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호

유동성 위기는 없다, 문제는 ‘비전의 위기’

폭풍의 언덕에 선 LG

  • 이형삼 hans@donga.com

    입력2005-05-04 16: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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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그룹이 잇딴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중반부터 ‘현대 다음은 LG’라는 유동성 위기설이 불거지더니 12월 들어서는 기대했던 IMT-2000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한 데 이어 계열사인 데이콤도 위성방송 사업자 선정에서 물을 먹었다. LG화학이 개발한 퀴놀론계 항생제 ‘팩티브’가 미국 식품의약국에서 신약 허가를 받지 못한 것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

    지난해 증시 폐장일 LG그룹 주식의 시가총액은 개장일에 비해 무려 78.1%나 떨어져 한 해 내내 몸살을 앓았던 현대(71.6%)보다 하락률이 더 높았다.

    특히 구본무(具本茂) 회장이 취임 초기부터 그룹 차원에서 총력을 쏟아온 정보통신사업 부문이 가뜩이나 막대한 적자에 허덕이는 마당에 이처럼 신사업 진출마저 거듭 차단되자 LG가 곧 이 부문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리라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최근 LG가 한국통신에 LG텔레콤 인수를 제의했다는 루머가 나돌며 두 회사가 입단속에 나선 것도 ‘아니 땐 굴뚝‘에서 나온 연기로 보긴 어렵다.

    LG 구조조정본부 정상국 상무는 “지금으로선 LG가 동기식 IMT-2000 사업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것 말고는 확정된 게 없다”며 루머를 일축했다. 하지만 “우리가 통신사업을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통신정책과 기술, 시장여건의 변화에 따라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IMT 탈락은 자업자득?



    지난해 12월15일 LG가 IMT-2000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한 이후 LG전자 등 그룹 계열사 주가가 대부분 상승한 것은 아이러니컬하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탄탄한 사업전략도 없이 새로운 일에 뛰어들면 시장에 불투명성이 확산된다. 통신사업은 엄청난 투자를 요하므로 LG처럼 들어왔다간 자칫 그룹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한다.

    증시에선 LG가 IMT-2000 사업에 참가하지 않으면 수천억 원대의 초기 투자를 안하게 돼 오히려 유동성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본 것. 시장이 LG의 통신사업 드라이브에 그만큼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다.

    비동기식 IMT-2000 부문에서 상당한 기술력을 확보했다고 자부한 LG가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한 것도 LG의 전략적 판단 착오가 낳은 ‘자업자득’으로 볼 여지가 있다.

    지난해 IMT-2000 사업자 신청업체들은 기술표준을 놓고 동기식과 비동기식 진영으로 나뉘어 지리한 논란을 거듭했다. SK텔레콤 한국통신 LG글로콤 등 3개 서비스업체들은 비동기식을 주장했고, 동기식 장비시장에서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는 삼성과 현대 컨소시엄은 동기식을 주장했다. 정책 주무부서인 정보통신부는 소신껏 방향 설정을 해주지 못하고 업체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기술표준 방식은 9월 이전까지만 해도 ‘업계 자율’에 맡겨졌다. 3개 서비스업체 모두 비동기식을 주장했으므로 업계 자율에 맡겨진다면 ‘3비’로 가는 게 당연했다. 6월 안병엽(安炳燁) 정통부 장관은 국회에서 “3개 사업자 모두 비동기식으로 가도 개입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9월 이후 돌연 ‘2동 1비’설이 대두됐다. 정통부 고위 관계자들이 사업자들에게 동기식 채택을 강요했다는 설이 무성했다. 사업자들은 이를 ‘삼성의 힘’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사업자들이 “3세대 이동통신인 IMT의 경우 비동기식으로 가는 게 세계적 추세”라며 반발, 추석 이후 다시 업계 자율로 반전됐다. 그러다가 다시 ‘1동 1비 1임의대역’으로 갔다가 10월, 삼성의 막판 뒤집기가 먹혀들면서 ‘1동 2비’로 확정됐다.

    눈여겨 볼 것은 SK텔레콤, 한국통신과 함께 줄곧 ‘3비’를 주장했던 LG가 10월 들어 갑자기 ‘1동 2비’로 선회했다는 점.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LG가 정부로부터 뭔가 귀띔을 받은 게 분명하다”고 추측했다. 업계의 시각은 이렇다.

