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호

미국의 ‘라디오전쟁사령부’ RFA 정체

효과만점 대북 압박카드 김정일 몰락 노린다

  • 글: 곽대중 북한민주화네트워크 KEYS 편집장 bitdori21@kebi.com

    입력2003-09-25 16: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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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라디오전쟁사령부’ RFA 정체
    RFA 는 자유아시아방송(Radio Free Asia)의 영문 약자다. 요즘 이 방송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미국의 연방정부기관인 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는 지난 6월12일 북한내 인권 개선을 위해 미국정부가 압력을 가할 것을 촉구하는 ‘대북정책권고안’을 부시 대통령과 콜린 파월 국무장관, 미 의회에 제출했다. 주요 제안사항 가운데 하나는 RFA를 확대 개편하는 방안. 이어 RFA를 종일 방송으로 확대하자는 주장이 미 정가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하더니, 때를 맞춰 7월16일 하원은 공화당의 에드 로이스(Royce) 의원 등이 제출한 ‘2004-05 대외관계 수권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에는 RFA의 한국말 방송을 현행 4시간에서 24시간으로 연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도대체 RFA는 어떤 방송일까.

    흔히 RFA가 곧 ‘대북(對北)방송’이라고 알고 있지만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RFA는 현재 중국 북경어, 광동어, 우(Wu)방언, 위구르어, 티베트어, 버마어, 크메르어, 한국어, 라오스어, 베트남어 등 10개 언어로 방송되고 있다. 이들 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국가를 살펴보면 중국, 미얀마, 캄보디아, 한국, 북한, 라오스, 베트남 등이다.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우선 아시아에 위치하고 있고, 대한민국을 제외하면 언론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나라라는 점이다.

    RFA는 언론의 자유가 없는 아시아 국가 주민들을 위해 그 나라 언어로 국내 뉴스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임무로 하고 있다. 즉, 해당 국가에 언론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어 자유롭게 국내 뉴스를 보도할 수 있게 되는 날까지 RFA가 ‘대안방송’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RFA의 한국어 방송의 내용은 남한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명백히 북한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므로, ‘RFA 한국말 방송’을 대북방송이라고 한다면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단파라디오, 한국에만 없다

    RFA 방송을 한국에서 듣기는 쉽지 않다. 현재 RFA 한국말 방송은 한반도 시간으로 아침 7시∼8시, 밤 11시∼다음날 새벽 2시까지 방송되고 있다. 그러나 이 시간에 가정용 라디오의 채널을 아무리 돌려도 RFA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다. 단파(短波)로 방송되기 때문이다.



    라디오의 전파는 크게 중파, 단파, 초단파로 나뉜다. 우리가 흔히 AM이라고 부르는 방송은 중파, FM은 초단파를 이용하고 있다. AM, FM 방송은 음질이 선명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원거리 송출이 어려운 단점이 있다. 반면 단파는 혼신과 잡음이 많긴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전지구를 포괄할 수 있을 만큼 원거리 송출이 가능하다. 따라서 국제방송용 전파로 각광받고 있으며 영토가 넓은 중국, 러시아, 캐나다 등에서는 국내 방송용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단파방송을 듣기 위해서는 AM, FM 외에 SW(Short Wave)라는 주파수 영역을 갖춘 라디오가 있어야 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이러한 단파라디오를 생산하지 않는다. 군사정부 시절 북한방송 청취를 막는다는 이유로, 법적인 규제는 아니지만 행정적인 규제를 통해 단파라디오 생산을 제재했기 때문이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각종 규제를 풀면서 단파라디오에 대한 제한도 풀렸지만 이미 국민들 사이에 ‘단파’에 대한 기억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뒤라 생산수지가 맞지 않아 국내업체에서는 단파라디오를 생산하지 않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단파라디오는 일본, 독일, 중국 등 외국산이다. 이러한 우리 실정과 달리 세계적으로는 생산되는 라디오의 60% 이상이 단파 청취가 가능하다.

