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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봉의 종횡무진 中國탐험 ①

한국 최고중국통 김준엽과 함께 떠나는 韓中交流史 여행

중국의 江南을 봐야 대륙의 얼굴이 보인다

  • 대담: 황의봉 동아일보 출판국부국장·전 베이징특파원

한국 최고중국통 김준엽과 함께 떠나는 韓中交流史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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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중국통 김준엽과 함께 떠나는 韓中交流史 여행

김준엽 이사장은 최근 중국내 한국관련유적 복원사업 및 중국 명문대학의 한국학연구 진흥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김준엽 이사장이 독립운동 유적지 복원사업에 발벗고 나선 것은 자신의 젊음을 바친 현장에 대한 애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가족사와도 인연이 깊다. 김 이사장의 장인은 임시정부 주중대표단장과 김구 주석 비서실장 등을 역임하면서 임정 살림을 도맡았던 민필호(閔弼鎬) 선생이고, 또 민필호 선생의 장인은 임시정부 법무총장 외무총장 국무총리 등을 지낸 신규식(申圭植)선생이다. 3대에 걸친 장인-사위 독립투사 집안인 셈이니 김 이사장이 ‘평생사업’으로 여기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상하이에는 또 윤봉길 의사의 의거 현장인 훙커우공원(루쉰공원으로 이름이 바뀜)이 있지 않습니까. 1990년대 초 처음 상하이를 방문할 기회가 있어 훙커우공원엘 찾아갔더니 안내인이 소개해준 의거현장이라는 곳에 아무런 표지도 없어 서운했었습니다. 그 뒤에 다시 가보니 표지석도 서 있고 기념건물도 있어 무척 반갑더군요.

“10여년 전쯤 매헌기념사업회에서 윤 의사의 영혼을 모시는 매헌정(梅軒亭)을 건립했는데, 건물 앞에 있는 기념비가 너무 작을 뿐만 아니라 조각한 글도 ‘윤봉길 의사 의거현장, 1932년 4월29일’이라고만 돼 있었어요. 윤 의사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어느 나라 사람이 무슨 의거를 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당시 상하이 한국총영사 경창헌(慶昌憲)씨와 함께 상하이 시정부 외사부처장이었던 저우밍웨이(周明偉) 박사를 찾아가서 비석을 크게 할 것과 의거내용을 상세히 기록할 것을 부탁했지요. 그 뒤에 경 총영사 후임인 손상하(孫相賀) 총영사가 꾸준히 노력해 현재 큰 비석이 매헌정 앞에 새로 건립돼 여간 다행스럽지가 않습니다.”

-이밖에도 중국대륙에는 독립운동 관련 유적지가 도처에 많습니다. 특히 만주지역이나 한중국경지대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인 곳이 많은데요. 이를테면 청산리 대첩 현장 같은 곳은 현재 어떻게 보존되어 있나요.

“청산리 대첩 현장에는 기념비가 건립돼 있습니다. 광복회에서 세운 거죠. 봉오동 전투 현장에도 기념비가 있습니다만, 중국대륙 도처에 독립운동 관련 유적지가 산재해 있어 할 일이 태산 같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哈爾濱)역 현장에도 기념비가 없는 실정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중국에 와서 남긴 의미있는 발자취를 찾아내 복원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계신데요. 가장 관심이 큰 유적은 어떤 것입니까.

“독립운동 유적지를 찾아내 기념관을 만드는 일 다음에 착수한 것이 항저우에 있는 고려사(高麗寺)의 복구였는데,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항저우를 처음 방문한 것이 1948년인데 그후로 지금까지 20여차례는 찾았을 겁니다. 항저우는 남송의 수도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름난 아름다운 도시예요. ‘하늘에 천당이 있고, 지상에 소항(蘇杭 : 쑤저우와 항저우)이 있다’고 할 정도로 경치가 아름답고 미인이 많다는 곳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일제의 탄압을 피해 임시정부가 항저우로 이전한 일이 있고, 개인적으로는 제 처도 어렸을 적에 임시정부를 따라 부모님과 함께 항저우로 피난해 일본군이 진격한 1937년까지 그곳에서 학교를 다닌 인연이 있습니다.

제가 항저우의 고려사 복구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고려 11대 임금 문종(文宗)의 아들인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과 인연이 깊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절의 원래 이름은 혜인사(慧因寺)로 당시 유명한 정원(淨源)대사가 있던 곳이었어요. 의천은 정원의 가르침을 받을 목적으로 모친과 맏형인 12대 임금 순종(順宗)의 반대를 무릅쓰고 30세의 나이에 밀항하여 자오저우(膠州) 카이펑(開封)을 거쳐 항저우로 찾아가 정원대사에게 사사했어요. 그후 의천은 모친의 독촉으로 중국체류 1년4개월 만에 돌아와야 했는데, 귀국 후 혜인사에 많은 재물과 불전을 보낸 연유로 혜인사가 고려사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고려사는 현재 약간의 초석만 남아 있을 뿐 병란으로 소실된 상태입니다. 의천이 직접 창건한 절이 아니기 때문에 중국당국이 주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원의 복구가 어렵다면 기념비라도 세웠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람입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의천이 밀항하면서 처음 상륙했던 자오저우시에 어떤 유적지가 있지 않을까 해서 수소문한 끝에 현지 박물관 자료실장의 도움으로 의천의 상륙지점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의천이 20일 정도 머물렀던 곳도 알아냈고, 상륙지점에는 기념비도 세워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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