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호

LG산전 과대계상, 동부건설·동양메이저 순익 부풀리기

금감원 자료로 본 기업 분식회계 백태

  • 글: 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3-05-26 14: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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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산전 과대계상, 동부건설·동양메이저 순익 부풀리기

    SK글로벌 분식회계와 관련해 주요 투신사 사장들이 대책을 숙의하고 있다.

    기업의 분식회계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0년 대우그룹은 41조원에 달하는 분식회계 혐의가 드러나 국내 경제계를 한바탕 발칵 뒤집어놓았다. 최근에는 SK글로벌이 1조5000억여원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SK글로벌의 분식회계 규모는 단일 기업으로는 사상 최대다.

    분식회계는 기업이 고의로 자산이나 이익을 크게 부풀리거나 반대로 부채를 줄여 재무나 경영상태를 실제보다 건전한 것처럼 조작하는 것을 말한다. 현행법으로 금지된 엄연한 불법행위이기 이전에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분식회계가 만연한 것은 정치권과도 무관치 않다. 과거 정경유착시절엔 정치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핵심권력의 묵인 하에 자행된 측면이 있다.

    여전히 정신 못 차린 SK

    IMF사태 이후에는 영업실적이 악화된 기업들이 자구 수단으로 너도나도 분식회계를 저질렀다. 제품을 제조하지도 않고 팔았다고 속이거나, 제조는 했지만 팔리지 않았는데도 매출액을 높여 당기순이익을 조작했다. 또 있지도 않은 재고재산을 늘려 기업의 보유자산을 실제보다 부풀렸다. 반대로 부채를 줄여 기업의 건전성을 속이는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됐다.

    본지가 단독입수한 금감원 자료에 따르면 1990∼2000년의 11년 동안 금감원 감리를 받은 1544개 기업 가운데 35%에 달하는 540개 업체가 분식회계 혐의로 적발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기업 3개 중 1개 이상이 분식회계를 해왔던 셈이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기업들의 ‘과거 분식회계 사면’이 검토되는 것은 바로 이같은 심각한 상황을 반영한 ‘고육책’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분식회계 사면문제는 2000년 대우사태 직후에도 여당 내에서 심각하게 논의됐던 적이 있다. 그러나 결론이 나지 않았다. 분식회계 사면이 ‘현실을 감안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시각과 ‘국가와 기업의 신인도 추락을 가져올 잘못된 대안’이라는 시각으로 크게 엇갈렸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와 여당의 정책 책임자들 사이에서 혼선이 일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기업들의 도덕성 회복이다. 과거의 분식회계에 대해 사면을 해준다 해도 똑같은 행태가 반복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과연 국내 기업들이 그동안의 ‘전과’를 깨끗이 씻고 ‘건전한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당장 분식회계 혐의로 적발된 이후 SK글로벌의 행태부터가 미덥지 못하다. 지난 3월11일 검찰이 발표한 수사결과에 따르면 분식회계를 통한 배임과 증권거래법, 외부감사법 등의 위반 혐의로 SK 경영진 10명이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됐다.

    최태원 SK(주) 회장, 손길승 SK 회장, 김창근 구조본부장, 김승정 SK글로벌 부회장, 박주철 SK글로벌 사장, 문덕규 SK글로벌 전무, 유승렬 전 구조본부장, 민충식 구조본 전무, 윤석경 SKC&C 사장, 조기행 구조본 상무 등이다.

    SK글로벌은 그러나 3월31일 치러진 정기 주주총회(이하 주총)에서 당초 박주철 사장과 문덕규 전무, 사외이사인 김이기 피죤 대표이사와 이관용 서울대 교수 등 임기가 만료된 경영진 4명에 대해 재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할 방침을 세웠다. 앞에서 보듯 박사장과 문전무는 이미 검찰 기소 명단에 올라 있는 상태였다.

    임기 여부를 떠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 경영진들을 임기가 만료됐는데도 재선임한다는 방침에 시민단체와 주주들은 물론 일부 채권단들도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직도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시민단체와 주주들은 즉각 반발했고, 언론도 따갑게 질타했다. 그럼에도 SK글로벌은 주총을 통해 경영진 4명 가운데 사임한 문전무와 김이사 등을 제외한 박사장과 이이사에 대해 재선임을 결정했다.

    참여연대는 이에 대해 성명을 내고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SK그룹 비리의 핵심 책임자인 손길승 회장과 김승정 부회장이 임기가 남았다는 이유로 경영진에서 물러나는 것이 거론조차 되지 않은 것”이라며 “이는 불법행위에 대한 법률적 책임조차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분식회계에 대한 무책임한 경영진의 태도는 비단 SK글로벌만의 문제가 아니다.

