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호

대우 패밀리, ‘부활의 노래’ 부른다

‘마른 걸레 짜기’경영, 고객 맞춤 수주, 틈새시장 공략

  • 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ans@donga.com

    입력2003-06-24 19: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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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우 패밀리, ‘부활의 노래’ 부른다
    대우그룹은 몰락했다. 그러나 대우맨들은 살아 있다. ‘대우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대우’의 이름으로 뛰고 있다. 나지막하지만 다부지게 ‘부활의 노래’를 부르면서.

    도미노처럼 무너져간 옛 대우그룹 주력 계열사들이 홀로서기를 시도하고 있다. 채권단의 부축을 받으며 응급실로 실려간 지 4년. 대수술과 물리치료, 재활훈련을 거듭한 끝에 몇몇은 퇴원했고, 나머지도 완치 판정을 앞두고 있다. 막대한 ‘병원비’를 치러야 할 과제가 남았지만, “죽다 살아났는데, 건강한 몸으로 뭘 해선들 못 갚겠냐”는 분위기다.

    대우조선해양, 대우종합기계, 대우건설, 대우인터내셔널, 대우일렉트로닉스. 들어본 듯도, 아닌 듯도 한 이름들이다. 1999년 8월 대우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후 대우조선해양과 대우종합기계는 대우중공업에서, 대우건설과 대우인터내셔널은 (주)대우에서, 대우일렉트로닉스는 대우전자에서 떨어져나와 새 간판을 달았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마이 웨이’를 선언한 이들 5총사가 저력을 발휘하며 대우의 명예회복을 견인하고 있다. 현저한 실적 상승에 힘입어 조선해양과 종합기계는 이미 워크아웃을 졸업했고, 건설과 인터내셔널은 워크아웃 졸업 직전 단계인 자율추진체제에 돌입했다. 일렉트로닉스도 당초 일정보다 3년 앞선 내년쯤 워크아웃을 졸업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부가가치 선박 집중 수주



    대우그룹 12개 계열사 중 가장 먼저(2001년 8월) 자력으로 워크아웃을 졸업한 대우조선해양(대표·정성립)은 올해 매출 3조7600억원, 영업이익 3500억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할 전망이다. 지난해에 비해 매출은 11.6%, 영업이익은 29.2% 증가한 수치다. 매출 증가율보다 영업이익 증가율이 2.5배 이상 높은 것은 2001년 이래 집중 수주한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의 실적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매출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LNG선은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선박. LNG 같은 특수 화물을 실어 나르려면 특수한 선체 구조와 장비를 갖춰야 하므로 배값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LNG선의 t당 평균단가는 컨테이너선의 2.6배, 유조선의 3.3배, 살물선의 4.4배에 달한다. 대우조선은 2001∼2002년 세계 전역에서 발주된 44척의 LNG선 가운데 3분의 1인 15척을 수주했다. 특히 세계 최초로 기화설비 없이 선박에서 육상으로 직접 LNG를 공급할 수 있는 LNG-RV도 4척이나 수주하는 등 세계 LNG선 시장 점유율 35%로 1위를 지키고 있다.

    대우조선 심규상 경영지원본부장(전무)은 “수 년 전부터 세계 LNG선 시장의 수요를 정밀하게 예측, 경쟁업체들보다 앞서 LNG선을 차세대 주력사업으로 선정하고 설계기술력 향상과 과감한 시설 투자에 진력했다”며 “덕분에 기업분할 이후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이 10%에 육박하는 실적을 내고 있다”고 설명한다.

    1990년대에는 ‘표준 선형’이 세계 조선 시장을 주도했다. 40년 이상 세계 시장을 장악해온 일본이 자신의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 소품종 대량생산으로 원가를 낮추기 위해 선박을 선종별로 표준화한 뒤 기본 설계에 따라 일관라인에서 TV를 생산하듯 배를 만든 것이다. 고객인 선주들은 정형화한 설계에 이런저런 옵션을 보태고 싶었지만 무시되기 일쑤였다.

    대우조선은 바로 이 틈새시장을 파고들었다. 일본과의 수주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주들의 다양한 요구를 최대한 설계에 반영하는 ‘맞춤 수주’ 전략을 고수한 것. 그 결과 대우조선은 유연하고 탄력적인 선박 설계 노하우를 축적하게 됐고, 1990년대 후반부터 쏟아져나온 다양한 유형의 LNG선 발주 물량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회사 이미지 추락으로 선박 수주에 치명타를 맞은 워크아웃 기간에도 기존 선주들의 재발주율이 50%를 상회했을 정도다.

    LNG선과 VLCC(초대형 유조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가진 대우조선은 지난 4월 말에 이미 올해 수주 목표액 28억3000만달러의 58%를 달성했으며, 현재 VLCC 11척, LNG선 18척 등 2년 6개월치 이상의 안정적인 조업 물량을 확보해놓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선박수리를 전담해온 작업장에서도 배를 만들어야 할 만큼 일거리가 넘쳐난다. 제한된 조선소 부지 안에서 이렇듯 많은 물량을 빨리 소화하려면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길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 이른바 ‘프로덕트 믹스(Product-mix)’다. 하나의 선박 건조 도크에서 다양한 종류의 선박을 동시에 만듦으로써 공간 활용을 극대화하는 것인데, 대우는 조선회사의 매출·수익성과 직결된 프로덕트 믹스에서도 강점을 지녔다.

