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호

주한 외국 경제인들이 본 한국경제

“투명성·예측가능성 확보가 재도약 전제조건”

  • 입력2003-08-22 17: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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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한 외국 경제인들이 본 한국경제

    왼쪽부터 고메즈 회장, 오벌린 회장, 다카스기 이사장

    사회 요즘 “한국에서 기업하기 힘들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국내 기업인들조차 “여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회사를 해외로 옮길 수밖에 없다”고들 합니다. 그런가 하면 한쪽에서는 동북아 경제 중심지니,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니 하는 얘기가 나옵니다. 좀체 갈피를 잡기 힘들어요. 오늘 좌담회에 참석한 세 분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국, 일본, 유럽 기업인들을 대변할 뿐 아니라 오랫동안 한국에서 직접 기업을 경영하고 계십니다. 객관적인 시각을 지닌 ‘한국통’들인 만큼 한국경제에 대해 들려줄 말씀이 많을 듯합니다. 먼저 한국의 비즈니스 환경에서 장점이라 할 만한 것, 한국에서 기업 경영하기에 편한 점이라면 어떤 것을 들겠습니까.

    고메즈 한국은 유리한 여건을 많이 갖추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리적 이점을 들 수 있겠죠. 성장 일로의 중국과 세계 2위 경제권인 일본 사이에 자리하고 있으니까요. 한국 정부가 대북(對北)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천명한 점, 투명성 제고와 규제완화를 약속하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또한 한국 기업들은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을 갖췄을 뿐 아니라 일하려는 의지로 충만한 숙련된 노동력 등 풍부한 경제적 자원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외국인 투자를 확대하고 수출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오벌린 고메즈 회장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몇 가지를 더 보탠다면 우선 한국은 숙련되고 동기부여가 잘된 노동력에다 정보기술(IT)산업의 중추라 할 뛰어난 IT 인프라와 지식체계까지 갖춘 디지털 사회라 미래에 대한 전망이 밝다는 점입니다. 아울러 한국의 민주주의에도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한국은 다른 어느 국가보다 민주적인 사회입니다. 민주화와 법치(法治)의 수준이 끊임없이 향상돼왔어요. 민주주의야말로 한국의 비즈니스 여건을 개선시키는 주요 배경이라고 봅니다.

    다카스기 한국경제의 장점은 산업 측면과 시장 측면으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산업 측면에서는 교육수준이 높은 인력, 물류·통신 등 잘 발달된 인프라, 첨단 기술력, 중국·일본·러시아 등과 인접한 위치 등을 꼽을 수 있겠죠. 더욱이 정부는 이런 점을 아주 효과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시장 측면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한국인들이 적극적인 소비패턴을 지녔다는 점입니다. 유명 브랜드에 대한 구매욕이 대단히 높고, 남이 사면 나도 사야 한다는 성향이 강해요. 이런 소비자들이 서울, 부산, 광주 같은 대도시에 밀집돼 있다 보니 기업이 마케팅 전략을 펴기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제가 일본 경제인들에게 한국 투자가 매력적이라고 늘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은 ‘커넥션’의 사회

    사회 이번엔 반대되는 질문을 드려보죠. 한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가장 어렵고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한 미국 및 유럽연합상공회의소, 서울재팬클럽에 가입한 국내 외국 기업인들이 특히 불만을 호소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다카스기 한국은 일본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만, 일본보다 역사가 길다 보니 고유의 문화와 관습, 행동방식이 사회전반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의 문화와 관습을 매우 높게 평가합니다. 그러나 가끔은 이런 문화와 관습이 비즈니스를 방해하는 경우가 있어요.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시점인 만큼 이젠 한국인들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한 예로 노사 문화를 들 수 있겠는데, 지금 상황이 아주 나빠요.

    저희 회사(한국후지제록스)는 노사 관계엔 별 문제가 없지만, 마케팅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저희는 제품을 고객에게 직접 판매하는데 경쟁사들은 대리점을 활용하죠. 이들은 저가 제품을 앞세워 대리점들을 파고들고 대리점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고객을 찾아나섭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동원되는 것이 지연, 학연 같은 ‘커넥션’입니다. 이게 엮어져야 비로소 비즈니스가 시작되죠. 그들은 어떻게 사무실의 생산성을 높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하지 않습니다. 제품을 파는 사람도 컨설팅 회사나 솔류션 회사에 이런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요.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부패입니다. 아무리 작은 부패라 해도 부패는 부패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작은 부패는 부패로 여기지 않는 것 같아요. 이것 또한 일본 비즈니스맨들을 난감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해요.

