대 구조조정위원회는 그룹이 밝힌 대로 각 계열사에 인사위원회를 설치해 유능하고 국제적 감각이 있는 외부 전문경영인을 추천하는 등 전문경영인 시대로 가려고 시동을 걸고 있다.

MH측에서는 당장 MH가 빠진 상태에서 이익치 회장, 김윤규 사장, 김재수 위원장 등 3인방의 ‘대리 경영체제’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여 이들의 역할이 주목된다. 이회장은 금융 부문, 김사장은 건설과 대북사업, 김위원장은 구조조정 업무를 그대로 이끌 가능성이 매우 높다.

MH 진영의 삼각축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은 서로 협력하면서도 각자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이 균형이 흔들리면 MH 체제가 흔들리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일부에서 추측하는 것처럼 이들이 현대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거나 서로의 임무를 바꿀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정부의 시각은 여전히 냉담하다. 특히 이회장과 금융당국은 여전히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MH측이 전문경영인 시대를 열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외견상 MH는 현대건설과 현대전자 회장 등 모든 계열사의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오직 현대아산의 이사직만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아산은 현대건설, 현대상선, 현대중공업 등이 출자한 회사로, MH가 이를 통해 그룹을 수렴청정할 여지는 얼마든지 남아 있다.

반면 MK측은 일단 시간 벌기에는 성공했지만 언제 또다시 MH측의 공세가 있을지 몰라 긴장하고 있다. 따라서 MK측은 무엇보다 자동차 소그룹의 계열 분리를 서두르고 있다. 6월 중 공정거래위에 신청한 계열 분리안이 승인을 받으면 그룹과의 인연을 미련없이 끊고 세계 5위 자동차 회사로의 도약에 주력할 계획. 계열 분리가 그룹 구조조정의 주요 성과가 될 것이므로 이는 별다른 차질 없이 진행될 전망이다.

대우차 인수가 최대 과제

그렇지만 MK에게는 넘어야 할 고비가 산적해 있다.

우선 정 명예회장이 갖고 있는 지분에 중요한 변동이 발생할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커다란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정 명예회장의 현대차 지분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는 MK가 장악한 경영권에 대한 창업주로서의 견제수단이다. 현대차에 경영 부실이 발생, 정 명예회장이 MK 등 현 경영진에 책임을 물을 경우 창업주라는 상징성 때문에 그 파괴력이 작지 않을 전망이다.

그렇지만 MK의 현대차 경영권을 위협하는 상황까지는 연출되지 않을 듯하다. MK가 가진 지분 11.8%에 우리 사주 지분(12%), 미쓰비시 지분 등 우호지분을 모두 합치면 40%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적대적 M·A를 방어하기에도 충분하다.

정 명예회장의 현대차 지분은 그가 지닌 사실상의 마지막 상속재산이다. 따라서 이 지분을 누구에게 주느냐에 따라 현대그룹의 법통이 정해지기 때문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행여 정 명예회장이 상식을 넘어선 결정을 내릴 경우 상속과 관련해서 현대는 다시 한 번 파란을 맞을 수도 있다.

또한 MK측은 대우자동차 인수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앞두고 있다. 이는 전문경영인을 자처하며 아버지의 퇴진 요구를 거부한 MK에게 기업인으로서 생사를 건 시험 무대가 될 전망이다. 계열 분리가 순조롭게 이뤄지고 대우차 인수마저 성공한다면 정 명예회장도, MH도 더는 MK의 자동차 경영에 대해 왈가왈부할 명분이 없어진다. 대우차를 인수하면 MK측은 경영권 방어에도 한결 여유를 갖게 된다.

현대차 관계자는 “대우차를 인수한다면 현대차, 기아차, 대우차를 총괄하기 위한 경영체제 정비가 필수적인데, 자동차 3사를 장악한 MK는 한결 여유로운 위치에서 경영진 보강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되면 MK측이 정 명예회장의 전문경영인 체제화 요구를 전향적으로 수용, 전문경영인의 역할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MK 진영의 최고 브레인인 이계안 사장을 비롯, 이충구 사장, 김동진 사장, 정순원 부사장 외에 추가로 중량급 인사가 경영에 참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MK 계열로 거론되면서도 자동차 소그룹에서 빠져 있는 인천제철 박세용 회장, 현대강관 유인균 회장 등의 보강을 점칠 수 있다.

그러나 대우차 인수에 실패할 경우 MK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룹 내에서 대우차 인수 실패에 따른 책임론이 고개를 드는 것은 물론, 그룹 총괄을 꿈꾸는 MH측의 재공세가 본격화될 가능성도 높다. 6월26일 입찰제안서 제출→6월 말 최우선 협상대상자 선정→9월말 최종계약자 선정으로 진행되는 대우차 입찰 일정은 MK·MH 갈등의 재연과 직접 맞물려 있는 셈이다.

이런 와중에 3부자 퇴진과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이라는 현대의 폭탄 선언은 그룹 안팎을 둘러싼 위기상황을 탈출하기 위한 정교한 전략 아래 나왔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 명예회장의 결단이 발표됐을 때 참으로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였던 국민들은 언젠가 또 한 번 쓰디쓴 배신감을 맛보게 될 수도 있다.

신동아 200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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