    세계 최대 규모의 대우 옥포 조선소 제1도크는 길이가 530m, 폭이 131m다. 여기에 길이 333m, 폭 58m 크기의 VLCC 두 대를 넣으면 도크의 3분의 2가 채워진다. 그런 다음 나머지 3분의 1 공간에 길이 200m 미만의 살물선이나 유조선을 투입한다. 이렇게 하면 최대 7척의 선박을 동시에 건조할 수 있다. 현재 1도크에서는 LNG선 2척, 유조선 2척, 반잠수식 원유생산설비 1기 등이 함께 건조되고 있다. 공기(工期)가 서로 다른 대형선과 소형선을 같은 날 도크 문을 열고 동시에 진수시켜야 하므로 건조 과정에 인력과 일감을 극히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우조선은 워크아웃 기간 중 원가·경비 절감, 부동산 매각과 생산성 향상, 임금 동결 등의 자구 노력에 힘입어 416%이던 부채비율을 324%로 떨어뜨렸다. 또한 이익 증가율이 해마다 두 자리수를 기록하면서 지난해 상반기에는 자본잠식 상태에서 벗어났고, 지난해 말에는 부채비율이 183%로 낮아졌다. 지난해 2월에는 증권거래소에 상장되기도 했다. 영업실적, 수익성, 재무구조가 모두 탄탄해졌으니 우량 기업의 면모를 고루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최근 교보증권은 “대우조선이 국내 조선업체 중 가장 높은 영업이익률과 ROE(자기자본 이익률, 즉 기업의 자기자본에 대한 기간 이익의 비율)를 기록하고 있다”고 분석했으며, 현대투자증권도 올해 대우조선의 ROE를 21.2로 예상해 현대중공업(8.0)이나 삼성중공업(7.4)보다 훨씬 높게 평가했다.

    해양 플랜트로 불황 대비

    하지만 미래가 마냥 장밋빛인 것은 아니다.

    조선업은 공급 과잉이라는 험난한 파고에 직면해 있다. ‘배를 주문하는 회사보다 만드는 회사가 더 많다’고 할 정도다. 당장 대우조선,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국내 대형 조선사끼리도 세계 시장에서 치열한 수주 경쟁을 벌이는 상황. 한국에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전통적 조선 강국인 일본과 EU 국가들의 역량도 만만찮다. 심규상 경영지원본부장은 “대우조선은 지난 몇 년 동안 전체 매출에서 선박 건조가 차지하는 비중이 90% 이상이었다”며 “이런 상황은 10년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선박 시장의 패턴으로 볼 때 불황시 잉여 자원의 활용 문제라든가 수익 하락에 따른 경영 애로 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따라 대우조선은 최근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유정(油井) 탐사용 시추선, 원유 및 천연가스 생산·정제·하역용 플랫폼, 부유식 유전 개발 설비 등 해양 플랜트 부문을 강화해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차석주 경영기획팀장은 “연근해 지역의 자원 고갈로 심해저 지역의 자원 개발이 불가피해졌다”며 “시장 선점에 따른 수익성 향상과 선박 시장의 불황 리스크를 흡수한다는 이중의 포석으로 특히 대형 심해저 개발 프로젝트에 적극 진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양 플랜트는 중후장대형 고가 설비인 만큼 부가가치도 높다. 대우는 지난 4월 미국 석유회사 셰브론텍사코의 앙골라 지역 자회사인 카브곡으로부터 대형 원유 설비 제작, 해저 파이프라인 설치, 기존 설비 개조 공사를 턴키 방식으로 수주했는데, 계약가가 무려 7억300만달러에 달했다. 이는 대우조선은 물론, 발주사인 셰브론텍사코로서도 단일 계약으로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

    대우조선은 2001년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6% 정도였던 해양 플랜트 부문을 올해 안에 20%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지난해에 회사 이름을 ‘대우조선공업’에서 ‘대우조선해양’으로 바꾼 것도 이런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換 헤징 태스크포스 가동

    매출의 거의 100%가 수출에서 발생하는 조선업은 환율에 극히 민감하다. 조선사가 소재와 부품을 구매할 때는 65% 가량을 원화로, 25%는 달러화로 결제하지만, 배값은 선주로부터 100% 달러화로 받는다. 이렇게 원화를 쓰고 달러화를 벌어들이니 환율이 내리면, 다시 말해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지출은 늘고 수입은 줄게 된다. 반대로 1997년 외환위기 직후처럼 환율 급상승으로 달러 가치가 크게 오르면 조선업체들은 앉아서 떼돈을 번다. 그러니 조선업에선 환율 변동에 대비하는 것이 경기 변동에 대비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대우 패밀리, ‘부활의 노래’ 부른다

    경남 거제의 대우조선해양 전경. 흔히 ‘대우 옥포 조선소’라고 부른다.