    주한 외국 경제인들이 본 한국경제

    마르코스 고메즈(Marcos Gomez)<BR>● 1942년 콜롬비아 바랑킬라 생(국적·스페인) ● 독일 루트비히대 화학과 졸업 ● 바이엘 콜롬비아·스페인 지사 근무 ● 바이엘 본사 세라믹부문 마케팅 이사·무기화학제품부문 총괄이사 ● 바이엘 코리아 사장(1999.8∼ ) ● 주한유럽연합상공회의소 회장(2003.6∼ )

    오벌린 저는 노사갈등과 기업규제를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습니다. 한국 투자를 고려하고 있는 외국 투자자들은 현재의 상황을 1년 전과 비교하곤 합니다. 그들은 지난해 월드컵 당시 온나라에 넘쳐나는 붉은 물결을 보며 한국인의 활기와 정력에 매료됐어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지금은 파업 노동자들이 이마에 두른 띠가 붉은 물결을 이루고 있습니다. 외국인 투자유치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강경 노조는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에겐 선택권이 있기 때문이죠. 한국에 투자할 수도 있고, 중국에 투자할 수도 있고, 일본에 투자할 수도 있습니다.

    그간 한국은 외국인들이 보다 쉽게 한국에 투자함으로써 새로운 사업을 벌일 수 있도록 시장개방과 규제철폐 양면에서 모두 괄목할 만한 노력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기업이 다층(多層) 구조의 갖가지 규제로 인해 비즈니스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때문에 완전한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법규에서 허용하는 것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포지티브 시스템이 아니라, 법규에서 허용하지 않는 것 외에는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네거티브 시스템 말입니다. 거대 관료주의 아래에서는 규제가 규제를 낳는 악순환으로 인해 ‘규제의 늪’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상적인 네거티브 시스템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정부는 이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주었으면 합니다.

    투자유치 원한다면 투명해지라

    고메즈 북한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한국이 이 문제를 대하는 시각은 해외에서 보는 시각과는 많은 차이가 있어요. 이런 류의 국가안보 문제가 다른 나라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외국인 투자자들로 하여금 다른 나라로 투자처를 옮기게 할 수도 있는 심각한 이슈입니다. 투자자에게 투자 대상국의 안보상황은 매우 중요한 고려 요소거든요. 따라서 우리는 한국정부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우방국들과 더불어 어떤 행동을 취할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북한문제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합니다.

    지금까지 언급된 노사갈등, 부패, 북한문제 등은 한국사회 전반의 투명성 결여에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투자여부를 결정하는 데 필수적인 전제조건은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입니다. 우리는 1주일, 1년이 아니라 10년, 20년 앞을 내다보고 투자합니다. 그러니 10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 세 분 모두 지적하신 것처럼 노사갈등은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는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습니다. 춘투(春鬪)니 하투(夏鬪)니 해서 해마다 열병에 시달리면서도 근본적인 치유의 조짐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도 모를 상황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오벌린 노사관계 역사가 100∼200년에 이르는 미국의 경우와 비교하면 한국은 그간 참으로 많은 것을 이뤄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이 겪고 있는 노사갈등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진표 경제부총리도 노사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곧 이에 대한 언급이 있을 것으로 압니다. 노대통령은 지난 5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노사문제는 2∼3년 안에 어떤 식으로든 해결될 것”이라고 했고, 저도 참석했던 한 만찬에서는 “8월 중에 주목할 만한 새 노동정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새로운 노동정책은 반드시 수립돼야 하며, 여기에는 노사문제의 핵심 이슈인 노동의 유연성과 사회안전망을 구현하기 위한 방안이 포함돼야 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노사 양측이 빠른 시간 안에 컨센서스를 이뤄냄으로써 정책이 집행되도록 해야 합니다. 집행되지 않는 정책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노사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결코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신발 한 켤레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지 않습니까. 사람마다 발 사이즈가 다르듯, 재벌기업의 경우가 다르고, 중소기업의 경우가 또 다를 테니까요.