    현재 국내 이동통신시장의 시장점유율은 SK텔레콤(53%)-한국통신(32%)-LG텔레콤(15%)의 순으로, 1위는 물론, 2위 업체와도 격차가 큰 LG는 만년 3등을 벗어나기 어려운 처지다. 이런 상황에 세 회사가 IMT-2000에서 모두 비동기식으로 갈 경우 LG는 차세대 이동통신인 IMT-2000 시장에서도 꼴찌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LG가 비동기 장비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기술력을 갖췄다고 하지만, 통신시장에서는 극히 획기적인 기술을 갖지 못한 이상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추월하긴 어렵다. 2세대 이동통신에서 후발주자들이 기술적으로 개선됐다는 PCS폰을 앞세워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SK텔레콤의 시장선점 효과와 브랜드 이미지를 뛰어넘지 못했던 게 이를 입증한다.

    따라서 LG로선 SK와 한통 중 한 곳이 동기식으로 전환하고 비동기 시장은 자신을 포함한 두 사업자로 양분되는 구조가 가장 바람직했다. 이런 고려 때문에 ‘3비’에서 ‘1동 2비’로 노선을 바꿨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LG와 정부 사이에 어떤 교감이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결과를 놓고 보면 설령 교감이 있었다 해도 ‘보증수표’는 아니었던 듯하다. 아무튼 LG는 ‘1동 2비’로 갈 경우 자신이 ‘2비’에서 밀려나 ‘1동’으로 몰리게 되리라곤 예상치 않았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것이 LG의 결정적인 판단 착오였다”고 지적한다.

    장비시장도 불투명

    “SK텔레콤에겐 ‘어느 나라에서도 2세대 이동통신 1위 업체가 3세대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에서 떨어진 적이 없다’는 명분이 있었다. 확고한 가입자 기반과 통신망, 자금력과 기술력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한국통신도 LG텔레콤보다 사업기반이 훨씬 탄탄한데다, 민영화를 앞두고 기업가치를 높여야 할 상황이라 탈락할 가능성이 낮았다. LG는 ‘1동 2비’로 가면 자신이 가장 불리해진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

    그 결과 LG는 IMT-2000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한 것은 물론, 기대했던 비동기 장비시장 선점 목표에도 차질을 빚게 됐다. LG는 국내 비동기 장비기술 분야에서 다소 비교우위에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때문에 비동기 서비스업체로 선정되지 못해도 비동기 장비시장은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1동 2비’ 구도가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LG가 배제된 ‘2비’ 업체가 IMT-2000 서비스 상용화 시기를 늦추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2비’ 업체에게 거의 독점적으로 자사 장비를 납품하려던 LG의 계획은 ‘희망사항’에 그칠 수도 있다.

    IMT-2000 서비스 상용화 시점은 2002년 5월로 예정돼 있다. 하지만 이미 사업권을 따내 아쉬울 게 없는 업체들로선 상용화 시점을 연기하면 연기할수록 유리하다. SK텔레콤과 한국통신은 2세대 이동통신망은 물론, IMT-2000의 직전 단계인 2.5세대 이동통신망(IS-95C) 설비투자까지 이제 막 끝낸 상황.

    따라서 이제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돈이 굴러들어올 텐데 굳이 3세대 상용화 서비스를 서두를 이유가 없다. 더욱이 상용화 시점을 전후해 투자해야 될 돈도 만만치 않거니와 아직은 IMT-2000의 수익모델도 불분명하다.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장성민 연구위원은 “현재로선 IMT-2000의 확실한 수익모델이 될 서비스가 영상전화인지, 게임인지, 음악인지 장담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가격정책도 마련돼 있지 않다. IMT-2000은 2세대 이동통신과는 달리 이용시간이 아니라 전송된 데이터의 양에 따라(packet base) 요금이 책정될 전망인데, 모 서비스업체가 추산해본 결과 지금의 기술수준으로는 노래 한 곡을 다운받는 데 2000원은 받아야 수지가 맞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서비스 초기에는 당연히 단말기 값도 비싸다. 이런 여건이라면 ‘손님 끌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한국통신 이상철(李相哲) 사장은 이미 새해 벽두부터 “IMT-2000 상용화는 시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연기할 수도 있다”고 바람을 잡았다. SK텔레콤은 겉으로는 “예정대로 실시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속마음은 한국통신과 다를 게 없다. 다만 이사장은 자신이 취임하기 전에 IMT-2000의 일정이 잡히고 사업자 선정이 끝났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이런 주장을 펴기에 부담이 덜하다.