    요즘처럼 달러 약세가 지속되는 시기라면 조선업체의 고민이 작을 리 없다. 배값으로 들어온 달러 중 25%는 받는 즉시 자재 대금과 비용으로 지급하므로 문제 될 게 없지만, 나머지 75%는 전액 환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국내 조선사들에겐 저환율처럼 껄끄러운 것도 없다.

    이런 사정 때문에 대우조선은 외환관리 규정을 사규에까지 명시하고, 외환업무팀·자금팀·영업기획팀 등 5개 핵심 부서 실무자들을 중심으로 ‘외환관리 태스크포스 팀’을 구성해 저환율 상황에도 견조한 수익률을 올릴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환 헤징을 벌여왔다. 이들은 달러 수입의 50∼70%를 선물환과 옵션, 환 변동보험 등을 통해 헤징하면서 매달 경영진에 실적을 보고한다. 이런 안전장치가 가동되기에 영업 활동도 한결 유연해진다.

    영업 활동은 이렇듯 재무적으로뿐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뒷받침된다. 세계 곳곳을 누비는 대우조선 영업맨들의 노트북 컴퓨터엔 ‘선박통합기본계산 시스템(AICAS)’이 깔려 있다. 대우조선이 4년에 걸쳐 자체 개발한 것으로, 수주 협상 현장에서 선주가 원하는 선박의 크기와 적재량, 속도 등의 데이터를 입력하면 간단하게 선박 사양이 제시된다. 여느 조선사 영업사원 같으면 본사에 질의하고 답을 얻어내느라 며칠씩 소요될 작업을 이처럼 선주 앞에서 즉시 처리하니 수주 경쟁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설 수밖에 없다.

    청산 위기에서 극적 회생

    대우종합기계(대표·양재신)의 어제와 오늘은 ‘환골탈태’ ‘상전벽해’ 같은 말의 쓰임새를 실감케 한다. 대우중공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갈 때 기계부문은 청산될 가능성이 높았다. 당시 대우중공업엔 조선·기계·버스·국민차·트럭부문이 있었는데, 조선만 빼고는 모두 적자 상태였다.

    기계부문의 경우 주력사업인 철도차량과 건설기계가 현대, 삼성 등과 경쟁하면서 심한 경우 제품을 원가의 반값에 덤핑 납품하는 등 출혈 영업을 일삼는 바람에 손실을 키웠다.

    그후 버스·국민차·트럭부문을 대우자동차로 넘겨 대우중공업엔 조선과 기계부문만 남았지만, 이때까지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선박 시장 호황에다 환율 상승이라는 호재까지 겹쳐 돈을 쓸어담던 조선부문과는 대조적으로 기계부문은 수익을 못 내는 것은 물론 차입금도 2조1000억원이나 됐다. 여기에다 대우자동차의 최종 부도로 9000억원의 부실까지 떠안았다.

    ‘공중분해’ 직전까지 갔던 대우중공업 기계부문이 회생의 기회를 잡은 것은 기업 분할 아이디어 덕분이다. 그 무렵 기계부문에서 경영 컨설팅을 의뢰했던 매킨지사(社)가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부실을 털어내는 미국식 기업 분할 아이디어를 조언한 것. 기계부문은 이를 즉각 채권단에 제안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채권단을 설득하기 위한 태스크포스 팀까지 만들며 뛰어다닌 끝에 차입금 중 1조353억원이 출자 전환됐다. 채권단은 액면가 5000원짜리 주식을 1주당 9890원에 출자 전환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그에 앞서 기계부문은 대우중공업에서 분할, ‘대우종합기계’로 거듭났다.

    뼈를 깎는 자구계획 이행이 뒤따랐다. 만년 적자 사업이던 철도차량과 항공부문을 워크아웃 직전에 통합법인으로 이관한 데 이어 크레인, 소결부품, 천공기 등의 사업을 종료했다. 역시 적자를 내던 주물공장 등 21개 아이템을 분사시켰고, 직영하던 건설기계 국내 영업망도 전문딜러체제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1999년 8월 워크아웃 착수 당시 6776명이던 총인원은 2001년 말 4407명으로 35% 감소했다. 아울러 약 900억원 규모의 부동산을 처분했고, 서울 영등포 공장, 대전 사옥 등 120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매물로 내놓았다. 한국철도차량 지분 40%와 골프회원권 등 1520억원 상당의 투자자산도 매각했다.

    수익을 내기 위해 경영 전략도 철저하게 현금 흐름 위주로 개편했다. 우선 덤핑을 근절하는 데 주력했다. 과거 대우그룹 계열사로 있을 때는 매출 위주로 영업하느라 정가에서 대개 25% 이상 깎아줬는데, 이를 10∼15%로 낮췄다. 굴삭기, 지게차 등 주력 제품에서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렸기에 시장 질서의 정상화를 선도할 수 있다고 확신했던 것. 이를 위해 경쟁사와 ‘신사협정’을 맺기도 했다. 더욱이 제품 가격도 7%쯤 올라 수익을 늘려줬다.