    사회 다카스기 이사장께선 노사문제 해결의 생생한 ‘현장사례’를 들려주실 수 있을 듯합니다. 한국후지제록스는 외환위기 무렵까지만 해도 노사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는데, 다카스기 이사장이 CEO로 부임한 이래 사정이 딴판으로 변했다고 들었습니다. 2001년 이후 3년 연속 임금교섭 없이 노사협상을 마쳤고, 노동부가 제정한 ‘신노사문화대상’과 경제정의실천연합의 ‘바른외국기업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주한 외국 경제인들이 본 한국경제

    윌리엄 C. 오벌린(William C. Oberlin)<BR>● 1943년 미국 텍사스 생 ● 듀퍼대 정치학과 졸업, 서던캘리포니아대 석사(시스템공학) ● 미 공군 중령 예편 ● 보잉 극동지역 헬기판매 매니저·아태지역 국제사업본부 이사 ● 보잉 코리아 사장(2000.4∼ ) ●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2003.1∼ )

    다카스기 1997∼98년 이전까지 한국경제는 엄청난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그 배경엔 재벌이 있었습니다. 재벌이 고성장을 견인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재벌식 경영은 그에 합당한 만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계화와 더불어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기업의 경영방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1998년 한국 발령을 받고 와보니 저희 회사 또한 재벌 경영방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노사갈등도 극심했죠. 다각도로 노사갈등의 원인을 분석해보니 특히 경영방식에서 비롯된 측면이 컸습니다. 재벌 경영방식에선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기업을 소유한 사람이 경영까지 하는 거죠. 이 경우 기업 오너는 ‘이 회사는 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원들에 대해서도 ‘그들은 일만 하면 되고, 나는 돈만 주면 된다’고 생각하죠. 이런 시스템에선 투명성이란 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직원들은 회사 사정이 어떤지도 모르고, 회사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에도 관심이 없어요. 그저 일만 할 뿐입니다.

    저는 제가 가진 모든 기능-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을 활용해 직원들과의 대화(communication)에 나섰습니다. ‘투웨이(2-way) 커뮤니케이션’이었죠. 2001년까지 저는 매 분기마다 사보(社報) 형태의 비디오테이프를 만들어 전직원에게 나눠줬습니다. 테이프에는 저의 경영철학을 비롯해 손익계산서, 대차대조표, 영업실적 등의 현황을 속속들이 담아 회사 사정을 직원들과 공유했습니다.

    이것이 일방향 대화라면, 보다 의미있는 것은 쌍방향 대화였습니다. 분기별로 최고경영진과 중간간부들이 참석하는 워크숍을 열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도록 한 것이 그 한 예입니다. 또한 전직원이 참가하는 대화 마당인 ‘토크 플라자’를 열어 후지제록스의 사시(社是)인 ‘강하고 즐겁고 정다운 회사’를 실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렴했고, 정기적으로 노사협의회를 열어 경영실적을 공개하고 노조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제 별명이 ‘삼겹살 회장’입니다. 틈만 나면 현장을 찾아 토론하고 소주와 삼겹살로 뒤풀이를 했거든요. 그런 분위기에선 솔직한 대화가 오가게 마련입니다.

    이같은 커뮤니케이션이 회사의 투명성을 높였습니다. 이제 회사가 이러이러한 상황에 있다고 설명하면 직원들은 그대로 믿습니다. 노와 사의 상호신뢰가 뿌리를 내리게 됐고, 이는 노조의 무분규 선언으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대화와 투명성이 노사문제 해결의 열쇠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고메즈 경영자와 근로자는 목표가 같아야 합니다. 회사는 직원들이 안정적인 여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회사도 이익을 낼 수 없습니다. 그 핵심은 다카스기 이사장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바로 커뮤니케이션입니다. 노사 간에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 없다면 어떻게 서로를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회사가 직원들에게 투명해지지 않으면 직원들은 회사의 전략이나 회사가 처한 상황에 대해 무지하게 됩니다. 노사갈등을 풀어가려면 우선 직원들로 하여금 회사가 왜 이런 혹은 저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이해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은 노조원들의 지식수준이 높아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경영자는 파트너로 상대할 수 있는 노조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대화가 통하는 파트너 말입니다. 경영자는 예컨대 대차대조표나 손익계산서에 쓰인 숫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파트너, 회사의 재무상황이 왜 이렇게 됐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파트너를 원합니다. 노조 간부와 노조원들은 적어도 회사측이 경영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까지는 지식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신뢰,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교육이 키워드라고 하겠습니다.

