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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 분석

‘굴신의 달인’, 13억을 움켜쥐다

21세기 중국의 새 황제 후진타오

  • 글: 홍순도 문화일보 베이징특파원 mhhong@munwha.co.kr

‘굴신의 달인’, 13억을 움켜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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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후는 상무위원에 진입한 후 차기 최고 권력을 이어받을 공식 후계자로 사실상 자리매김한다. 그가 1993년 공산당 사상 이론 연구의 총본산이자 간부 양성의 요람인 중앙당교 교장을 비롯하여 1998년 국가부주석, 1999년 군사위 부주석에 잇따라 임명되거나 선출되는 행보를 계속한 것은 후계 수업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2002년 11월 15일 그는 10년 동안의 은인자중 끝에 그토록 고대하던 총서기의 자리에 올랐다. 더불어 중국 정계에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으로 대표되는 1,2,3세대를 잇는 제4세대 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것이다.

10년 동안이나 국내외의 각별한 주목을 끌었으면서도 후총서기의 성향이나 정치 스타일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그가 비운의 황태자 선배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은인자중한 데에도 원인이 있으나 워낙 신중한 그의 성격과도 무관하지 않다. 작년 10월과 금년 5월 각각 유럽 및 미국을 다녀온 뒤 ‘런민르바오(人民日報)’ 등의 관영 언론에 자신에 대한 보도를 축소하라고 지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자신이 부각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고 혹 있을지도 모를 불필요한 견제를 피하려는 신중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공적인 일로 고향인 상하이 부근을 방문할 때에도 생가에는 들르지 않는 결벽에 가까운 자기관리는 그가 아니면 감히 실천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또한 그는 다른 지도자들과는 달리 아내와 2명의 자녀들의 행동에 대해서도 상당한 제약을 가하고 있다. 최고의 태자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자녀들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소문이 없는 이유는 그의 철저한 집안 단속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일견 딱딱함과 직결될 것 같은 그의 신중함은 외모에서 나타나는 신사의 풍모를 만나면서 많이 완화된다. 실제 그는 쑹핑 등의 당 원로에게 언제나 깍듯하게 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 부녀자와 아동들의 집회에도 가능하면 자주 참석하는 탓에 대체로 부드러운 이미지의 지도자로 기억된다. 정치인이면서도 주변에 적이 없는 무난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듣는 데에는 다 이런 인화를 중시하는 성격이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그에게도 약점은 있다. 우선 지나치게 말을 아끼는 외유내강형의 성격에서 유래하는 속 모를 지도자라는 인상은 분명 득보다 실이 많다. 상대방이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말을 많이 해 자신의 속내를 120% 그대로 드러내는 장쩌민 주석이 대하기에 오히려 더 편하다는 평가를 내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선이 굵지 못한 이미지의 백면서생 같은 용모도 지도자로서는 크게 내세울 장점이 아니다. 단적으로 말해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 같은 지도자들이 보여준 강렬한 카리스마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강력한 조직 장악력이 필요한 중국 공산당에서 그가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할지 벌써부터 의문시된다.

부드러운 이미지, 강력한 실천력

그렇다고 그에게 강인한 일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오히려 상상을 뛰어넘는 당찬 모습을 보여주면서 유약해 보인다는 주위의 의구심을 말끔히 씻어낸 적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1989년 티베트 서기로 재직 중 발생한 독립시위를 무력진압한 단호함이다. 그는 당시 임명된 지 1년 남짓해 현지 사정에 밝지 못했으나 철모를 쓴 채 직접 진압 병력을 진두지휘, 소요를 초기에 진압하는 과단성을 보였다.

이와 같은 결연함은 줄곧 그를 적극 지원해온 쑹핑마저도 놀라게 만들었다고 한다. 또 덩도 이 사건을 계기로 그에게 결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총서기 재목으로 키울 것을 최종적으로 결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덩이 3년 후인 1992년 1월 역사적인 남순(南巡 : 개혁·개방의 모범 지대인 남부 지방 순시)에 나서면서 젊은 지도자의 발탁을 강조한 것은 이로 볼 때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

공청단 서기시절 평등의식 고취를 위해 간부들에게 부여된 청소 의무를 과감하게 거부한 사례 역시 그의 숨어 있는 강단을 보여준다. 당시 그와 라이벌 관계에 있던 동갑내기 전임자 왕자오궈(王兆國)가 군말 없이 청소를 한 것에 비해 그는 “서기가 청소를 하는 것은 평등 의식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서기가 할 일은 엄연히 청소부와 구분돼 있다”면서 자신의 의지를 끝까지 관철시켰다고 한다. 이후 공청단에서 이와 같은 형식적 행사가 바로 자취를 감췄다.

이런 바탕 위에 그에 대한 평가는 신중한 찬사 일색이다. “그는 최고 지도자의 풍모는 상당히 갖추고 있으나 그 동안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앞으로 과감하게 자기 색깔을 선보이면서 장점을 살려나간다면 약점으로 지적되는 유약한 인상, 조직 장악력 부족 등은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 어쩌면 숨겨진 특유의 강인함과 리더십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식의 평가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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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홍순도 문화일보 베이징특파원 mhhong@munwh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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