    수익 위주 경영이란 게 특별난 것은 아니다. 돈을 줄 것은 쥐어짜고, 받을 것은 제대로 받아내는 것이다. 돈 없는 설움을 톡톡히 당해봤던 대우종합기계는 기업의 미래와 직결되는 R&D 투자는 소폭 축소했지만, 시설 투자와 인력 투자에는 거의 돈을 쓰지 않았다. 생산 현장의 갖가지 개·보수 요구는 웬만하면 묵살했고 신입사원도 뽑지 않았다.

    대우 패밀리, ‘부활의 노래’ 부른다

    대우종합기계의 굴삭기 생산라인. 대우 굴삭기는 세계 시장 점유율 5위를 달리고 있다.

    돈을 받아내는 방식도 선진화했다. 예를 들어 굴삭기를 할부로 팔 때 과거에는 자체 할부로 직접 제품 값을 받아냈으나, 외부 팩토링회사에 일임한 결과 제품을 팔면서 바로 현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고객의 ‘수준’도 높아졌다. 팩토링회사가 신용이 나쁜 고객에게 돈을 내줄 리 없으므로 물건을 팔고 나서 수금이 제대로 안 돼 낭패를 보는 사례가 줄어든 것.

    이처럼 다각적인 구조조정과 수익 위주의 ‘짠돌이 경영’에 힘입어 경영 실적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대우종합기계는 출자전환 이듬해인 2001년 상반기에만 509억원의 경상이익을 실현, 당초 예상보다 3년을 앞당겨 그해 11월말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지난해 매출은 1조8789억원으로 전년대비 22%, 영업이익은 1575억원으로 무려 118% 증가해 독립기업으로 출범한 이래 2년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특히 지난해에는 회사 설립 후 처음으로 건설기계·산업차량·공작기계·엔진·특수사업(방위산업) 등 5개 사업부문에서 모두 흑자를 냈다. 올 1/4분기 매출과 영업이익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28%와 36% 늘어났다.

    주가도 올 들어 잇달아 최고가를 경신했다. 6월 현재 연초 대비 40%대의 주가 상승률로 기계류 업종 가운데 1위를 기록했고, 시가총액에서도 두산중공업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증권가에서는 대우종합기계가 올해 안으로 자본잠식 상태에서 탈피할 것으로 내다본다.

    주력 제품의 경쟁력이 높고 해외 영업 기반이 우수하다는 점도 실적 개선의 주원인으로 꼽힌다. 굴삭기는 국내 시장 점유율 45%로 단연 1위이며, 세계 시장 점유율은 7%로 5위다. 특히 중국 시장에서는 일본 회사들을 제치고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밖에 지게차 등 산업차량은 국내 1위(57%)·세계 7위(5%), 터닝센터 등 공작기계는 국내 1위(30%)·세계 5위(5%)에 올라 있다.

    다만 건설중장비, 산업차량, 공작기계 등 방위사업부문을 제외한 대우종합기계의 주력 제품들이 경기 변동에 매우 민감하다는 게 단점. 불황이 닥치면 어느 기업이나 이런 설비 투자부터 축소하려 들기 때문이다.

    대우종합기계 최진근 재경본부장(전무)은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을 조기 집행할 것으로 예상되고 강원도 등지에 수해가 몇 년씩 계속되고 있어 건설·토목 경기가 크게 위축될 것 같지는 않지만, 국내 경기는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도 여전히 어려울 전망”이라며 “국내가 어려우면 수출로 돌파구를 찾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재 미국·유럽·중국이 해외 시장의 각 30%씩을 차지하는데, 세 곳 모두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지게차와 공작기계의 주시장인 미국은 최근 경기 회복 기미를 보이는 데다, 지게차 생산업체인 클라크사가 부도를 내 반사이익을 볼 수 있을 듯하다. 유럽은 불황이긴 하지만 유로화가 워낙 강세라 환율을 이용한 할인 판매로 매출 증대를 꾀해볼 수 있다.

    중국은 가장 크게 기대되는 시장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겨냥한 막대한 SOC 확충사업, 양쯔강과 황하를 수로로 연결하는 공사, 낙후된 서부 대개발사업 등 넓은 국토에서 대규모 사업들이 줄을 잇고 있다. 또한 자동차산업이 확대일로에 있어 공작기계 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대우종합기계의 재무구조는 아직 국내 다른 중공업체들에 비해 덜 안정적이다. 부채비율은 워크아웃 당시 360%에서 204%로 떨어졌지만, 100∼200%선인 다른 회사들보다 높은 수준이다. 또 차입금 의존도(37.8%)와 금용비용 부담률(4.1%)은 상대적으로 높고,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인 이자보상배율(2.05배)은 낮은 편이다.

    최진근 재경본부장은 “올 상반기에 이익을 많이 내 500억원 정도의 부채를 갚을 수 있고, 연말까지 500억원을 더 갚을 예정이다. 또한 아직 남아 있는 비업무용 부동산과 한국항공 지분 등을 기회만 되면 매각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2000년 12월 (주)대우 워크아웃 과정에서 분리된 대우건설(대표·남상국)도 비교적 빠른 시일 안에 경영 정상화를 이뤄냈다. 출범 2년 만인 지난해 수주 5조4000억원, 매출 3조4511억원, 영업이익 3107억원을 기록, 외환위기와 대우사태를 거치면서 내준 업계 2위에 복귀했다. 지금은 업계 정상을 놓고 현대건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부채비율은 기업 분리 당시 500%에서 180%로 낮아졌다. 또한 올 1/4분기의 국내외 수주액은 2조41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4%나 증가, 2위 롯데건설(1조6000억원), 3위 현대건설(8100억원)을 월등히 앞섰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서울지하철 9호선 건설 공사, 광양항 3단계 공사, 통영 가스생산기지 2단계 공사 등의 대형 사업을 따내 공공 수주 부문에서 1위를 기록했을 뿐 아니라 2만3000여 세대의 주택을 공급해 2년 연속 주택공급 실적 1위를 차지했다.