    ‘Plan-Do-Check & Act’

    사회 노사갈등, 기업규제, 부패, 북한문제 등 앞서 지적하신 과제들을 풀어가는 데 있어서는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때문에 위로부터는 대통령과 고위관료에서부터 아래로는 일선 하급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비즈니스 마인드로 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경영인의 견지에서 한국의 행정부문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들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주한 외국 경제인들이 본 한국경제

    다카스기 노부야(高杉暢也)<BR>● 1942년 일본 야나마시현 생 ● 와세다대 상학부 졸업 ● 후지제록스 영업계획부장·경리부장·재무부장 ● 코리아제록스 회장, 한국후지제록스 회장(1999.3∼ ) ● 신노사문화대상(노동부)·바른외국기업상(경실련) 수상 ● 서울재팬클럽 이사장(2003.2∼ )

    오벌린 노무현 정부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원들을 비롯한 외국 경제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에는 외국 경제인들이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한국정부가 외국 경제인들의 기업활동과 투자유치에 쏟는 관심을 높이 평가합니다. 아울러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케 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과 어젠더를 노무현 정부가 그대로 이어받은 데 대해서도 만족스럽게 생각합니다.

    다만 재차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책을 수립하는 것과 집행하는 것은 별개라는 사실입니다. 정책을 만든 다음에는 그것을 집행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한국정부가 정책을 만드는 것보다는 정책을 집행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노대통령이 미국, 일본, 중국을 방문할 때 국내외 지도급 경제인들을 대거 동행한 것을 보면 이 정부가 비즈니스, 특히 외국인 비즈니스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이해하고 있다면 이젠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고메즈 옳은 지적입니다. 오늘날의 한국은 외환위기 이전의 상황과는 판이합니다. 지금은 각종 정책과 법규, 제도가 완비되어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수준이 됐습니다. 따라서 이제 정부는 이미 만들어진 법과 제도를 제대로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겐 법도 있고, 가이드라인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현장에선 여전히 설명하고 협상하고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 같은 목표를 놓고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죠. 정부의 확고한 법 준수 의지를 다시 한번 촉구합니다. 법을 만들었고, 그것이 옳은 것이라면 그대로 따르자는 겁니다.

    다카스기 한국 정부는 수많은 정책과 ‘비전’을 만들어냅니다. 발전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입니다만 그것이 잘 실천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예요. 야구에 비유하자면 주자가 계속 1루까지만 나가고 마는 상황입니다. 정책과 비전을 집행하고 지속시켜서 2루, 3루까지 나가야 점수를 올릴 것 아닙니까. 현장에서 정책을 이행해야 할 사람들은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하고, 정책을 만든 사람들은 “정책은 좋은데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합니다. 정책을 만들었으면 그게 잘 이행되고 있는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해요.

    예컨대 한국의 대통령 임기가 5년이니까 이 5년 동안은 누구로부터도 방해받지 않습니다. 그러니 정부는 5개년 계획을 세워서 매년 그 해의 목표와 우선순위를 정해 정책을 추진하고, 완수하고, 점검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다음 해에는 한 단계 더 올라서는 거죠.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적인 목표에 다가서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기업의 전사적 품질관리(TQM·Total Quality Management)에 나오는 ‘PDCA’ 방식을 추천하고자 합니다. PDCA란 계획(Plan)하고, 행동(Do)하고, 점검(Check)한 뒤 잘못된 점을 고쳐 다시 행동(Action)에 나서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직원들에게 늘 PDCA를 통해 업무를 수행하라고 당부하는데, 유감스럽게도 한국인들은 이것을 실천하는 데 서툴러요.