    단파방송은 전파간섭과 전리층의 영향으로 주파수를 자주 변경해야 한다. RFA 역시 연 1회 정도 주파수를 변경하고 있다. 현재 648, 7210, 7380, 15625, 11790, 13625KHz 등의 주파수대를 갖고 있지만 이보다는 라디오 채널 스위치를 돌리면서 한국말 방송이 나오는 위치에서 멈춰 방송의 이름을 확인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런 점에서 RFA는 미국의 대표적인 대외방송인 ‘미국의 소리(VOA·Voice Of America)’와 구별된다. 미국의 소리가 미국 정부의 입장과 미국적인 가치관을 전세계에 전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RFA는 미국의 입장과는 크게 상관없이 해당국가의 뉴스를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RFA 한국말 방송만 보더라도 처음 10분 정도는 그날의 북한 관련 뉴스를 브리핑하듯 간단히 보도하고, 나머지 시간은 뉴스 해설과 심층분석, 논평 등을 내보내고 있다. 때문에 RFA의 대상이 되는 국가의 정부로서는 미국을 대변하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VOA보다는 RFA가 훨씬 ‘위협적인’ 방송이 아닐 수 없다.

    RFA가 첫 전파를 쏘아 올린 것은 1996년 9월29일. 시작은 중국어 방송이었다. 단 30분의 방송이었지만 중국정부는 격렬히 반발했다. ‘중국에 언론의 자유가 없으니 그 공백을 우리가 메우겠다’는 국제사회를 향한 ‘창피주기’인 데다 방송의 주요 제작진이 중국에서 반체제운동을 하다 미국으로 망명한 인사들이었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즉각 “미 중앙정보국이 만든 냉전시대의 잡음”이라며 “명백한 내정간섭”이라고 비난했고 이듬해부터는 방해전파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북한도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1997년 3월 RFA가 한국말 방송을 송출하기 시작하자 북한 관영 ‘중앙통신’은 “미국이 도발적으로 자유아시아방송의 조선말 방송을 불어대기 시작했다”면서 “이는 우리(북한)에 대한 적대시정책과 압살정책을 버리지 않고 더욱 노골화하는 길로 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을 통해 RFA를 “미국의 사상·문화적 침투책동”이라고 규정하며 주민들에게 각종 부르주아 사상의 유입을 철저히 경계할 것을 촉구하는 등 북한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RFA에 맹공을 퍼붓고 있다.

    유럽에서 입증된 라디오의 위력

    중국, 북한 등 RFA 대상 국가의 정부가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RFE(Radio Free Europe)의 악몽 때문. 현재 체코 프라하에 본부를 두고 있는 RFE 역시 미국정부의 지원을 받는 라디오 방송이다. RFE는 1951년 서독 뮌헨에서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권 국가를 겨냥해 방송을 개시했다. ‘자유의 횃불’로 불리던 이 방송은, 자매방송인 RL(Radio Liberty)과 함께 냉전시기 유럽 각 나라의 언어로 뉴스와 정보를 제공하였으며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 국가의 도미노식 붕괴를 유발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동유럽 국가의 주민들은 국영방송보다 RFE를 더욱 신뢰하고 즐겨 들었고, 자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화운동의 소식을 RFE를 통해 속보로 듣고 신속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1991년 보수강경파의 쿠데타로 잠시 실각한 고르바초프도 RFE를 들으면서 국내외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민주화운동이 성공하여 정권을 잡게 된 체코의 하벨 대통령은 2001년 RFE 개국 50주년을 맞아 이 방송을 “진실의 메시지”라고 칭송하기도 했고, 구 연방의회 건물을 무료로 내주어 RFE 본부를 독일 뮌헨에서 체코 프라하로 옮겨오게 하면서 “프라하가 RFE의 기지로 선택된 것은 체코의 명예”라고 추켜 올릴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내비쳤다.

