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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면세점, 맛집앱이 창조경제? 생산현장 없이 성장 없다”

‘축적의 시간’ 대표집필 이정동 서울대 교수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면세점, 맛집앱이 창조경제? 생산현장 없이 성장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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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재무전략화’ 유감

“면세점, 맛집앱이 창조경제? 생산현장 없이 성장 없다”
이정동 교수는 ‘유량(flow)이 아닌 저량(stock) 중심 사회로, 일시적 총력 동원이 아니라 장기적 경험 축적 사회로’ 가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기업경영, 대학교육, 정부정책 등에 걸쳐 12가지 솔루션을 제안했다. 그중에는 논쟁거리가 될 만한 것들도 있는데, 이 교수는 “논쟁이 확 붙어서 좀 더 심화한 솔루션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 가업승계 지원제도는 일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고, 국가 연구개발을 톱다운(Top-down)으로 하는 것에 대해서도 일부 반발이 있습니다.

“중견기업이 경험 축적의 모판이 되고, 글로벌 히든 챔피언이 탄생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뜻입니다. 조세포탈 등 부작용은 찾아내서 처벌할 형사적 문제이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순 없지요. 영국의 대학교수가 쓴 책 ‘기업가 국가(The Entrepreneurial State)’는 정부가 기업처럼 치밀하게 움직여 기술 개발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저는 이에 동의합니다. 미국에서 애플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에요. 터치스크린, GPS 등 국가가 주도해 개발해놓은 핵심기술 위에서 태어난 거지요. 우리 정부도 매년 19조 원의 연구개발비를 집행하는데,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 최근 위기 대응에 나선 대기업들의 움직임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삼성전자가 최근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기로 한 것은 이 책의 내용과 완전히 반대로 가는 결정이라고 봅니다. 자사주를 소각해 주가를 올려 주주 보상을 해준다? 미래 기술에 투자해 성과를 내야 주가가 진정으로 오르는 것 아닌가요? 삼성이 화학 계열사들을 매각한 것도 아쉬운 대목입니다. 화학은 지식과 경험이 가장 축적된 분야로 더 키우고 발전시켜야 하는데…. 국내 대기업들이 2, 3세로 넘어가면서 너무 ‘재무전략화’ 방향으로 흐르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이 교수는 “대기업은 면세점 특허 경쟁에 들일 정성을 기술 개발에 쏟아야 하고, 정부의 청년창업 지원정책은 너무 ‘가벼운 창업’에 치우친 감이 있다”고도 쓴소리를 보탰다.

“정부의 면세점 선정기준표를 보면 가장 점수 비중이 높은 것이 ‘보세구역 관리역량’이에요. 면세품 창고를 얼마나 잘 관리하는지를 심사하는 것인데, 여기에 대기업이 너도나도 뛰어든다는 것은 난센스죠.

요즘 기술과 지식을 기반으로 한 무거운 창업을 기피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맛집 앱, 배달 앱…. 근본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런 것들이 왜 창조경제의 모범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서울대에도 앱 개발한다고 졸업을 미루는 학생이 많은데, 기업에 들어가 어렵고 복잡한 기술을 익히고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엔지니어가 독립해 창업할 때, 그때 국가가 이들에 대한 지원에 나서야 질 좋은 일자리가 생깁니다.”

▼ 경험을 오랜 시간 축적해나가는 바람직한 사례가 있습니까.

“그나마 우리 산업이 이만큼 지탱하는 것도 그런 기업들이 있기 때문이죠. 건설중장비에 들어가는 단일 부품만 생산하는 진성TEC라는 중견기업이 있습니다. 해당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을 가진 회사인데, 특이한 점이 있어요. 부품이 고장 나면 공짜로 바꿔주는데, 어떤 상황에서 부품이 망가졌는지 상세하게 보고하는 것이 조건이에요. 이렇게 모은 정보를 분석하고 기술을 개발해 현재 영하 40℃에서도 깨지지 않는 부품을 만듭니다. 이렇게 조금씩 천천히 쌓아간 노하우가 기업을 지킵니다.”

‘엔지니어링 스피릿’ 살려라

▼ 다시 중국으로 돌아갑니다. 책에서 다들 “중국과 경쟁할 시점은 지났다. 공생(共生)의 방법을 생각할 때”라고 말하는 듯한데요.

“맞습니다. 중국이 여객기까지 만들어내는 요즘입니다. 이제는 중국과 완제품을 가지고 경쟁할 수가 없어요. 한국은 일본 모델을 따라가야 해요. 일본 산업계가 현재도 건재하는 이유는 부품과 소재 산업이 탄탄하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도 이쪽 분야에서 탄탄한 실력을 가진 히든 챔피언이 많이 나와야 해요. 대기업은 수직계열화를 중단하고, 일반 국민은 대기업이 모두를 먹여살릴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국내 대기업이 키운 부품업체 중 매출이 조 단위 이상 되는 곳이 없어요. 현대차는 일본 덴소나 독일 보쉬 같은 부품업체를 키우지 않았어요.”

지난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동료 의원들에게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훌륭한 책’이라고 호평하며 이 책을 일독할 것을 권했다. 혹시 정치권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오진 않았을까. 이 교수는 “연락받은 게 없다”고 했다.

▼ 정치인들에게는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가요.

“수출지수, 미국의 금리인상…. 다 중요한 얘기지요. 하지만 글로벌 역량이 있는 기업이 없으면 말짱 헛걱정입니다. 공중에 떠다니는 담론 말고, 산업 현장으로 가보길 권하고 싶어요. 몇 시간이고 진지하게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는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 공대에 진학하고자 하는 청소년에게 당부할 게 있다면.

“공돌이 정신, 그러니까 ‘엔지니어링 스피릿’을 살려야 해요. 즉, 어떻게든 뚝딱뚝딱 문제를 해결해보는 ‘핸즈 온 익스피리언스(Hands on Experience)’를 많이 하도록 어른들이 장려하고 격려해줬으면 합니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날릴 때 미리 계산했겠습니까. 일단 날려보고 성공한 다음에 수학으로 정리한 거지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흥미와 자신감이 생긴다면 비단 공대를 가지 않더라도, 어떤 문제 앞에서도 ‘쫄지 않는’ 인재가 될 것입니다.”

신동아 201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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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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