    상용화 연기는 삼성에게도 호재다. 최근 삼성전자는 IMT-2000 장비 부문에서 지금까지의 동기식 일변도에서 탈피, 비동기식 장비 개발을 본격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상용화 시점이 1년 정도만 늦춰져도 LG의 비동기식 장비 기술수준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본다. 정부로서도 상용화를 연기해 삼성에게 시간을 벌어줌으로써 상용화 이후 해외로부터의 장비 수입량을 줄일 수 있다고 기대하는 눈치다.

    결국 LG만이 상용화 연기에 반대하고 있는 형국이다. LG측은 “사업자 선정의 대전제가 ‘2002년 5월 서비스 개시’였으므로 사업계획서도 이 일정에 따라 만들었는데, 이제 와서 업자의 편의에 따라 통신정책이 춤을 춘다면 사업자 선정 자체가 원인무효”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귀 기울여주는 곳은 없다.

    IMT-2000을 놓친 LG로선 LG텔레콤의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LG는 그룹 통신사업의 첨병인 LG텔레콤에 뭉칫돈을 쏟아부었지만 시장점유율의 한계 때문에 6000억 원에 가까운 누적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LG측은 “지난해까지 설비투자가 완료돼 올해부터는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IMT-2000이 없는 LG텔레콤은 비전이 없다는 게 그룹 안팎의 시각이다.

    2000억 원대의 LG 계열사 회사채를 갖고 있었던 한 대형 보험사의 경우 이미 지난해 LG그룹 유동성 위기설이 나돌기 전부터 꾸준히 이들 회사채를 매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데이콤 회사채는 거의 다 정리했는데, LG텔레콤 회사채는 아무리 금리가 높아도 사겠다는 세력이 없었다고 한다.

    사채시장에서조차 “LG는 IMT-2000을 먹어도 문제, 못 먹어도 문제”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는 것이다. ‘LG’라는 이름이 붙은 기업의 회사채가 금리와 관계없이 거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예사로 볼 일이 아니다.

    LG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LG텔레콤의 매각설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통신으로선 LG텔레콤을 사들일 동인이 충분하다. 한국통신이 LG텔레콤(019)을 인수하면 한통프리텔(016), 한통엠닷컴(018)과 함께 PCS 3사를 모두 거느리게 되고, 이동통신 시장점유율에서 SK텔레콤을 바싹 추격하며 시장을 반분할 수 있기 때문. 한국통신은 보유하고 있는 SK텔레콤 주식만 팔아도 수조 원을 마련할 수 있어 자금사정도 좋다.

    반면 SK텔레콤은 신세기통신과의 합병 조건에 따라 오는 6월까지 시장점유율을 50% 이하로 낮춰야 하기 때문에 LG텔레콤 인수에 나설 수 없는 처지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LG텔레콤을 인수할 곳은 한국통신밖에 없다. 물론 해외 매각도 고려해볼 수 있지만, 이 경우 LG텔레콤을 사들인 외국의 대형 통신회사가 막강한 자금력을 무기로 국내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 누구보다도 정부가 이런 상황을 바라지 않는다.

    LG의 한 임원은 “LG텔레콤은 어떤 형태로든 정리돼야 한다”며 “다만 그간 투자를 많이 했고 인력도 많은데다, LG텔레콤 지분을 가진 브리티시 텔레콤과의 관계도 있어 의사 결정에 변수가 많다. 지금으로선 서비스를 계속할 가능성과 접을 가능성이 반반이다”고 밝혔다.

    그룹에선 한때 LG텔레콤 매각론이 대세를 이루면서 이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듯했으나, 최근에는 다시 매각론과 유보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보론의 논리는 “2.5세대인 지금은 동기식과 비동기식의 기술적 구분이 명확하지만, IMT-2000이 상용화에 접어든 이후엔 그런 구분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굳이 텔레콤 매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종적인 매각여부는 IMT-2000 제3사업자 선정과 맞물려 결정될 전망이다.