    소련이 붕괴되고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 역시 차례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미국정부가 RFE에 쏟는 열정은 자연히 수그러들었다. 그래서 클린턴 행정부 들어 RFE를 중단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결과는 오히려 RFA라는 새로운 방송을 추가하는 것이었다. 동유럽에 민주주의가 확장되긴 했지만 여전히 민족분규와 인권유린이 계속되고 있고, 냉전시대에 생겨난 애청자들의 의지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RFE는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전투상황을 자세히 전달하여 다시 한번 그 기능을 입증했고, 러시아군이 체첸에서 자행한 인권유린을 중점 보도하여 러시아정부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RFE는 여전히 26개 언어로 방송하며 약 3500만명의 청취자를 확보하고 있다.

    RFE의 아시아판(版)이라 할 수 있는 RFA는 1994년 미국 의회에 의해 설립되었다가 1996년 민간회사로 독립했다. 상업적인 방송이 아니기 때문에 예산은 미 의회의 지원금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으나 방송 내용에서는 철저히 독립적이라고 RFA 관계자는 강조한다. 미국정부의 방송으로 보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RFA 서울사무소에서 특파원으로 일하는 이수경씨는 “취재를 다니다 보면 RFA를 미국의 ‘대한뉴스’쯤으로 여기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아쉽다”고 말한다. 알다시피 대한뉴스는 과거 정부에서 국정홍보용으로 제작하여 극장에서 영화 상영 전에 보여주던 보도물이다. 이씨는 “RFA의 편성원칙을 알려면 나의 하루를 보면 된다”면서 자신의 하루생활을 소개했다.

    아침에 출근해 이씨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온·오프라인을 통한 신문 읽기. 북한 관련 뉴스는 빠뜨리지 않고 보고 북한 관련 인터넷 사이트도 모두 체크한다. 그 중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꼭 알려야 할 뉴스를 선정하고 그날의 취재대상을 정한다. 그 내용을 워싱턴 본사에 있는 한국말 방송 담당자에게 보고하여 내용과 관련한 지시를 받은 후 취재현장에 뛰어든다. 대본을 작성하고 목소리를 녹음하여 이를 본사에 보내는 일까지 모두 기자의 몫이다. 지금껏 기사 내용과 관련하여 수정을 요구받거나 방송에서 제외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미국의 ‘라디오전쟁사령부’ RFA 정체
    “우리가 신경을 쓰는 대상은 북한 주민이지 미국 행정부나 의회가 아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얼마나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것인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예를 들어 ‘요즘 북중 국경지대에 탈북자 단속이 완화되었다’는 보도를 했는데 이것이 사실과 다르다면 RFA의 보도를 믿고 이동했던 탈북자들의 안전이 위태로워진다. 바로 이런 걸 걱정하고, 정확한 보도를 우리의 사명으로 여긴다.”

    RFA에는 10개 언어의 방송에 약 240여 명의 기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중 한국말 방송을 담당하는 기자는 14명. 워싱턴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서울, 홍콩, 프놈펜에 특파원을 파견하고 있다. 서울사무소에는 현재 이수경 기자와 행정업무를 관리하는 이현주씨가 근무중이다. 특파원은 순번을 정해 3개월마다 돌아간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기사는 워싱턴으로 취합되어 1시간 분량의 방송물로 제작되고, 이는 지구상에 있는 위성으로 보내진다. 위성은 다시 세계 각지에 있는 송신소로 방송내용을 보내 아시아 각지를 향해 송출한다. 송신소의 위치는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몽골, 러시아, 필리핀 등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송시간 연장은 외교적 압박 수단

    현재 RFA 한국말 방송은 하루 4시간 방송된다. 아침 1시간, 저녁 3시간이다. 방송 내용은 아침과 저녁이 다르다. 저녁에는 1시간 분량의 방송내용을 세 번 반복한다. 따라서 실제로 현재 한국말 방송은 하루 2시간 방송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방송시간은 언어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현재 북경어 방송은 하루 12시간, 티베트어는 8시간, 나머지 언어는 2시간씩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말 방송을 24시간으로 늘이겠다’는 미 의회의 결정은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RFA가 전파 발사 대상으로 하고 있는 국가와 갈등이 고조되는 경우 해당 언어의 방송시간을 늘이는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외교적인 압박수단으로 활용해왔다. 이러한 방식은 지금까지는 주로 중국과의 관계에서 드러났다. 티베트·대만과의 영토분쟁, 파룬궁, 무기수출 등으로 중국정부와 마찰을 빚던 1997년 미 의회는 RFA 중국어 방송을 종일방송으로 확대하고 예산을 증액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중국정부의 반발을 샀다. RFA 중국어 방송은 이런 식으로 30분에서 1시간, 2시간, 5시간, 그리고 현재는 12시간으로 점차 늘어나게 됐다.