    대우건설의 인지도가 높은 중동, 아프리카 지역 등 해외 부문에서도 발전소, LNG 플랜트, 항만 등 부가가치가 높은 공사를 잇달아 수주했다.

    대우건설의 전신인 (주)대우 건설부문은 1973년 창업 이래 국내외의 각종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탄탄한 기반을 마련했다. 창업 10여 년 만에 현대건설에 이어 도급순위 2위에 오른 후 단 한 번밖에 2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늘 1위를 추격하는 입장이었던 만큼 인력, 기술, 조직 등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공격적인 경영으로 다른 건설사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했다. 대우그룹이 부실화한 데 대해 전혀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진원지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그룹과 운명을 같이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부도기업’으로 낙인찍히자 30년 명성도 하루 아침에 빛을 잃었다. 공사 입찰에 참여할 기회 자체가 봉쇄되는가 하면, 어렵사리 해외 공사를 수주해와도 은행이 지급보증을 서주지 않아 속을 태웠다. 과거엔 말단 여직원이 처리했던 일이지만, 워크아웃 이후엔 사장이 직접 은행에 가서 통사정을 해야 했다.

    아파트 재건축조합이 시공사 선정 투표를 하는 날이면 대우건설 직원들은 부부가 함께 투표장에 나가 90도로 인사하며 ‘한 표’를 호소하고 다녔다. 하지만 경쟁사 직원들이 조합원들에게 “망한 회사한테 공사를 줄 겁니까?”라고 한 마디만 하면 ‘상황 끝’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민간부문 경기가 위축되면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턴키 공사 등 공공부문 중심으로 전환해왔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공공부문 공사를 발주할 때는 엄밀한 설계도 심사와 설계능력 평가를 거쳐 시공사를 선정하므로 건설사의 브랜드 이미지는 그다지 중요한 고려 요소가 못 되기 때문이다.

    ‘디오빌’로 뜨다

    그렇다고 민간부문에서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외환위기 여파가 점차 가라앉으면서 주택 경기도 다시 기지개를 켰고, 어떻게든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아 명예회복을 해야 했다. 우선 활로는 틈새시장 공략에서 찾아야 할 터. 대우건설이 겨냥한 틈새시장은 대략 다음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비경쟁 지역 시장. 브랜드 이미지가 웬만큼 개선될 때까지는 경쟁이 치열한 서울 아파트 시장에선 승산이 희박하다고 보고 ‘무주공산’을 찾아헤맨 끝에 발굴한 곳이 경기도 안산시 고잔 택지개발지구다. 인구의 73%가 40대 이하의 젊은 세대인데다, 편리한 광역 교통망, 서해안을 낀 천혜의 자연환경, 자급자족이 가능한 경제여건을 갖춰 향후 성장 잠재력이 높다고 판단한 것. 대우건설은 1999년 3월 안산고잔 1차 대우아파트를 분양한 이래 이 지역에서 지난 5월까지 7차에 걸쳐 7400여 세대를 성황리에 분양, ‘대우시(市)’를 형성했다.

    두 번째는 최고급 아파트 시장. 1999년 5월 서울 여의도에 분양한 주상복합아파트 ‘트럼프월드’가 그 효시다. 의사, 변호사, 금융인, 방송인 등 여의도 지역의 고소득층을 타깃으로 삼았는데, 미국의 부동산 재벌 트럼프사가 입지 선정과 공간 배치, 인테리어 등을 자문했다고 해서 화제를 모았다. 분양가가 당시로선 파격적인 평당 2000만원대에 육박했지만, 3배수 청약이 5시간 만에 마감됐을 만큼 인기를 모았다.

    세 번째는 특수 수요 시장. 대우건설의 최고 히트작으로 꼽히는 주상복합형 원룸 아파트 ‘디오빌’이 여기에 해당한다. 핵가족과 독신자 세대, 저금리 시대에 예금 이자보다 부동산 임대료 수입을 선호하는 투자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개발한 상품이다. 업무시설 밀집지역, 도심·부도심 역세권, 환승 역세권 등지의 자투리땅을 매입, 1개 동 300세대 미만의 소형 평형으로 지어 비용 절감과 효율적 공간 활용을 기했다.

    대우 패밀리, ‘부활의 노래’ 부른다

    대우건설의 최고 히트작으로 꼽히는 디오빌. 사진은 2000년 4월 1호로 분양돼 16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서울 역삼동 디오빌.