    이 자리를 빌어 한국 정부에게 PDCA 시스템을 활용해 문제를 개선해 나가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늘 시행착오를 반복합니다. ‘빨리빨리’가 나쁠 것은 없습니다. 신속하게 행동하는 것은 장점입니다. 문제는 그러다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거죠. 이렇게 되면 발전이 없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을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가져가려면 행정부문에서 반드시 PDCA를 도입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 세 분을 비롯해 수많은 외국 기업인들이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제 비즈니스의 세계에선 국경이 별 의미가 없는 듯합니다. 요즘 한국에선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로 부상(浮上)하기 위한 논의가 무성한데, 사실 한국은 외국 기업과 외국인 투자를 유치할 목적으로 이미 10년 전부터 이른바 ‘세계화’와 ‘국제화’를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이것이 얼마나 체화됐는지 의문입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기업인으로서, 또한 한국에서 살아가는 생활인으로서 한국의 세계화 혹은 국제화 수준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고메즈 세계화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계화는 경제발전의 전제조건입니다. 오늘날 한국은 불과 몇 년 전인 외환위기 당시와 비교해도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IMF, OECD, WTO 등 주요 경제기구 회원국으로서 세계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이 처한 여건을 고려하면 이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외국인들의 투자규모는 시가총액의 36%를 차지합니다. 또한 한국은 아시아의 물류, 금융, R&D 중심국가가 되고자 합니다. 그러려면 이웃 국가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그들의 생각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세계화는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죠. 더욱이 한국은 GDP의 대부분을 수출에서 창출하는 데다 석유, 철광석 등 주요 천연자원과 소재를 대부분 수입해서 충당하니까요.

    오벌린 10년 전 한국에서 세계화와 국제화의 개념 정립을 놓고 일대 논쟁이 벌어졌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한국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앞으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참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주요 영역에서는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세계화가 진척됐습니다. 자동차산업을 예로 들면 현대자동차는 미국 앨라배마주에 공장을 짓고 있고, 미국 GM은 대우자동차, 프랑스 르노는 삼성자동차와 손을 잡았습니다. 이밖에 외국인 투자나 자원수입 현황을 보더라도 한국은 세계화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화는 매우 역동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IT 분야의 발전양상이라든가 엄청난 규모의 돈이 국경을 넘나들며 이동을 거듭하는 것, 다양한 산업간의 상호의존 추세 등을 생각하면 지금의 자리에 안주해선 안 되죠. 기술력과 의사결정 과정, 지배구조 등을 개선함으로써 세계화의 선봉에 설 수 있도록 늘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계화의 흐름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에서 눈을 떼면 안 돼요.

    사회 오벌린 회장께선 한국에 17년째 살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비즈니스맨의 시각에서뿐 아니라 ‘반(半) 한국인’의 시각에서 한국사회 전반의 일상적 세계화의 현주소에 대해서도 들려줄 말씀이 있을 것 같은데요.

    오벌린 17년 전 제가 양식당에서 외식을 하려면 대략 네 군데 중에서 한 곳을 골라야 했습니다. 모두 별 다섯 개짜리 특급호텔 식당들인데,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어디를 가더라도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마치 뉴욕의 다운타운에서처럼요. 노무현 대통령이 방미 중 뉴욕의 맨해튼 거리를 둘러보면서 “꼭 서울같다”고 했다더군요. 똑같은 브랜드와 회사들이 서울, 뉴욕, 도쿄, 뮌헨 거리를 함께 수놓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죠. 극명한 변화상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과거에 한국은 외국인 투자를 달갑지 않게 여겼습니다. 외국 기업이나 기업인에 대해서도 우호적이지 않았죠. 제가 처음 한국에 온 1980년대 중반과 요즘의 차이는 한마디로 ‘엄청나다(tremendous)’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R&D와 생산 일체화해야

    다카스기 한국경제는 1997년 이전까지 급성장을 거듭했습니다. 그때껏 한국은 GNP를 높이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래서 현대, LG 같은 대기업들은 해외 비즈니스를 계속 확대했죠. 하지만 1997년에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당시 정부와 명망 있는 학자들은 성장지표를 ‘GNP(국민총생산)’에서 ‘GDP(국내총생산)’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젠 국내시장에도 대응해야 한다고 본 것이죠. 그때부터 정부는 외국인 직접 투자를 적극 유치하기로 한 겁니다. 지금은 GDP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해외 부문과는 달리 국내 부문은 아직 세계화와 거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아주 지역화돼(localized) 있습니다. 가령 미국이나 일본 기업인들을 만나보면 한국의 도로 표지판 때문에 애를 먹는다고 호소합니다. 한글뿐 아니라 영어나 한자로도 표기해주면 얼마나 편리하겠냐는 거예요. 식당들도 마찬가집니다. 별 다섯 개짜리 호텔 식당은 얼마나 다양한 메뉴를 갖춰놨는지 몰라도 대부분의 식당들엔 한글 메뉴밖에 없습니다. 시내에 가면 한글밖에 눈에 띄지 않아요. 국내 부문의 세계화가 미진하기는 일본도 마찬가지지만, 이 점은 일본과도 다릅니다. 세계 인구의 25%가 한자를 사용합니다. 한국도 한자 문화권에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려워요.