    RFA 한국말 방송을 24시간으로 확대하는 이번 법안 역시 북한 핵문제를 둘러싸고 북미간 대립이 첨예화되는 시점에서 미국이 던진 대북압박 카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RFA 한국말 방송을 24시간으로 확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고 해서 곧장 ‘24시간 대북방송’체제로 전환하는 것은 아니다. RFA측은 이에 대해 아직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지만 미국 ‘북한인권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24시간 방송이란 매시간 다른 방송을 하루 종일 하는 것이 아니라 현행 1시간 분량의 반복 방송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반복하는(repeatedly) 방송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실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이 정도의 조치만으로도 북한 정권에게는 대단한 압박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대체 북한 주민들에게 RFA가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길래 그러는 것일까.

    RFA 관계자들은 “RFA가 송출하는 10개 언어 가운데 청취자의 반응을 가장 파악하기 어려운 방송이 한국말 방송, 바로 북한”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피드백 시스템에서 질적인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어 방송의 경우 중국정부에서 RFA에 대한 경계를 계속하고 있지만 이메일과 편지를 통해 청취자들의 소감이 들어오고, 심지어는 전화로 현지 인터뷰까지 하고 있다. 티베트, 베트남, 미얀마 역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RFA가 티베트어 방송을 시작한 이후 티베트의 최대도시 라싸에서 단파라디오 판매량이 늘었다는 보도까지 있었다. 미얀마어 방송에서는 아웅산 수지 여사의 인터뷰와 연설을 전화로 중계하기도 한다.

    그러나 북한은 주민들이 인터넷에 접근할 수 없고, 미국으로 편지를 보낼 수도 없으며, 전화 통화 역시 불가능해 RFA의 다른 언어방송이 실시하고 있는 이러한 프로그램 운영이 꿈만 같은 일이다. 더군다나 주민들이 라디오를 구입하더라도 안전부(경찰서)에 찾아가 신고하고 관영방송으로 주파수 채널을 납땜한 다음에야 사용할 수 있어 애초에 외부방송 청취 자체가 불가능하다. RFA 관계자의 말이다.

    “가끔 워싱턴으로 북한 주민의 편지가 날아온다. 물론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이 보낸 편지다. 워싱턴 본사의 주소를 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괴발개발 서투른 영어 스펠링으로 쓰여진, 어떤 때는 전혀 주소가 잘못 쓰인 편지가 사서함 번호 하나만으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우리가 청취자들과 연결될 수 있는 통로는 현재로서는 이것뿐이다.”

    물론 한국에 있는 독자들은 RFA의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rfa.org)를 통해 워싱턴 본사의 주소를 곧장 알 수 있으며 기사의 내용을 텍스트로 볼 수도 있고, 지나간 방송을 다시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은 자국의 체제안전과 관련된 인터넷 홈페이지의 접속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고 RFA도 이러한 금지된 사이트 중 하나다. 중국에서는 RFA 홈페이지에 접속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탈북자들은 RFA 방송 말미에 나오는 “청취소감을 보내 주실 분은 2025 M Street NW…”로 시작하는 워싱턴 본사의 주소를 듣고 받아 적을 수밖에 없다. 영어교육을 받지 못한 북한 주민들의 입장에서 매일같이 듣는다 하더라도 받아 적기 힘들 텐데, “잘 듣고 있다” “고맙다” “도와달라”는 내용의 편지가 종종 날아든다. 편지를 읽을 때마다 한국말 방송 제작자와 기자들은 눈시울이 뜨거워진다고 한다.