    2000년 4월 1호로 분양한 서울 역삼동 디오빌은 164대 1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했고, 그해 히트상품으로 선정됐다. 2호 논현동 디오빌, 3호 선릉역 디오빌 등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특히 이들 강남지역 디오빌은 당시 벤처 붐과 함께 몰려들어온 벤처기업 직원, 강남 소재 학교에 다니려고 다른 지역에서 어머니와 자녀만 옮겨온 세대, 인근 유흥업소 여종업원 등의 특수 수요와 맞물려 열기를 더했다.

    대우건설 정태화 경영혁신본부장(전무)은 “이처럼 연거푸 히트상품을 만들어낸 것은 대우건설이 오래 전부터 부동산 개발사업에 주력하며 노하우를 쌓아왔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건물을 지으려면 부지를 고르고, 건물의 종류와 규모를 결정하고, 각종 인허가를 얻어내고, 땅을 매입하고, 건물을 설계하고, 시공사를 입찰시킨 다음 시공에 들어간다. 시공사 입찰 단계 이후를 건설업의 ‘하드웨어’라 한다면 그 전까지의 단계인 부동산 개발사업은 ‘소프트웨어’라 볼 수 있다. 이제 단순 시공하는 하드웨어는 중소기업에 주고, 우리는 소프트웨어로 가야 한다고 방향을 잡고 이 분야에 대한 연구와 교육에 중점을 뒀다. 개발사업의 부가가치가 훨씬 더 높기 때문이다. 요즘 아파트 분양가가 오르고 있는 것도 시공부문이 아니라 개발사업부문의 비용 상승에 기인한 바 크다. 시공사들이야 입찰가를 높게 적어내면 공사를 못 얻으니 값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국내 건설업계 CEO 중에는 유독 대우건설 출신들이 많다. 진재순 한일건설 회장, 김현중 한화건설 사장, 박창호 이수건설 사장, 김영호 보성건설 사장 등이 그 대표적 인물. 특히 요즘 각광받고 있는 부동산 개발사업자의 경우 대우맨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우명구 미래D&C 사장, 이강오 참좋은건설 사장, 서효진 로쿠스 사장 등이 그들이다. 그래서 대우건설엔 ‘부동산 개발사업 사관학교’라는 이름이 따라붙기도 한다.

    근성으로 지켜낸 해외 네트워크

    부채 1조3000억원, 부채비율 940%, 당기순손실 990억원. 2000년 12월 (주)대우 상사부문이 ‘대우인터내셔널(대표·이태용)’이라는 이름을 달고 떨어져나올 당시의 초라한 성적표다. 대우그룹의 모기업 노릇을 하느라 무역업이라는 본업 외에도 그룹의 해외 투자 재원 조달, 계열사에 대한 각종 지원 및 지급보증 등으로 엄청난 부담을 지게 된 결과였다.

    자체 생산기반이나 제품 판매망을 갖고 있지 않아 신용으로 해외 영업을 해야 하는 종합상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니 금융 및 대외 신용도가 흔들려 영업 활동은 크게 위축됐다. 게다가 그룹이 해체되면서 계열사의 수출 대행 물량마저 끊겼다. 어느 모로 보나 회생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그러나 대우인터내셔널은 살아남았다. 지난해 6조4074억원 매출에 78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 회사 분할 후 처음으로 흑자를 실현한 것. 차입금도 지난해 말 4000억원대로 줄였고, 부채비율은 분할 당시의 3분의 1 수준인 282%로 낮췄다. 해외법인들도 대부분 수익구조가 정착됐고, 특히 해외무역법인도 채무 재조정과 신설법인 설립을 통해 정상화를 이뤄냄에 따라 당기순이익 803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대우인터내셔널 윤병은 상무(경영기획 담당)는 “그룹 시절부터 확보한 막강한 해외 네트워크를 굳건히 지켜냈기에 기업 정상화를 앞당길 수 있었다”고 말한다. 100여 개의 해외지사와 투자법인들이 전세계에 걸쳐 거미줄 같은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구축, 국내외 6000여 개 거래선을 대부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

    “그룹 해체를 전후해 대리·과장급의 젊은 직원들은 벤처기업 등으로 스카우트되는 등 이직률이 높았으나, 무역 전문가인 차장급 이상 핵심 인력들은 대부분 회사에 남아 해외 네트워크를 복구, 유지, 확대하며 비즈니스를 활성화했다. 지난해 말 현재 전체 인원 가운데 37%가 4년 이상의 해외 주재원 경험이 있으며, 과장급 이상 인력의 79%가 대우의 해외 거점에서 근무한 경험과 상품·지역 노하우를 갖고 있다.”