    이밖에 병원에서 의사, 간호사와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된다거나 외국인 자녀를 위한 학교가 부족한 것 등도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요인들입니다.

    주한 외국 경제인들이 본 한국경제

    좌담에 참석한 외국 경제인들은 한국의 노사갈등에 우려를 표하면서 ‘대화’를 강조했다.

    사회 한국을 호두까기(nutcracker) 속에 낀 호두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첨단 기술력을 갖춘 일본, 저임노동력 군단과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사이에서 옴쭉달싹 못하는 처지를 의미하죠. 한국이 이런 딜레마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봅니까.

    다카스기 말씀하신 것처럼 중국은 광대한 시장과 저비용으로, 일본은 선진 기술과 고품질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죠. 한국에서 회사를 경영하는 저 역시 같은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저는 R&D 파트의 한국인 직원들을 일본에 파견해 디지털 기술과 같은 첨단 기술을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이들은 교육수준이 높기 때문에 첨단 기술은 물론 일본어까지 배워옵니다. 덕분에 저희는 양질의 인력을 확보했고, 이는 대단히 큰 강점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이 딜레마를 극복하려면 이런 부분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한국은 R&D와 생산에 강점을 갖고 있으므로 한국 내에서 개발과 생산을 일체화해야 한다”고 건의한 바 있습니다.

    요즘은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중국으로 달려가더군요. 중국 근로자들의 임금수준이 낮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잖아요. 중국은 여전히 불안한 나라입니다. 사스(SARS) 파동이 그 한 사례죠. 누구도 그런 사태가 일어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그와 유사한 사태가 다시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중국엔 노사문제가 없다지만, 중국도 가까운 미래에 노사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될 겁니다. 이 때문에 저는 틈만 나면 일본 본사에다 “생산기지를 한국과 중국으로 이원화할 것을 진지하게 검토하라”고 호소합니다. 한국은 R&D와 생산능력이 뛰어납니다. 이것을 최대치로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최악의 시나리오

    오벌린 일본이 선진 기술과 높은 생산성으로 힘을 길렀다면, 한국은 일본을 모델로 삼아 일본에게서 배우고 일본을 따라함으로써 경쟁력을 키워왔습니다. 중국의 강점은 저임금이었고요. 스타일이 서로 달라요.

    중국이 앞으로도 저비용 생산으로 밀고 나온다면 한국은 목표를 생산성 향상에 둬야 할 것입니다. 한국을 ‘고래 사이에 낀 새우’라고 하던데, 이런 여건을 오히려 장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경제 스타일상 일본과 중국은 극과 극에 자리하고 있거든요. 잘만 하면 한국은 그 중간에서 실리를 취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야 할 방향이 보이질 않습니까. 준비하고 밟아나가십시오.

    고메즈 중국을 그저 저가품 생산국으로만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한 대기업 경영인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과 중국의 기술격차는 3∼4년 정도라고 합니다. 중국이 불과 3∼4년 안에 기술에서도 한국을 추월할 수 있다는 의미죠. 이는 한국이 강점을 지닌 주요산업 가운데 하나인 IT 분야를 두고 하는 얘깁니다.