    몇 명이 듣는지는 알 수 없지만

    RFA 이외의 대북방송으로 흔히 KBS 라디오인 ‘사회교육방송’과 기독교 전파를 목적으로 하는 ‘극동방송(FEBC)’ ‘희망의소리방송(AWR)’ ‘북방선교방송(TWR)’ 등을 꼽는다. 대북방송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한국말로 방송되는 ‘NHK 한국어 방송’과 ‘중국국제방송’ ‘러시아의소리’ 등도 있다.

    탈북자들에 의하면 북한당국이 여전히 라디오를 철저히 통제하고 있지만 봉인된 채널을 뜯거나 아예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외부방송을 듣는 주민이 많다고 한다. 특히 1990년대 중반의 식량난 이후 사회질서가 붕괴되면서 중국을 통해 외국산 라디오가 대거 유입되어 외부방송을 청취하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을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RFA는 미국의 방송평가회사인 ‘인터미디어(Intermedia)’를 통해 남한 귀순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청취경험 및 소감을 정기적으로 조사하여 프로그램 편성에 반영한다. 2002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북한의 대졸 이상 엘리트 가운데 절반 정도가 RFA를 청취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사회교육방송의 조사결과는 보다 더 구체적이다. 사회교육방송이 개국 55주년을 맞아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취행태조사에서, 설문에 참가한 탈북자 103명 가운데 69명(67%)이 “북한에 있을 때 (사회교육방송을) 청취한 적이 있다”고 답변하였다. 이 중 42%는 “일주일에 한두 번 들었다”고 답변함으로써 사회교육방송이 북한 주민들 사이에 폭넓게 청취되고 있다는 증거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실제 탈북자들의 견해는 이와 다르다. 사회교육방송 설문에도 참여한 바 있는 ‘탈북자동지회’ 김성민 사무국장은 “조사샘플을 어떠한 기준에서 선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북한주민의 67%가 남한 방송을 들었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민군 대위로서 선전대 작가로 일했던 그는 “일반 주민들 가운데 라디오를 갖고 있는 사람도 그 정도 수치에는 미치지 않는다”면서 자신이 추정해보자면 “5% 정도만 듣고 있어도 대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평양 출신의 탈북자 유지성씨는 북한에서 10여 년간 외부방송을 들어온 사람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진행과정을 라디오를 통해 알 수 있었다는 그는 “방송이 너무도 재미있어 처음에는 식음을 전폐하고 들었다”고 회상한다.

    “외화상점에서 일제 산요(Sanyo) 라디오를 외화와 바꾼 돈표(북한에서 외화 대신 통용되던 특수화폐) 200원을 주고 샀다. 당시 노동자 월급으로 10년치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전축 한 대와 같이 사서 그것은 신고하고 라디오는 신고하지 않은 채 몰래 들었다. 재미있기로는 사회교육방송이었고, 보도의 객관성은 NHK 한국말 방송을 가장 신뢰했다.”

    유씨 역시 “최근 북한 내부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북한 주민들 중 외부방송을 청취하는 비율은 10% 미만일 것”이라고 말했다. RFA 한국말 방송이 시작되기 이전에 북한을 탈출한 그는 지난해 귀순한 가족을 통해 “요즘은 RFA가 NHK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고 한다.

    북한에서 줄곧 RFA를 들었던 탈북자 최기승(가명)씨는 “단파방송은 고층건물이 밀집한 지역에서는 전파방해가 심해 잘 들리지 않는데 북한의 농촌 가옥은 거의 다 단층집이라 한국에서보다 훨씬 또렷하게 들린다”면서 “수년간 들었지만 내가 외부방송을 듣는다는 것은 아내와 어머니밖에 모를 정도로 북한에서 라디오 청취는 ‘목숨을 걸어야 할 문제’였다”고 말했다. 열성 노동당원인 아버지 때문에 옆방에 들릴까봐 한여름에도 두꺼운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들었다는 것이다.