    통신 시너지효과 못 거둬

    한 증권사 법인영업팀장은 “LG는 ‘선택과 집중’의 대상을 통신사업으로 정하고 발을 들여놓았지만, 정작 시장에 들어온 후에는 제대로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통신사업이 유망하다는 판단에 따라 이것저것 손을 대보기만 했지, 일관된 사업전략을 바탕으로 효율을 극대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LG는 지난해 데이콤을 공식 인수하고 하나로통신의 1대 주주로 올라서면서 통신장비(LG텔레콤)와 컨텐츠(데이콤), 통신망(하나로통신)을 하나로 묶는 통신왕국으로 부상하는 듯했다. 하지만 단지 사업을 확대하는 데 그쳤을 뿐, 사업 내부에서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세 회사의 시너지효과를 높이는 데는 실패했다.

    데이콤은 98년 155억 원, 99년 169억 원의 순이익을 올렸지만, 지난해에는 3/4분기까지 33억 원에 그쳤고 연말에는 100억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채비율은 99년 말 82%에서 지난해 9월 말에는 170%로 치솟았다. 주가는 지난해 초 49만8000원에서 연말에는 3만450원으로 추락해 하락률이 93.9%에 이르렀다.

    통신업계 관계자 L씨는 “LG는 데이콤이 어떤 회사인지,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면밀한 고려 없이 ‘다 만들어진’ 황금알로만 여기고 덥썩 인수했다”며 “데이콤은 99년까지만 해도 외형상으론 좋은 회사였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미 그때부터 수익모델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었다”고 말한다.

    가령 데이콤의 주요 사업인 시외전화는 한국통신의 막강한 시장지배력에 밀려 매년 수백억 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또한 매출액의 절반 가까이를 한국통신에 접속료 등으로 지불하기 때문에 돈을 벌면 벌수록 경쟁사인 한국통신을 돕는 결과가 된다. 3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국내 최대의 PC통신 서비스 천리안도 인터넷 기반의 통신서비스 업체에 밀리고 있는 양상이다.

    데이콤의 99년 영업이익은 223억 원인데 비해 영업외수익은 1432억 원이나 됐다. 영업외이익의 대부분은 벤처 붐이 한창이던 당시 벤처기업 주식을 사고 팔아 얻은 것. 지난해에도 3/4분기까지 874억 원의 영업외수익이 발생한 데 비해 영업이익은 오히려 29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데이콤 노동조합 강효철 교육선전국장은 “한국통신은 막대한 투자를 거듭하며 광케이블망을 까는 등 네트워크를 완비했지만, 데이콤이나 하나로는 아직도 엄청난 설비투자가 필요하다. 그런데도 통신사업에 대한 전문적 이해와 식견이 부족한 LG가 투자를 미루는 바람에 적기(適期)를 놓쳤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데이콤은 투자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금까지 해마다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지난해에도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조달 계획이 마련돼 있었는데, LG가 데이콤을 인수한 후 ‘나스닥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는 계획으로 대체했다고 한다. 56%의 데이콤 지분을 가진 LG가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유상증자를 하려면 막대한 증자자금을 부담해야 했는데, LG가 이를 회피했다는 것이다. 강효철 국장은 “적기에 증자를 했다면 회사채를 발행할 필요도 없었으니 부채도 늘지 않았을 것이고, 주가와 영업수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나스닥 상장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물론, 상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데이콤의 회계정보 등이 노출돼 데이콤의 실체가 외국인들에게 그대로 노출됐다고 한다. LG가 데이콤의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던 시기는 데이콤의 외국인 지분율이 떨어지는 시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

    하지만 LG측은 “구조조정이 시급한 상황에 무작정 돈부터 집어넣을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반박했다.

    데이콤에 거는 기대

    통신업계에서는 만일 데이콤이 LG에 인수되지 않았다면 지난해 말 위성방송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당초에는 무궁화위성을 보유한 한국통신이 위성체를 맡고 컨텐츠 인프라에 강점을 지닌 데이콤이 80개 위성채널의 컨텐츠를 운영하는 ‘공기업+민간기업’ 형태의 컨소시엄이 가장 유망했다고 한다. 데이콤은 3년여에 걸쳐 위성방송의 마케팅과 전산시스템, 요금책정 방안 등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사업계획서를 제출, 사업설명회에서도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통신과 데이콤은 두 개의 컨소시엄으로 양립됐고, 위성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중시한 심사위원들은 “언론을 재벌기업(LG)에 줄 수는 없다”는 논리에 힘을 실어 결국 데이콤을 탈락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저런 까닭에 데이콤 노조는 두 달 넘게 파업을 계속했고 사측은 직장폐쇄로 맞서면서 노사간 갈등이 격화됐다. 노조는 LG에게 “데이콤에 서둘러 투자하라”고 요구하고 있고, LG는 “시외전화 등 적자사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선행돼야 투자를 고려할 수 있다”며 버티고 있다.