    대우 상사맨들은 이른바 ‘세계경영’의 전도사답게 프로 근성이 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란-이라크 전쟁이나 유고 내전 때도 다른 상사들은 철수했지만, 대우 직원들은 끝까지 남아 사무실을 지켰다. 지금도 국내 상사 중 유일하게 이라크 지사를 가동하며 인맥을 관리하고 있다. 이들은 난데없이 오지(奧地)로 발령이 나도 군소리 없이 짐을 싸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이렇게 다져진 네트워크다 보니 그룹이 해체된 상황에도 제 기능을 해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합상사를 계열사로 거느린 국내 대기업이 대우 네트워크를 통해 무역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대우인터내셔널은 특히 자동차 부품, 방위산업, 곡물, 원유, 플랜트 공급 등의 분야에서 차별화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자원개발사업에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이미 투자가 완료된 페루 유전, 오만 LNG전 등에서는 투자액 전액을 회수하고도 매년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현재 막바지 시추 작업을 벌이고 있는 미얀마 해상 A-1 광구의 경우 대우인터내셔널이 60%의 지분을 갖고 있는데, 천연가스 매장량이 한국에서 연간 사용하는 양의 최소 10배, 최대 40배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대우인터내셔널은 중국 시장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한중수교 이전에 국내 종합상사 중 가장 먼저 중국에 진출해 시장을 개척한 덕분이다. 중국 지역 영업이 해외 비즈니스의 34%를 차지하며, 중국내 13개 지사와 21개 법인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120여 명의 중국 전문가들이 뛰고 있다.

    親건강·親가족·親환경 마케팅

    지난 2월20일 서울 힐튼호텔. 대우전자의 후신인 대우일렉트로닉스(대표·김충훈)가 신제품 발표회를 갖고 냉장고와 에어컨, 세탁기 등을 선보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몇몇 임직원들이 눈물을 글썽였다.

    삼성과 LG는 한 달이 멀다 하고 신제품 발표회를 열지만, 대우는 회사가 채권단에 넘어간 2000년 1월 이후 자금줄이 꽁꽁 막혀 한 번도 신제품 발표회를 갖지 못했다. 구조조정으로 3분의 2에 가까운 동료들을 떠나보내고 3년 만에 갖는 신제품 발표회였으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후 ‘매각을 통한 경영 정상화’를 선언한 대우전자는 거대한 몸집을 줄이기 위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영상·냉기·리빙 등 주력 사업은 자회사인 대우모터공업으로 양도하고, 반도체·모니터·가스보일러·오디오·중계기 등의 방대한 비주력 사업은 매각하거나 분사시켰다. 이 과정에서 25개 사업부문이 7개로 축소됐고, 1만여 명을 헤아리던 직원은 4000여 명으로 줄었다. 서울 마포의 본사 사옥도 팔고 세를 얻었다. 대우모터공업은 지난해 11월 ‘대우일렉트로닉스’로 새출발했다.

    처절하게 몸을 추스린 결과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출범 두 달 만에 매출 5100억원, 경상이익 200억원을 기록, 흑자 기업으로 전환했다. 올 1/4분기에는 4800억원 매출에 340억원 경상이익을 올려 올해 목표인 매출 2조7000억원, 경상이익 1000억원에 무난히 도달할 전망이다.

    당장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공격적인 전방위 마케팅에 맞설 처지가 못 됐기에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선택과 집중’이 이뤄진 7종의 제품을 최대한 차별화하는 데 주력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게 ‘친(親)건강·친가족·친환경’ 마케팅이다. 가령 대우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무세제 세탁기는 ‘세제를 쓰지 않아 환경을 보호하고, 세제 찌꺼기가 남지 않아 가족의 건강을 지켜준다’는 컨셉트를 담고 있다. 산소 발생 에어컨 ‘수피아 O2’는 냉방병 등의 유해성을 최소화한 건강친화적 제품으로, 양문형 냉장고 ‘나노실버 클라쎄’는 주요 부위에 미세한 은(銀) 입자를 첨가해 항균과 탈취 등 건강·위생 기능을 강화한 제품으로 소개됐다.

    이 중에서 친건강·친가족 마케팅은 소비자들의 호응도가 상당히 높다고 한다. 다만 친환경 개념은 아직 소비자들의 환경의식 부족 탓인지 기대만큼은 먹혀들지 않고 있다. 환경친화적 요소를 당장 몸에 와닿는 혜택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돈을 더 지불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구매하려 들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어떤 신기술과 마케팅으로 메워야 할지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은 최첨단 家電 시험장

    대우일렉트로닉스는 국내영업본부를 재편성하며 영업인력을 20배 가까이 늘렸다. 한동안 중단됐던 가전제품 양판업체 하이마트와의 거래도 재개했다. 옛 대우전자 판매여왕 출신의 ‘아줌마 부대’를 다시 모아 특판사업본부를 꾸리기도 했다. 가전 내수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마당에 국내에서 치고받는 것보다는 아예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게 낫지 않겠냐는 질문에 대우일렉트로닉스 이승창 전략기획부문장(전무)은 “모르는 소리”라고 잘라 말한다.

    “치열한 경쟁이 예상됨에도 국내 마케팅을 강화하는 것은 가전의 경우 한국 시장에서 성공해야 밖에 나가서도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가전 시장은 최첨단, 최고급 제품의 성능 시험장이다. 그만큼 우리 소비자들의 기대 수준이 높고 기호도 까다롭다. 영상가전을 예로 들면 프로젝션 TV, PDP, HDTV 하는 식으로 하루가 다르게 눈이 높아진다. TV 한 대가 서울 아파트 한 평값보다 비싸도 없어서 못 판다. 따라서 아무리 시장이 포화상태라도 제품 교체 수요는 끊임없이 생겨난다.”