    RFA 관계자들은 “북한 내 청취자가 얼마 되지 않는 데도 RFA가 존재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RFA가 없어지는 때는 북한 주민들이 더 이상 RFA를 들어야 할 필요가 없을 때”라는 설명이다.

    북한인권단체 ‘피랍탈북인권연대’의 도희윤 사무처장은 “사회교육방송의 조사결과는 전체 북한 주민들 중 외부방송을 들은 사람의 비율이 아니라 탈북자 중에서 외부방송을 들은 사람의 비율이다. 탈북자 중 외부방송을 청취한 사람이 많다는 것은 북한을 대상으로 한 방송이 주민의 의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해석했다. 따라서 그는 “더 많은 탈북을 유도해 북한 정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RFA와 같은 방송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권교체 결정타” vs “자극할 필요없다”

    최근 일부 북한인권단체와 보수단체들이 부쩍 ‘북한에 라디오 보내기 운동’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라디오의 효과(?)가 실증적으로 입증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22일 강원도 철원군의 구 조선노동당사 건물 앞에서는 독일인 의사 노르베르트 폴러첸씨와 자유시민연대 등 보수단체 회원 30여 명이 700여 개의 라디오를 매단 대형 풍선 20여 개를 북한으로 띄워 보내는 행사를 강행하려다 경찰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최근 귀순한 평안남도 회창군 출신의 탈북자 박영선(가명)씨의 평가를 먼저 들어보자.

    “우리 고장은 휴전선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높은 산맥의 남측에 있어서, 자고 일어나면 산허리에 남한에서 날려보낸 각종 물자들이 새하얗게 덮여 있었다. 삐라와 라디오, 먹을 것, 속옷, 각종 생활용품… 매달릴 수 있는 건 다 매달려 온다. 삐라는 코팅이 되어 있어 찢어지지 않고 불태워지지도 않는다. 당(黨)에서 ‘그런 것 만지면 손이 썩는다’고 교육해도 모두가 슬쩍슬쩍 챙겨 넣는다. 식량난이 심각해지니 ‘죽어도 배불리 먹고나 죽자’며 풍선이 날아오기만 기다리곤 했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 들어 이러한 풍선은 날아오지 않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과거에는 풍선을 타고 날아온 라디오를 대개 신고했지만 이제는 장마당에 내다팔기 위해서라도 서로 챙기려 할 것”이라며 “이럴 때 자꾸 라디오를 북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라디오 보내기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신동철 목사 역시 “한국정부에서 하지 않으니 우리가 나서는 것이며, 라디오는 북한 정권을 교체하는 ‘결정타’가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남북대화에 있어 우리측의 입장을 더 협소하게 만드는 행동”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북한은 지난 8월1일부터 대남비방방송인 ‘구국의소리’ 방송을 중단했다. 이는 향후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는 대북방송 등 ‘비군사적인 압박’에 미리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우리가 먼저 하지 않을 테니 너희도 하지 말라는 말이다. 북한이 그 카운터 매체로 겨냥하는 것은 사회교육방송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우리는 사회교육방송은 대북방송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라디오를 통해 북한을 붕괴시키겠다’는 식으로 자극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실상 유일한 대북방송

    실제로 사회교육방송은 ‘대북방송’이라고 불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1948년 ‘북한동포에게 보내는 방송’으로 시작한 사회교육방송은 이후 ‘자유대한의소리방송’으로 개칭하면서 1990년대 초반까지는 대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방송 프로그램 중에도 ‘노동당 간부에게’ ‘김삿갓 방랑기’ 등 북한체제를 비판하고 남한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중(韓中)수교가 이루어지고 러시아 동포들과의 교류도 확대된 1980년대 중반부터 차차 해외동포들을 위한 방송으로 변화했으며, 정부가 화해·협력의 통일정책을 펼치기 시작하면서 북한을 비판하는 내용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고 볼 수 있다.