    LG가 데이콤 노조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은 데이콤에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IMT-2000 사업권을 놓친데다 상용화 연기로 장비 판매도 순탄치 못할 경우 LG의 통신부문은 데이콤의 컨텐츠 사업을 활용하는 것 말고는 활로가 없다고 봤다는 것이다. LG 관계자의 말.

    “인터넷에서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벤처기업들은 대부분 적자투성이다. 수익을 얻으려면 유료화가 불가피하다. 그런 면에서 대중성 있는 컨텐츠와 인적·기술적 인프라를 보유한 데이콤은 매력적이다. 특히 300만 명에 이르는 천리안 가입자들은 대개 구매력을 갖춘 30∼40대들이기 때문에 사업구조를 인터넷 기반으로 특화해 이들을 끌어들이면 사업전망도 밝다. 그래서 최근 그룹에서는 데이콤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한계사업 정리가 불가피하므로 절대로 노조에 굴복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무선이동통신은 글자 그대로 무선으로만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기지국과 기지국 사이에는 유선구간으로 연결되는 곳도 있다. 그래서 무선통신업체는 이런 경우 한국통신 등으로부터 유선망을 빌려쓰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LG가 하나로통신 지분 확보에 나섰던 까닭도 무선통신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유·무선망을 모두 갖춰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나로통신은 설립 당시 삼성 현대 LG SK 데이콤 등 주요 주주들이 지분을 균점하면서 이들 가운데 누구도 경영권을 행사하지 않는 합의체로 운영키로 했다. 지분 변동이 있을 때는 사전에 협의를 거치도록 했다. 그런데 LG가 데이콤을 인수하면서 LG의 하나로통신 지분율은 약 15%로 늘어나 1대 주주가 됐다.

    하지만 LG는 명색 1대 주주이면서도 당초 약속대로 경영권은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로통신의 인사에도 전혀 관여하지 못한다. 하나로통신이 IMT-2000 동기식 사업자로 참여하겠다고 나서면서 자사의 1대 주주인 LG와 갈등을 빚고 있는 아이러니도 이런 역학관계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만일 LG가 경영권을 행사하려고 시도하면 삼성 현대 SK가 연합전선을 펴 이를 견제할 것이다. 세 회사의 지분을 합하면 27%가 넘기 때문이다.

    LG 관계자는 “우리는 하나로통신 대주주의 하나일 뿐 경영에는 관심이 없다. 1대 주주가 된 것도 본의가 아니었으므로 하나로통신 지분도 투자자산의 일부로 여길 따름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LG가 하나로통신 경영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지난해 LG화재가 하나로통신 주식을 대거 매입한 사실도 그런 의혹을 뒷받침한다. LG화재는 지난해 3월말까지 1927억 원어치의 하나로통신 주식을 매입, 자기자본(1700억 원)을 초과한 비상장주식 소유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경고조치를 받았다.

    더욱이 LG화재는 하나로통신 주가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데도 계속 주식을 사들여 시세차익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듯했다. LG화재는 주당 1만3000원 안팎에서 하나로통신 주식을 집중 매수했는데, 하나로통신의 현재 주가는 4000원대로 떨어졌다. LG화재는 99년 11월 LG그룹에서 계열분리됐지만, 결코 ‘남’이라고 할 수 없는 관계. LG화재의 지분까지 포함하면 LG 계열사의 하나로통신 지분율은 약 18%로 높아진다.