    대우 패밀리, ‘부활의 노래’ 부른다

    김충훈 사장(가운데) 등 대우일렉트로닉스 경영진이 중동지역에서 열린 회사 설명회에서 자사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더욱이 내수 시장의 주류는 고가 제품이어서 마진도 크다. 이에 비해 수출 제품의 주류를 이루는 것은 보급형이라 이윤이 그만 못하다. 고급형 제품은 일단 내수 시장에서 검증받은 뒤 한 템포 늦게 수출된다.

    해외부문에서 대우인터내셔널은 ‘지역 특화형’ 상품으로 틈새 수요를 흡수하려 한다. 중동 지역을 겨냥해 ‘자물쇠 냉장고’와 녹색 냉장고를 만든 것이 그 예. 물이 귀한 중동에서는 누군가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실까봐 신경을 쓰는 소비자가 많고, 늘 풀 한 포기 없는 누런 사막만 바라봐서인지 녹색을 유난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또한 영국 수출용 냉장고 중엔 영국인들이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노란색이 다수를 차지한다.

    옛 대우 계열사들은 이제 ‘대우’라는 이름만 공유할 뿐, 법적으로는 아무 관계가 없는 독립법인들이다. 그렇지만 팔은 안으로 굽게 마련. 이런저런 방법으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식지 않는 옛 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물론 한 울타리 안에 있을 때처럼 ‘무조건’ ‘당연히’ ‘손해를 보더라도’가 아니라 ‘같은 값이면’ ‘필요에 따라’ ‘서로 윈-윈하기 위해’ 그렇게들 한다.

    가령 대우인터내셔널의 경우 지난해 수출실적의 약 30%가 옛 대우 계열사들의 제품 판매를 통해 이뤄졌다. 옛 대우 계열사들은 동종업계에서 대개 삼성이나 현대와 경쟁하는 처지라 보안 문제 때문에라도 자사 무역 업무를 삼성물산이나 현대종합상사에 주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우조선이나 대우건설 등은 대우인터내셔널 해외 주재원으로부터 현지 수주 정보를 얻기도 한다.

    대우상용차와 대우버스는 대우종합기계로부터 디젤엔진을 납품받는다. 대우건설은 GM대우차를 업무용 차량으로 렌트해 쓴다. 또한 같은 조건이면 자신들이 짓는 아파트에 대우일렉트로닉스의 빌트인 가전제품을 설치한다. 대우종합기계는 임원들에게 GM대우의 중형차 ‘매그너스’를 내준다. GM대우차 라인업에 아직 대형 승용차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GM대우차는 이들과 피 한 방울 나눈 사이가 아니다.

    수면 위 떠오른 지배구조 문제

    옛 대우 주력 계열사들의 부활은 눈물겨운 자구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공적자금 투입과 출자전환 등 정부와 채권단의 특혜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돈이 되는 사업만 살려서 파격적인 금융지원을 퍼부었으니 ‘부활’하는 것은 당연하다. 엄청난 ‘수업료’를, 그것도 남의 돈으로 치렀으니 이들이 투명하고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영위하는 것은 경제적·사회적 의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부실을 털어내고 클린 컴퍼니로 거듭난 대우건설과 대우인터내셔널 뒤에는 온갖 ‘원죄’를 뒤집어쓰고 배드 컴퍼니 신세가 되어 쓸쓸히 청산의 길을 걷고 있는 (주)대우가 있다. 대우일렉트로닉스도 껍데기만 걸친 채 청산을 앞둔 대우전자를 밟고 섰다.

    옛 대우 주력 계열사들이 정상화 단계에 진입하면서 기업 지배구조의 향배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누가 새 주인이 되느냐에 따라 한 단계 더 도약할 수도 있거니와, 일이 잘못되면 지금껏 쌓아올린 탑이 다시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자산관리공사와 주 채권은행이 전체 지분의 절반 이상씩을 보유하고 있는데, 한시라도 빨리 공적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자산관리공사나, 최대한 좋은 조건에 보유 지분을 매각하고자 하는 채권은행이나 이들 기업의 미래를 보고 장기 투자할 처지는 아니다.

    워낙 물량이 많아 증권시장에 풀어놓기는 어렵기에 단독 매각, 컨소시엄 매각, GDR(해외주식예탁증서) 발행, 종업원 지주제 등 다양한 방안들이 거론되고 있는데,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자산관리공사와 산업은행이 보유한 약 70%의 지분 중 16% 정도를 최근 GDR 형태로 해외에 매각했다. 대우의 한 임원은 이렇게 희망을 피력했다.

    “우리는 과거 재벌 소유에서 과도기를 거쳐 이제 마지막 목표, 즉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선진 지배구조 모델로 갈 준비가 돼 있다. 그러니 경영은 경영 전문가에게 맡기되, 장기 펀드 등이 대주주로 들어와 긴 안목에서 경영을 감시한다든지, 해외의 대주주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공동 투자한다든지 해서 회사가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굴러가게 했으면 한다. 만에 하나라도 채권단이 ‘정치적 판단’을 해 다시 과거의 후진적인 지배구조로 돌아갈까봐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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