    방송운영목표 역시 ‘남북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중심 방송, 한민족 동질성 회복과 한민족 네트워크 구성을 위한 방송’으로 변경하였다. 일부 탈북자들이 “사회교육방송을 들으면서 북한체제의 모순점을 깨닫고 남한사회에 대한 동경의 마음을 키워왔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며 사회교육방송의 배신(?)에 대해 불만을 터뜨릴 정도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이광백 연구위원의 말이다.

    “만약 북측에서 사회교육방송을 대북 비방방송이라고 하면서 중단을 요구한다면 이는 한국말로 하는 모든 방송을 중단하라는 말이나 같다. 현재 사회교육방송은 일반 FM 라디오 프로그램과 다를 바가 없다. 과거에 남한체제의 긍정성만을 홍보하던 것과는 달리 여야(與野), 시민단체의 목소리까지 그대로 전하고 있다. 한국에서 발사하는 전파가 북한영토만을 비껴가게 하는 방법을 개발한다면 몰라도, 세상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는 방송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북한정부에는 위협적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더 늦기 전에 북한 정권이 스스로 주민들의 입과 귀를 열어주는 것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

    대북방송의 대북(對北)이 단순히 북쪽 방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北韓)’을 의미한다고 할 때 이제 전파를 고스란히 ‘북한만을’ 대상으로 하여 발사하는 방송은 RFA밖에 없다. 따라서 유일한 대북방송인 RFA는 북한의 리더십 교체를 꾀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전폭적인 지원이 아깝지 않은 귀중한 존재일 것이고,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는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일부 언론에서 북한 당국이 최근 주민들로부터 라디오를 대대적으로 압수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지만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북한 관련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도 주민 여론을 어느 정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중세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는 라디오 압수령은 함부로 내릴 수 없을 것”이라면서, “RFA가 종일 방송체제로 돌입한다 하더라도 승인받지 않은 라디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거나 방해전파의 출력을 강화하는 이상의 조치를 취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은 지금 북한과 ‘전쟁’중

    교전(交戰) 혹은 대립하고 있는 국가들 사이의 방송을 통한 전파전쟁은 2차대전때 시작됐다. 당시 참전국들은 심리전 차원에서 각지에 선전방송국을 세우고 다양한 언어로 자국에 유리한 방송을 내보냈다. 1941년까지 일본은 42곳, 독일은 68곳에 이러한 선전방송 전송시설을 갖추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미국이 참전하게 되면서 가장 시급했던 일 중 하나가 선전방송에 대항하기 위한 조치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참전 79일 만에 독일어로 15분짜리 첫 방송을 내보낸 것이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다. “뉴스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진실을 전해드릴 것입니다”라는 명언으로 시작된 VOA는 대(對)나치 방송이었다.

    전쟁 막바지에 VOA가 연합군의 승전 소식을 빠르게 전달하자 히틀러는 “신시내티의 거짓말쟁이들”이라는 비난연설을 하기도 했다. 당시 VOA의 중계국이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있었다. ‘독재자에게 가장 무서운 무기는 누군가가 주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이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사례이다.

    한국의 역대 군사정권이 단파 라디오 청취를 금지시킨 것도 실은 북한 방송의 청취를 막겠다는 이유뿐 아니라 군사정권에 대한 서방의 곱지 않은 시선을 국민들이 알게 될까 두려워해서였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의 모든 라디오들은 매일 아침 6시30분부터 10분 동안 VOA를 AM으로 중계했다. 그러던 것이 박정희 정권이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하나 둘 중단되기 시작해 VOA가 1973년 8월 김대중 납치사건을 보도하면서 끝까지 남아 있던 CBS(기독교방송)마저 중계를 중단하게 되었다. 한국 단파방송 청취자들의 동호회인 ‘한국단파클럽’의 한 회원은 “국내 방송을 듣고 나서 단파로 VOA나 NHK를 들으면 보도의 진실여부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고 과거를 회상한다.

    외부 라디오 방송을 몰래 청취하고 있는 사람이 북한에 얼마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VOA로 나치를 무너뜨리고 RFE로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전환을 이끌었던 미국이 RFA를 통해서는 무엇을 얻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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