    설령 LG가 하나로통신의 경영권을 쥔다 해도 상황은 간단치가 않다. 유선통신 가입자망을 다 갖추는 데는 무선통신보다 3배의 비용이 더 든다고 한다. 하나로통신의 경우 아직 네트워크가 태부족인 형편이므로 수조 원의 투자자금이 필요하지만, LG는 물론 다른 대주주들도 유상증자에 회의적이다. 돈을 쏟아붓는다 해도 한국통신과의 경쟁에서 선전하리라는 보장이 없고, 전화사업 부문의 요금인하 압력이 계속될 것이므로 수익전망이 극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통신업계나 증권가 전문가들은 “LG가 통신사업을 계속하겠다면 경쟁력이 없는 서비스사업은 과감하게 접고 장비사업쪽으로 특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은다. LG가 서비스와 장비를 다 해보겠다고 무리하게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서비스는 서비스대로 적자가 누적됐고, 경쟁력이 있는 장비사업도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는 것이다. PCS사업이 그 예.

    PCS사업 초기에는 단말기가 귀해 제조업체가 물건을 내놓기만 하면 팔려나갔다. 당시 PCS 단말기를 만들던 LG정보통신은 자사 단말기를 한통프리텔과 한솔PCS엔 공급하지 않고 같은 계열 서비스업체인 LG텔레콤에만 공급했다. 이 때문에 한통과 한솔은 삼성과 현대로부터 단말기를 납품받아야 했다.

    그러다 단말기 공급이 폭증하자 LG PCS 단말기는 찬밥 신세가 됐다. 단말기가 넘쳐나 아쉬울 게 없어진 한통과 한솔로선 어려울 때 제 속만 차린 LG의 제품을 써줄 이유가 없었다.

    그 결과 디지털 폰 초기에 삼성과 단말기 시장을 5대 5로 나눠가졌던 LG는 PCS 이후 빠른 속도로 삼성에게 단말기 시장을 잠식당했다. 서비스와 장비를 다 가지려는 욕심 때문에 장비시장을 내준 것이다. 이에 비해 삼성은 서비스엔 관심을 갖지 않고 장비 판매에만 주력해 실속을 챙겼다.

    LG의 손실은 이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한통과 한솔은 가입자가 늘어나면서 교환국과 기지국 장비를 증설할 때도 LG는 배제하고 삼성 현대 모토로라 루슨트 등의 제품을 사들였다. ‘구원(舊怨)’도 한 이유가 됐겠지만, 교환국과 기지국 장비를 들여올 경우 장비회사 직원들이 구매회사에 파견돼 튜닝작업을 함께 해야 하므로 기업비밀 유출을 우려, 서비스사업 경쟁업체인 LG 직원을 자사에 출입시키기를 꺼렸기 때문이다. 최근 SK텔레콤도 2.5세대 이동통신 설비인 IS-95C를 깔면서 이런 문제 때문에 삼성과 루슨트 제품을 구매했다. 장비업체가 다양한 판로를 개척하지 못하고 이렇듯 ‘자급자족’ 수준에 머물면 제품 원가도 비싸져 경쟁력을 잃게 된다.

    친인척 대주주 300명

    모 증권사 애널리스트 J씨는 “시장 사정이 이렇다면 LG로선 통신사업에서 하루 빨리 새로운 전략을 수립해 없앨 것, 줄일 것, 키울 것을 골라내야 하는데, 그룹에 오너의 친인척 대주주가 300여 명이나 되다 보니 계열사마다 이해관계가 달라 신속한 의사결정을 못 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업계 관계자 L씨에 따르면 정보통신부의 한 공무원은 IMT-2000 탈락후 찾아온 LG 임직원들이 계열사에 따라, 혹은 고위직이냐 실무직이냐에 따라 의견들이 제각각이어서 “구조조정본부에서 단일한 의견을 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구조조정본부의 의견도 사람마다 달라 황당했다는 것. LG는 무엇보다 그룹내 컨센서스를 얻어내는 게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잘 알려진 대로 LG그룹은 구인회(具仁會) 창업주와 그의 처족인 허준구(許準九) 회장이 함께 일군 기업이다. 창업 멤버가 두 가문인데다 양 집안 다 자손이 번성해 창업 이후 3대(代)가 지나면서 수많은 구씨와 허씨들이 계열사 경영진이나 대주주로 흡수됐다. 다른 기업의 주주명부는 대개 한 장을 못 넘기지만, LG 계열사의 주주명부는 서너 페이지씩 된다.