    금감원이 2002년 12월 노영인 대표이사 및 담당임원에 대한 해임권고와 함께 유가증권 발행제한 3월에 감사인 지정 2년, 시정요구 등의 조치를 내린 동양메이저가 대표적인 비교사례다.

    금감원 감리 결과에 따르면 동양메이저는 19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 동안 ▽투자주식 과대계상(1999년 653억3200만원/2000년 700억8200만원/2001년 746억8300만원) ▽대손충당금 미설정(2000년 126억2300만원/2001년 134억3200만원) ▽투자채권감액손실 미계상(2000년 227억4900만원/2001년 412억3400만원) 등의 분식회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동양메이저는 이같은 분식회계를 통해 1999년 654억원, 2000년 400억원, 2001년 23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부풀린 것으로 조사됐다.

    금감원이 노영인 대표이사와 손모 재무담당 전무에 대한 해임을 권고한 것은 동양메이저의 분식회계를 주도한 데 따른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주주들은 2003년 3월에 열린 정기주총에서 노대표이사를 그대로 선임하는 한편 손전무를 이사로 승진시켰다.

    주총 상정안건의 처리는 철저히 주주들의 의사결정에 따르는 것인 만큼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러나 그 의사결정이 과연 도덕적이고 합리적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현재 이 회사의 실질적인 주인은 주식 34.16%를 갖고 있는 현재현 회장 등 오너 일가다. 주총에서의 의사결정은 사실상 이들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감원의 권고사항에 대한 이행 여부도 현회장 등 오너 일가에 달려 있는 셈이다. 그러나 2002년 12월말 현재 일반 개인 소액주주들의 주식보유율은 40.81%로 오히려 오너 일가에 비해 더 높다. 일반 개인주주들이 금감원의 권고사항을 무시하고 기존 경영진을 그대로 유지시키기를 원했을지는 의문이다.

    금감원은 또 2002년 3월14일, 13개 상장업체를 분식회계 혐의로 적발하고 이날 각 해당회사에 감리결과에 따른 조치를 내렸다. 해당 업체는 LG산전(주)과 동부화재해상보험(주) 동부제강(주) 동부건설(주) 한화유통(주) 한화석유화학(주) (주)한화 (주)흥창 (주)대한바이오링크 신화실업(주) (주)대한펄프 SK케미칼(주) 동국제강(주) 등이다.

    LG산전 대표의 화려한(?) 복귀

    이들 업체 중에는 시정요구나 주의 정도의 가벼운 제재를 받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중징계가 내려졌다. 위법행위 정도에 따라 대표이사와 해당임원에 대해 검찰고발이나 수사의뢰, 해임권고 등의 조치가 취해진 것.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지금 과연 이들 업체는 금감원의 조치사항을 어느 정도 이행했을까. 대부분 2∼3월께 열리는 올해 정기주총도 이미 끝난 상태다. 제대로 운영되는 주총이라면 경영진들은 물론 감사, 재무담당 이사 등 관련 임원 상당수가 분식회계에 따른 책임을 지고 교체됐어야 한다.

    금감원 감리 결과 LG산전은 1999년 4504억7600만원과 2000년 3059억6000만원 등 두 해에 걸쳐 무려 7564억3600만원에 달하는 금액을 과대계상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피합병회사인 (주)LG금속의 선물거래 추가손실액 4359억5000만원을 재무제표 주석에 명확히 기재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금감원은 이에 따라 LG산전측에 ‘담당임원(1명) 해임권고, 유가증권발행제한 3월, 감사인 지정 2년, 시정요구’ 등의 조치를 내렸다. 해임권고가 내려진 담당임원은 분식회계 당시 관리본부장이었던 김정만 이사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김이사가 LG산전의 대규모 분식회계를 주도했다고 판단했던 것.

    그러나 지난해 분식회계 적발 당시 대표이사였던 김이사는 2002년 9월 퇴임했다가 2003년 2월 정기주총에서 다시 대표이사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동부건설은 부의 영업권(負-營業權 : 한 회사가 다른 회사를 인수(주식매입)하면서 적정가보다 싸게 살 때 발생하는 이익)을 이용한 분식회계로 적발된 사례다. 회계연도 말에 부의 영업권을 일시에 환입시켜서 회사의 당기순이익이 1999년 47억원에서 2000년 1039억원으로 대폭 증가했다고 발표했던 것. 그러나 2000년 실제 당기순이익은 301억원 적자였다. 실질적으로는 무려 1300억원이 부풀려진 셈이다.

    이에 따라 동부건설은 ‘담당임원(1명) 해임권고(상당), 유가증권발행제한 6월, 감사인 지정 3년, 시정요구’의 조치를 당했다. 해임권고(상당)가 내려진 이유는 담당임원이 분식회계 적발 당시 퇴사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분식회계에 대해 실질적인 책임을 져야 할 최고경영진은 어떻게 됐을까. 분식회계가 진행됐던 1999년과 2000년 당시 백호익 대표이사 사장과 김준기 대표이사 회장은 2003년 주총에서도 별일 없이 대표이사 부회장과 대표이사 회장으로 각각 연임 또는 선임됐다.