    따라서 한국은 무엇보다 R&D를 강화해야 합니다. 주요 산업의 R&D 부문에 더 많은 돈과 인력을 투입해야 해요. 중국이 지금은 한국에 가장 큰 수출시장이 되고 있지만, 머지 않아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때 중국은 저비용 생산력에다 기술력까지 겸비한 경쟁자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중국보다 나은 제품, 가격 대 비용효과가 큰 제품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한국은 과거에는 경험하지 못한 구도로 빠져들게 됩니다. 첨단 기술력을 확보한 일본과 역시 첨단 기술력을 갖춘 중국 사이에 끼여버리게 되는 거죠. 고비용 구조에다 기술력에서까지 두 나라에 뒤처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려면 새 기술, 새 아이디어, 새 디자인, 경제적인 상품이 필요합니다. R&D 투자 확대는 아무리 강조해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회 몇 년째 활력을 잃어온 한국경제가 최근 마침내 바닥을 쳤다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장기 침체 사이클 안에서 한 고비를 넘어선 데 불과하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낙관적 전망과 비관적 전망이 양극에서 공존하고 있는데, 세 분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고메즈 한국경제는 수출산업을 기반으로 삼고 있는데, 이들 수출산업의 주요 시장은 크게 일본, 미국, 유럽 세 지역으로 나눠집니다. 이 가운데 일본과 유럽 경제가 본궤도에 이르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미국경제 상황도 아직은 불투명합니다.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워요. 이는 한국이 GDP의 절반을 의존하는 부문에 대해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는 뜻입니다.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현재 시장에 내놓고 있는 제품의 품질을 개선하는 것뿐입니다. 가령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놀랄 만큼 성장했지만, 아직도 품질 개선의 여지가 많습니다. 미국의 자동차시장 조사결과를 봤더니 일본 자동차의 품질이 유럽 차를 능가하더군요. 별로 기분 좋은 얘기는 아니지만(웃음),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일본 차는 미국 차보다, 그리고 유럽의 벤츠나 포르쉐보다도 품질 면에서 앞서거든요. 이런 점을 생각하면 한국은 참으로 할 일이 많습니다. 품질과 서비스 향상, 새 시장 개척과 새 상품 개발을 통해 일본·미국·유럽경제 상황에 덜 민감한 체질로 전환해가야 합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국내소비 부문입니다. 소비가 위축되는 것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들은 미래를 걱정합니다. 직장을 잃지는 않을까, 수입이 줄어들지는 않을까 우려합니다. 그러다 보니 주식시장과 예금계좌엔 돈이 쌓이지만, 이것이 소비로 연결되지 않아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겁니다.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소비자에게 믿음을 주고 소비를 진작시켜야죠. 은행 금리가 3%냐, 4%냐를 따지고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걸로는 만족스런 수익을 기대할 수 없어요. 소비를 통해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GDP의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이 부문입니다.

    오벌린 구조적으로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많고, 개인 부채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도 적지 않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금융권에 있는 친구들에게 종종 한국의 경제상황에 대해 물어보는데, “펀더멘털은 건전하다”는 게 한결같은 대답입니다.

    또 한 가지 긍정적인 요소는 한국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뛰어난 문제해결 능력을 발휘했다는 점입니다. 지금 한국이 난관에 봉착한 것은 분명합니다. 특히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이 큽니다. 이들이 기력을 회복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기업규제, 노사갈등과 같은 코앞의 과제들도 산적해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경제의 기초가 탄탄하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풀어나간다면 장기적으로는 한국경제를 낙관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카스기 저 역시 한국경제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은 IMF 관리체제로 들어간 1998년 이후에도 고성장을 지속했는데, 그 주요 동인은 왕성한 국내 소비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소비가 많이 위축됐다고 하지만, 계기가 주어지면 다시 살아나서 경제를 떠받칠 것으로 믿습니다. 앞으로 성장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무역모델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현재 논의가 진행중인 일·한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것 말입니다. 이것이 체결되면 기술 및 인력 교류의 활성화, 대규모 투자 유치, 시장 확대 등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통합된 시장 규모는 미국 시장의 3분의 2에 달할 전망입니다. 이처럼 광대한 시장이 형성되면 미국과 유럽으로부터의 투자도 크게 증가할 것입니다.

    북한문제를 왜 심각하게 보지 않나

    사회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는 주 요인 가운데 하나로 북한문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북한핵을 둘러싼 갈등이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이 문제가 한국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치리라고 봅니까.

    고메즈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 문제는 한국경제에 가장 큰 부담을 주는 요인입니다. 우리는 한국 정부와 우방국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런데 제 주변의 한국인들은 저와는 딴판으로 이 문제를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더군요. 이 문제 때문에 외국으로부터의 신규 투자가 유보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투자를 취소한 게 아니라 예측가능성이 확보되는 시점까지 투자를 연기했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해소돼야 합니다.

    오벌린 그렇습니다. 한국은 매일처럼 이뤄지는 대외 거래에서조차 북한문제 때문에 불이익을 받고 있습니다. ‘노스코리아 디스카운트(North Korea Discount)’라고나 할까요. 저는 이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리라고 믿습니다만, 관건은 그것이 얼마나 빨리 해결되느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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