    LG는 장자승계 전통에 따라 구인회-구자경(具滋暻) 회장에 이어 1995년 구본무 회장이 취임했지만, 그룹원로들이 경영자문을 통해 경영에 일정 부분 관여하거나 일부 친인척 대주주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LG 위기설’이 증폭된 배경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구자경 명예회장과 구본무 회장 등은 99년 4월부터 1년간 비상장 계열사인 LG유통과 LG칼텍스정유 주식 9500여억 원어치를 LG화학과 LG전자에 팔았다. LG유통 주식은 주당 평균 12만5000원에, LG칼텍스정유는 11만 원선에 팔렸는데, 기관투자가들은 이 가격이 적정가보다 2만∼3만 원씩 높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대주주가 계열사를 동원해 주식을 비싸게 사들이게 함으로써 부당한 이득을 챙겼다는 것.

    또한 구회장 일가는 이들 주식을 판 돈 가운데 2000억 원으로 지난해 2월부터 4월까지 LG전자 주식을 매입했다. LG전자는 그 직후인 5월31일, LG정보통신과의 합병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LG전자 주가가 오르자 증시 주변에선 합병 사실을 미리 안 LG 대주주들이 시세차익을 올리기 위해 LG전자 주식을 샀다고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이에 대해 LG 구조조정본부 정상국 상무는 “LG전자와 LG화학을 두 축으로 하는 지주회사 체제로 가기 위해 전자와 화학 이외 계열사의 대주주 지분을 판 것이지, 대주주에게 부당한 이익을 주려 한 게 아니다”고 해명했다. 대주주가 계획대로 오는 6월까지 지주회사 지분 25%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주식 매매가 불가피했으며, 주식 거래후 대주주가 단 한 주의 주식도 내다팔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인정했다. 주식 거래가 끝난 시점은 지난해 4월인데, 지주회사 체제를 선언한 것은 7월4일이었던 것. 주식을 거래하기 전에 지주회사 체제에 대해 설명하고 지분이동 계획도 밝히는 게 옳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7월 이전에는 정부가 ‘지주회사’라는 말조차 못 꺼내게 하던 분위기였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유야 어떻든 시장의 상식과 논리에 반하는 이런 식의 내부자 거래가 LG그룹에 대한 신인도를 떨어뜨렸고, 결국 이것이 불신을 조장해 작은 계기에도 위기설을 확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증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LG는 계열사 간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출자관계를 정리, 올해 안에 LG전자와 LG화학 아래 수직계열화해서 두 회사가 지주회사 기능을 하게 하고, 2003년까지는 ‘LG홀딩스’(가칭)라는 지주회사를 만들어 전자계열과 화학계열을 그 아래의 사업 자회사로 만들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구씨와 허씨 등 지배주주들은 LG홀딩스의 주식만 보유, 출자 관리에 주력하고, 사업 자회사는 전문경영인과 이사회가 운영토록 한다는 것이다.

    지주회사제는 LG에겐 절묘한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이를 통해 밖으로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고, 안으로는 장자승계 문제를 매끄럽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본무 회장에겐 아들이 없다(사망). 따라서 그룹을 승계할 장자는 장녀 연경(23)씨인데, LG그룹은 전통적으로 집안 여성에겐 경영을 맡기지 않아왔다. 그런데 지주회사제를 도입해 연경씨를 지주회사의 지배주주에 앉히면 경영에 개입하지 않고서도 그룹을 소유, 장자승계 전통을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승계나 친인척 대주주의 이해관계를 염두에 둔 무리한 기업 합병이 시장에 실망을 안겨준다는 점이다.

    가령 LG는 지난해 9월 LG전자와 LG텔레콤을 합병하면서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를 소화하기 위해 1조 원을 투입했고, 이후 주가가 떨어지자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3000억 원어치의 자사주를 사들였다. 이 자금은 주로 외부 차입금으로 조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LG는 전자 주식을 주당 3만 원대에 매입했는데, 현재 주가는 그 절반 수준으로 토막났다.

    LG는 과거에도 일반 주주는 제쳐놓고 경영자나 친인척 대주주의 이해관계에 따라 계열사를 합병하거나 분리했다. 예를 들어 91년에는 럭키제약, 럭키소재, 럭키유화를 묶어 LG화학으로 합병했다가 오는 4월에는 LG화학을 다시 LG CI, LG화학, LG생활건강 3사로 분할한다.