    동국제강도 부의 영업권으로 인한 분식회계로, 1999년과 2000년 각각 349억3500만원과 232억6700만원을 일시에 환입시켜 당기순이익을 부풀리거나 적자폭을 감소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금감원은 이에 ‘유가증권 발행제한 3월, 감사인 지정 2년, 시정요구’ 등의 조치를 내렸다. 그것으로 끝이다.

    분식회계가 진행될 당시 경영진 가운데 스스로 책임지거나 주주들에 의해 책임을 추궁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 장세주 부사장은 2000년 사장을 거쳐 2002년 회장으로 승진해 2003년 재선임됐다. 올해 주총에서는 또 1999∼2000년도에 사외이사를 맡았던 한모씨를 감사위원장 겸 사외이사로, 다른 두 명의 사외이사를 감사위원 겸 사외이사로 위촉했다.

    한편 ‘외부감사 및 회계 등에 관한 규정시행세칙’의 조치기준 항목을 보면 기업이나 대표이사가 분식회계 혐의로 검찰에 고발되거나 통보되는 경우는 행위가 ‘고의’적인 경우에 한하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 중과실이나 과실에 의한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검찰에 고발 또는 통보되는 분식회계는 그만큼 죄질이 나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해당기업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한바이오링크는 금감원 감리결과 2000∼2001년, 2년 동안 회사의 유형자산을 과대계상하는 수법으로 분식회계를 했고, 특히 대표이사는 회사자금 25억원을 횡령한 혐의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금감원은 이에 따라 회사와 대표이사, 상무이사 비상근이사 등 임원 2명 등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그런데도 고영수 대표이사는 물론 상무이사 손모씨, 비상근이사 김모씨 등 해당 임원 모두 2003년 주총에서 재선임됐다. 회사 내부 감사를 담당했던 감사 김모씨도 2000년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신화실업은 1998∼2000년까지 3년간 투자유가증권과 관계회사 대여금 등을 회사 예금으로 허위계상하는 등 분식회계한 사실이 적발돼 금감원으로부터 회사와 대표이사가 검찰에 고발당했다. 그러나 회사 경영진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금감원이 해임권고한 경리담당이사 조모씨만 해임됐을 뿐 신정국 대표이사는 2003년 주총에서 대표이사로 재선임됐고 감사 윤모씨도 그대로 남아 있다. 신대표와 감사 윤씨는 대학 동창이다.

    예고된 태풍 ‘집단소송제’

    금감원은 또 대한펄프가 2000년도에 분식회계한 사실을 적발해 회사와 대표이사를 검찰에 통보했다. 2000년 한해동안 매입채무 120억7000만원, 미착품 128억800만원, 외환환산손실 2억6200만원과 미지급비용을 과소계상하는 방법 등으로 재무제표를 허위작성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이와 함께 대한펄프측에 담당임원에 대한 해임권고와 유가증권발행제한 6월, 감사인 지정 2년과 시정요구 등의 조치도 함께 내렸다.

    이처럼 중징계가 내려졌는데도 최병민 대표이사를 비롯, 기획담당 부사장, 상근감사 등 회사의 주요 경영진들은 2003년 3월 주총에서 연임됐다.

    한 회계전문가는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이 개인 오너의 사유재산처럼 인식돼 있어, 주총은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면서 “관행처럼 굳어진 분식회계에 대한 더욱 강력한 제재가 뒤따르지 않는 한 쉽게 바로잡히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 해결방법은 이미 나와 있다. 현재 국회에 제출돼 있는 ‘집단소송제’가 그것으로, 이는 소액주주 등 일정한 집단의 대표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또 그 판결이 모든 이들에게 효력이 미치도록 만들어진 제도다. ‘분식회계’와 ‘허위공시’ ‘주가조작’ 등이 소송대상이 된다. 이 중 가장 민감한 부분이 바로 ‘분식회계’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국내 기업들이 대형 소송사태에 빠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과거의 분식회계 사실까지 포함된다면 앞서 언급한 금감원의 자료를 보더라도 3개 중 1개 기업이 소송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안 문제는 자연스레 과거 분식회계 사면문제와 일정한 연장선상에서 논의될 수밖에 없는 난해한 상황이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로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가 이런 상황을 초래했다는 점이다.

    금감원과 재정경제부 등 관련 부처는 집단소송제 법안 가운데 분식회계에 대한 개념정립을 위한 시행령이나 세부규칙에 대해 마지막 검토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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