    99년 10월 LG증권과 LG종금을 합병한 것도 시장의 눈을 무시한 처사였다. 당시 LG측은 “증권과 종금의 합병은 선진국형 투자은행으로 가는 사전 포석”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사실상 종금의 부실을 증권에 떠넘긴 데 지나지 않았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LG종금에는 막대한 국내외 부실채권이 발생했는데, LG는 종금을 살리기 위해 1조 원 이상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실 덩어리인데도 친인척 대주주들의 입김 때문에 과감하게 정리하지 못했다는 것. 그래도 회생의 기미가 없자 결국 수익을 내고 있던 LG증권에 떠안겨 부실을 메꾸게 했다. LG증권 주주들의 처지는 안중에도 없는 처사였다.

    이에 대해 LG 관계자는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의 부실을 떠안는 것은 개별기업의 처지에서 보면 몰라도 그룹 전체의 틀에서 보면 불가피한 관행이었다”며 “그래도 공적자금에 기대지 않고 그룹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은 인정받아야 할 부분일 수도 있다”고 했다.

    비전의 위기

    LG는 “외환위기 이후 계열사 지분 매각 등을 통해 60억 달러의 외자를 유치했다”고 자부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LG는 LG산전의 엘리베이터 부문, LG LCD, LG캐피탈 등 그룹에서 든든한 캐시 카우(cash cow) 노릇을 하던 알짜배기 계열사 지분을 해외에 과감하게 매각했다.

    가령 LG캐피탈 같은 회사는 가위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이 회사가 운영하는 LG카드는 은행 연합 카드인 비씨카드에 이어 두 번째로 순이익이 많을 만큼 장사를 잘한다.

    신용카드업은 연간 이용액의 60%가 현금서비스인데다 현금서비스 이율이 연 17∼20%에 이르기 때문에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LG가 이런 계열사의 지분을 매각한 것은 분명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답답한 것은 이렇게 조달한 자금을 엉뚱한 곳에 쏟아부었다는 사실이다. 그 ‘피같은’ 돈을 설비투자하는 데 쓰기 보다는 전자·정보통신 합병비용으로 날리고, 데이콤처럼 수익성 불투명한 기업 사들이는 데 쓰고, 종금 부실 메우는 데 털어넣었다. 알맹이를 팔아서 껍데기를 챙긴 셈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한계 계열사는 대주주 눈치 때문에 못 판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H씨는 “LG그룹은 당장 유동성 위기가 닥칠 만큼 어려운 상황은 아니다. 정말 심각한 것은 ‘비전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사실이다”고 우려했다.

    비전의 위기는 LG의 기업문화에서 초래되는 측면이 크다. 그 한 예로 LG는 ‘논쟁의 문화’가 없다는 지적을 자주 듣는다. ‘인화(人和)’를 기업의 모토로 내세우는 것은 좋지만, 이는 자칫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무색무취한 기업문화를 낳을 수 있다. 가끔은 ‘불화(不和)’를 감수하더라도 약이 되는 쓴소리를 수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논쟁이 미덕이 되지 않는 집단은 위기관리능력에서도 빈틈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LG에 통신장비 부품을 납품하는 한 중소기업 사장은 IMT-2000 사업자 발표 직전에 LG에 업무를 보러 갔다고 한다. 그 무렵 이미 업계에서는 LG가 떨어졌다는 소문이 파다했는데도 정작 LG에서는 임원들까지 “우리가 된다” “한국통신이 탈락해서 동기식으로 간다”고 호언장담하더라는 것.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더라는 얘기다.

    LG그룹을 담당하는 한 인터넷 경제지 기자는 “LG는 만약 IMT-2000에서 탈락했을 경우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계획도 갖고 있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감에 넘친다 해도 만분의 일의 가능성까지 대비하는 게 기업의 상식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구본무 회장은 새 전문가다. 집무실에도 망원경을 설치해놓고 새를 관찰한다. 최근에는 조류도감까지 펴냈다.

    여의도 쌍둥이빌딩 30층 집무실에서 밤섬을 날아오르는 새들을 바라보며 구본무 회장은 어떤 생각을 할까. 통신사업에서 경험한 좌절, 갖은 루머, 친인척 대주주들이 발목을 잡아끄는 대지를 박차고 그 자신 새처럼 날아오르고 싶은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구회장은 망원경의 방향부터 돌려놓아야 한다. 시장(市場)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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